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싹이 전혀 나지 않은 것 같지만 아닙니다. 새싹이 자라고 있습니다.
 싹이 전혀 나지 않은 것 같지만 아닙니다. 새싹이 자라고 있습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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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토요일(4월 27일) 볍씨를 모판 상자에 담는 것으로 올해 벼농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만인 어제(4일) 모판을 만들었습니다. 일주일 새 귀한 생명이 자란 것입니다.

모가 자란 모습을 볼 때마다 어떻게 여린 것들이 흙을 뚫고 나오는지 신비롭습니다. 생명은 정말 고귀합니다. 언뜻보면 새싹이 전혀 보이지 않지만 다른 상자는 이미 촘촘히 난 새싹을 볼 수 있습니다. 새싹 위에 무거운 모판 상자를 올려도 부러지지 않습니다. 강할 수록 부러지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강함은 부드러움을 이길 수 없음을 벼 새싹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지난 주 토요일에 모판 상자에 담았던 볍씨가 벌써 싹이 났습니다.
 지난 주 토요일에 모판 상자에 담았던 볍씨가 벌써 싹이 났습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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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1년치 밥을 만들어줄 모판입니다.
 우리집 1년치 밥을 만들어줄 모판입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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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자를 옮길 때마다 자연의 신비를 경험합니다. 그리고 벼농사는 절대로 혼자 지을 수 없다는 걸 배웁니다. 아무리 기계로 농사를 짓는다지만, 모상자를 옮기고, 못자리를 만들 땐 사람 손이 필요합니다.

함께 일하면서 가족임을 확인합니다. 아무리 힘이 좋은 사람도 모상자 5개 이상 들 수 없지만, 4사람이 2개씩만 들어도 8개입니다. 벼농사는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사람 사는 세상입니다. 이날 함께 한 사람이 6명입니다. 여섯이 모상자 1000개를 옮겼습니다. 혼자 했다면 하루에 불가능한 일이지만, 여섯이 함께 하니 반나절에 다 끝냈습니다. 종이 한 장도 함께 들면 낫다는 말을 못자리 하면서 경험했습니다.

못자리를 하고 있습니다.
 못자리를 하고 있습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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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농사가 다 그렇지만, 홀로 할 수 없습니다. 조금씩 함께 해야 못자리를 할 수 있습니다.
 모든 농사가 다 그렇지만, 홀로 할 수 없습니다. 조금씩 함께 해야 못자리를 할 수 있습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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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싹이 잘 났네."
"어제까지만 해도 많이 안 났는데. 오늘 보니 많이 났다."
"손으로 볍씨를 뿌려 잘 나지 않을 줄 알았지만 생각보다 잘 났다."
"여기가 따뜻 하잖아."
"옛날에는 모판 상자를 우리집만 1500개 이상을 했는데, 올해는 외할아버지까지 포함해 1000개 정도 밖에 안 되네."

"외할아버지도 논을 많이 줄였고, 우리 집도 이제는 먹을 양식만 하니까. 적을 수밖에."
"우리집만 아니다. 요즘 논을 공장이나 아파트로 만드는 곳이 얼마나 많나."

1년 전만 해도 논이었는데 공장이 들어선 곳이 많습니다. 점점 논은 없어지고, 공장과 아파트를 짓습니다. 지금 당장은 공장과 아파트가 들어서 땅값이 올라 좋을 것 같지만 결국은 우리 먹을거리가 사라지는 일입니다. 무엇보다 논은 지구를 살리는 생명 창고입니다. 벼농사를 지어려면 반드시 물이 필요합니다. 지금부터 8월말까지 약 넉 달 동안은 논에 물이 가득해야 합니다. 논물은 이상기후를 막아줍니다. 하지만 공장과 아파트는 이상기후를 막아주지 못합니다.

못자리. 아래쪽 초록빛깔 벼는 참벼(찹쌀)이고., 누렇게 보이는 것은 일반벼입니다.
 못자리. 아래쪽 초록빛깔 벼는 참벼(찹쌀)이고., 누렇게 보이는 것은 일반벼입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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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자리를 할 때마다 논은 우리에게 밥을 만들어주는 생명보고이면서, 지구를 이상기후에서 지켜주는 보호막임을 알게 됩니다. 왜 사람들은 이렇게 귀한 논을 공장과 아파트로 만들어버리는지 도무지 이해를 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이 살기 위해선 공장과 아파트도 필요합니다. 논은 보배입니다. 보배로운 논은 우리에게 쌀과 생명을 줍니다. 공장과 아파트부터 짓는 개발이 아니라 논이 주는 귀한 선물을 누리며 살 때 더 사람사는 세상이 될 것입니다. 이날 모판한 모는 한 달 후 쯤, 모내기를 하게 됩니다.


태그:#모판, #못자리, #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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