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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 사이의 현대극은 고전한다는 공식을 깨고 KBS 2TV 월화드라마 <직장의 신>은 14.6%(닐슨코리아 전국기준)의 자체 최고 시청률을 갱신하며 상승세다. 그런가 하면 같은 시간대 MBC <구가의 서> 역시 15.8%의 시청률로 동시간대 1위를 달리고 있다. 반면 역대로 시청률에서 고배를 마신 적이 없었던 장희빈 이야기임에도 <장옥정, 사랑에 살다>(이하 <장옥정>)는 7.5%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중이다.

물론 이런 결과가 나온 이유는 이 시대 직장인들의 고뇌를 적절한 웃음과 함께 공감할 수 있게 만들어진 <직장의 신>이나, 최강치의 개인사와 역사를 절묘하게 버무려낸 <구가의 서>의 빼어난 만듦새에 있겠다. 반면, 아직까지 <장옥정>은 그 무엇을 해도 논란이 되는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바로 지난해, <해를 품은 달>은 만듦새는 허술하다고 욕을 먹었음에도 40%를 넘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그 드라마와 꽤 닮아 보이는 <장옥정> 입장에서는 만듦새를 들먹이는 게 억울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배우들의 연기로만 보는 월화드라마는 어떨까?

 KBS 2TV <직장의 신>의 미스김(김혜수 분).

KBS 2TV <직장의 신>의 미스김(김혜수 분). ⓒ KBS


'폭풍 카리스마' 김혜수가 실린 미스김

중학생 시절 이미 원숙한 분위기로 영화와 사극의 여주인공을 오갔던 최고의 여배우 김혜수에게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는가마는, 그 역시 SBS <장희빈>(2003)에서 장옥정 역으로 논란의 자리에 섰던 시절이 있었음이 떠오른다. 왕의 비빈으로 간택되기엔 지나치게 당당하지 않느냐는(왕에 비해 너무 장대하다는 속내까지) 여론을 뒤로 하고, 그때도 김혜수는 장희빈을 궁중의 꽃이 아니라 권력에 적극적으로 도전하는 여성으로 표현했다.

시청률이 높지 않았지만 MBC <즐거운 나의 집>(2010)에서 남편의 외도와 자신의 정체성 사이에서 정신적 방황을 겪는 정신과 의사로서의 불안정한 모습 또한 자연스러웠었다.

그리고 이제 <직장의 신>. 과연 이 드라마의 미스김이 김혜수가 아니었다면 지금처럼 <직장의 신> 다울 수 있었을까. 저 멀리 한 벌로 쫙 빼입은 정장을 입고 당당하게 걸어오는 미스김을 보는 순간, 아마도 시청자들은 우선 그의 기에 눌려 움찔하게 되지 않을까.

그런 미스김이기에 하다못해 사무실 잡무, 커피를 타거나, 스테이플러를 찍거나 빼거나 해도 하찮아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남은 시간을 이용해 화장실 청소를 할 때조차 그는 당당하다. 김혜수라는 배우의 아우라에서 빚어지는 당당함은 단지 역할 자체에서 머물지 않는다. 그 덕분에, 우리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일이지만 늘 대접받지 못했던 잡무나 허드렛일들이 자기 존재감을 얻어가는 듯하다.

뿐만 아니라, <직장의 신>의 김혜수는 슬랩스틱에 능하다. 일과를 시작하기에 앞서 하는 미스김의 체조는 다른 사람이 하면 물을 뿜었을 우스꽝스런 모습이요, 홈쇼핑 방송에서 내복을 입고 췄던 춤이나, 마켓에서 '간장게장의 달인'으로 분했을 때 호객 행위는 그 어느 개그보다도 웃겼다. 하지만 개그맨 자신이 웃는 순간 개그는 망한다는 속설처럼, 그는 '빠마머리~'라는 웃기는 대사를 할 때조차 무척이나 진지하다. 덕분에 시청자들은 이 드라마를 보며 연기 걱정 없이 편안하게 실려 가면 된다는 믿음이 생긴다.

드세고 웃기기만 하는 건 아니다. <직장의 신>의 진짜 묘미는 어찌 보면 비슷한 직장인들의 애환과 인간적 갈등에 슬며시 반응하는 미스김, 김혜수의 표정이다. 순간 그를 스쳐가는 감정들은 정주리(정유미 분)의 수당을 월급턱이라며 감해주고 결과를 낳고, 빠마머리 장규직(오지호 분)과의 로맨스를 꿈꾸게 만든다. 물론 아직은 장규직이 호의로 건넨 손에도 '더러우니 치우라'며 호락호락하지 않는 미스김이기에, 그 로맨스는 더 간질간질하다.

<직장의 신> 비정규직 미스김은 실상 현실에서 만나보기 힘들고, 공감을 얻기 힘든 캐릭터다. 하지만 우리 시대의 그 누구보다도 배우 같은 배우 김혜수가 그 캐릭터에 자신을 입힘으로써, 멋진 미스김으로 되살아났다.

 MBC 월화드라마 <구가의 서>에서 최강치 역을 맡은 이승기(위)와 담여울 역을 맡은 배수지.

MBC 월화드라마 <구가의 서>에서 최강치 역을 맡은 이승기(위)와 담여울 역을 맡은 배수지. ⓒ MBC


캐릭터와 이물감이 없는 커플 이승기·배수지

<구가의 서> 주연 배우들의 연기력을 논하려면, 그들이 등장하기에 앞서 1, 2회를 이끌었던 윤서화 역 이연희의 연기를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이연희는 지난해 주연을 맡았던 SBS <유령>에서 시청자들에게 '듣기 평가'를 강요한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연기력 논란이 있었던 배우다.

그런 이연희가 단 1년 만에 <구가의서>를 통해 '재발견'이란 소리를 듣게 되었다. 물론 자세히 보다보면 그의 높낮이 없는 단조로운 발성이 여전하다는 걸 알아차리게 되지만, 그것조차도 1, 2회 구월령(최진혁 분)과의 비련의 사랑에 몰입을 방해할 요소는 아니었었다.

이렇듯, 당대의 발연기라 지적을 받던 연기자를 재평가할 만큼 <구가의서>는 판타지 사극으로서의 적절한 스토리와 그걸 업그레이드 시킬만한 연출력을 보여준다. 지금까지 김은숙 작가의 파트너로 김 작가의 중반 이후 뻔한 스토리를 연출력으로 뒷받침해오던 신우철 PD가 비로소 그 진가를 드러낸 것이다.

이것으로 올 초 <그 겨울, 바람이 분다>에 이어 <구가의서>의 성공까지, 연출력이 뻔한 스토리텔링을 보완하는 것을 넘어 재탄생시킴으로써 어쩌면 이젠 '드라마는 작가 놀음'이 아니라, 'PD 장난'이란 새로운 신조어가 탄생할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구가의 서>에서 주연으로 등장한 이승기와 수지의 연기는 전혀 새롭지 않다. 허허실실 동네 청년 같은 이승기는 여전히 이승기 같고, 영화 <건축학개론>에서나 광고에서나 늘 빤히 쳐다보며 상대를 설레게 하던 수지는 여전히 그 수지이다. 하지만 그것이 논란거리가 되지는 않는다. 드라마 속 캐릭터가 그들의 모습과 이물감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영리한 드라마의 전략이다.

이승기나 수지는 엄밀하게 연기자라기보다는 그들이 출연한 예능이나 광고 등을 통해 굳어진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스타'들이다. 대중들이 그들의 그런 모습을 싫증내기보다 더 보여줄 것을 갈망하고 있는 상황에서 배우로서 모험을 거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존의 캐릭터 내에서 변주를 해가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은 선택일 것이다. 더구나 군 입대를 앞둔 이승기의 입장에서는 '굳히기 한 판'일 수 있으니.

 지난 8일, SBS 월화드라마 <장옥정, 사랑에 살다>가 첫 방송을 시작했다. 숙종 역을 맡은 유아인(왼쪽)과 장옥정 역을 맡은 김태희.

지난 8일, SBS 월화드라마 <장옥정, 사랑에 살다>가 첫 방송을 시작했다. 숙종 역을 맡은 유아인(왼쪽)과 장옥정 역을 맡은 김태희. ⓒ SBS


파격 설정 채우지 못하는 김태희의 연기력

드라마 <구미호 외전>(2004)을 시작으로 해서, <싸움>(2007) <중천>(2006) 등 그간 김태희가 선택한 작품은 장르나 스토리, 캐릭터 면에서 파격적이었다. 하지만 그런 작품을 채울 연기력이 뒷받침되지 못했다. 파격적인 설정이 자신의 부족한 연기력을 덮어 주리라 기대했던 것일까.

물론 지난 여러 작품을 하면서 김태희의 연기력은 꾸준히 나아져 왔다. 냉정하게 <구가의 서>의 수지와 <장옥정>의 김태희를 평행선상에 놓고 평가하자면 김태희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욕은 김태희가 먹는다. <장옥정>은 말 그대로 장옥정, 김태희의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역대의 '장옥정'들은 '후덜덜'한 연기력으로 당대 최고의 여배우 자리에 올랐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장옥정>을 보면, 김태희는 아직 그럴 준비가 되어있지 않아 보인다. 혹은 패션 디자이너라던가 지고지순한 사랑의 화신 같은 새롭고 파격적인 설정이나 <해를 품은 달>을 뽑아 놓은 듯한 그럴 듯한 구도로 미흡한 연기력이 덮어지리라 믿었던 것 같아 아쉽다.

아이러니한 것은 숙종 역의 유아인조차 이번 드라마에서는 그다지 김태희에게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저 기존에 자신이 해오던 연기를 하고 있을 뿐인데, 유아인의 연기는 <장옥정>에 해는 끼치지는 않지만 도움이 된다고도 말할 수 없는 형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성균관 스캔들>의 걸오나, <패션왕>의 영걸이나, 영화 <완득이>의 완득이 등 유아인이 분했던 인물들은 사회 속의 마이너한 소수자들이었다.

그런 유아인이 왕이 되어 그 스스로도 연기에 힘이 들어가고, 자기 연기 자체를 소화하는 것조차 버겁다보니, 상대편 김태희의 연기까지는 받쳐줄 형편이 못되는 것이다. 파트너조차 믿고 갈 수 없는 김태희에게 <장옥정>은 불행의 한 수가 아닐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개인블로그(5252-jh.tystory,com)에 중복 게재되었습니다
김혜수 이승기 수지 김태희 유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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