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013년 4월 5일의 북한산, 그리고 생강나무 꽃(2013.4.5 북한산)
 2013년 4월 5일의 북한산, 그리고 생강나무 꽃(2013.4.5 북한산)
ⓒ 김현자

관련사진보기


엊그제 식목일에 북한산에 갔다. 30여명 넘게 온 듯한 일행도 보이고, 둘 혹은 삼삼오오 산행을 하는 사람들로 평일인데도 북한산엔 사람이 제법 있었다. 이른 아침에 올라갔다가 1시 반쯤 하산했는데, 올라갈 때는 전혀 볼 수 없었던 (아마도) 꽃놀이를 하러 온 듯한 사람들까지 좀 보이는 등 북한산엔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햇볕은 따사롭지만 북한산의 풍경엔 아직 봄이 그다지 느껴지지 않는다. 햇빛이 쉽게 들지 않는 곳에는 어른 한 뼘 정도의 얼음도 제법 남아있고, 제비꽃이나 개별꽃처럼 이른 봄 흔하게 볼 수 있는 꽃들도 눈 씻고 봐야 할 정도로 거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북한산에서 만나는 노란 생강나무 꽃은 정말 반갑기만 하다. 

"야! 산수유 좀 봐. 정말 예쁘지 않니?"
"그러게. 정말 안 예쁜 꽃이 없지? 우리 아파트에도 폈던데 산에서 보니 정말 반갑네!"
"아냐 그거 산수유 아냐. 생강나무야. 꺾어서 냄새를 맡으면 생강냄새가 나거든!"
"정말 생강냄새가 나? 김치에 넣는 그 생강냄새? 야 정말 신기하다! 그렇지?"

올 봄 들어 처음 만나는 생강나무 꽃인지라 반가운 마음에 잠시 멈춰 사진 몇 장 찍노라니 여자 셋이 지나가다가 생강나무 꽃을 무척 반가워하며 잠시 서서 이야길 나누다 갔다.

산에 꽃이 거의 피지 않은 이즈음 드문드문 활짝 피운 생강나무 꽃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 쉽다. 게다가 얼핏 우리 주변에서 쉽고 흔하게 볼 수 있는 산수유나무 꽃과 비슷하기 때문인지, 이처럼 산수유 꽃이라며 아는 체 하는 사람들도 그리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아파트 단지에 핀 산수유(2012.4. 고양시 일산)
 아파트 단지에 핀 산수유(2012.4. 고양시 일산)
ⓒ 김현자

관련사진보기


아직 두꺼운 얼음이 남아있는 북한산에 생강나무가 가장 먼저 꽃을 피웠다(2013.4.5 북한산)
 아직 두꺼운 얼음이 남아있는 북한산에 생강나무가 가장 먼저 꽃을 피웠다(2013.4.5 북한산)
ⓒ 김현자

관련사진보기


그런데 사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생강나무는 전체적으로 줄기가 매끈한데다 일부 줄기는 진한 녹색을 띤다. 그와 달리 산수유나무의 줄기는 이처럼 쉽게 벗겨지는 껍질 때문에 줄기가 좀 거칠게 느껴진다. 생강나무 꽃은 뭉쳐있고 산수유나무 꽃은 꽃술을 쑥쑥 내밀었기 때문인지 꽃 뭉치가 훨씬 홀가분하게 느껴지는 등, 꽃도 자세히 보면 다르다.

사는 곳도 다르다. 산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십중팔구 생강나무일 가능성이 많고, 아파트단지나 공원, 길가에서 만날 수 있는 나무는 산수유일 가능성이 높다. 사람에 의해 어느 집 정원에 생강나무가 심어지기도 하고, 산속 어느 집 곁에 산수유가 꽃을 맺어 붉은 열매를 달고 있기도 하지만.

여하간 언뜻 비슷한 이 두 나무가 꽃들이 거의 피지 않을 때 다른 꽃들보다 먼저 피기 때문에 사람들의 눈에 쉽게 띄고, 그만큼 입에 오르내리는 일도 많은 것 같다. 때문인지 산행을 하며 생강나무 꽃이 피어난 곳을 지나거나 사진을 찍고 있으면 여자들처럼 멈춰 서서 이야길 나누다 가는 사람들도, 일행에게 생강나무 설명을 해주는 사람들도 그리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걸 보면 말이다. 일찍 피기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을 많이 받는다고 할까.

그런데, 그 나무가 어떤 나무라는 구별을 하고 못하고에 앞서 자연 혹은 그 속에 깃들어 사는 동식물에 관심을 갖거나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무척 다행스런 일일 것이다. 문제는 관심이 지나치거나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절름발이 지식 때문에 훼손당하는 식물들이나 동물들이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지나는 부근의 생강나무 옆을 스치며 봤더니 10군데 이상 꺾여 있었다. 이처럼 사람이 많이 다니는 등산로 주변에 있는 나무들은 꺾인 흔적들이 특히 많다.(2013. 4.5 북한산)
 사람들이 지나는 부근의 생강나무 옆을 스치며 봤더니 10군데 이상 꺾여 있었다. 이처럼 사람이 많이 다니는 등산로 주변에 있는 나무들은 꺾인 흔적들이 특히 많다.(2013. 4.5 북한산)
ⓒ 김현자

관련사진보기


생강나무도 그중 하나. 지난해 봄에 유독 탐스러운 꽃을 피우는지라 꽃을 피웠겠다 싶으면 찾아가던 내가 좋아하는 생강나무가 눈앞에서 무참히 꺾여 나가는 것을 본 이후부터 눈여겨 본 결과 많은 생강나무들이 사람들의 지나친 관심때문에 꺾인 흔적들을 가지고 있음을 보게 됐다. 그리하여 자신을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관심이 생강나무로선 무척 곤혹스러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꽃은 멀리서 보면 산수유와 비슷하지만 꽃자루가 짧고 털이 밀생하며, 수술이 짧아 꽃 밖으로 나오지 않는 점이 다르다. 가지나 잎을 꺾어서 비비면 생강냄새가 나므로 생강나무라고 한다. 지역에 따라서 열매를 짜서 나온 기름을 동백유라고도 하며, 머리를 단장하는데 사용하기도 했다.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에 나오는 동백꽃의 실제가 바로 생강나무다.(어떤 나무 백과사전 '생강나무' 편에서)

-잎보다 꽃이 먼저 피고 꽃모양도 비슷하기 때문에 혼동하기 쉽다. 생강나무는 우리나라 전역에 고루 분포하고, 특히 강원도를 중심으로 한 중부 이북 지방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흔한 나무다. 생강나무에서 풍기는 생강 향의 주된 성분은 게라닐아세테이트와 L-펠란드렌이라는 물질이다. 이런 향 때문에 야외 관찰을 할 때 꽤 인기가 있다. 힘들고 지칠 때 작은 가지 하나를 잘라 코앞에 대주면 모두가 깜짝 놀라는데, 생강나무의 천연 향이 요즘 한창 인기를 누리는 서양에서 들여온 허브 향기에 뒤지지 않을 만큼 독특하고 은은하기 때문이다.(줄임) 생강나무라는 우리 이름은 가지를 꺾거나 잎을 비볐을 때 생강 냄새가 나서 붙여진 것이다.(한 식물학자가 쓴 우리 땅에서 자라는 풀과 나무 책 '생강나무' 편에서)

어떤 책이든 생강나무를 이와 비슷하게 설명한다. 표현만 조금씩 다를 뿐이다. 필자도 누군가에게 생강나무에 대해 알려줄 때면 이처럼 '가지를 꺾거나 잎을 비비면 생강냄새가 나기 때문에'라는 것을 강조해 설명하곤 한다. 필자가 이제까지 접했던 생강나무를 이야기하는 거의 모든 책들이 이처럼 설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설명으로 그치지 않고 아래의 글(위의 인용 글 중)을 쓴 사람처럼 누군가에게 설명을 해주며 가지를 꺾어 코앞에 대주거나, 입에 넣고 씹는 사람까지 있다는 것이다. 때문인지 요즘처럼 생강나무 꽃이 필 때면 생강나무 가지를 꺾어 설명해주는 사람들이나 가지 하나를 꺾어 입에 넣고 씹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또 생강나무 주변에 떨어진 새파란 잎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지난 봄, 내가 좋아하는 생강나무의 제법 굵은 줄기가 눈앞에서 꺾이는 것을 목격한 후, 산행 중 생강나무 곁을 스치노라면 나도 모르게 생강나무로 눈이 가곤 한다. 그동안 관찰해 본 결과, 사람들이 많이 지나는 길목에 있거나 여러 사람이 쉴 수 있을 정도로 넓은 자리 주변에 있는 생강나무들은 특히 더 많이 꺾인 것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아니, 등산로 주변의 생강나무들 치고 전혀 꺾인 흔적이 없는 나무가 거의 없을 정도라고 말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북한산의 생강나무들은 많이 꺾여 나가고 있었다. 이제라도 북한산 국립공원 괸리공단 측에서 생강나무 이름표에 '제발 꺾지 말아달라'는 문구라도 넣는 것이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꺾인 흔적들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줄기마다 끝이 거의 잘려나갔다. 몇 년 묵은 꺾인 흔적부터 최근에 꺾인 흔적까지를 가지고 있는 이런 생강나무를 쉽게 볼 수 있다.(2013.4.5 북한산)
 줄기마다 끝이 거의 잘려나갔다. 몇 년 묵은 꺾인 흔적부터 최근에 꺾인 흔적까지를 가지고 있는 이런 생강나무를 쉽게 볼 수 있다.(2013.4.5 북한산)
ⓒ 김현자

관련사진보기


북한산의 생강나무들은 상처가 많아 보인다(2013.4.5 북한산)
 북한산의 생강나무들은 상처가 많아 보인다(2013.4.5 북한산)
ⓒ 김현자

관련사진보기


굵은 줄기를 몽땅 빼앗긴 이 나무는 어떤 방향으로 시작을 해야 할까?(2013.4.5.북한산)
 굵은 줄기를 몽땅 빼앗긴 이 나무는 어떤 방향으로 시작을 해야 할까?(2013.4.5.북한산)
ⓒ 김현자

관련사진보기


생강나무의 훼손을 쉽게 흘려버리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생강나무의 특징을 알고 있어서 누군가에게 생강나무에 대해 자신 있게 설명해 줄 정도로 자연이나 자연에 깃들어 사는 동식물에 어느 정도의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 의해 훼손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 정황을 살펴 보건데, 생강나무를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꺾이지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 꺾이진 않을 것 같다. 이제 막 자연에 관심을 가지게 된 사람들에게 설명을 해주며 전문가가 줄기 하나를 꺾어 냄새를 맡아보게 하는 이 자연스러운 행동(위 두 번째 인용처럼)은 생생한 설명 덕분에 생강나무를 제대로 알게 된 사람에게 설명을 위한 당연한 짓으로 받아들여질 것이고, 나아가 지난해 봄 내 앞에서 제법 굵은 생강나무 줄기를 거침없이 꺾어버리는 무식한 사람까지 만들지 않을까?

조금만 돌려 생각하면 자신의 사소한 행동이 생명 하나를 무참히 죽이는 것이라는 걸 쉽게 알 텐데 왜 생각하지 못하는 것일까? 아마도 내가 생강나무라면 사람들에게 많은 관심을 갖는 것보다 사람들에게 잊히는 것을 원할 것 같다. 특히 훼손 그 정도가 심한 북한산의 생강나무라면 제발 외면해주길 간절히 애원할 것 같다.

엊그제 식목일에 만난 사진 속 생강나무는 특히 꺾인 부분이 많이 보였다. 첫 번째 사진 속 바위 가까이에 섰던 나무 곁에 다가가 살펴보니 눈에 우선 보이는 것만 10군데(사진 두 번째), 정말 상처를 많이 입은 나무였다. 그런데 이 나무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어떤 나무는 '아 정말 해도 너무하네!'의 욕까지 나올 정도로 무참한 상처를 입고 있어서 (세 번째 사진) 산행을 하는 내내 마음이 편치 못했다.

사진을 통해 다시 만나는 그 날 만난 세 번째 사진 속 생강나무의 상처는 마음을 영 불편하게 한다. 내가 꺾지 않았는데도 나무에게 공연히 미안해진다. 나무의 몇 년 삶을 무참하게 꺾어버린 그 무식한 손이 원망스럽고, 그리고 화나게 한다. 그래서 무척 씁쓸하다. 어린 생강나무의 상처를 보자니 지난해 봄에 봤던 또 다른 생강나무의 아픔이 떠오른다.

이젠 제발 생강나무 설명은 행동을 자제하고 '말'로만 해줬으면 좋겠다.


태그:#생강나무, #산수유, #자연보호, #북한산, #산행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