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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호텔에 근무하는 곽아무개(27)씨는 1년에 한두 차례는 꼭 '불량 고객'의 행패를 경험한다. 지난해엔 법조계에 있다는 고객한테 당했다. 안내를 하는데 그 고객이 어깨동무를 했다. 술 냄새가 심하게 났다. 그러더니 "너희들 미팅할 때 나는 열심히 공부해서 이 자리에 올랐다. 왜? 아니꼬우냐?"라며 비아냥대는 것이 아닌가. 곽씨는 속이 타오르면서 분노가 치밀었지만 그냥 웃기만 했다.

#2. "당신 아이라면 100만 원 어치를 사주겠어? 왜 안 말렸어? 난 모르니까 당신이 영수증 들고 우리 집으로 와서 다 환불 처리해."

아동용품 전문매장에 근무하는 차아무개(26)씨는 손님의 부당한 항의 전화에 몸서리를 친다. 최근 30대 후반의 부부가 아이 2명을 데리고 매장에 왔다. 부부는 잠바와 바지, 셔츠 등 약 100만 원어치를 샀다. 그러나 차씨는 아이 엄마의 못마땅한 표정이 맘에 걸렸다. 아이 엄마가 고른 옷을 남편이 무시했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엄마는 바로 다음 날 전화를 걸어와 남편에게 받은 스트레스를 차씨에게 퍼부었다. 입에 담기도 힘든 욕설이 난무했고 '못 배운 주제에, 매장 점원 따위가'와 같은 인신공격이 쏟아졌다. 차씨는 정신이 쏙 빠져 멍하니 듣다가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펑펑 눈물을 쏟았다.

비행기 승무원 폭행으로 주목받는 감정노동자

포스코에너지 상무의 대한항공 여승무원 폭행 사건이 논란이다.
 포스코에너지 상무의 대한항공 여승무원 폭행 사건이 논란이다.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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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씨와 차씨의 사례는 감정노동자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최근 포스코에너지의 한 임원이 비행기 안에서 승무원을 폭행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감정노동자들의 현실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손님의 불만과 항의에도 꾹 참고 웃음으로 대해야 하는 감정노동자를 배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감정노동이란 '말투나 표정, 몸짓 등 드러나는 감정 표현을 직무의 한 부분으로 연기하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려 노력해야 하는 일'을 뜻한다.

감정노동자는 인격무시, 폭언과 폭력, 성희롱에 무방비로 노출되기 쉽다. 감정노동자가 불합리한 고객에게 불친절하게 응대할 경우 사업주는 노동자보다는 고객을 우선하는 배려로 노동자들은 이중의 피해를 입게 되는 경우도 많다. 특히 일부 기업에서는 '미스터리 쇼퍼', '미스터리 페이션트' 등의 가짜 고객, 가까 환자를 만들어 노동자를 곤혹스럽게 한다. 응대 태도를 평가해 인사조치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나타나 감정노동자의 고충은 극에 달하고 있다.

이같은 현실은 스트레스와 우울증으로 이어지기 쉽다. 감정노동자는 일반인에 비해 우울증 경험 비율이 2배에 가까운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복지부의 2012년 국민건강통계에 따르면, 우울증 경험비율이 남성 10%, 여성16%로 나타났다. 반면 전국 서비스연맹이 실시한 조사에서는 감정노동자들 중 26%가 우울증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악화되는 감정노동자의 현실을 짚어보고 해결방안을 찾는 토론회가 29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다. 심상정 진보정의당 의원, 한명숙·전순옥 민주통합당 의원과 감정노동대책위원회는 '웃음 때문에 침몰하는 감정노동자, 한국노동자의 감정노동실태와 개선방향'이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연다.

감정노동자, 전체 노동자의 최소 40%... 회사 매뉴얼은 '무조건 사과하기'뿐

임상혁 노동환경건강연구소장이 '우리나라 노동자의 감정노동 실태와 개선방향'을 주제로 발제를 맡고, 윤은정 전국 보건의료노조 정책부장이 병원노동자의 감정노동 실태를, 권수정 공공운수노조 아시아나항공지부장이 항공운송산업에서의 감정노동 실태를, 윤진영 희망연대노조 사무국장이 120다산콜센터 전화 상담원의 실태를 보여준다. 이성종 전국 서비스연맹 정책실장은 감정노동자 보호방안을 제시한다.

임상혁 노동환경건강연구소장은 "감정노동자는 전체 노동자의 최소한 40%에 달하지만 감정노동자에 대한 관리 시스템이 전혀 없다"며 "회사의 응대 매뉴얼에서 '무조건 사과하기'가 전부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임 소장은 "사업주가 감정노동자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없으면 개선이 불가능하다"며 "가이드라인 대신 법적 구속력을 갖는 대응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이성종 서비스연맹 정책실장은 기업과 정부를 향해 감정노동자 보호방안을 제시했다. 이 실장은 기업에게는 ▲ 단체협약시 감정노동자의 특별수당 지급 ▲ 정신건강 예방관리 프로그램 운영 ▲ 작업환경에 대한 조사 및 개선 ▲ 휴게시설 확대 및 휴게시간 보장 ▲ 고객에 의한 성희롱 예방 매뉴얼 개발과 보급 등을 요구했다. 정부에게는 ▲ 근로기준법 내 감정노동 용어 추가 ▲ 산업안전보건법, 산업재해보상보험법 등 감정노동자 산재 인정 추진 법안 마련을 요구했다.

토론회에 앞서 심상정 의원은 "'손님이 왕이다'는 잘못된 사회 인식 속에 감정노동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며 "감정노동자들이 겪는 감정의 손상을 최소화하고 치유하는데 국가의 책임이 강조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심 의원은 "감정노동자들이 웃는 가면을 벗고,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게 표정 지을 수 있는 사회를 위해 함께 하겠다"고 덧붙였다.


태그:#감정노동자, #심상정 의원, #전국 서비스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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