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에는 영화 <고령화가족>의 일부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고령화가족> 스틸 사진.

<고령화가족> 스틸 사진. ⓒ 인벤트 스톤


<고령화가족>은 천명관 작가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파이란>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의 송해성 감독이 연출과 공동 각본을 맡았다. 원작 소설을 읽으며 송 감독은 가슴 한 편이 편해질 수 있지 않았을까. 영화 좀 보는 사람이라면 이 소설의 재밌고 생생한 표현력이 영상을 떠올리게 할테니 말이다.

한마디로 이 영화는 소동극이다. 좀 더 길게 말하자면 콩가루 집안 사람들이 벌이는 소동극이라는 원재료에 어처구니 없이 웃기는 막장 유머와 조폭 드라마, 그리고 가족애라는 양념들이 더해져 있다. 청소년 문제와 기혼자의 불륜 문제, 불법 도박 문제 등도 건드린다.

영화를 보기 전 기대했었다. 초반에 정신없이 웃기다 중반 이후 진한 감동을 주고나서 결말 짓지 않을까 하고. 특히 주인공들의 어머니(윤여정 분)가 큰 감동을 주며 나이든 미혼의 불효 자식들을 반성하게 하지 않을까 예상했었다. 그 예상이 완전 빗나간 건 아니지만, 꽤 다르게 느껴진 점이 있었다.

생각보다 웃음이 크지 않았고, 잔잔한 편이었다. 영화 속 웃음 코드를 살펴보자. 우선 인모(박해일 분)가 나오는 첫 시퀀스부터 웃음이 나기 시작한다. 이 시퀀스는 극 중반 쯤에 설명이 된다. 폭력이란 방법은 나빴지만, 제법 바른 생각을 지니고 있는 인모의 캐릭터를 보여주는 시퀀스다.

 <고령화가족> 스틸 사진.

<고령화가족> 스틸 사진. ⓒ 인벤트 스톤


웃기고 짠한 영화

인모가 웃음을 주는 이유는 앞서 말했듯 그가 바른 정신과 정의로운 생각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그의 진지함은 웃음도 주지만 '짠한' 감동도 준다. 초반부터 궁핍하고 비참한 자신의 처지를 견디지 못한 그는 자살을 시도한다. 그가 목을 맨 채 갑자기 걸려온 어머니의 전화를 받는 신은 <고령화가족>에서 볼 수 있는 첫 번째 '짠함'이다.

한모(윤제문 분) 또한 만만치 않다. 그는 영화 속에서 사람같지 않아 보이기도 한다. 이런 표현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정말 '개같다'. 지능도 약간 떨어져 보인다. 사십대 중반이 되도록 직업도 없고, 결혼도 못한 채 교도소에 다녀온 전력이 가장 돋보이는(?) 이력인 한모이기에 윤제문은 그런 인물의 마음 상태에 따라 연기했다.

영화에서 인모와 한모가 보여주는 우애는 영화적 재미를 주는 포인트로 작용한다. 주인공 가족 중에서 미연(공효진 분), 어머니, 민경(진지희 분)도 진상이지만 그들보다 더 못한 이들이 인모와 한모 형제다. 영화는 상대적으로 지질한 두 남자를 대활약하게 함으로써 감동을 준다. 두 남자가 정신 차리는 과정을 오버하지 않고 보여주는 과정이 <고령화가족>의 핵심과도 통한다.

 <고령화가족> 스틸 사진.

<고령화가족> 스틸 사진. ⓒ 인벤트 스톤


우리네 어머니를 닮은 이야기

<고령화가족>은 사람을 존중하자는 이야기다.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다. 그런 이야기를 가족을 활용해 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아무리 콩가루 집안이더라도 가족은 인권을 유지시켜주는 버팀목 같은 의미라는걸 되새기게 해준다. 영화에서 주인공 가족들은 원치않는 동거 생활을 하다 결국에는 행복하게 가족을 해체시킨다. 대가족이냐 핵가족이냐 보다 중요한 건 가족이 있다는 그 사실이고, 시간이 흐르며 잊고 살기 쉬운 가족의 소중함은 알고보면 인생의 기본이라고 이 영화는 얘기하고 있다.

비록 막장 드라마 같은 가족 얘기지만 보는 이에게 따뜻함을 줄 수 있는 이유는, 영화가 그런 지질한 가족 구성원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었기 때문이다. 마치 어머니가 평생 자식을 그렇게 바라보듯 말이다. 어머니와 이 영화를 보고 나서 한번 꼭 안아드리면 어떨까. 재미를 위해 정신 사나운 설정들이 많이 첨가됐지만, 본질은 우리네 어머니를 닮은 작품이었다. '잔잔하고 한결같은 따뜻함'. 그것이 영화 <고령화가족>이 닮은 우리네 어머니의 특징 아닐런지.

[부록] <고령화가족> 원작 소설 Vs. 영화

영화와 원작 소설은 같은 점도 있고, 다른 점도 있다. 영화의 몇몇 대사는 원작 소설과 거의 같기도 하다. 동네 할머니들이 인모 가족을 흉보는 신은 소설에도 비슷하게 존재한다. 간단하게 원작 소설과 영화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짚어보았다.

1. 영화에는 한모가 과거 조직폭력, 그는 과거 아이가 있는 연상의 밤무대 가수와 함께 살았었다. 영화 속에서 한모는 '나도 새출발 할까'라는 말을 한다. 그에게 사랑의 전력이 있다는 의미다. 

2. 원작 소설을 보면 인모는 헤밍웨이를 좋아한다. 영화를 보면 인모가 어떤 책을 읽는 장면이 나오고, 한모가 '무슨 책 읽냐'고 했을때 '너는 봐도 모르는 책'이라고 하는데, 그 책은 헤밍웨이의 소설인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일 가능성이 높다.

3. 영화에서 인모는 조카인 민경에게서 돈을 뺐는다. 미용실 원장인 수자(예지원 분)와 여행갈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 그러는데, 원작 소설에는 인모가 민경에게 10만원을 뺏은 뒤 1만원을 용돈이라며 돌려주는 장면도 나온다. 이게 영화의 최종편집본 속에 포함되었다면 관객들은 폭소를 터뜨리지 않았을까 싶다. 영화에는 그런 장면이 나오지 않는다. 영화 속 인모는 원작보다 가볍지 않은 인물이기에, 인모의 캐릭터를 위해 포함시키지 않은 듯 하다.  

4. 영화에서 인모는 한 에로영화 제작자에게서 '빨간 마누라'라는 시나리오를 받게 된다. 원작 소설을 보면 그 시나리오의 내용에는 금슬이 좋지않던 부부가 있었는데, 아내가 머리를 빨갛게 염색하고나서 금슬 좋아졌다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5. 영화에는 자세히 나오지 않지만, 원작 소설에서 미연은 상고를 졸업한 후 정수기 회사를 다니며 가족 몰래 룸살롱에서 일했다. 영화에서는 새로운 남편과 옷가게를 하는 걸로 결말 지어지지만, 원작소설에서는 순두부 전문 식당을 여는걸로 나온다. 

6. 소설에선 인모가 수자와 회를 먹으러 간 바닷가는 안면도다. 영화 속에서 인모와 미연이 가출한 민경이 있다고 해서 천안에 가는데, 소설에는 천안이 아니라 대구로 나온다.

7. 영화에서 인모의 주위에는 두 명의 여자가 있다. 한 명은 수자고, 한 명은 이혼한 아내다. 원작 소설에서 이혼한 아내는 전직 스튜어디스로 나온다. 원작 소설엔 영화에는 나오지 않는 또 한 명의 여자가 있는데, 인모처럼 영화일을 하다가(인모와는 애인이자 선후배 사이였다) 다른 남자와 결혼해 캐나다로 이민갔던 윤주다.

영화 속에는 인모와 윤주의 과거가 전혀 나오지 않는다. 영화의 결말도 인모가 에로 영화 감독으로 잘 지내는 것만 나오는데, 원작 소설에서는 윤주가 이혼 후 한국에 와 인모를 다시 만나는걸로 나온다. 두 사람이 잘 지내면서 해피엔딩이 되는 것이다. 어쨌든 영화나 원작 소설이나 해피 엔딩인 것은 같다. 다만 한 가지, 영화 속에서는 어머니가 재혼을 하고 끝나는데(재혼하는 남편 역은 박근형 배우가 맡았다) 원작 소설에서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끝난다.


윤제문 고령화가족 박해일 윤여정 공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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