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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운동을 할 때마다 두 가지 마음이 동무한다는 얘기를 지난번 글에서 술회했다. 거의 매일같이 걷기운동을 하며 살 수 있는 내 처지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과, 걷기운동을 할 때마다 갖게 되는 미안한 마음에 관한 얘기였다.

건강문제 때문에 걷기운동은 내게 필수적인 일인데, 갖가지 성인병을 안고 살면서도 열심히 걷기운동을 할 수 있는 내 신체조건이 정말 다행스럽다. 또 아내 덕분이기는 하지만 한껏 여유(?)를 누릴 수 있는 내 생활여건에 감사하는 마음도 크다.

하지만 미안한 마음이 더 크다. 직장에 매어 있거나 일에 쫓겨 동분서주하며 사는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뿐만이 아니다. 걷기운동을 할 수 없는 신체조건 때문에 고통을 겪는 사람들, 또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행동이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을 생각지 않을 수 없다. 요즘에는 철탑이나 종탑 위에서, 또는 망가지고 허물어진 삶의 터전 위에서 눈물겹게 생존권투쟁을 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전혀 무관한 듯 한가롭게 걷기운동이나 하는 나 자신이 죄스럽기 그지없다.

내가 즐겨 찾는 천수만 농경지 길의 가을 풍경이다.
▲ 천수만 들길 내가 즐겨 찾는 천수만 농경지 길의 가을 풍경이다.
ⓒ 지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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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걷기운동을 하면서도 내내 묵주기도에 열중한다. 그런 미안한 마음과 안타까운 심정 때문에 묵주기도에 더욱 열중하는 것일 수도 있다. 걷기운동을 하면서 묵주를 지팡이 삼고, 줄곧 기도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2시간을 걸으면 까마득한 지점을 왕복하면서 묵주기도를 50단 가량 바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나 때문에 날아오르는 새들에 대해 갖는 감정

그런데 걷기운동을 하면서 갖게 되는 미안한 마음은 그것뿐만이 아니다. 때로는 갖가지 새들에 대해 미안한 마음도 갖는다. 한가로이 물 위에 떠서 노닐던 오리들과 빈 논배미에 앉아 오순도순 먹이를 찾던 기러기 떼가 나 때문에 돌연 황망히 날아오르는 일이 빚어지곤 한다. 그때마다 새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가득 차곤 한다.

멀리에서 새들을 보게 되면 아예 길을 바꾸기도 한다. 길을 바꿀 수 없는 사정이면 새들이 나를 경계하지 않기를 바라며 조심조심 걷는다. 새들 쪽으로는 얼굴을 돌리지 않고 몇 발짝이라도 더 거리를 두려고 길의 가장자리를 밟으며 가만가만 걷곤 한다. 하지만 새들은 십중팔구 날아오르곤 한다. 아주 멀리로 가버리기도 하고, 공중을 넓게 선회한 다음 내가 지나온 쪽에 다시 내려앉기도 한다.

그래서 미안한 마음 위에 조금은 다행스러운 마음이 겹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미안한 마음 위에 섭섭한 마음이 겹치는 경우가 더 많다. 새들이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이 영 섭섭하게 느껴지는 묘한 마음이다. 언젠가 한 번은 아내와 함께 걷기운동을 하며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천수만의 농경지와 두 개의 호수(간월호, 부남호)는 철새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 천수만의 기러기 떼 천수만의 농경지와 두 개의 호수(간월호, 부남호)는 철새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 지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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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새들에게 특별한 감각이 있었으면 좋겠어. 사람을 분별하는 능력, 자신들을 해칠 사람인가 아닌가를 구별할 수 있는 그런 눈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짐승의 한계 속에서나마 사람의 양태를 보고 뭔가를 꿰뚫어볼 수 있는 그런 영묘함을 지니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내는 배꼽을 잡고 웃었다. 꿈도 야무지다는 말도 있고, 새들이 그런 영묘함을 지니고 있다면 이미 새가 아니라는 말도 했고, 밀렵 따위로 죽어가는 새는 한 마리도 없을 거라는 말도 했다. 그러더니 더욱 재미있는 말을 했다.

"사람이 가까이 다가오면 일제히 동시에 날아오르는 것, 혼자 있을 때도 잔뜩 경계를 하다가 훌쩍 자리를 뜨는 것, 그런 생존방식 자체가 영묘함이 아닐까요?"

나는 아내 말에 동의하면서도, 섭섭한 마음은 가시지 않았다. 새들의 평화를 방해한데서 오는 미안한 마음이 으레 섭섭한 마음으로 이어지곤 하는 것은 길래 변함이 없었다.

개들을 피하는 색다른 이유

걷기운동을 하면서 미안함을 겪는 경우는 또 있다. 좁은 개장 안에 갇혀 있거나 목줄에 매인 채 슬프게 살아가는 개들을 볼 때 겪는 일이다. 그런 개들 앞을 지날 때는 미안하고 안쓰럽고 슬픈 심정이 된다. 녀석들이 개장 안에서 또는 목줄에 매인 채로 나를 보고 짖어댈 때는 제발 자유롭게 해달라고 절규를 하는 것만 같아 절로 한숨이 나오곤 한다.

나는 걷기운동을 할 때마다 작은 가방을 어께에 메곤 하는데, 가방 안에 물병 외로 빵이나 과자가 들어 있는 때가 많다. 나는 혈당관리에 신경 쓰는 당뇨환자이고 또 매일 두 시간가량 먼 길을 걷기는 하지만 빵이나 과자는 내게 필요한 것이 아니다. 개들에게 주기 위한 것들이다.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개들에게는 먹을 것을 주지 않는다. 개장 안에 갇혀 있거나 목줄에 매인 채 처량하게 살고 있는 개들에게만 먹을 것을 주곤 한다. 그런데 처음 보는 개에게 먹을 것을 줄 때는 잠시 고민을 하기도 한다. 먹을 것을 한 번 주었다 하면 그 개는 나를 반드시 기억한다. 한 달 후에 보더라도 나를 용케 기억하고 반색을 한다. 이리 뛰며 저리 뛰며 반가워 죽을 양이다. 그런 녀석 앞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하지만 매일같이 가방 안에 먹을 것을 지닐 수는 없다. 가방 안에 먹을 것을 지니지 않은 날은 나를 기억하는 개들을 만나지 않는 길을 선택하곤 한다. 먹을 것을 주었더라도 돌아올 때는 다시 만나지 않기 위해 다른 길을 밟곤 한다.

내가 즐겨 걷는 장명수 길 염전 옆집의 개를 볼 때마다 과자나 빵을 주곤 한다. 과자를 한 번 받아먹은 후로 녀석의 뇌리에는 내가 완전히 각인되었다. 반가워하는 녀석 앞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 목줄에 매여 사는 개 내가 즐겨 걷는 장명수 길 염전 옆집의 개를 볼 때마다 과자나 빵을 주곤 한다. 과자를 한 번 받아먹은 후로 녀석의 뇌리에는 내가 완전히 각인되었다. 반가워하는 녀석 앞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 지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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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어떤 길의 어떤 녀석에게 먹을 것을 줄까 잠시 고심하기도 하고, 녀석들에게 줄 것이 없을 때는 굳이 다른 길을 선택하곤 하는 나를 느끼면서 때로는 실소 같은 웃음을 짓기도 한다. 내 걷기운동은 단순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재미롭게도 느껴지는 것이다.  

새들에게서 받은 선물

엊그제와 어제는 나를 기억하는 개들과 만나지 않는 길을 선택했다. 지난 사순절 동안 '성삼일'과 '주님부활대축일'을 잘 지내기 위해 성당 성가대 연습에 적극 참여했는데, 성가대 연습에 참여할 때마다 빵이나 과자가 생겼다. 그것들을 집에 가지고 와서 걷기운동을 나갈 때마다 가방에 넣어가곤 했는데, 어느덧 동이 나서 개들이 없는 길을 선택해야 했다.

그래서 엊그제는 오랜만에 천수만의 적돌강 철새탐색로를 걸었고, 어제는 태안읍과 원북면의 경계인 갈두천 둑길을 걸으면서 또 오랜만에 가로림만 풍경도 볼 수 있었다. 천수만의 적돌강 둑길과 가로림만 어귀 갈두천 둑길을 걸으면서 또다시 많은 새들을 보았다. 그냥 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새들을 귀찮게 했다. 새들의 평화를 방해했다. 나 때문에 날아오르는 새들을 보면서 미안하고 섭섭한 마음을 거듭 안아야 했다.

그리고 어제는 걷기운동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얼마 전에 지어놓은 시 한 편을 찾아서 읽어보았다. 새들에게서 선물 받은 시였다. 한참 만에 다시 읽어보니 괜찮은 작품으로 여겨져서 발표하고 싶은 마음이 동했다. 그래서 그 시를 오늘 함께 소개한다.

천수만의 적돌강 둑길은 철새 탐색로이기도 하다. 지금은 철새들이 많지 않다. 물 위에 떠 있는 오리들이 보인다.
▲ 천수만의 적돌강 천수만의 적돌강 둑길은 철새 탐색로이기도 하다. 지금은 철새들이 많지 않다. 물 위에 떠 있는 오리들이 보인다.
ⓒ 지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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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다, 그리고 섭섭하다

또 하루 걷기운동을 하는
행복한 오후다
쫓기듯이 숨 가쁘게 사는 이들
얽매어 사는 이들께는 미안한 시간이다

청명한 햇살이 들의 아지랑이를 부르고
어디서 오는지 모를 감미로운 명지바람이
장난치듯 속살거리니
또다시 꿈길인 듯하다

내가 고마워하고 사랑스러워하니
산천이 다 나를 반긴다
서로 반가워하며 친화를 체감하니
더 바랄 게 무엇이랴
내 가난이 마냥 행복하다

때로는 어찌할 수 없는 아픔도 있다
갖가지 날짐승들은 나를 반기지 않는다
멧비둘기 기러기 오리 백로 왜가리
하나같이 내게 경계의 눈을 보내다가
끝내 견디지 못하고 날아가 버린다

저들은 왜 저런 습성을 갖게 되었을까
처음부터 저런 습성을 부여받았을까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사람들 탓에 저런 습성이 고착된 것은 아닐까

궁금하다
그래서 더욱 미안하다
빈 논배미나 물 위에 앉아 오순도순 노닐고
갯벌에서 열심히 먹이를 찾다가도
황급히 날아오르는 녀석들을 보는 것이
나로서는 영 마음 아프다

녀석들이 나를 알 턱이 없지
나를 처음 보는 건 아닌 녀석들도 있을 터인데
나를 알아보지도 못하고
내 마음 색깔을 짐작도 하지 못하니
그것이 못내 섭섭하다

꿈길을 부유하듯
대자연의 길을 하염없이 걸으면서도
끝내 친화할 수 없는 거리를 체감하며
멀리로 날아가는 새들을 향해 내 마음을 보낸다
얘들아, 미안하다
그리고 섭섭하다
너희들 때문에 나는 꿈을 갖는다
사람들과 너희들이 서로 친화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태그:#걷기운동, #천수만 적돌강, #가로림만 갈두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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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 출생.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추상의 늪」이, <소설문학>지 신인상에 단편 「정려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옴. 지금까지 120여 편의 중.단편소설을 발표했고, 주요 작품집으로 장편 『신화 잠들다』,『인간의 늪』,『회색정글』, 『검은 미로의 하얀 날개』(전3권), 『죄와 사랑』, 『향수』가 있고, 2012년 목적시집 『불씨』를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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