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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원 <한국일보> 노조 비대위원장. <한국일보> 비대위는 지난 29일 장재구 회장을 배임혐의로 고발했다. 장 회장은 여기에 보복성 편집국 인사로 맞대응했고, 노조는 '노사합의를 어긴 절차'라며 반발하고 있다.
 정상원 <한국일보> 노조 비대위원장. <한국일보> 비대위는 지난 29일 장재구 회장을 배임혐의로 고발했다. 장 회장은 여기에 보복성 편집국 인사로 맞대응했고, 노조는 '노사합의를 어긴 절차'라며 반발하고 있다.
ⓒ 박소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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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년 <한국일보> 역사에 처음 있는 일이다. (노동조합이) 회사를 고발했다고 (편집국장 등을) 무자비하게 측근으로 바꾸는 비상식적 인사도, 저희들의 뜻을 1면에 내는 일도, (사측의 훼방으로) 지면제작에 차질을 빚는 일도 모두 처음이다."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일보지부 비상대책위원회(아래 비대위) 정상원 위원장은 3일 오후 <오마이뉴스>와 만난 자리에서 말했다.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 노조사무실에서 그와 대화하는 동안 다른 조합원들은 기자들에게 보낼 공지 문자메시지를 작성하고 있었다. '온라인 편집국을 별도로 만들었으니 지면 (제작) 계획, 출고할 기사 등을 그쪽에 올려 달라'는 내용이었다. 정 위원장은 "회사가 저희들이 올리는 기사 자체를 삭제하고, 지면 계획도 지우고 있는데다 오늘 신문은 기사 일부를 마음대로 뺐다"며 "제작 방해, 업무 방해를 회사가 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측, 기사·지면 삭제... 업무 방해하고 있다"

<한국일보> 노조는 4월 29일 장재구 회장을 배임혐의로 고발했고, 장 회장은 5월 1일 편집국 인사조치를 강행했다. 노조는 사측이 '노사합의를 어겼다'며 비대위를 구성,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2일 열린 비상총회 모습.
 <한국일보> 노조는 4월 29일 장재구 회장을 배임혐의로 고발했고, 장 회장은 5월 1일 편집국 인사조치를 강행했다. 노조는 사측이 '노사합의를 어겼다'며 비대위를 구성,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2일 열린 비상총회 모습.
ⓒ <한국일보> 노조 비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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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측이 신문 제작을 방해한다? 시작은 5월 2일자 신문이었다. 이날 <한국일보> 1면 오른쪽 상단에는 기사가 아닌 '회장의 불법 인사를 거부한다'는 제목의 비대위 성명서가 실렸다. 4월 29일 비대위는 장재구 <한국일보> 회장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업무상 배임)혐의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고발했다.

장 회장이 2002년부터 경영권을 인수하며 약속한 '700억 원 증자'를 여러 곳에서 돈을 빌린 뒤 회사 돈을 빼돌려 이를 갚는 식으로 법을 위반했다는 의혹이 있고, 중학동 사옥 매각 과정에서도 불법을 저질러 결과적으로 회사에 200억 원 상당의 재산상 손해를 끼쳤다는 이유였다.

비대위의 검찰 고발 이틀 후인 1일, 장 회장은 갑작스레 이영성 편집국장을 창간 60주년 기획단장으로, 하종오 사회부장을 편집국장에 임명하는 등 편집국 간부 인사를 강행했다. 노사가 합의한 <한국일보 편집강령규정> 제8조 '편집국장 임명 5일 전에 내정자를 조합과 평의회에 통보한다'를 일방적으로 어긴 것이다.

정 위원장은 "노조가 항의하자 인사부장이 '그런 절차가 있었지?'란 반응을 보였다"며 "근본적으로 하자가 있는 인사 조치였다"고 지적했다. 이영성 편집국장도 이에 동의, 2일 서울지역에 배포한 신문 1면에 비대위 성명서를 게재했다.

노조의 배임죄 고발에 회장은 인사 강행... "노사 합의 어겨"

<한국일보> 기자들은 장재구 회장이 5월 1일 단행한 인사조치에 항의해 기수별로 항의 성명을 냈다.
 <한국일보> 기자들은 장재구 회장이 5월 1일 단행한 인사조치에 항의해 기수별로 항의 성명을 냈다.
ⓒ 박소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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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이 사실을 안 사측은 곧바로 신문을 회수했고, 같은 위치에 다른 기사를 끼워 넣었다. 또 비대위의 2일 비상총회 소식을 담은 기사가 담긴 3일자 신문 2면의 기사도 다른 것으로 교체했다.

정 위원장은 "여론면에 난 '한국일보 인사' 내용도 사측이 집어넣었고, 지면에 난 편집국장 이름도 교체했다"며 "(비대위는) 새로 임명한 편집국장 등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비대위는 '사측이 임기 1년 미만인 편집국장을 보직 해임할 경우 편집국원 재적 3분의 2 이상이 반대하면 철회해야 한다'는 <한국일보 편집강령규정>에 따라 이영성 편집국장의 보직 해임 반대 투표를 3일 오후 7시 30분부터 6일 낮 12시까지 진행한다. 동시에 인사명령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접수시킬 예정이다.

검찰 수사도 빠른 속도로 진행 중이다. 검찰은 이날 사건을 형사 5부로 배당하고, 정 위원장에게 8일 수사를 위해 출석 요청까지 했다.

정 위원장은 "보통 사건 배당부터 수사 착수하는 데 2주 이상 걸리는데, 이 사건은 접수 4일 만에 배당에 출석요청까지 이뤄졌다"며 "검찰도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한 것 같다"고 말했다. 비대위는 200억 원 문제뿐 아니라 장 회장을 회사 장부를 조작, 자산을 빼돌렸다는 혐의로 추가 고발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 관련 증거는 이미 확보한 상태다.

"장재구 회장 본인이 진행한 매각이 적대적 M&A라고?"

노조가 사측과 나름 타협을 시도한 때도 있었다. 정 위원장은 "노조가 2011년 초 (200억 원) 문제를 제기했을 때 장 회장도 다 인정하며 '돈을 돌려놓으면 면책해달라'고 해서 <한국일보>와 <미주한국일보>, <서울경제> 등의 매각을 진행했다"고 말했다. <한국일보>의 경우 최근 한 기업과 협상을 마무리 짓는 단계였다.

그런데 비대위 고발 다음날인 4월 30일, 장 회장은 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매각 중단을 알렸다. '적대적 인수합병(M&A)를 하려는 무리로부터 회사를 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정 위원장은 "애당초 매각을 진행한 사람이 장 회장"이라며 "그가 '회사를 매각해도 명예회장으로 경영에 참여하겠다'는 등 상대방이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을 냈다"고 주장했다.

비대위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장 회장의 퇴진뿐 아니라 <한국일보>의 경영 정상화를 꾀하고 있다. 최근 <한국일보>는 출입처 기자실비는 물론 기자들에게 출장비나 통신비 등 각종 수당을 지급하지 못하고 있다. 기자 등은 월급이 나올지조차 매달 걱정하는 상황이다. 비대위는 사측이 지급하지 못한 퇴직금, 미지급 채권 등을 확보해 독자회생절차를 밟는 일도 준비 중이다.


태그:#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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