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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를 출입하는 정치팀 이승훈 기자가 기사에서 미처 풀어내지 못한 청와대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편집자말]
지난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 청와대를 출입했던 <오마이뉴스> 기자들에게는 한가지 연례행사가 있었습니다. 인터넷 매체를 유령 취급하는 청와대의 희한한 방침을 비판하는 칼럼을 써야만 했었죠. 당시 이명박 정부는 매년 정기적으로 열렸던 대통령과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간담회에 단 한 번도 인터넷 매체를 초청한 적이 없습니다. '프레스 프렌들리'를 천명한 이명박 정부였지만 인터넷 매체라면 청와대 풀기자단에 속해있든 아니든, 보수 매체든 진보매채 든 가리지 않고 대통령과의 간담회에 철저하게 배제했습니다.

인터넷 언론을 배제한 대통령 간담회에도 뒷말이 나왔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유명했던 특정언론 편애가 자리 배치에서도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정부 요직에 자사 출신들이 대거 발탁된 한 보수언론은 대통령 옆자리를 차지한 반면 진보성향의 언론들은 대통령 얼굴이 보이지 않는 말석에 배치된 것입니다. 당시 말석에 앉았던 한 매체는 항의의 뜻으로 다음 대통령 간담회에는 초청을 받고도 참석을 거부했다는 후문입니다.

모든 인터넷 매체들이 청와대의 이런 언론 배제 방침을 지면을 통해 비판했고 인터넷언론협회 차원의 대응도 있었지만 청와대는 요지부동이었습니다. (그나마 보수 진보를 가르지 않고 공평하게 모두 배제했다는 게 굳이 꼽자면 위안이라면 위안이었죠. )당시 청와대를 출입했던 보수 성향 인터넷 매체의 한 기자는 "비판하는 칼럼을 쓰면 뭐하나. 대통령은 전혀 인터넷을 보지 않으니 이런 문제가 있는지도 모를 것"이라고 자조하더군요.

이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청와대는 청와대 기자실 중앙송고실에 있는 인터넷 매체들의 기자석을 철거했습니다. 대통령 순방시 인터넷 매체 참가 규모를 제한하기도 했죠. 인터넷 언론에는 그야말로 암흑의 시대였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 기자실 모습은?

24일 청와대서 열린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오찬 간담회
 24일 청와대서 열린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오찬 간담회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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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박근혜 정부는 어떨까요. 사실 걱정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지난 대선 때 당시 새누리당 후보였던 박 대통령으로부터 '악랄하게 사진을 유포한 언론'이라는 공격을 받았습니다. 박 대통령이 대선 선거운동 차 대한노인회중앙회를 방문한 자리에서 한 노년 여성 지지자가 악수를 청하자 양 손을 등 뒤로 돌린 채 사양하는 모습이 담긴 오마이뉴스 보도 사진을 지칭한 이야기였습니다.

당시 누리꾼들은 <오마이뉴스> 보도 사진에 박 대통령이 대한노인회 간부를 만나서 악수하는 모습을 덧붙여 박 대통령이 사람 가려서 악수한다는 비판을 하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박 대통령은 TV토론에서 "그 사진을 딱 찍어서 악랄하게 유포시켰다"고 비난했죠. 당시 박 대통령이 <오마이뉴스> 보도 사진을 지칭한 것인지, 누리꾼들이 2차 가공한 사진을 겨냥한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았지만 <오마이뉴스>는 유력 대선 후보로부터 악랄한 보도를 한 언론으로 낙인찍힌 셈이 됐습니다. 악수를 사양하는 장면 전후 사진 100장이 모두 공개되면서 오마이뉴스 보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는 점이 밝혀지긴 했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특정 언론을 청와대 행사에서 배제하는 비상식적인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지난 4월 24일 열린 박 대통령 초청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간담회에 <오마이뉴스> 등 풀기자단에 속해 있는 인터넷 매체들은 모두 참석했습니다. 이번 대통령 간담회에 초청 사실을 내부에 보고했더니 이명박 정부 때 청와대를 출입했던 선배 기자는 "mb때는 완전 그림자 취급했는데, 이런 건 박근혜 정부가 다르군요"라는 댓글을 달았더군요.

또 당시 편집·보도국장 간담회에서 박 대통령은 인터넷 기사에 달린 댓글까지 챙겨본다는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박 대통령은 "언론의 칼럼도 보고 기사도 보고 요즘 인터넷도 들어가 보면 기사 밑에 또 여러 가지 평을 한 글도 있고 볼 게 엄청나게 많다. 그런 것이 다 하나의 국민들의 생각이다, 다양한 생각들을 균형 있게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어떤 인터넷 사이트에 자주 방문하는지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편식하지 않는다는 게 참모들의 전언입니다. 박 대통령은 새누리당 대표 시절부터 오히려 비판적인 보도를 꼭 챙겨본다고 합니다. 

의구심 여전한 언론정책, 상식 찾을까

같은 보수 정권이지만 박근혜 정부에서는 전 정권의 비상식적인 대 언론 인식은 사라졌습니다. 이전 정부 때 중앙송고실에서 쫓겨났던 인터넷매체들은 간소한 춘추관 리모델링 후 5년만에 다시 자리를 찾았습니다. 다만 이번 편집·보도국장 간담회에는 풀기자단에 속해 있지 않은 인터넷 매채들은 초청 대상에서 빠진 한계도 있었습니다.

2일 결정되는 MBC 사장 선임을 놓고도 청와대가 특정인을 밀고 있다는 등의 이야기가 떠돌고 있기도 합니다. 물론 청와대 관계자들은 절대 그런 일이 없다고 펄쩍 뛰고 있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모습으로만 보자면 박근혜 정부에서는 이명박 정부처럼 노골적인 언론 장악에 나서는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박 대통령은 지난 3월 4일 대국민담회에서 "수많은 소셜 미디어들과 인터넷 언론이 넘치는 세상에 정부가 방송을 장악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일부에서 주장하는 방송장악 할 생각 없고 법적으로도 불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경재 방송통신위원장 기용, 방송정책의 미래창조과학부 이관 논란 등에서 보듯 의구심은 여전합니다. 이런 의구심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언론들도 박 대통령의 진심을 믿어주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우리도 잘 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말이 진심이었구나라고 알게 될 것이다."

이 관계자의 공언대로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후 청와대 기자실이 상식을 회복했듯, 언론 정책도 과연 상식을 회복하게 될까요. 두눈 부릅 뜨고 지켜봐야겠습니다.


태그:#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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