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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안성흰돌리마을 사무장 송상호입니다.이번 구리중학교 1박2일(2013.4.4~5) 체험이 내겐 감동이었어요. 이렇게라도 글을 써서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첫날, 110명의 학생들이 버스에서 내려 우리 마을로 몰려올 땐(처음엔 몰려온다는 표현이 적합한 듯), 걱정이 앞섰지요. 누군들 혈기왕성한 사내아이들이 몰려오는데, 그러지 않겠어요. 프로그램을 진행하려고 하니 그런 염려는 배가 되더군요. 속으로 이런 맘이 들더군요. '1박2일이 쉽지 않겠군'.

흰돌리마을 농가에 방문해서 직접 농사를 지어보는 아이들. 그날 농사를 방문한 농민과 함께 1시간 정도 해보고 있다. 아이들의 삽질이 어슬퍼지만, 그 흘린 땀만은 값질 게다.
▲ 농사 지어보기 흰돌리마을 농가에 방문해서 직접 농사를 지어보는 아이들. 그날 농사를 방문한 농민과 함께 1시간 정도 해보고 있다. 아이들의 삽질이 어슬퍼지만, 그 흘린 땀만은 값질 게다.
ⓒ 백종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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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시간이 조금씩 지나니 알게 되더군요. 그런 건 기우였다는 걸. 아이들을 잘 몰라서 온 선입견이었다는 걸. 무엇보다 구리중학교 교사들의 카리스마와 상냥함의 조율 능력을 몰라봐서 왔다는 걸. 내 힘으로 아이들을 통솔할 게 아니라 교사 분들의 힘을 빌리면 무엇보다 수월하다는 걸.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팀워크가 맞아 들어갔죠.

첫날, 시골밥상 체험을 한 아이들이 "밥과 반찬이 너무 맛있어서 두 그릇이나 먹었어요"라며 자랑하자 한시름 놓았지요. 그 말을 들으며 더 기뻐하는 건 교사들이었어요. 사실 우리 마을에 오기 전에 반찬에 신경 좀 써달라고 교사들이 신신당부하셨거든요. 첫날 저녁에는 고기 반찬이 나왔다며 다른 마을로 체험 간 아이들에게 문자로 자랑하는 아이들. 그들을 보며 왠지 모르는 뿌듯함이 들었죠. '괜히 내가 걱정했구나'며 걱정을 조금씩 거두어들이기 시작했죠. 대신에 '이들이라면 1박 2일을 해도 재미있겠구나'는 묘한 기쁨이 자리 잡더군요.

잠자리 복불복 게임으로 줄다리기를 했지요. 이 프로그램을 준비하면서 무척이나 고민했어요. 110명이나 되는 남학생들을 상대로 어떻게 복불복 게임을 할 건가를 두고 말이죠. 그러다 혈기왕성한 남학생들, 그것도 한 명도 소외되지 않고 게임을 하려면 줄다리기가 좋겠다고 결론을 내렸죠. 줄다리기용 줄은 인근 초등학교에서 빌렸어요. 막상 줄다리기가 시작되자, 모든 고민들이 말끔히 내려가더군요. 아이들이 어찌나 열심히 게임에 임하든지. 아이들 속에 잠자고 있는 승부욕을 자극한 게지요.

"으샤~ 으샤~ 우리 조 이겨라!"

시키지 않았는데도, 열정적인 응원까지. 조그만 시골마을에 학교운동회가 옮겨온 듯 했어요. 우승 조가 정해지고, 잠자리가 정해지자 아이들의 희비가 엇갈렸죠. 그래도 아이들은 누구 하나 승패에 불복하는 아이들이 없었어요. 참 '쿨한 아이들이구나' 싶었죠.

'힐링워킹' 시간. 시골 밤길을 걸어보는 시간이 왔어요. 도시에 살면서 캄캄한 시골 밤길을 언제 걸어 보았겠어요. 그것도 밤하늘별을 보면서. 내가 속한 조는 5조였어요. 맨 뒤에 출발했죠. 원래 형식대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건 잠시뿐이었어요. 아이들이 대부분 내 주위로 모여들어 이야기를 시켰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내게 물어 왔어요. 우리들은 "서로 통하는 남자 아이가"를 외치며 대화했죠.

역시 사내아이들이라 성적인 호기심이 많더군요. 나의 진솔한 대답에 아이들은 시간가는 줄 모르고 물어오더라고요. 대학생을 자녀로 둔 나에게는 아주 쉬운 질문들이었지요. 아이들은 때론 진지하게, 때론 웃으면서 듣더라고요. 그렇게 우리는 시간가는 줄 모르고 시골 밤길을 걸었죠. 가끔씩 밤하늘별을 보며 신기해하면서 말이죠. 한 아이가 "구리엔 저렇게 별이 많지 않던데"라고 해서 우린 한바탕 웃었죠. 다음 날, 우리 조에 속한 아이들이 자랑을 하더군요. "우리 조 사무장님이 우리에게 성교육을 시켜주셨다"며. 무슨 성교육씩이나. 하하하하.

조별로 흰돌리마을 자연을 체험하고, 마을을 둘러 본 후 아이들이 마을탐사지도를 그리고 있다. 자신들이 본 마을을 그림으로 그리는 아이들의 얼굴이 신날 수밖에 없다.
▲ 마을탐사지도 그리기 조별로 흰돌리마을 자연을 체험하고, 마을을 둘러 본 후 아이들이 마을탐사지도를 그리고 있다. 자신들이 본 마을을 그림으로 그리는 아이들의 얼굴이 신날 수밖에 없다.
ⓒ 백종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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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산행이 있는 시간. 조금은 긴장되는 시간이었죠. 천년사찰 석남사 입구에 도착했어요. 한 아이가 "전날 '힐링워킹'은 '킬링워킹'이었어요. 마냥 걷기만 해서"라며 농담을 했지요. 농담하는 수준이 상당하더군요. 하하하하. 그러면서 "또 산행이라니 힘들다"며 투덜대는 친구도 있었죠. 교사 분들은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을 강조했고, 아이들은 "첫째도 투덜, 둘째도 투덜"을 발산했죠. 왜 그러지 않겠어요. 평소 잘 걷지 않는 일상의 학생들이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그건 산행이 시작되기 전 광경일 뿐이었습니다. 조별로 "출발"을 외치니 아이들의 눈빛이 달라지더군요. "으샤, 으샤" 아이들의 목소리가 우렁차지더군요. 우리가 언제 그랬냐는 듯 시치미를 떼는 아이들처럼 보였어요. 맨 먼저 출발한 조를 감당했던 우리 마을 위원장님은 "아이들의 걸음이 워낙 빨라서 따라 가느라 혼났다"며 후에 말씀하시더군요. 참고로 위원장님은 종종 그 산을 산악자전거로 오르실 만큼 단련된 분이심에도 말이죠.

사무장인 내가 맨 뒤의 조를 감당했지요. 이번에도 5조였어요. 그런데 맨 뒤에 가다보니  앞 선 조가 볼 수 없는 것들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뒤에 처진 아이들이었죠. 그들은 평소엔  평지를 많이 걸어도 벅찬 아이들었지요. 다른 친구들보다 체중계의 숫자가 조금 더 높은 친구들이었지요. 앞에서 날아가는 아이들에 비해 그들은 힘겨워 보였어요. 수건으로 땀을 닦아가며, 나무지팡이로 땅을 짚어가며 힘겹게 올랐어요.

조별로 흰돌리마을 농가를 방문해 시골밥상을 먹어보고, 주민의 농촌 생활에 대해 인터뷰도 해보고, 주민과 함께 미션도 수행해본다. 지금은 농가 어르신들과 함께 "사랑해요"를 외치며 인증샷을 찍고 있다.
▲ 농가방문 후 조별로 흰돌리마을 농가를 방문해 시골밥상을 먹어보고, 주민의 농촌 생활에 대해 인터뷰도 해보고, 주민과 함께 미션도 수행해본다. 지금은 농가 어르신들과 함께 "사랑해요"를 외치며 인증샷을 찍고 있다.
ⓒ 백종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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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내가 말했죠. "힘들면, 이제라도 포기하고 산 밑으로 내려 갈래"라고요. 그랬더니 "아니요. 끝까지 한 번 가볼래요"라고 하더군요. 아, 이 감동의 물결. 그렇게 시작된 우리의 밀월 산행. 난 그 아이에게 "나도 널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게. 우리 함께 정상까지 가보자"고 말했죠. 한 발 두 발, 천천히 걸음을 뗐죠. 다른 아이들은 벌써 정상을 돌아 내려가는 소리가 멀찌감치 들렸어요. 우린 아직도 정상을 향해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죠. 드디어 정상에 도착했어요. 자상한 박대수 선생님이 정상에서 반겨주시더군요. 아이들을 향해 아빠미소를 지으며 "장하다, 수고했다"를 연발하시는 박대수 선생님 짱! 하하하하.

그렇게 산행을 하며 한 편의 드라마를 찍었던 친구들이 바로 '주환, 인수, 성홍'군 이에요. 하도 기특해서 이름들을 기억하고 있죠. 산 아래 내려와 다른 아이들에게 "우리 네 명이 드라마를 찍었다 찍었어"라고 자랑했더니 뭐라는 줄 알아요. "어디 어디요. 어느 방송국에서 나와 드라마를 찍었어요"라나 뭐라나. 그놈의 의사소통이라니. 하하하하하. 

조별로 흰돌리마을탐사지도를 그린 후 재미있는 포즈로 인증샷을 찍고 있다. 자신들의 작품을 가지고 익살스럽게 찍는 아이들이 보기 좋다.
▲ 조별 인증샷 조별로 흰돌리마을탐사지도를 그린 후 재미있는 포즈로 인증샷을 찍고 있다. 자신들의 작품을 가지고 익살스럽게 찍는 아이들이 보기 좋다.
ⓒ 백종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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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부터 열까지 일일이 챙기며 열심을 내는, 그래서 어머니 같은 모습을 보였던 백종실 선생님. 평소 무뚝뚝하게 계시다가 결정적일 때(산행하기 전), 진중한 목소리로 안전을 강조하시던 아버지 같은 이재용 선생님. 아이들의 말이라면 꾸벅 넘어가는, 아이들 편에서 어떤 말이라도 잘 들어줄 거 같은 든든한 형님 같은 박대수 선생님. 통솔할 때는 '카리스마 짱이면서, 평소엔 아이들과 사람들에게 상냥한 큰 누나 같은 이수정 선생님. 평소엔 있는 듯 마는 듯하지만, 아이들에게 할 건 다하고 시킬 건 다 시키는 작은 누나 같은 박은혜 선생님. 그리고 조장을 맡았다고 책임을 다하며 애쓰는 각 조 조장아이들. (특히 우리 조 조장 정원이). 마지막에 헤어지면서 나에게 "쌤, 나 기억해줘요. 나 병걸이에요"라던 아이. 그 외, 눈이 마주쳤던 모든 아이들.

그들이 체험을 마치고 돌아갈 땐, 마음이 섭섭하고 허전하더군요. 겨우 1박 2일이었지만, 정이 든 게지요. 그만큼 이번 구리중학교 학생들의 방문은 내겐 감동이었어요. 구리중학교 2학년이 우리 마을에 체험하러 왔지만, 역으로 내가 아름다운 중학교를 체험하는 계기가 됐죠. 여러분들의 방문은 제 기억 앨범에 몇 장의 스틸 사진으로 남을 거 같군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응원합니다.

흰돌리마을 농가 중 한옥을 방문한 아이들. 처음 본 한옥에서 밥도 먹고, 농사도 지어보고, 이야기도 나눈다. 신나서 포즈를 취한 아이들.
▲ 한옥 농가에서 흰돌리마을 농가 중 한옥을 방문한 아이들. 처음 본 한옥에서 밥도 먹고, 농사도 지어보고, 이야기도 나눈다. 신나서 포즈를 취한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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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지난 4월 4일과 5일 1박2일 농촌체험을 하고간 구리중학교 2학년 3~5반 아이들과 교사들에게 시골마을(녹색농촌체험마을 흰돌리) 사무장인 내가 고마워서 편지 형식으로 사는 이야기를 그려보았다.



태그:#구리중학교, #흰돌리마을, #농촌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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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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