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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공정거래위원장에 내정됐으나 각종 비리 의혹 제기로 낙마한 한만수 이화여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공정거래위원장에 내정됐으나 각종 비리 의혹 제기로 낙마한 한만수 이화여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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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난 3월 14일 국가와 국민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일념에서 대통령의 공정거래위원장 후보 지명을 수락하고, 성심을 다해 청문회와 직무 집행을 준비해 왔습니다. (중략) 저는 이 시간부로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의 지위를 사퇴하고, 본업인 학교로 돌아가서 학자로서 국가와 국민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합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일곱 번째로 낙마한 한만수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가 남긴 사퇴의 변이다. 세금 탈루가 드러난 데 이어 수십억 원에 달하는 거액의 비자금을 운용했다는 의혹이 드러나자, 한 후보자는 지난 3월 25일 짤막한 사퇴의 변을 남기고 공정거래위원회를 떠났다. 언론은 한 후보자의 낙마를 대서특필했다. 그러나 어떤 언론도 그가 학교로 되돌아가도 되는 것인지 묻지 않았다.

그가 '학교로 돌아가겠다'는 귀교(歸校) 의지를 피력한 것은 너무나 당당하고 자연스러워 마치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말과 별로 달라 보이지 않았다.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야당과 언론은 수많은 의혹을 제기했다. 대기업 편향 자질 논란, 논문 표절 의혹, 비자금 계좌 운용을 통한 탈루 의혹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한만수 후보자는 이런 문제들에 대해 이렇다 할 해명조차 내놓지 않고 사퇴의 길을 택했다. 스스로 공직자가 될 수 없음을 자인한, 의혹 해명이나 해소 없는 사퇴였다.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인 한만수 전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인 한만수 전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
ⓒ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누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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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런 각종 의혹은 후보자 흠내기가 주된 목적이 아니라면 사퇴와 관계없이 분명히 밝혀지고 해명돼야 할 성격의 것이다. 막대한 의혹들을 덮은 채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직을 사퇴하고 학교로 돌아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예비 법조인들에게 조세법을 강의할 수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런 그를 다시 받아들인 이화여대는 과연 정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

'건전한 직업 윤리관을 바탕으로 지식 및 능력을 갖춘 법조인 양성'을 목표로 둔 법학전문대학원에서 낙마한 한만수 후보자가 교수로서 적당한 인물인지 되짚어 보는 것. 이것은 대학이 지니고 있는 공익적 측면을 봤을 때 당연한 절차다.

돈봉투 돌린 박희태, 학생 가르칠 자격 있나

돈봉투 파문으로 물의를 일의킨 박희태 국회의장이 지난해 2월 13일 오후 사퇴 기자회견을 마친 후 국회 본청을 떠나고 있다.
 돈봉투 파문으로 물의를 일의킨 박희태 국회의장이 지난해 2월 13일 오후 사퇴 기자회견을 마친 후 국회 본청을 떠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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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공직 부적합 판정을 받아 낙마하거나, 비리 등에 연루돼 공직을 그만둔 인사들이 '후학 양성'이라는 미명 아래 대학에 임용된 사례는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물론 대학마다 정해진 임용의 기준을 적용했기에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공직 부적격 판정을 받은 사람들, 비리로 물러난 고위 공직자에게 기다렸다는 듯 교수 자리를 내주는 대학의 행태는 국민들의 지탄을 사기에 충분하다.

지난 2008년 한나라당 전당대회 당시 돈 봉투 살포 사건은 2012년 새누리당 고승덕 의원의 폭로를 통해 드러났다. 돈 봉투 살포 배후자를 찾던 검찰은 박희태 국회의장의 전 비서를 추궁한 끝에 '윗선'의 배후를 밝혀냈다. 지난해 2월 9일 당시 박희태 국회의장은 "모든 책임은 저에게 돌려달라, 나와 관련된 문제에 큰 책임을 느낀다"며 국회의장직을 사퇴했다. 국회의장이 비리와 부패 사건에 연루돼 불명예 퇴진한 헌정 사상 초유의 사건이었다. 항소심까지 이른 재판에도 박희태에게는 결국 유죄가 인정돼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그러나 지난 1월 29일 임기를 한 달도 채 남겨 놓지 않는 이명박 전 대통령은 박희태 전 국회의장을 사면 대상에 포함시켰다. 그리고 곧바로 건국대학교는 그를 석좌교수로 임명했다. 대학은 당시 "대학과의 인연과 법조·정당·국회 등 3개 조직에서 특별한 경력과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어 법조인 양성에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해 그를 임용했다"고 밝혔다. 돈봉투 살포 사건으로 유죄를 선고받고 사면된 지 몇 달도 채 지나지 않은 인사를 법을 가르치는 강단에 세운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되지 않는 일이다. 그러나 이런 사례는 비단 박희태에서 멈추지 않는다.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소개란. 돈봉투 파문으로 국회의장직을 떠났던 그가 교수로 돌아왔다.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소개란. 돈봉투 파문으로 국회의장직을 떠났던 그가 교수로 돌아왔다.
ⓒ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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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인사는 남주홍씨. 경기대 교수로 재직하던 그는 지난 2007년 이명박 정부 인수위에 발탁됐다. 인수위 정무분과 인수위원을 지냈던 그는 2008년 2월 통일부장관에 내정됐으나 부동산 투기·자녀 이중국적·이중 소득공제 등 각종 비리 의혹이 불거져 낙마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낙마한 그를 캐나다 대사, 국정원 1차장으로 중임했다. 경기대학교 누리집에는 여전히 그가 교수로 소개돼 있다.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돌아갈 수 있는 길이 마련돼 있는 셈이다.

다음은 숙명여대 가정아동복지학부(현 가족자원경영학과) 교수인 박미석씨. 그를 발탁한 것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었다. 2002년 서울시장 직무 인수위원회 인수위원으로 이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그는 대통령실 사회정책수석비서관으로 내정된다. 그러나 논문 표절·농지법 위반 의혹이 문제가 돼 야당뿐만 아니라 여당에서조차 부적격 여론이 높아졌다. 그에 따라 그는 임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사퇴했다. 2008년 5월에 사퇴한 그는 곧바로 학교로 돌아갔고 지금도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오세훈이 도시행정을 가르치다니...

오세훈 전 서울시장. 사진은 지난 2011년 8월 21일 오 전 시장이 무상급식투표에 시장직을 걸겠다고 발표한 뒤 무릎을 꿇는 모습.
 오세훈 전 서울시장. 사진은 지난 2011년 8월 21일 오 전 시장이 무상급식투표에 시장직을 걸겠다고 발표한 뒤 무릎을 꿇는 모습.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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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적격 인사 교수 채용'에 있어 압권은 바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사례다.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에서 '고급도시행정' 과목을 강의하고 있다는 오 전 시장은 한양대 측의 적극적인 초빙 의사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장으로서 경험이 수업의 특성과 적합하다는 의견이 있지만, 과연 그가 도시행정을 가르칠 자격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더 많다.

오세훈 전 시장은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박사다. 해당 분야에 학위도 없는 사람을 단지 '서울시장 경험'을 이유로 대학원 강의를 맡긴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교수 사회에서 제기됐다. 또 서울시장 경험을 높게 산다고 해도 그의 재임 시절 '업적'이 과연 학생들에게 가르칠만한 내용인가에 대한 문제 제기도 만만치 않다.

그의 개발 정책으로 대변되는 ▲ 한강 르네상스 ▲ 세빛둥둥섬 ▲ 뉴타운 정책 ▲ 용산 참사 ▲ 용산 드림 타워 사태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참담한 실패 아닌 게 없다. 아무리 연임에 성공한 서울시장이라고 해도 그는 실패한 정치가다. '정치적 야욕으로 서울의 주거와 환경을 망쳐버린 나쁜 정치인'이라는 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런 그가 대체 무엇을 가르치고, 대학은 학생들이 이런 사람에게 무엇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권력과 대학의 유착을 오랜 관행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공직에서 여러 가지 결격 사유로 낙마한 사람들, 전당 대회에서 돈 봉투를 돌렸던 사람이 대학 강단에 서서 법을 가르친다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이해하기 힘든 처사다. 더욱이 서민들의 목숨을 앗아간 용산 참사에 책임이 있는 장본인이 도시행정을 논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공직자는 안 되고, 교수는 된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에 대한 검증 잣대가 정치인이나 공직자에 비해 가벼워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공직자로서의 흠결은 교수로서도 흠결이다. 대학의 권위를 높이는 게 낙마한 공직자와 비리 공직자를 모은다고 해서 이뤄질까. 오히려 '구닥다리' '비리의 온상' '실패한 정치인의 보금자리'라는 불명예만 생길 뿐이다.

하지만, 현실을 톺아보면 낙마한 공직자와 비리 권력자들이 대학에 다시 돌아가거나 영입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없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비리 공직자와 낙마한 공직자가 후학 양성이라는 미명 아래 텃새처럼 눌러 앉은 현실 그리고 이 현실이 낳은 대학 본연의 기능 퇴행을 고려하면 관련법을 개정해서라도 이를 막아야 할 당위성은 충분하다.

작금의 대학을 살펴보자. '보따리 장사'라는 박사급 시간강사가 넘쳐나고 외국서 학위를 받은 '젊은 영재'들이 국외에서 떠돌고 있다. 비리로 물러난 국회의장·실패한 전임 시장보다 이런 '보따리 장사' '젊은 영재'들에게 학생들을 가르칠 기회를 주는 게 대학의 경쟁력을 높이는 길 아닐까.

권력과 대학의 비열한 거래는 대학의 앞날뿐만 아니라 나라의 미래·젊은 학자들의 희망마저 꺾는다. 하루빨리 고치지 않으면 전염병처럼 커질 악습이다.


태그:#한만수, #오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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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진보는 냉철한 시민의식을 필요로 합니다. 찌라시 보다 못한 언론이 훗날 역사가 되지 않으려면 모두가 스스로의 기록자가 되어야 합니다. 글은 내가 할 수 있는 저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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