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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오전 동구 초량동 근로복지공단 부산지역본부 앞에서 손팻말을 들고 선 스리랑카 출신의 노동자 자나카(34)씨와 산업재해를 겪고 있는 동생 아밀라 자나카(26).
 24일 오전 동구 초량동 근로복지공단 부산지역본부 앞에서 손팻말을 들고 선 스리랑카 출신의 노동자 자나카(34)씨와 산업재해를 겪고 있는 동생 아밀라 자나카(26).
ⓒ 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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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받고 싶어요"

24일 부산 동구 초량동 근로복지공단 부산지역본부 앞에 선 외국인 남성 둘은 형제라고 했다. 작은 손팻말을 들고 자신들의 억울함을 이야기하는 형의 한국말은 서툴렀다. 형의 이야기가 계속되는 동안 동생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멍하니 바닥만 쳐다보고 있었다. 도대체 이들 형제에게는 무슨 일이 생긴걸까.

스리랑카인 형제에게 비극이 닥친 것은 2년여 전의 일 때문이었다. 2008년 먼저 한국에 건너와 있던 형 자나카(34)는 동생 아밀라 자나카(26)를 2010년에 불러들였다. 한국에서 희망을 꿈꿨던 형제에게 절망은 동생의 사고와 함께 찾아왔다.

2011년 2월 22일 경남 김해의 공장에서 일하던 동생은 크레인 고리에 안면부를 가격당하는 사고를 당했다. 동료 작업자의 실수였다. 그 일로 동생은 3개의 이가 뽑혔고 뇌진탕 후증후군으로 산업재해 요양을 받았다. 하지만 병원 진료 이후에도 머리를 크게 다친 동생의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뇌의 기능이 현저하게 감소되는 '기질적 손상'이 의심된다는 전문의의 판단도 있었다.

이것을 들고 근로복지공단을 찾아갔지만 보상을 맡은 공단은 동생에 대한 특별진료 등을 인정하지 않았다. 후에 근로복지공단은 동생의 장애등급을 14급으로 결정했다. 동생의 장애정도가 심각한 것이 아니라는 자체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동생에게 제대로 된 치료를 해줄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걸어왔던 형의 바람은 그때 녹아내렸다. 지금 형이 동생에게 해주는 일은 4주에 한 번씩 병원에서 약을 받아와 동생에게 먹이는 일 뿐이다.

한글로만 된 신청서... 외국인에게 산재는 보상신청부터 큰 벽

형제를 안타깝게 지켜보던 노동단체와 이주민단체 등이 24일 오전 형제와 함께 근로복지공단을 찾았다. 이들은 공단 관계자들에게 "아밀라 자나카씨가 추가로 겪고 있는 병증에 대한 신청을 인정하고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보장해야 한다"고 한 목소리로 지적했다.

공단 측은 "재검토를 해보겠다"는 원론적인 답변을 반복했다. 제한된 답변을 이어가는 공단 측을 향해 "과연 이분들이 한국 사람이어도 이럴 수 있겠나"는 탄식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공단 관계자가 "외국인이라고 차별을 두지는 않는다"고 반박했지만 이주민단체는 "한국인과 똑같이 상대한다는 말도 의심스럽지만, 외국인에게는 그 이상의 배려도 필요하다"고 맞섰다.

그러면서 이주민 단체 등은 현재의 산업보험에 대한 신청이 외국인에게는 일방적으로 불리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한글로만 된 신청서와 안내문은 물론이고 기본적인 통역 서비스조차 제공받지 못하는 실정에서 국내법을 모르는 외국인들은 항상 약자에 속한다는 말이었다.

이주민인권을 위한 부산경남공동대책위 관계자는 "이주노동자들이 결국 알음알음 알게 된 브로커를 통해 산업보험을 신청하면서 사기 등의 피해를 입게 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때문에 이주민단체 등은 "이주노동자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된 신청서를 비치해 제공하고, 이주노동자 산재 절차에 따른 모든 과정에 이주노동자가 요청하는 통역자를 배치하라"는 요구를 계속해오고 있다.

근로복지공단 측은 문제가 되자 통역 등에 대한 문제를 검토를 해보겠다는 입장이다. 오선균 근로복지공단 부산지역본부장은 "산업재해가 발생해도 보상으로부터 소외받는 분들께 죄송하다"고 입을 열고 "제기된 문제는 본부장이 책임지고 해결하겠고, 지사와 본부가 할 일을 찾아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모든 논의도 뒤바뀐 형제의 운명을 돌려놓지는 못했다. 면담이 끝나갈 무렵 지켜보던 형 자나카씨가 일어나서 물어왔다. "3년 동안 여기서 못가고 있어요, 동생 데리고 (스리랑카로) 어떻게 가요"라고 말한 그의 물음에 대한 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태그:#산업재해, #근로복지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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