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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4월, 대한문 앞 쌍용차 분향소의 모습.
 2012년 4월, 대한문 앞 쌍용차 분향소의 모습.
ⓒ 김혜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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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무덤으로 내가 들어가야겠어요."

쌍용차 해고자들의 심리 치유센터 '와락'의 정혜신 박사가 트위터에 남긴 한 해고자의 말이다. 지난 4일 쌍용차 분향소가 강제 철거당했다. 이에 대해 대책회의를 하던 중 그는 멍하니 얼굴 근육을 떨며 이렇게 말했단다. 2009년 5월 시작된 쌍용차 사태로 지금까지 24명이 숨졌다. 주된 원인은 자살. 대다수가 유서조차 남기지 않았다.

강제철거를 집행한 중구청은 시민들의 통행불편 방지뿐 아니라 지난달 화재로 덕수궁 돌담의 서까래가 그을리는 등 문화재 훼손 우려까지 제기돼 철거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입장이다. 중구청은 오전 5시 50분 직원과 경찰을 동원해 분향소를 기습 철거했다. 이후 철거된 땅 위로 40톤의 흙을 부어 꽃 화단을 만들었다. 이 모든 과정이 20여 분 만에 이루어졌다.

죽음·단식·고공농성 그리고 또 죽음... 쌍용차 해고자들의 1년 

지난해 4월 5일 서울 중구 태평로 덕수궁 대한문 앞에 분향소가 차려졌다. 쌍용차 해고자였던 이윤형씨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한 자리였다. 죽음 직전까지 구직 활동 중이었던 그는 23층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했다. 22번째 죽음이었다. 쌍용차 해고자들은 "더 이상의 죽음은 안 된다"고 생각해 지난해 4월 아무 준비도 없이 무작정 거리로 나왔다. 그게 시작이었다.

처음에는 얼굴 없는 영정사진이 그려진 흰 전지가 전부였다. 이후 구호 물품이 하나둘씩 조달되고,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밥셔틀'이라는 새로운 문화도 생겨났다. 쌍용차 해고자들의 식사를 챙겨주는 '밥 연대'였다. 공지영 작가의 쌍용차 르포집 <의자놀이>도 발간됐다. '희망 지킴이'를 자처하고 나선 사람들도 늘어났다. 쌍용차 해고자들도 희망이 생겼던 걸까? 이 즈음에 만났던 쌍용차 해고자 고동민씨는 "대한문에 서니 비로소 희망이 보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 중구청이 4일 새벽 대한문 쌍용자동차 분향소를 기습철거 했다.
 서울 중구청이 4일 새벽 대한문 쌍용자동차 분향소를 기습철거 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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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해고, 비정규직이란 신문사회면 한 귀퉁이에 써져 있는 활자로만 인식하던 평범한 삶을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화들짝 놀란 사람들, 이제는 어느 누구보다도 해고자들이 공장으로 돌아가 평범한 일상을 찾기를 소망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일주일에 한번 씩 없는 돈에, 밥과 반찬을 해서 해고자들에게 집 밥을 먹이던 사람들, 밤늦게까지 일하면서 그 늦은 시간 대한문을 꼭 들리고야만 하던 사람들, 정리해고는 원래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던 사장님에서 해고자들의 친근한 형, 누이가 되어 주던 사람들이 있었다. 음료수를 슬며시 놓아두기도, 허겁지겁 모금함에 지폐 몇 장을 쑤셔 넣으며 연신 미안하다 고개를 주억거리던 사람들이 있었다. - 고동민씨의 기고(출처 : <참세상>)

지난해 9월 쌍용차 청문회가 열렸다. 4년 만이었다. 그 과정에서 회계법인의 '회계조작' 증거들이 제기됐다(관련기사 : <"쌍용차 정리해고,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조작">). 10월 쌍용차 해고자 김정우씨는 23번째 죽음 소식을 듣고 단식농성에 나섰다. 곡기를 끊은 지 41일째, 그는 건강 악화로 병원에 호송됐다. 18대 대선에 모든 이목이 쏠려 있던 11월 20일 새벽, 쌍용차 해고자 3인(한상균, 문기주, 복기성)이 '해고자 전원 복직', '국정조사 실시'를 요구하며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앞 30M 철탑에 올라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15만 볼트 전기가 흐르는 곳이다. 철탑 농성 116일차, 문기주씨는 건강상태가 악화돼 서울 녹색병원으로 긴급 후송됐다. 왼쪽 팔을 거의 쓸 수 없을 만큼 왼쪽 어깨 충돌증후군과 인대 부분 파열 증세를 보였다. 검진 결과 한상균씨는 저혈압과 동상 증세가, 복기성씨는 허리디스크 증세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두 사람은 여전히 철탑 위에 올라 있다. 그 기간이 어느덧 140일을 넘었다.

올해 1월, 공장에서 자살을 시도한 후 뇌사 상태에 빠져 있던 쌍용차 노동자가 죽음을 맞았다. 24번째 죽음이었다. 3월 3일, 화제로 분향소가 홀딱 타버리기도 했다. 철거 전 분향소는 시민들과 연대해 다시 세운 것이었다.

박근혜 대통령, "쌍용차 사태 국정조사" 약속은 언제 지킬 겁니까 

철거 후 황폐해져버린 대한문 앞 쌍용차 분향소의 모습.
 철거 후 황폐해져버린 대한문 앞 쌍용차 분향소의 모습.
ⓒ 양창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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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찾은 대한문 앞에는 화단을 둘러싸고 펜스가 설치돼 있었다. 일부 중구청 직원들과 경찰들은 농성장 재설치를 우려해 대한문을 둘러싸고 감시 중이다. 펜스 앞 비닐 돗자리에는 10명도 채 안 되는 해고자와 시민들이 자리를 지켜내고 있었다. 정혜신 박사는 지난해 9월 쌍용차 청문회에 증인으로 참석했을 때 이렇게 말했다.

"그동안 만난 쌍용차 조합원 중에 자살충동으로 자살시도를 한 조합원이 80%가 넘는다. 말하자면 둑이 무너지려고 하는데 시민들이 주먹으로 틀어막고 버티고 있는 상황이다. 더 이상 시민의 힘으로 버티기 어렵다."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 시절 "대통령이 되면 쌍용차 사태 국정조사를 실시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그 약속은 이행되지 않고 있다. 2월 국회 개원 합의 사항인 "쌍용차 여야 합의체를 통한 사태 해결" 또한 마찬가지다. 해고자들에게는 '희망 고문'이 되어버렸다.

분향소 기습 철거는 어떨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은 4일 성명서를 통해 "행정대집행과 관련해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가 중구청장과 면담을 조율 중인 상황이었음에도 중구청은 오늘 새벽 기습적으로 철거를 단행해버렸"으며 "행정대집행장의 대상물이었던 대한문 앞 천막 3개 동은 지난 3월 한 노숙인의 방화로 이미 없어져버렸고, 분향소는 그 후 새로 설치된 것이기에 중구청은 행정대집행 절차도 다시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쌍용차 사태 해결을 위한 범국민대책위원회'도 분향소와 주변 설치물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제6조에 따라 신고된 집회 용품이므로, 헌법과 집시법으로 합법성을 보장받은 것이라고 반발했다.

중구청의 '화단 조성'도 문제가 제기됐다. 대한문 앞은 문화재보호법상 역사문화환경보존지역이라 화단 설치 전에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문화재보호법 제35조). 그러나 <경향신문>에 따르면 중구청은 문화재청에 현상변경허가를 신청하지 않았다. 중구청은 이에 대해 "천막농성장을 철거하기 위한 임시시설물이기 때문에 허가를 받을 사안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노조와 협의 도중 기습철거한 중구청... "행정권을 폭력적으로 남용"

대한문 앞에 설치된 펜스와 화단이다. 분향소의 면적보다 더 넓게 설치돼 있어 시민들의 통행은 더 불편해진 상황이다.
 대한문 앞에 설치된 펜스와 화단이다. 분향소의 면적보다 더 넓게 설치돼 있어 시민들의 통행은 더 불편해진 상황이다.
ⓒ 김혜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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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경찰들과 중구청 직원들의 행동은 '국가폭력'으로 보일 정도다. 협의를 조율하는 과정이었음에도 중구청은 '대화'가 아닌 일방적 철거를 단행했다. 새벽 기습철거로 인해 텐트 안에서 잠을 자고 있던 해고자 3명은 신발도 신지 못한 채 밖으로 떠밀려 나왔다. 이후 소식을 들은 해고자와 시민들이 모였고, 온몸으로 철거를 막았다. 장비로 무장한 경찰과 중구청 직원들은 이들을 힘과 공권력으로 끌어내렸다.

이 과정에서 부상자가 생겼다. 영정 사진 등의 물품이 빼앗기는 것에 항의하던 해고자와 시민 등 49명이 연행되기도 했다. '정당한 자기 방어'가 공권력 앞에서 방해가 되었다는 이유다. <참여연대>는 이를 "실정법 위반만을 재단하여 행정권을 폭력적으로 남용한 행위"라고 꼬집었다.

만약, 중구청 직원 혹은 경찰 중 누군가 퇴거 명령을 거부했다면 어땠을까? 스페인은 주택시장 붕괴 이후 수십여만 명이 강제퇴거 상황에 놓여 있다. <아에프페>(AFP) 통신에 따르면 스페인 정부 집행관들은 열쇠수리공조합에게 대출금을 갚지 못한 이들을 집에서 쫓아내는 일을 도우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그들은 돕지 않기로 선언했다고 한다. 파산한 가정의 문을 강제로 따고 들어가는 일은 "우리들에게 심적 갈등을 일으키기 때문"이라는 것. 일부 지역에선 소방관들을 대신 투입했지만, 이는 더 큰 저항을 불러일으켰다. 카탈루니아 소방관조합은 "우리는 위험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을 돕는다,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리려는 은행을 돕는 것은 우리의 본래 업무와 모순된다"고 말했다.

대한문의 상황은 다르다. 다소 젊어 보이는 중구청 직원들에게 해고자들과 시민이 하소연하기도 했지만, 그들은 외면할 뿐이었다. 지난 6일, 토요일임에도 불구하고 공무원인 중구청 직원들은 경찰들과 함께 대한문을 둘러쌌다. 공권력의 감시는 1평 남짓한 돗자리 위에 앉아 있는 해고자와 시민을 압도했다. 조달되는 물품들도 모두 빼앗기고 있는 상황이다.

우려되는 것은 또 다시 시작될지도 모를 해고자들의 죽음이다. 쌍용차 해고자 이창근씨는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남겼다.

우리는 탄압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죽음이 이어질까 두렵다, 우리는 구속과 연행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진실이 매장되는 것이 두려울 뿐이다.

"여기 무덤으로 내가 들어가야겠어요"라는 해고자의 말을 가벼이 넘기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서러운 자리에 다시 모인 사람들... 그게 '사람의 마음'이다"

지난해 5월, 연대 방문 온 시민들로 북적이는 쌍용차 분향소 모습.
 지난해 5월, 연대 방문 온 시민들로 북적이는 쌍용차 분향소 모습.
ⓒ 김혜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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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해고자들과 시민들은 다시 일어섰다. 비 내리던 6일 열린 추모 미사에는 비옷을 입은 시민들이 모여 자리를 함께했다. 한진중공업 대량 해고 사태에 항의하며 85호 크레인에 올랐던 김진숙씨는 그들의 모습을 이렇게 설명한다.

"사람을 몰아낸 자리에 흙을 붓고 황급히 사철나무를 꽂고 그 흙을 밟았다고 사람들을 잡아갔다. 휑하고 서러운 자리에 다시 모인 사람들. 어쩌면 잡혀갈 수도, 어쩌면 다칠 수도 있는 자리에 선뜻 달려간 사람들. 그게 사람의 마음이다."

쌍용차 해고자들의 '생사를 건 행동'은 늘 스러져가는 동료의 죽음에서 시작했다. 분향소, 단식, 철탑 농성 등. 부당한 해고로 인한 둉료들의 무력한 죽음이 그들을 거리로, 하늘로 나서게 했다. '생명'이 맞닿아 있는 싸움이다.

8일부터는 대한문 앞에서 저녁 촛불 문화제를 이어갈 예정이다. '함께살자 희망 지킴이'에서는 'H-20000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십시일반 모은 2만 개의 부품으로 쌍용차 해고자들이 4년만에 자동차를 만든다고 한다. 2만 개의 부품에는 프로젝트에 참가한 사람들의 이름을 새긴다. 이 자동차는 6월 8일 모터쇼에서 공개한 후, 기부할 예정이다. 끝으로 2009년 쌍용차 파업에 참여한 이유로 구속돼 3년간의 복역을 마치고 출소한 후 철탑에 올라 농성 중인 한상균씨의 말을 덧붙인다.

"공장에서 쫒겨나고 길거리서도 짓밟히는 '국민행복시대'는 어느 나라 얘긴가? 죽지 못해 살아온 4년, 혼자가 아님을 가르쳐준 4년, 시대의 아픔을 담은 연대의 꽃으로 대한문을 반드시 지킬 것이다. 사회적 경제적 약자들을 짓밟아 증폭될 사회 갈등은 돈으로 계산할 수도 없는 재앙임을 박근혜정부는 외면하고 있다."


태그:#쌍용차 분향소, #쌍용차, #대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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