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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는 '동양의 로마'로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 그만큼 일본 근대사에서 나가사키는 동서양 문물 교류의 최첨단을 달리던 도시였다. 또 외국인 거류지와 서양식 건물들이 주는 이국적 풍경과 항구 도시로서의 빼어난 경치 때문에 '동양의 나폴리'라고도 불린다. 이러한 나가사키의 이국적 정취에 매혹되어 나가사키를 동경하는 사람도 많다. 혹시 나가사키의 이국 정취를 즐기면서도 나가사키의 현대사, 지금의 모습을 보고 싶다면 노면전차를 타고 '오우라천주당 앞' 혹은 '이시바시'에서 하차해, 글로버정원에 가보길 추천한다.

글로버정원은 나가사키 여행 코스 중 몇 손가락에 꼽히는 대표적인 명소다. 이곳은 막부시대 말기부터 메이지(明治)시대까지 외국인 거류지였던 미나미야마테(南山手)에 있는 일종의 테마파크 공원이다. 주로 근처에 흩어져 있던 메이지시대의 유럽풍 저택들을 모아 공원으로 조성한 것으로, 당시 나가사키의 외국인들의 생활 양식을 엿볼 수 있도록 복원해 놓았다. 

나가사키의 대표적인 관광명소 '글로버정원'. 일본 근대화에 공헌했다는 영국 무역상 토머스 글로버 등이 살았던 외국인 거류지 저택 터를 공원화한 곳이다. 나가사키의 이국적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대표적인 장소다.
 나가사키의 대표적인 관광명소 '글로버정원'. 일본 근대화에 공헌했다는 영국 무역상 토머스 글로버 등이 살았던 외국인 거류지 저택 터를 공원화한 곳이다. 나가사키의 이국적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대표적인 장소다.
ⓒ 전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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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버정원.
 글로버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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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안에는 일본의 근대화에 큰 영향을 미쳤던 영국의 무역상인 토마스 글로버의 저택이 있는데, 이 건물은 1863년에 세운 것으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이자 국가지정중요문화재이다. 공원의 이름 역시 바로 이 토머스 글로버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그 외에도 구 미쓰비시 제2독하우스, 워커 저택, 링거 저택, 알트 저택 등이 있다.

특히, 글로버정원은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를 담은 푸치니의 유명한 오페라 <나비부인>의 무대로도 유명하여, 공원 안 광장에는 세계적인 오페라 가수 미우라 다마키의 동상도 있다. 이국적인 아름다움이 가득한 넓은 정원과 나가사키 항구가 한 눈에 보이는 독하우스 등이 인상적이다. 넓은 정원에 꽃이 가득 피는 봄, 가을에는 특히 그 풍경이 빼어나며, 해질 무렵에 찾아가면 아름다운 석양을 볼 수도 있다. 겨울밤 크리스마스 때 쯤에 가면 로맨틱한 사랑의 공간으로 변신하기도 하니, 일 년 열 두 달 언제라도 아름다운 곳이다.  

오페라 '나비부인'의 세계적인 프리마돈나 미우라 다마키 기념상.
 오페라 '나비부인'의 세계적인 프리마돈나 미우라 다마키 기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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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버정원에서 그 아름다운 꽃향기와 오페라 나비부인의 선율, 서양식 건물의 이국적 정취에 취하는 데 그치지 말고, 독하우스 발코니에 서서 나가사키 항구를 차분히 바라볼 것을 권한다. 글로버정원의 정면으로 보이는 나가사키 바다 저편에는 미쓰비시 중공업 나가사키 조선소의 본공장이 있다.

이곳은 일본 중공업의 원점으로 불리며, 나가사키는 '미쓰비시 발상의 땅'이다. 미쓰비시는 미쯔이, 스미토모 등과 더불어 일제시대 3대 재벌기업이었으며, 당시 조선인 강제동원 등을 했던 대표적인 전쟁책임 기업이다. 뿐만 아니라 한국전쟁 당시 무기 판매 등으로 특수를 누리기도 했다.

글로버정원에서 바라본 나가사키 전망. 바다 건너편에 미쯔비시 조선소가 있다.
 글로버정원에서 바라본 나가사키 전망. 바다 건너편에 미쯔비시 조선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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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일본에서 10만톤급의 호화여객선을 건조할 수 있는 것은 나가사키뿐이라 할 정도로 미쓰비시 나가사키 조선소는 탁월한 기술력을 자랑한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여객선만 만드는 게 아니라, 군함도 만든다. 침략전쟁 시대 전함 무사시를 만들었던 이곳은 지금도 이지스함 등의 군함을 건조하고 수리한다. 글로버정원에서 내려다보면, 혹은 미즈베노모리 공원 해변가에 서서 건너편을 유심히 바라보면 이지스함이 육안으로도 보인다. 

사실 나가사키는 미쓰비시의 기업도시다. 미쓰비시를 정점으로 하여 다른 중소 영세기업들이 번창할 수 있는 경제구조가 바로 나가사키의 경제구조다. 그래서 나가사키의 피폭자나 그 가족과 친척 중에도 미쓰비시나 계열사, 하청기업에서 일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미쓰비시는 전쟁을 할 때마다 크게 번성했다."는 말도 있고, "미쓰비시 1사만 있으면, 전쟁을 할 수도 있다"는 말도 있다. 미쓰비시 중공업은 일본 굴지의 대기업으로, 군수산업의 톱 메이커이기도 하다. 미쓰비시 중공업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면 제품 소개란에 방위 분야가 있고 그 안에는 전차, 군함, 전투기, 헬리콥터 등의 사진이 게재되어 있다. "미쓰비시 중공업은 육·해·공군 전 분야에서 최첨단 기술을 구사한 장비품의 개발· 생산· 운용의 지원을 통하여 우리나라의 안전 보장에 공헌하고 있다"고 홍보하고 있다. 

나가사키의 무기 생산은 군함 건조에 그치지 않는다. 나가사키 원폭낙하중심지에서 약 1k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미쓰비시 중공업 나가사키 조선소 사이와이마치 공장이 있는데, 여기서는 지금도 어뢰와 발사장치를 생산하고 있다고 한다. 또 이웃 도시인 이사하야시에는 최신예의 어뢰공장이 있다.

미쯔베노모리공원에서 바라본 건너편의 미쓰비시 나가사키 조선소 본사 건물과 왼편으로 희미하게 보이는 이지스함.
 미쯔베노모리공원에서 바라본 건너편의 미쓰비시 나가사키 조선소 본사 건물과 왼편으로 희미하게 보이는 이지스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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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나가사키 북부에 인접한 나가요정 도자키에는 어뢰 발사 시험장도 있다. 사이와이마치 공장과 이사하야 공장에서 제작한 어뢰를 이곳에서 시험하는 것이다. 인근 산지에서 귤을 재배하는 오무라만에 면한 조용한 이 바닷가에 어뢰 발사 시험장이 있다고 하면 사람들은 깜짝 놀란다.

"마을을 걷다 보면 거기에 무기공장이 있다."

그런 나가사키의 무기 생산의 현실을 정면으로 보여주며, 평화도시 나가사키의 또 다른 얼굴을 직시하는 가운데 평화운동의 새로운 길을 열어가고자 하는 차원에서 반 나절 버스를 타고 현장 견학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피스 버스 나가사키'라는 작은 시민모임이 1986년 결성된 적이 있다.

단체 신청이 있으면 언제라도 피스버스를 운행한다고 하는데, 초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피스버스에 관심을 가졌지만 이제는 뜸해졌다고 한다. 필자도 4년 전 8월 9일(나가사키 원자폭탄의 날) 뜨거운 여름날 오후, 피스버스를 제창한 나가사키 대학의 후나고에 코이치 교수의 인솔 하에 피스버스를 탄 적이 있다.

미쓰비시 조선소 곁에 건립된 '미쓰비시 사료관'.
 미쓰비시 조선소 곁에 건립된 '미쓰비시 사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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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폭 피해의 도시 나가사키, 세계로 평화를 호소하는 나가사키. 그 나가사키와 공존하는 미쓰비시 중공업. 이러한 아이러니한 현실이 어디 나가사키만의 이야기에 국한될까. 우리나라와 전세계 곳곳에 모순의 현장이 존재한다. 지금 내가 걷고 숨쉬는 이곳 어딘가에 그러한 무기생산의 현장과 전쟁의 냄새가 풍기는 곳은 없는가.

나는 오늘의 나가사키를 가장 느낄 수 있는 장소로서 나가사키 항구와 글로버정원 등에서 바라다보는 미쯔비시 조선소의 기묘한 풍경을 꼽는다.  (관련기사 더 보기: 일본 근대화에 공헌한 미쯔비시?)


태그:#나가사키, #미쓰비시, #글로버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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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모든 아이들이 건강하고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바라는 주부이자, 엄마입니다. 번역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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