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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는 일본 최고의 가톨릭 성지이기도 하지만, 여기도 일본인지라 곳곳에 신사와 사찰이 산재해 있다. 그중 원자폭탄 투하시 피해를 입은 피폭지 순례 코스로서 추천하고 싶은 곳은 나가사키 시내 노면전차를 타고 '나가사키 대학병원 앞'에서 내려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산노신사(山王神社)이다.

원자폭탄 낙하 중심지에서 800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당시 강력한 열선과 핵폭풍 등으로 화재와 고열, 파괴 등의 피해를 입어 손상된 산노신사 입구 문 기둥. 한쪽 다리와 상부 반쪽을 잃은 모습으로 원폭의 역사를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원자폭탄 낙하 중심지에서 800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당시 강력한 열선과 핵폭풍 등으로 화재와 고열, 파괴 등의 피해를 입어 손상된 산노신사 입구 문 기둥. 한쪽 다리와 상부 반쪽을 잃은 모습으로 원폭의 역사를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 전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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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폭탄이 투하되기 전(1930년대), 신사 입구 계단에 앉은 민간방위대 단체사진과 원폭투하 후 파괴된 모습의 사진.
 원자폭탄이 투하되기 전(1930년대), 신사 입구 계단에 앉은 민간방위대 단체사진과 원폭투하 후 파괴된 모습의 사진.
ⓒ 전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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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이곳엔 예수회가 운영하며 한센병 환자들을 수용했던 라자로병원이 있었다고 한다.  일본 기독교인 순교와 대탄압의 서막을 알린 대사건으로서, 1597년에 교토에서 연행되어 나가사키의 니시자카 언덕에서 순교한 '26성인(聖人)'도 그 마지막 여정에 이곳을 들렀다고 한다. 

신사(神社)의 사전(社傳)에 따르면, 1638년 시마바라에서 가톨릭 신도를 중심으로 한 농민3만 7천 여 명이 종교탄압 및 세금 착취 등의 횡포에 항거하여 봉기하자, 이를 진압하기 위해 나가사키에 부임한 마쓰히라 노부츠나가 우라카미 가도를 따라서 마침 이곳을 지났단다. 이때 마쓰히라 노부츠나가 "경치가 오미(近江)의 히에이산(比叡山)과 비슷하고, 지명도 사카모토(坂本)다"라면서, 나가사키 대관 스에츠구 헤이조(末次平蔵)에게 권유하여 신사를 창건하였다고 한다. 

폭심지에서 남동쪽으로 800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며 '피폭 도리이((鳥居 :신사 입구에 세우는 두 개의 기둥으로 된 문)'로 알려진 산노신사의 제2문. 이것도 나가사키 원폭의 상흔을 그대로 간직한 얼마 안 되는 구조물 중 하나다. 원래 산노신사의 참배로에는 제1문부터 제4문까지 서 있었다고 하는데, 원폭의 폭풍 방향과 평행으로 서 있던 제2문만이 쓰러지지 않고 남았다. 피폭 후 제1문이 불탄 폐허 위에 서있는 사진이 남아있지만, 그것도 지금은 행방을 알 수 없다.

원폭 투하 후의 산노신사 주변의 폐허의 모습.
 원폭 투하 후의 산노신사 주변의 폐허의 모습.
ⓒ 전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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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신사입구 문 기둥 한쪽은 이렇게 부서져 한쪽에 누워 보관되고 있다.
 잃어버린 신사입구 문 기둥 한쪽은 이렇게 부서져 한쪽에 누워 보관되고 있다.
ⓒ 전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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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노신사 인근의 사카모토 마을의 원폭희생자 추모비.
 산노신사 인근의 사카모토 마을의 원폭희생자 추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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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제2문은 1924년에 건립되었다. 원자폭탄의 폭발과 동시에 강렬한 복사 열선이 문의 상부를 검게 태우고, 다음 순간 불어닥친 엄청난 핵폭풍이 문의 한쪽 다리와 상부의 석재를파괴했다. 상부에 남은 덮개돌도 풍압으로 꺾였다. 또 문의 표면을 잘 보면 폭심 방향 면에 열선의 흔적과 벗겨진 흔적이 보인다. 폭풍으로 인해 두 동강이 난 다른 한쪽 기둥을 비롯해, 도괴된 부분은 바로 근처에 보존되어 있다. 이 산노신사 피폭 도리이가 있는 근처는 주택지가 밀집한 동네로, 안쪽으로 좀 더 들어가면 우라카미 가도를 알리는 비석이 세워져 있고, 그 왼쪽으로 산노신사가 있다.

신사 경내로 들어가면 수명 500년을 넘겼다는 거대한 녹나무가 가지를 늘어뜨리고 있다.
당시 원자폭탄의 강렬한 열선과 엄청난 폭풍에 의해 산노신사는 도파하였고, 사무소도 모두 불탔다. 다른 수목들은 말할 것도 없고 경내에 있던 두 그루의 큰 녹나무도 열선에 불탔고 폭풍으로 인해 심각한 손상을 입고 벌거숭이가 되어 고사할 거라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되살아난 녹나무는 그해 10월 초, 폭심지와 반대 방향에 새싹을 틔웠다.

당시 피폭지 나가사키에는 "향후 75년간은 나무도 풀도 살 수 없다"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에 이 소식은 실의에 빠져 있던 피폭자와 시민들에게 위로가 되었다. 그 후로도 이 녹나무는 점차 가지와 잎이 다시 울창해졌다.

산노신사 경내에 있는 두 그루의 피폭나무.
 산노신사 경내에 있는 두 그루의 피폭나무.
ⓒ 전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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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노신사 경내의 피폭 녹나무를 치료 중이라는 안내판. 전문 수목의(樹木醫)들이 신경써서 나무를 살리고 치유하기 위하여 애쓰고 있다.
 산노신사 경내의 피폭 녹나무를 치료 중이라는 안내판. 전문 수목의(樹木醫)들이 신경써서 나무를 살리고 치유하기 위하여 애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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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에는 원폭 피해의 역사를 증언하는 귀중한 나무로서 나가사키시의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자연스럽게 치유되고 있다고 생각했던 녹나무의 상처는 의외로 뿌리가 깊어, 파손된 부위에서부터 부식이 진행돼 줄기 속에는 큰 구멍이 여럿 생겼고, 태풍이나 강풍 때마다 큰 가지가 떨어지고, 흰개미가 대량으로 발생했다.

마치 원폭의 후유증으로 다 죽어가던 피폭자가 회생해서 건강을 되찾은 줄 알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죽거나, 불현듯 다시 찾아온 병마에 시름시름 앓게 된 것을 떠올리게 된다. 현재 나가사키시는 얼마 안되는 나가사키 원폭의 산 증인인 이 녹나무를 치료하기 위해 계속 힘을 쏟고 있다. 

1996년 환경청의 '남기고 싶은 일본의 소리 풍경 100선'으로 산노신사 경내가 선정되기도 했다. 녹나무의 가지 잎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 녹나무의 줄기에서 들려오는 고동소리가 일품이라는 것인데, 나도 피폭 나무를 껴안아 보고, 그 소리에 귀를 기울여봤다. 산노신사에 들어가 원폭의 상처를 만나고, 역사 깊은 일본의 소리 풍경을 만나 보시라. 소리뿐 아니라, 한국의 산 속 깊은 사찰에 들어갔을 때 느낄 수 있는 자연과 조용한 사색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태그:#나가사키, #원폭, #산노신사, #피폭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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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모든 아이들이 건강하고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바라는 주부이자, 엄마입니다. 번역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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