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리 모터스>의 포스터

<홀리 모터스>의 포스터 ⓒ 오드

<홀리 모터스>를 봤다. PC통신과 휴거열풍으로 시끄럽던 1992년. 아랑곳 않고 영화보기를 즐겼던 나에게 충분히 인상적이었던 <퐁네프의 연인들(1992)>의 감독 레오 까락스의 작품이다. 덜떨어져 보이는 비정상적 캐릭터를 완벽하게 연기해 특별해 보였던 드니 라방도 함께했다. 이것이 바로 그리 끌리지 않았던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다.

 

"유능한 사업가 오스카(드니 라방)의 하루는 이른 아침, 고급 리무진 홀리 모터스에 오르면서 시작된다. 홀리 모터스는 그와 그의 비서 셀린(에디뜨 스콥)을 태운 채 새벽부터 해질녘까지 파리 곳곳을 누빈다. 유능한 사업가, 가정적인 아버지에서 광대, 걸인, 암살자, 광인에 이르기까지, 홀리 모터스가 멈추는 곳마다 전혀 다른 아홉 명의 인물이 내린다."

 

배급사가 제공한 줄거리다. 간단해 보이지만 영화를 이해하기란 보통 이상의 노력이 필요하다. 아무리 연기라지만 이해할 수 없는 장면들 투성이다. 친절하길 바라지 않아도 어느 시점이 지나면 설명을 해 줄거라 믿게 된다. 허나 레오 까락스 감독은 줏대가 있었다. 일관성을 지닌 채 어렵게 영화를 끝내고 만다.

 

<홀리 모터스>는 대중들이 좋아할 만한 영화는 아니다. 영화에 깊은 조회가 있는 전문가의 좋은 평은 받을 만하다. 하지만 순수하게 대중적인 시각의 내겐 '뭐가 뭔지 모르겠는 영화'였다. 주인공 오스카가 배우며 하루 종일 힘들게 연기한다는 사실 밖에는 어떤 것도 분명하게 알 수 없었다.

 

영화 속 주인공인 오스카는 연기를 하지만 카메라와 관객도 찾을 수 없다. 그저 다른 인생을 연기하고 있을 뿐. 때문에 <홀리 모터스>는 '재미있다와 없다'를 떠나서 드니 라방의 신들린 연기를 그저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뭐가 진짜 그의 삶인지 그런 삶을 선택한 이유가 뭔지는 결국 알아서 생각하면 된다. 

 

이 영화에는 부의 상징인 리무진이 여러 대 등장한다. 주인공 오스카가 다음 인물을 연기하기 위해 갖가지 분장용 소품이 그득한 공간이다. 리무진의 잘빠진 외관과는 사뭇 대조적인 어수선한 공간으로 비추고 있다.

 

감독은 리무진 안에서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신하는 과정을 디테일 하게 드러낸다. 그것은 흡사 영화제작 과정을 보는 것 같이 신기해 시선을 사로잡는다. 매순간의 다른 모습이 섬세하게 표현되며 드니 라방의 연기는 거의 완벽해 극중 연기임을 알면서도 몰입이 가능하다. 그것은 <홀리 모터스>가 그리 재밌지 않아도 집중할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가 된다.

 

오스카가 유일하게 자신이 되는 리무진 안에서 그는 어떤 남자에게 일을 왜 계속하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그것은 영화의 첫 장면 극장에 앉은 관객 모두가 죽은 듯이 눈을 감고 있는 장면과 연결된다. 극장에 앉아 있지만 눈을 감은 관객들 사이로 등장하게 되는 레오 까락스. 필름이 돌지만 눈을 감은 관객들에게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는 의지를 조명하는 것과 같다.

 

 주인공 오스카가 가장 격정적으로 연기한 광인의 모습

주인공 오스카가 가장 격정적으로 연기한 광인의 모습 ⓒ 오드


재정문제나 혹은 오랫동안 우울증을 앓은 여자친구의 죽음을 딛고 13년 만에 선보인 레오 까락스의 <홀리 모터스>. 어딘가에서 늙지 않는 약을 먹은 것 같이 활력이 넘치는 배우 드니 라방의 모습은 더 깊이 있고 견고해 보인다. 극중 딸을 혼내는 아버지의 대사로 "너의 벌은 네가 되는 거야. 평생 너 자신으로 사는 것"이라는 말은 이 영화에 깊이 있는 울림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13년 만에 내놓은 장편치고 어리둥절함을 남기는 영화지만, <퐁네프의 연인들>이 20대의 열정을 발산했다면 <홀리 모터스>는 성숙한 시선으로 인생을 이야기한다. 다채로운 인생을 연기하는 영화를 통해서 말이다. 인생은 원래 어떤 것도 정확히 알 수 없으며 말도 안 되는 것들의 연속인 것이다.

 

1분 38초 가량 정직하게 노출된 성기를 이유로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았고, 덕분에 뿌옇게 처리된 화면을 뚫어지게 보게 될 것이다. 엔딩크레디트가 올라가기 직전 사인이 알려지지 않은 채 숨진 자신의 여자 친구 예카테리나 고루베바로의 사진이 잠시 공개되기도 한다.

2013.04.10 11:47 ⓒ 2013 OhmyNews
레오 까락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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