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굵직한 공직선거 때마다 출몰하는 '투표소 유령'이 있다. '오페라의 유령'은 들어봤어도 투표소 유령은 금시초문이라고 하실 분들이 있을 것이다. 투표소 유령이란 투표 사무원이 교부한 투표용지보다 투표수가 더 나온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다.

가령 투표소에서 1천매의 투표용지를 교부했다면 투표수도 1천표가 나와야 정상이다. 물론 드물긴 하지만 투표용지 교부수보다 몇 표 모자랄 수는 있다. 선거인이 투표하러 왔다가 변심해 투표지를 투표함에 넣지 않고 가져가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하지만 교부수보다 투표수가 더 나왔다면 이는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문제는 실제 이 같은 일이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는 데 있다.

18대 대선 교부수보다 투표지 더 나온 곳 자료
▲ 교부수보다 투표지 더 나온 곳 18대 대선 교부수보다 투표지 더 나온 곳 자료
ⓒ 정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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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소 유령을 색출하고자 18대 대선 전국 1만 3542곳 개표 상황표를 살펴봤다. 그 중에 203곳(1.49%)에서 교부수보다 투표수가 더 많았다. 한 투표구에서 2표가 더 나온 경우는 17건, 3표 4건, 4표 4건, 5표 1건이 있었고 나머지 대부분은 1표씩 추가되었다. 한 투표구에서 8표와 9표가 더 나온 사례도 있었으나 개표 사무원의 오기에 의한 것이라며 정정 돼 있었다.

교부수보다 투표수가 가장 많이 나온 곳은 광주시 남구 주월1동 1투표구로 무려 10표나 더 많았다. 교부수보다 투표용지가 더 나온 투표소를 전국 252곳 개표소별로 분류하면 한 개표소당 1건이 채 안 되는 꼴이다. 그런데 성동구(8), 은평구(6), 김포시(5), 용인시 기흥구(9), 경기 광주시(6), 대전 유성구(10), 대구 북구(7), 남양주시(4), 아산시(4), 부안군(5), 전남 광주(광산구 3, 남구 3, 동구 4, 북구 4=14), 김해시(4), 부산 사하구(4) 같은 일부지역에서는 여러 건이 무더기로 발견됐다. 해당 지역 7군데 선거관리위원회에 그 원인을 알아보았다. 각 선관위 관리계장들의 해명은 크게 다음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① 투표 관리관의 단순 계수 착오 - 투표 사무원을 구청, 동직원이나 일반인이 맡다보니 전문성이 떨어져 실수했을 가능성.

② 대선과 보궐선거 투표를 동시에 치른 지역의 경우 선거인이 실수로 대선 투표함에 두 장의 투표용지를 넣었을 수 있음.

③ 투표지분류기(전자개표기) 운용요원이 제어용 PC에 투표용지 교부수를 입력할 때 부재자 투표용지를 반납한 투표자수를 누락한 경우(광주 동구와 주월 1동 1투표구 사례가 이에 해당된 것으로 추정).

④ 부재자 투표용지를 수령한 선거인이 투표하지 않고 투표용지를 제3자에게 넘겨줘 대리 투표했을 가능성.

선관위의 이 네 가지 해명은 조사로 밝혀진 사실이 아니라 그럴 가능성이 크다는 추정이다. 현 상태에서는 투표함을 열어 투표록, 선거인명부, 개표 상황표 등 관련 서류와 면밀히 대조해 가며 조사한다고 해도 명확한 원인 규명이 힘들다. 선거인이 사용하는 투표용지에 검증 가능한 일련번호나 어떠한 고유 표시도 기재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투표용지 교부수보다 투표수가 더 나왔다면 개표가 다소 지연되더라도 현장에서 곧장 그 원인을 파악해 바로잡아야 그나마 이 같은 사고가 줄어들 것이다.

앞서 선관위가 내놓은 네 가지 해명을 보면 향후 투표관리에서 개선해야할 점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첫째, 투표 관리관은 반드시 전문성 갖춘 선관위 직원이 맡도록 해야 할 것이다. 둘째, 두 가지 이상의 공직선거를  동시에 치를 때는 선거인의 실수를 방지하기 위해 투표함뿐만 아니라 투표용지도 규격을 달리 제작해야 한다. 또한 부재자 투표용지와 일반 선거인 투표용지도 식별 가능한 차이를 두어 부정개입의 빈틈을 없애야 한다.

셋째, 투표지 교부수보다 투표수가 더 나오는 일이 없도록 유권자가 사후에 본인의 투표용지를 충분히 검증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넷째, 현재 많은 선진국이 실시하는 '투표소 개표'를 통해 개표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부정 개입의 소지를 줄이고 개표 시간과 비용을 줄여 효율을 높여야 한다.

투표지 절취선 양쪽에 일련번호를 부여하자는 제안
▲ 투표지에 일련번호를 부여하라 투표지 절취선 양쪽에 일련번호를 부여하자는 제안
ⓒ p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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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작년 총선이 끝난뒤 필명 pow는 아고라 이슈 청원방에 "부정선거 유발하는 일련번호 없는 투표용지 즉각 개선하라!"는 청원을 올려 6320명의 서명을 받은 바 있다.


태그:#투표소 유령, #투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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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솔샘교회(solsam.zio.to) 목사입니다. '정의와 평화가 입맞추는 세상' 함께 꿈꾸며 이루어 가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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