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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속도를 선택한 사람들
▲ 김남희, 쓰지 신이치의 <삶의 속도, 행복의 방향> 삶의 속도를 선택한 사람들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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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삶의 속도는 몇 킬로미터입니까?"

도보 여행 작가 김남희와 슬로라이프를 최초로 제창한 문화인류학자이며 환경운동가인 쓰지 신이치가 삶의 속도를 '선택한' 사람들을 함께 찾아 나선 책 <삶의 속도, 행복의 방향>은 이렇게 질문을 던진다.

삶의 속도를 선택했다는 말은 곧 느리게 사는 삶을 선택했다는 말이고, 느리게 사는 삶이란  다르게 사는 삶을 의미한다. 기존의 체제가 제시하는 관행과 틀 속에서 의심할 여지없이 다급하게 살아온 삶과 한 방향의 좁은 문을 통과해야 행복한 미래가 보장된다고 몰리듯 살아온 삶을 돌아보며 나만의 속도와 방향을 선택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 책 속에 담겨 있다.

걷지 않고 탄생한 철학은 믿지 마라

저자의 말대로 부와 명예, 권력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 인생에서 다른 가치를 찾으려 하는 사람들, 그리고 '각자의 방식으로, 자기만의 속도, 자기 안의 평화'를 이루어내며 살아가는 사람들, 한 마디로 '행복한 아웃사이더'들의 이야기이다. 또한 이 책 속에는 기존의 탕진하며 사는 삶을 반성하고 새로운 삶의 양태를 제시하는 저자들의 선각자적인 지혜도 많이 만날 수 있다.

저자는 인도와 중국 사이의 히말라야 산속 작은 나라 부탄을 찾고, 한국, 일본을 넘나들며, 홋카이도와 강원도와 안동, 오사카와 나라, 그리고 지리산과 제주를 찾아 사람과 자연을 만난다. 사람, 자연, 그리고 삶을 김남희와 쓰지 신이치 두 사람이 같이 만나고, 같은 주제를 각자의 시각으로 풀어내고 있는데, 두 사람의 입장 차이에 따라 달라지고 같아지며 변주하는 이야기를 비교하며 읽을 수 있어 흥미롭다.

쓰지 신이치는 걷기의 달인이랄 수 있는 김남희와 같이 걸어 다닌 여행을 순례에 비유하며, '지구순례자' 사티시 쿠마르의 지혜를 책의 서두로 삼았다.

"걷는다는 행위 없이 몸과 마음, 영혼의 건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걷기를 통해 우리는 대지와 맞닿아 지구를 느끼며, 지구를 통해 나무와 나비와 꿀벌들에게 지혜를 얻으며, 두 발로 걷는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 지혜를 얻습니다. 걷지 않고 탄생한 철학을 믿지 마십시오."(프롤로그에서)

느린 부탄과 '국민총행복', GNH

부탄은 세계에서 가장 늦게 근대화의 길을 걸었지만 가장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로 이미 많이 알려진 나라이다. 국민총생산 GNP나 국내총생산 GDP와는 다른 그 나라만의 독특한 국민총행복 GNH라는 단어 덕에 더욱 많이 알려졌을 것이다. 부탄의  GNH 정책은 세계적인 경제성장노선으로 인한 심각한 폐해가 드러나고, 이에 따라 반세계화 움직임이 활발해질 때 더욱 부각되었는데, 배금주의와 경제 지상주의에 대한 '통쾌한 풍자'라고 저자는 말한다.

놀라운 것은 2008년 제정된 부탄 헌법에 "국가는 GNH를 높이기 위해 노력한다."는 조문을 넣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GNH의 기본 전략으로 자연환경의 보전, 문화적 독창성의 유지, 공평하고 지속가능한 경제발전, 좋은 정치 등 네 가지에 대한 내용도 포함시켰고, 적어도 국토의 60퍼센트 이상은 숲이어야 한다는 조항도 들어갔다고 하니, 그들이 추구하는 행복이 어떤 것인지 충분히 짐작하게 한다.

또한 부탄이 세계에서 가장 늦은 1999년에야 텔레비전을 들였고, 담배의 제조 판매가 금지된 세계 유일의 금연국가이며, 1인당 국민소득은 겨우 2000달러이지만 전 국민에게 무상의료, 무상교육을 제공하는 나라라고 덧붙인다. 2006년 영국에서 조사한 행복도 순위에서 178개국 중 부탄은 8위를 차지하였음도 밝힌다. 한국은 이 조사에서 103위를 했다.

저자들은 부탄 중에서도 전기도 들어오지 않고 도로도 없는 오지인 치몽을 찾는다. 얼마나 오지이냐 하면 치몽 마을이 생긴 이래, 저자들이 외국인 여행자 방문객으로는 처음이라고 하니 알만했다. 그래서인가, 마을 사람들이 저자들을 환영하는 모습에 대한 묘사는 상상을 초월한다. 한눈에 보기에도 가난한 마을인데 치몽 마을 사람들은 놀랄 만큼 밝고, 순해 보이고 잘 웃으며, 몸가짐은 부드러우면서도 당당하다고 하니, 이는 가혹한 식민지배나 독재로 무릎을 끓어본 적이 없는 이들의 자연스러운 당당함이 아닐까 저자들은 추측했는데, 가난함과 비루함은 한 배가 아닌 모양이다.

특히 치몽에서 만난 깔마 왕축이란 청년에게 감동을 받는다. 온몸이 근육인 그의 몸에서 나오는 움직임과 노동을 아름답다고 표현할 정도이다. 또한 치몽 마을 사람들은 노는 듯 일하고 일하듯 논다고 하며, 일과 놀이가 분리되지 않은 원시성을 발견한다.

치몽에서는 모두가 열심히 놀았다. 여자도, 남자도 직접 담근 방창(막걸리)을 마시며 몇 시간쯤은 가뿐히 수다를 떨었다. 활쏘기나 다트 게임을 하며 노는 청년들의 함성으로 들판은 늘 쩌렁쩌렁 울렸다. 아이들은 자치기며 제기차기, 굴렁쇠놀이를 하며 동네를 휘저었다. 초가지붕 엮기를 구경하던 날, 남자들의 표정이 어찌나 환하던지, 몸동작은 또 얼마나 날렵하던지 보는 내가 다 신이 날 정도였다(본문 39쪽)

이런 생명력은 우리네 어린 시절 70년대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이런 모습에서 저자들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증후군'에 빠져 있는 이 시대에 '한눈팔기, 어슬렁거리기, 빈둥거리기, 느긋하게 쉬기' 같은 가치를 언제쯤 깨달을 수 있을까, 하고 질문하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워 보인다.

병은 한 사람이 열심히 살아온 증거

저자들이 두 번째로 찾아간 일본 홋카이도의 정신장애인 공동체 '베델의 집'은 매우 강한 인상을 남긴다. 마치 이 책의 핵심인 듯한 강렬함이다. 그동안 정신질환자를 인식하는 내 태도에 근본적인 전환의 계기를 제공하였기 때문이다.

베델의 집을 찾았을 때, 두 여성이 일어나 저자들을 환영하는 노래를 불러주는데, 노랫말이 눈물겹다. "남희 씨, 정신병이 있어도 괜찮아요. 신으로부터 받은 선물이니까." 이 짧은 노래에서 '남희 씨'는 코끝이 찡한 위안을 받는다. '아아, 정말 이들만큼은 나의 가장 어두운 얼굴조차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겠구나.' 하고 말이다.

베델의 집은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무카야치 이쿠요시가 1984년 봄에, 버려진 교회를 개축하여 정신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들의 회복자 클럽으로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정신병을 개성의 하나로 받아들여, 그 정신병과 함께 살아가도록 이끌었고, '회복은 이야기를 하는 데서 시작된다.'는 믿음으로 서로가 고통을 이야기하는 전통을 만들었다고 했다.

인구 만 육천 명인 작은 바닷가 마을 우라카와에 있는 베델의 집 사람들은 정신장애를 겪으면서도 회사를 설립해 자신들의 이야기를 책과 영화로 만들어 팔고 텔레비전에도 자주 출연하며 유명해졌다. 또한 합법적으로 만들어진 유한회사 외에도 여섯 개의 작업장이 있다. 가전제품을 보관하고 재활용 사업을 하는 작업장, 시디나 명함을 제작하고 책을 편집하는 작업장, 밴드로 음반제작과 공연을 하는 작업장, 컴퓨터 수리나 홈페이지 제작을 하는 작업장, 그리고 전직 은행원이 은행장을 맡은 은행까지. 또 하나 더 있었다. 베델의 집 식구들이 직접 만들고 꾸민 카페 부라부라.

정신병 환자 하면, 철창이 있는 정신병동에 환자를 수용하여 감시하고 약물 투여하며 격리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고, 병동을 운영하는 사람들도 환자들의 인권은 아랑곳하지 않고 '다루는' 걸 생각하면 베델의 집은 정말 신선한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들은 '이익이 나지 않는 것을 소중하게'라는 특이한 슬로건을 내걸고 있지만 해마다 1억 엔이 훌쩍 넘는 매출을 올린다고 했다. 게다가 베델의 집 사람들은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에 가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경험을 생생하게 털어놓기도 한다. 이는 참으로 대단하지 않은가.

환청을 환청 씨라고 부르며 병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병은 한 사람이 열심히 살아온 증거이기에 긍지를 가지고 자신의 병을 소개해야 한다고 믿는 베델의 집 사람들. 수많은 실수와 실패로 무너져 약하디 약한 존재들. 그들은 서로의 약함에 기대어 살아가고, 그리고 '그 존재만으로'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줄 수 있는 존재인지를 느끼게 한다.

답은 항상 사랑과 감사요, 분노와 증오가 아니라는 것

저자들의 발걸음은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슬로라이프를 실천하고 있는 지인들에게로 향한다. 강원도 양양으로, 경북 안동으로, 지리산과 제주도로 갔다가 일본 나라와 오사카를 들른다. 그곳에서 저자들은 두 사람의 중요한 실천가를 만나 인터뷰한다. 나라 현 사쿠라이 시에서 자연농법을 실천하는 가와구치 씨, 그리고 지리산 둘레길을 만들고, 생명평화 탁발순례단을 이끌고 2004년부터 5년간 1만 킬로미터를 넘게 걸었던 도법 스님이다.

가와구치 씨의 자연농법은 이미 30년 넘게 실천해오고 있었는데, 저자는 그를 '아름다운 고집쟁이'라고 표현했다. 자연농법의 핵심은 땅을 갈지 않는다는 것이다. 흙 속의 모든 생명을 존중하고 생명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이 그 안에 다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물론 비료나 농약을 쓰지 않고 잡초도 뽑지 않는다. 자연농법은 유기농조차 비판하는데, 그것은 유기농도 결국 인간에게만 유용한 것을 선택하는 이기적 사고가 바탕에 깔려 있다는 것.

그러나 30년을 자연농법으로 농사를 지었지만 주변의 논들은 여전히 관행농법을 지키고 있어, 가와구치 씨 논은 고립된 외딴 섬 같다며, 그 파급효과가 너무 미미한데 따른 실망감을 내비치자, 가와구치 씨는 자신은 결코 외롭지 않으며, 멀리 돌아온 이 길이 인근 농가를 설득할 지름길이라고 하여, 그 조급하지 않음이 당당했다.

그가 우리에게 전하는 말은 단순해 보였다. 남들이 이해해주기를 바라지 말고 묵묵히 옳은 길을 가다보면 반드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는 것, 누가 이해해줘야 한다거나 이해해 주는 사람이 없다고 못한다면 올바른 일을 해낼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도법 스님의 전언 역시 단순하다. 그러나 그 단순함이 실천의 용이함을 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분노하지 말고 세상과 싸우라는, 비폭력에 대한 철저한 옹호, 그리고 경제만이 살길이라는 말이 가장 나쁜 거짓말이라는 도법 스님의 말은 결국 단순하고 소박한 삶으로 귀의하라는 것인데, 힘든 길이 분명하지만 자연농법이나 생명 평화의 길이 세상을 바꾸어내는 작은 씨앗임도 분명해 보인다.

2011년 3월 11일은 후쿠시마 원전 폭발사고가 일어난 날이다. 그해 4월 10일, 원전 반대 시위에 나선 쓰지 신이치는 하이쿠를 읊었다. '만발한 꽃 속 고마워요 원전 이제 안녕' 쓰지 신이치는 원전을 끝내자고 서로 상처 주는 일이 없어야 하며, 탈원전을 모든 이의 치유 과정으로 삼자 했다. 단순한 반대만으로는 대립된 의견이 고정되거나 증폭되며, 대립 속에서 사람들은 상처입고 병들어가기에, 답은 언제든 사랑과 감사요, 분노와 증오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에게 가만히 내밀었다. 받아보니 무언가 가슴에 차오르는 것이 있었다.

<삶의 속도, 행복의 방향>은 슬로라이프에 대한 무조건적인 옹호가 아니다. 김남희와 쓰지 신이치의 고민과 성찰, 그리고 관계성에 더 중점을 두고 있다. 두 저자는 영성도 밝아 보인다. 감동할 줄 알고 눈물도 많다. 전통을 사랑하지만 그 전통 속에 담긴 고단함과 아픔도 읽을 줄 안다. 책 속에는 두 저자의 아픈 개인사도 공개하여 슬픈 민족사와 함께 버무려놓았다.

책의 끝도 사티시 쿠마르의 지혜로 마무리한다.

"직업을 찾지 말고, 당신의 직업을 창조하세요. 상상력과 창조력을 동원해 자신의 일을 찾는 거죠. 정원사, 시인, 농부, 요리사가 되세요. 우리는 늘 누군가가 직업을 주기를 기대해왔죠. 정부가, 회사가 나를 고용해주기를 원해왔죠. 그건 노예가 되고 도구가 되는 것이고 세뇌 당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되고 싶은 존재가 되세요. 삶을 통해서 찾아내세요. 그 길에서 여러분을 기다릴 문제와 어려움을 환영하십시오. 쉽게 살기를 기대하지 마십시오. 어려움을 통과하지 않으면 강해질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지닌 창조력을 이용할 수 있는 기회이니, 문제가 생겼을 때 행복해 하십시오."

덧붙이는 글 | <삶의 속도, 행복의 방향>, 김남희, 쓰지 신이치 지음, 문학동네, 2013년 4월 8일, 1만 5천 원



삶의 속도, 행복의 방향 - 삶의 속도를 선택한 사람들

김남희.쓰지 신이치 지음, 전새롬 옮김, 문학동네(2013)


태그:#김남희, #쓰지 신이치, #행복, #베델의 집, #부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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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의 작은 대안고등학교에서 아이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시집 <느티나무 그늘 아래로>(내일을 여는 책), <너를 놓치다>(푸른사상사)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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