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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서점에는 향수와 추억이 서려있다. 때로는 부모님의 손을 끌고서, 때로는 친구들과 우르르 몰려가 빼곡히 놓여 있는 책들을 이리저리 구경하느라 서점 안은 늘 북새통을 이뤘다. 또 몇 권 남지 않은 인기 도서를 먼저 잡을세라 달음질을 쳐도 주인은 못 본채 그저 미소만 짓는다. 특히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규모 있는 서점들은 약속 장소로 널리 이용되기도 했다. 이처럼 서점은 우리네 삶 깊숙한 곳까지 자리했지만, 이제는 예전의 정겨웠던 향수와 추억을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게 됐다. 동네서점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동네서점, 얼마나 사라졌나

동네서점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한국서점조합연합회 홈피내 팝업창 이미지
 동네서점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한국서점조합연합회 홈피내 팝업창 이미지
ⓒ 김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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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이미지는 한국서점조합연합회(이하 한국서련) 메인 화면을 장식하는 팝업창이다. 수치대로 라면 약 19년 만에 4000개가 사라진 것. 한국서련 측은 더 보태지도 더 빼지도 않은 실제 조사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서련이 지난해 제작한 '2012 한국서점편람'에 따르면 2003년 2247개이던 동네서점 숫자가 2005년 2103개, 2007년 2042개, 2009년 1825개, 2011년 1752개로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자료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동네서점이 가장 번성했던 1994년의 5700개에 비하면 약 2/3가 사라진 셈이다.

1992년부터 2011년까지 서점 수 현황
 1992년부터 2011년까지 서점 수 현황
ⓒ 한국서점조합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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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부터 2011년까지 전국 서점 수 현황
 2003년부터 2011년까지 전국 서점 수 현황
ⓒ 한국서점조합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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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서점도 두 손 들어

한 가지 특이한 점은 2003년 이후 꾸준히 늘기 시작해 2009년 43개이던 500평 이상의 대형서점 숫자가 2011년 35개로 감소한 것이다. 인터넷 서점과의 치열한 가격할인 경쟁에서 버텨오다 경영난이 과중되자 대형서점들이 두 손을 들었기 때문이다.

규모별 서점 현황
 규모별 서점 현황
ⓒ 한국서점조합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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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지난 2011년 말 대형 출판 물류업체인 북센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출판계의 부도 쓰나미를 예고했다. 이듬해 1월에는 또 다른 출판 물류업체 수송사가, 3월에는 인천공항 내 8개 서점과 영등포 본점을 운영하던 GS문고가 각각 부도처리됐다. 또 6월에는 영풍문고 강남점(고속터미널)이 문을 닫았으며, 이후 각 지역의 토박이 대형서점들도 줄줄이 폐업의 아픔을 겪어야만 했다. 교보문고 역시 성장둔화로 비상경영 체제를 가동하는 등 출판업계로선 2012년이 최악의 한해였다.   

이와 관련, 한국서련은 "전자상거래가 본격 도입되기 시작한 1996년 이후 급격히 늘기 시작한 인터넷 서점들이 동네서점 몰락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며 "그 영향으로 인해 대형서점들도 최근 몇 년간 부도의 위기에 처했다"라고 밝혔다. 특히 한국서련은 골목상권 깊숙이 들어선 대형서점도 문제지만, 인터넷 서점들의 제살깍기나 다름없는 할인정책으로 완전히 초토화된 도서유통시스템을 바로잡기 위해선 도서정가제가 하루빨리 시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격할인 전쟁 부메랑으로 돌아와

도서 가격을 완전히 파괴한 알라딘 서점 홈피. 제로마진이란 수모들 당한 알라딘서점이 지난해에 이허 지금도 여전히 반값 도서에 목을 매고 있다.
▲ 알라딘서점 도서 가격을 완전히 파괴한 알라딘 서점 홈피. 제로마진이란 수모들 당한 알라딘서점이 지난해에 이허 지금도 여전히 반값 도서에 목을 매고 있다.
ⓒ 알라딘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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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인터넷 서점들이 급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대량 구매를 전제로 한 막강한 판매파워 때문이다. 정가의 80%선에서 공급받는 동네서점들과 달리 인터넷 서점들은 대량 구매를 통해 50%까지 공급가를 낮출 수 있었다. 여기에다 각종 포인트나 마일리지로 무장한 인터넷 서점을 따라잡기란 오프라인 서점들로선 역부족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예스24와 알라딘 등 매년 10% 이상의 고속 성장을 보였던 인터넷 서점업계도 2009년(3.52%)을 기점으로 급속히 하락, 2010년 1.75%, 2011년 1.82%로 영업이익율이 점차 감소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동네서점과 중대형 서점을 붕괴시켰던 할인경쟁 결과가 인터넷 서점업계에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고 비꼬았다.

한국서련 박대춘 회장은 "경영난에 허덕이는 인터넷 서점업계 최근 현실은 무분별한 할인정책의 당연한 결과"라며 "이로 인해 출판사도 무리한 할인을 요구하는 일부 인터넷 서점들에게 도서공급 중단을 선언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박 회장은 특히 "서점업의 중소기업적합업종 지정에 반대를 했던 인터넷 서점업계도, 이제는 국내 출판문화 발전이라는 대의적 차원에서 동네서점과 공동보조를 맞춰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착한 가격 만들기

한국서련은 도서정가제 확립을 골자로 한 출판문화산업진흥법 개정안 국회 발의와 서점업의 중소기업적합업종 선정으로 한껏 고무된 분위기다. 하지만 아직 풀어야 할 숙제들이 많이 있다. 그 중에서 하나가 바로 도서 가격의 거품을 없애는 것이다.

일부에선 도서정가제가 정착되면 '수십 년간 관행처럼 이어져 내려온 거품도 자연히 없어질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또 다른 쪽에선 '그렇게 만만한 작업이 아니'라며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다. 더욱이 싼 제품을 찾고 선호하는 소비자 입장에서 본다면 한국서련의 그러한 움직임에 상당한 반발이 예상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 회장은 "당장의 이익을 쫓는다면 결국에는 출판시장 전체의 공멸을 초래할 수 있다"며 "특히 출판사들은 과도한 할인경쟁 탓에 미리 가격을 높게 책정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할인 혜택이 없다"고 강조한다. 그는 또 "착한 가격 만들기도 중요하지만 할인과 경품을 부추기는 사회적 풍토 쇄신도 필요하다"며 "일례로 관공서의 도서류 공개입찰 과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최저가 입찰을 적정가 입찰로 수정하는 것도 착한 가격 만들기를 실천하는 한 방법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자세한 내용은 아래 박스기사 참고).

[일문일답] "이제 착한 가격 만들어야 합니다"
연내 도서정가제의 완전한 확립을 위해 정관계를 지속적으로 압박하겠다는 박대춘 회장
▲ 한국서점조합연합회 박대춘회장 연내 도서정가제의 완전한 확립을 위해 정관계를 지속적으로 압박하겠다는 박대춘 회장
ⓒ 한국서점조합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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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출판시장의 가장 큰 문제는?
"한마디로 도서유통시스템이 완전히 무너졌다는 것이다. 출판시장의 마진율도 중요하지만 50% 이상이나 되는 할인율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대형 인터넷 서점의 마진율이 작게는 20%에서 많게는 50%가 넘는 데, 출판사와 동네서점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는가. 심지어 인터넷 서점들의 저가 공세에 중견 출판사나 중대형급 서점들도 잇따라 폐업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여기에다 소비자의 입장만을 고려한 정부의 이상한 정책논리도 국내 출판시장 발전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국내 출판시장, 더 나아가 동네서점이 살기 위해선 도서정가제의 올바른 정착 등을 통한 유통시스템의 투명성과 건전성 확보다."

- 정부의 정책이 문제가 있다는 것인가.
"그렇다. 작년 6월에 열린 물가 관련 장관 회의에서도 도서정가제가 심도있게 다뤄진 것으로 알고 있다. 물가안정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됐던 도서정가제가 실제로는 반대의 결과를 낳았던 것이다. 일례로 물가안정 경제지표로 삼았던 참고서가 도서정가제 지정 대상임에도 불구하고, 엄격한 할인 제한폭에 묶여 소비자가 실제로 느끼는 물가안정과는 거리가 있었다. 하지만 높은 할인율로 인기를 끌었던 도서정가제 비적용 서적이 오히려 물가안정에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같은 결과는 정부의 정책이 잘못 설정됐다는 것을 반증하는 좋은 예다. 특히 정부는 이날 회의 이후 도서정가제의 문제점과 그로 인한 심각성을 알면서도 소비자들의 원성을 두려워해 지금까지 쉬쉬해오고 있다는 것이 출판 종사자들의 공통된 입장이다."

- 도서정가제를 엄격히 규정할 경우 소비자들의 반발도 예상되는데...
"물론 반발도 있을 것이다. 무조건 싸게 파는 것이 좋다는 단순지론에서 접근한다면 충분히 이해되는 부분이다. 하지만 도서를 포함한 출판은 일반 공산품과 달리 보존가치가 있는 문화의 산실이다. 지난 1월에 열린 '손톱 밑 가시를 찾습니다'라는 간담회에서도 '경품은 끼워주기나 덤주기인데, 어떻게 문화재를 끼워줄 수 있겠는가'라며 공정거래법에 근거한 경품고시가 출판시장에는 적용될 수 없다는 입장을 역설했다. 이처럼 책은 정신적 양식을 담는 그릇이자 지식문화의 근간이기에 출판물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소비자들도 단지 '싸다, 비싸다'라는 단순지론이 아니라 '좋은 책을 제값 주고 사겠다'라는 착한가격 만들기에 적극 동참해주길 바란다. 지난 1981년 5% 이상 할인 판매를 금지토록 규정한 프랑스의 '랑법'은 무늬만 도서정가제인 국내 현실에서 본다면 시사하는 바가 크다."

- 랑법에 대해 좀 더 설명해달라
"프랑스 도서정가제 제정에 큰 영향을 끼친 자크 랑 문화장관의 의지가 담긴 법이다. 특히 그는 의회에서 '책은 시장의 논리에 지배받는 일반 상품과 다르며, 수익 논리에 좌우될 수 없는 문화재산'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국내의 경우는 어떤가. 온라인에선 반값 도서가 판을 치고 있으며, 이것도 부족해 끼워팔기 책이 나올 정도로 출판시장은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결국 죽어나는 것은 출판사와 오프라인 서점들이다. 국내에도 도서정가제가 일부 도입된 것이 사실이지만, 50% 넘는 할인율을 잡기에는 역부족이다. 랑법처럼 보다 철저하고 완벽한 도서정가제의 시행이 필요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 프랑스를 제외한 다른 국가는 어떻게 되나.
"OECD 17개국에서 도서정가제가 시행되고 있다. 한국을 제외한 대다수 국가들은 인터넷을 포함한 오프라인 서점의 책값 할인율을 5% 한도 내에서 자율적으로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문화적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5%와 50%의 차이는 너무 크다. 세계 최대 인터넷 서점인 미국 아마존의 할인율도 5%를 넘지 않고 있다. '노블레스 오블리제(사회 고위층 인사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는 기대하지 않더라도, 문화재산 보호라는 측면에서 완전히 파괴된 국내 출판시장의 현실에 대해 소비자, 인터넷 서점, 정부, 정치권에서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

도서정가제를 주요 골자로 한 출판문화산업진흥법 개정안 공청회이 지난해 말 국회에서 열렸다. 4월 마직막 주(일정 미정)에 2번째 공청회가 국회에서 열릴 예정이다.
 도서정가제를 주요 골자로 한 출판문화산업진흥법 개정안 공청회이 지난해 말 국회에서 열렸다. 4월 마직막 주(일정 미정)에 2번째 공청회가 국회에서 열릴 예정이다.
ⓒ 한국서점조합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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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서점의 문제에 대해 견해를 말해달라.
"국내 출판시장의 근간을 뒤흔든 것이 바로 인터넷 서점이다. 인터넷 서점들은 단지 매출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갑의 위치에서 출판사의 고유권한이나 다름없는 책값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 속에서 인터넷 서점들은 매년 몸집을 키웠지만, 함께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오판한 출판사들은 오히려 부도와 폐업이라는 칼바람을 맞게 된 것이다. 그 여파가 인터넷 서점업계로까지 확산, 악어가 악어새를 물고 함께 죽는 형국으로 치닫고 있는 게 우리 출판업계의 현실이다. 이처럼 무너질 대로 무너진 출판시장은 동네서점을 외면한 채 인터넷 서점에만 입맛을 맞춰 가격 파괴에 파괴를 선언한 출판사, 여기에다 그 가격도 부족해 인하에 인하만을 거듭 요구하는 인터넷 서점들이 함께 만들어낸 공동 작품인 것이다. 지금도 일부 인터넷 서점과 출판사들은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를 고집하고 있기에 도서정가제의 전면 시행이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하다."

- 출판법 개정안 발의에 대해 설명해달라.
"그나마 다행인 것은 도서정가제 확립을 위한 정치권의 움직임이다. 도서정가제 비적용 대상을 대폭 줄이고 도서정가의 10% 이내에서만 직간접 할인을 할 수 있도록 한 출판문화산업진흥법(이하 출판법) 개정안이 지난 1월 9일 민주통합당 최재천 의원에 의해 발의됐기 때문이다. 이번 개정안이 연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될 수 있도록 정치권을 압박하는 한편 유관 단체들과 함께 적극 공조해나갈 것이다."

- 서점업이 중소기업적합업종으로 지정됐는데...
"서점업이 적합업종으로 지정됨으로써 대기업의 골목상권 진입 및 확장에 제동에 걸렸다. 특히 2016년까지 대형서점의 신규 진입 제한, 기존 대형서점의 참고서 판매량을 지난해 말(2012년 12월 31일) 기준으로 동결, 대형서점의 제한적 신규 출점의 경우 1년 6개월간 참고서 판매 금지 등의 조치로 최소한의 매출을 보장받게 된 동네서점 입장에선 어느 정도 숨을 트일 것으로 보인다. 적합업종 지정을 위해 애써준 모든 회원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태그:#한국서점조합연합회, #박대춘 회장 , #도서정가제, #동네서점, #인터넷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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