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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서단에 위치한 나가사키현은 중국·한반도와도 가장 가까운 곳에 있어 일본 근현대사 시절, 아시아 대륙 및 해외교유의 거점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1543년 포르투갈의 배가 다네가시마에 표류한 것이 규슈와 서양 세계의 첫만남이었으며, 그후 1550년 프란시스코 자비에르가 히라도를 방문한 때로부터 나가사키 기독교(여기서 당시 나가사키의 기독교란 주로 '가톨릭'을 일컫지만, 가톨릭과 개신교를 통합하여 기독교로 부르기로 한다)의 역사가 시작된다.

 니시자카공원의 '26성인순교기념비'
 니시자카공원의 '26성인순교기념비'
ⓒ 전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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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성인순교기념관. 니시자카 공원 뒤편에 있다.
 26성인순교기념관. 니시자카 공원 뒤편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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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1년에는 당시 영주였던 오무라 스미타다에 의해 시마바라, 히라도, 오무라 등 6개 항구를 개항하여 이곳으로 중국과 포르투갈의 상선이 잇따라 입항했다. 오무라 영주는 선교사와 나가사키를 포르투갈 무역항으로 한다는 협정을 맺고, 그에 따른 인구 증대를 고려하여 도시계획도 세웠다. 이렇게 나가사키는 기독교인의 마을로 발전해 갔다. 이미 16, 17세기에 나가사키에는 가톨릭교회가 16개나 세워졌다. 또 유럽식 중등교육기관인 일본 최초의 신학교 세미나리요가 세워졌는데, 이곳에선 신학뿐 아니라 유럽의 자연과학과 음악, 회화를 가르치고 서양문물을 전파했다.

당시 나가사키는 지역의 관리들과 주민 거의 대부분이 기독교 신자였고, 유럽의 사회복지사업도 도입되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등에 의한 막부의 금교령이 떨어졌을 때 나가사키의 기독교인 수는 5만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또 1582년에는 역시 기독교인 다이묘 등이 유럽으로 파견한 4명의 소년사절단이 로마 교황을 친견하고 돌아와, 서구의 지식과 문물, 인쇄기술 등을 일본에 전하기도 했다.

 기독교 금지령을 내건 고찰.(26성인순교기념관 소장)
 기독교 금지령을 내건 고찰.(26성인순교기념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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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아시아에서 기독교 전파에 가장 적합한 땅이라 여겨졌던 일본에서 기독교의 르네상스기는 얼마 가지 못했다. 1597년 나가사키의 니시자카 언덕에서 26명이 순교당하는 사건을 시작으로 일본에서의 대규모 기독교인 순교와 강제 배교의식의 역사가 시작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1587년 선교사 추방령을 내리는 등 규슈지역에서 기독교 선교를 금지하였으나, 1596년 10월 성 펠리페호 사건을 계기로 하여 동년 12월 8일에 다시 금교령을 공포했다. 히데요시는 교토 봉행의 이시다 미츠나리(石田三成)에게 교토에 사는 기독교 신도 전원을 체포하여 처형하라고 명하였다. 미츠나리는 희생자를 가능한 줄이려고 노력했다고 하는데, 오사카와 교토에서 외국인 선교사, 수도사 6명, 일본인 수도사와 신자 18명 등 총 24명이 체포되었다.

이 24명에 대해서는 1597년 1월 10일 나가사키에서 처형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이들은 교토, 오사카에서 말에 태워져 조리돌리기를 당하고, 교토에서는 왼쪽 귓불을 잘렸다. 또 엄동설한에 스스로 죽음을 맞이하게 될 나가사키까지 걸어가야 했다. 도중에 예수회 일을 맡아보던 담당자 페드로 스케시로와 프란시스코회의 일을 맡아보던 이세의 목수 프란시스코 등 2명이 추가로 체포돼 순교자는 26명이 되었다.

같은해 2월 4일, 나가사키 토기츠에 도착하여 배 안에서 1박을 한 교인들은 다음날 아침, 엄청난 서리가 내리는 가운데, 약 12km의 우라카미 가도를 걸어서 오전 10시경 니시자카 언덕에 다다랐다. 이들은 곧바로 십자가에 매달렸으며 예수처럼 창에 찔렸다. 이렇듯 26명은 나가사키의 니시자카 언덕에서 순교했다.

 니시자카 공원 안쪽 깊숙히 들어간 곳에 있는 26성인순교기념관 앞 정원의 잠복 기독교인 묘비. 1764~1771년 경의 것으로 추정되며, 우라카미의 묘지에 있던 것을 옮겨 온 것. 기독교 금지 시대에는 묘가 발견되지 않도록 그 위에 흙을 덮어 숨겼다고 한다. 





탄압 시대의 잠복 그리스도교인들의 무덤의 묘비. 26성인순교기념관 앞 마당에 있다.
 니시자카 공원 안쪽 깊숙히 들어간 곳에 있는 26성인순교기념관 앞 정원의 잠복 기독교인 묘비. 1764~1771년 경의 것으로 추정되며, 우라카미의 묘지에 있던 것을 옮겨 온 것. 기독교 금지 시대에는 묘가 발견되지 않도록 그 위에 흙을 덮어 숨겼다고 한다. 탄압 시대의 잠복 그리스도교인들의 무덤의 묘비. 26성인순교기념관 앞 마당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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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성인순교기념관 전시실 내부.
 26성인순교기념관 전시실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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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라자와 한자부로가 일행 중에 12살 소년 루드비코 이바라키가 있는 것을 보곤 '어린 소년을 살려주자'는 생각에 '신앙을 버리라'고 설득했지만, 이바라키는 이 제안을 거절했다. 또 파울로 미키는 죽음을 눈 앞에 두고도 주변을 둘러싼 약 4000명 넘는 군중 앞에서 십자가에 매달린 채 최후의 설교를 했다고 전해진다.

이 26명의 순교 사건은 유럽과 그 외 지역으로 알려져, 1862년 6월 8일, 로마 교황 피우스9세에 의해 성인의 반열에 올려졌다. 그래서 '일본 26성인'으로 칭하게 되었다.

니시자카공원의 26성인 순교 기념비는 바로 이때로부터 100주년이 되는 1962년에 건립되었다. 1950년에는 로마 교황 피우스12세가 이곳을 가톨릭교도의 공식 순례지로 지정하기도 했다. 기념비 속의 성인들은 정식으로 옷을 갖춰입은 모습을 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헐벗은 상태로 왼쪽 귓불은 전부 잘린 참혹한 모습이었다고 한다. 니시자카공원과 순교기념비, 그리고 공원 뒤쪽의 기념관 등은 나가사키 JR역 맞은편 NHK나가사키 건물을 끼고 오른쪽 언덕길을 조금 오르면 만날 수 있다.

공원에는 봄이면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동네 고양이들이 잠을 자거나, 도시락을 먹는 사람들 주변을 맴돌며 눈치를 본다. 여름, 가을, 겨울에도 계절마다 운치있는 풍경을 연출하며, 공원에서 내려다보는 시내 전경도 볼만 하다.

 26성인순교기념비가 있는 니시자카공원. 이곳은 1950년 교황에 의해 일본 가톨릭성지순례 공식 코스로 지정되었다. 오른편 두개의 탑이 우뚝 솟은 교회가 26성인순교기념성당이다.
 26성인순교기념비가 있는 니시자카공원. 이곳은 1950년 교황에 의해 일본 가톨릭성지순례 공식 코스로 지정되었다. 오른편 두개의 탑이 우뚝 솟은 교회가 26성인순교기념성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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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맑은 날이면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니시자카 공원에 비가 내렸다. 벚꽃 풍경 아래 고양이가 함께 했다.
 맑은 날이면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니시자카 공원에 비가 내렸다. 벚꽃 풍경 아래 고양이가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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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가까이에는 일본26성인기념 성당인 성 빌립보 교회도 있다. 26성인순교기념관과 같은 시기에 건립된 성당으로, 하늘로 치솟은 두 개의 뾰족탑이 니시자카 공원과 함께 빼어난 풍경을 그려내고 있다.

탑 하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죄사함을 받는 것을, 또 하나는 서민의 소망과 감사, 찬미와 봉헌이 하늘의 하나님께로 가 닿기를 바라며 솟아 있는 것이라 한다. 특히 벽과 탑의 건축과 디자인이 돋보이는데, 이는 교토에서 나가사키까지의 길을 따라가는 여정 곳곳에서 만들어진 도자기 파편 등을 박아놓은 것이란다. 이는 교토에서 나가사키까지 죽음의 길을 걸어온 26성인의 길을 상징하는 것이라 한다. 

니시자카 공원과 기념관 등을 들렀다면, 여기서 언덕을 내려오지 말고 꼭 1분만 더 언덕 위로 올라가, 일본의 전쟁책임과 가해의 역사를 전시하고 있는 <오카마사하루 기념 나가사키 평화자료관岡まさはる記念長崎平和資料館>에 들르자. 시간이 없다면 1,2층 전시실을  잠깐이라도 훑어보고 무료 팸플릿을 받은 뒤 '나가사키의 양심있는 시민운동가'들인 접수처의 자원봉사자에게 인사라도 하고 가자.

조선인 중국인 강제동원 및 학살의 역사, 조선인 원폭 피폭자 실태조사 및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을 전시하고 평화교육을 실시하는 나가사키의 숨겨진 보석과 같은 곳이다. 겉모습만 보고 허름하다 하지 말고, 나가사키 시립 원폭자료관과 함께 꼭 이 자료관에 들르길 바란다.


#나가사키#니시자카공원#26성인 순교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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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모든 아이들이 건강하고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바라는 주부이자, 엄마입니다. 번역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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