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나가사키(長崎) 원폭자료관(原爆資料館)은 원자폭탄 피폭 50주년을 맞아 나가사키 원폭 투하 지점에 개관한 비극의 현장이다. 피폭 자료를 전시하던 나가사키 국제문화회관을 개축하여 1996년에 개관한 원폭자료관은 비극의 상징을 전시하는 자료관답지 않게 건물은 예술적이고 아름답다.

나는 아내와 함께 빙빙 돌아 내려가는 나선형 계단을 따라 원폭자료관의 입구를 찾았다. 원폭자료관의 입구를 지키던 경비원 아저씨가 우리를 보더니 시계를 한 번 흘끗 본다. 폐관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전시관으로 이어지는 나선형 계단이 원폭자료관답지 않게 예술적이다.
▲ 원폭자료관 전시관으로 이어지는 나선형 계단이 원폭자료관답지 않게 예술적이다.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나가사키 원폭 자료관의 3개 전시실은 3개의 테마로 꾸며져 있다. 가장 먼저 들어선 제 1 전시실. 피폭 전의 나가사키 거리와 건축물들, 그리고 제국주의 시대를 살던 나가사키 시민들의 생활이 흑백사진 속에서 전시되고 있다. 피폭 전에도 나가사키 시민들은 전쟁에 동원되어 고된 훈련과 노역을 하고 있었다.

피폭 전의 평화로운 나가사키의 모습이 담겨 있다.
▲ 피폭전 나가사키 피폭 전의 평화로운 나가사키의 모습이 담겨 있다.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피폭 전의 나가사키 사진들은 우리나라가 경험했던 일제시대 사진들과 별로 다를 게 없었다. 나가사키 시민들도 당시 우리나라를 덮고 있던 똑같은 일제의 전시체제라는 그늘 아래 있었기 때문이다.

큰 배의 진수식 사진은 나가사키의 미츠비시 중공업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이 거대한 배를 만들던 사람들 중에는 조선 사람들도 많았다. 당시 나가사키에 살던 3만 명이 넘는 조선인들은 대부분 이 미츠비시에서 잔인한 강제노역에 시달렸다.

태평양 전쟁 말기의 나가사키는 전시체제 안에 있었다.
▲ 전시체제 태평양 전쟁 말기의 나가사키는 전시체제 안에 있었다.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원폭자료관 입구에서부터 아주 인상적인 괘종시계가 사람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이 시계는 원자폭탄 폭심지에서 약 800m 떨어져 있는 산노진자(山王神社) 부근의 한 민가에서 발견된 시계다.

시계는 11시 2분에 수십 년 간 멈춰 서서 움직일 줄 모른다. 당시의 어떤 유물보다도 이 시계는 원자폭탄 폭발 당시의 충격을 직접적으로 전해 준다. 어찌 됐건 보는 이의 마음을 울리는 시계다.  

나가사키에서 원폭으로 희생당한 사람들의 인생도 이 시간에서 멈췄다.
▲ 멈춰버린 시계 나가사키에서 원폭으로 희생당한 사람들의 인생도 이 시간에서 멈췄다.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1945년 8월 9일 오전 11시 2분, 나가사키의 하늘 위로 투하된 원자폭탄 한 발. 이 원자폭탄 한 발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시간도 모두 11시 2분에 멈춰버렸다. 그들은 모두 동일한 시간에 이 세상에서 갑자기 그리고 순식간에 사라졌다. 시계는 영원히 멈추어 버렸고, 나가사키 도시는 완전히 파괴되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잿더미 속에 파묻혔다.

지하 2층의 제2 전시실에서는 원자폭탄 피폭 직후의 나가사키 참상을 대형 전시물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전시실에는 원폭낙하중심지에서 반경 1km내에 있었던 우라카미 텐슈도(浦上天主堂)의 피해 당시 참상이 그대로 재현되어 있다. 피폭 후 성당이 다 무너져 내렸는데 잔해 중 남은 유물들을 자료관에 옮겨 보존해 둔 것이다. 재현된 우라카미 성당의 거대한 남측 벽면은 전시관 실내에서 묘한 장엄함을 보여주고 있다.

성당의 잔해 중에 남은 남측 벽면이 그대로 옮겨져 전시 중이다.
▲ 우라카미 성당 성당의 잔해 중에 남은 남측 벽면이 그대로 옮겨져 전시 중이다.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1925년 완공 당시 동아시아에서 가장 큰 성당이었던 우라카미 텐슈도는 일본의 기독교인들이 일본 막부의 그리스도교 탄압에 희생되면서도 지켜낸 대성당이었다. 그러나 원자폭탄 투하중심지 부근에 있었다는 이유로 인해 이 유명한 성당은 산산조각이 났고 성당 안으로 대피해 있던 시민들 약 7000명도 함께 죽음을 맞았다. 그날의 참상을 지켜보았을 성당의 천사상 얼굴이 나를 슬프게 올려다보고 있다.

전시실 한쪽에 서양의 여행자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유명한 전시물이 있다. 사진을 굳이 많이 찍지 않는 서양 여행자들도 사진기를 꺼내서 사진을 남기는 전시물이다. 이 전시물은 뚱뚱한 녀석이라는 뜻의 '팻맨(fat man)',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이다.

이 실제 크기의 원자폭탄 모형은 태평양전쟁 당시 히로시마에 첫 번째 원자폭탄, '리틀 보이'가 떨어진지 3일 후에 투하된 두 번째 원자폭탄이다. 그리고 현재까지 인류가 실제 전쟁에서 사용했던 가장 마지막 핵폭탄이기도 하다.

이 뚱보의 엄청난 위력은 나가사키를 모두 불바다로 만들었다.
▲ 팻맨 이 뚱보의 엄청난 위력은 나가사키를 모두 불바다로 만들었다.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이 폭탄은 왜 '팻맨'이라는 이름이 붙었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뚱보 같이 생겼다. 그러나 몸을 가눌 수 없는 뚱보같이 생긴 4.5톤의 이 플루토늄탄의 위력은 대단했다. 이 '뚱보'가 B29 폭격기에서 나가사키 상공에 투하되면서 나가사키 시민 약 7만 4천 명이 사망하고, 약 7만5천 명이 중경상을 입은 대참사가 일어났다.

원자폭탄이 투하된 이후 나가사키 시내 일대는 모조리 불바다가 되었다. 원자폭탄이 일으킨 고열, 폭풍, 방사선 등은 엄청난 인적, 물적 피해를 발생시켰다. 이러한 원자폭탄에 의한 직접 피해 외에도 높은 열로 인해 나가사키의 목조 건물과 철근 건물은 모조리 파괴되었고, 무너진 건물에 깔려죽는 인명피해도 많이 발생하였다. 원폭자료관에는 원자폭탄에 의한 피해가 피해 종류별로 차례로 전시되어 있다.

원자폭탄의 뜨거운 열기에 서로 부둥켜안고 있는 것 같다.
▲ 눌러붙은 사이다병 원자폭탄의 뜨거운 열기에 서로 부둥켜안고 있는 것 같다.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아! 원폭의 고열로 다 녹아버린 사이다 병이 눈에 들어왔다. 너무 뜨거워서 사이다 병들도 마치 서로를 붙들고 있는 것 같다. 마치 현대미술관의 유리 공예 예술작품처럼 사이다 병은 엉켜있다. 원폭의 열기는 사이다병을 처참하게 변형시켜 놓았다. 사이다 병이 이 정도니 사람들은 원폭의 열기를 만나 즉사했을 것이다.

도시락 주인도 원자폭탄의 현장에서 폭사했다.
▲ 타버린 도시락 도시락 주인도 원자폭탄의 현장에서 폭사했다.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녹아버린 사이다 병 옆에는 폭심지에서 700m 떨어진 곳에서 발견된 한 여학생의 도시락이 전시되어 있다. 뚜껑이 열려진 도시락 안에는 원폭으로 탄화된 시커먼 밥이 들어있다. 알루미늄 도시락 뚜껑에는 도시락 주인인 여중생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이 도시락의 주인인 14살의 2학년 3반 여중생은 도시락 뒤의 사진 속에서 친구들과 함께 밝게 웃고 있다. 이 여학생은 숯덩이가 된 도시락과 같이 원자폭탄 투하 현장에서 폭사했다. 한창 사춘기였을 어린 여학생의 사진이 애처롭기만 하다.

원자폭탄의 고열에 녹은 피해자의 두개골 조각이 철모에 붙어 있다.
▲ 철모의 두개골 조각 원자폭탄의 고열에 녹은 피해자의 두개골 조각이 철모에 붙어 있다.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고열로 두개골의 일부가 눌러 붙어버린 철모가 있다. 시커먼 철모 속의 두개골은 너무 참혹하여 충격적이다. 총알과 폭탄을 피하기 위해 쓰고 있었던 철모는 원자폭탄의 광풍 앞에 아무런 쓸모도 없었던 것이다. 철모는 총알이 아니라 원자폭탄의 고열 앞에서 피해자의 몸에 붙어버렸던 것이다. 원자폭탄이 쓸어버린 적나라한 참상을 직접 눈으로 대하니 마음이 너무 무겁다.

원자폭탄의 열선에 의해 타버린 시체들을 보여주는 사진들은 너무 참혹하여 카메라에 담기가 망설여진다. 길가에서 원자폭탄 후폭풍에 의해 쓰러진 후 타버린 소년의 시체가 처참하게 놓여 있다. 왼쪽 신발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시체의 어깨 위에는 전봇대의 애자가 들러붙어 있다. 폭심지에서 남쪽으로 700m 떨어진 곳에서 발견된 소년은 온 몸이 검게 타버렸다. 폭풍으로 인해 날아가 버린 이 소년은 알몸으로 불에 타버렸다.

처참히 불타 버린 시체 옆에서 한 소녀가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다.
▲ 시체와 소녀 처참히 불타 버린 시체 옆에서 한 소녀가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다.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전차 승강장에서 발견된 어머니와 아이의 시체는 열선에 의한 심한 화상자국이 남아 있다. 발 디딜 틈 없는 건물더미 속에서는 방공호에서 빠져나오려고 한 듯한 검게 탄 시체가 보인다. 한 소녀는 검게 탄 시체 옆에서 무심한 듯 넋을 잃고 서 있다. 이 소녀는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다. 이 소녀는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하늘에서 투하된 '팻맨'이 남긴 수많은 참상의 사진들이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책 속의 막연한 글보다도 한 장 한 장의 사진은 핵폭탄의 위력과 살벌함을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다. 이 곳에는 일반인들이 보는 책 속에 도저히 담을 수 없는 처참한 사진들이 여과 없이 전시되어 있다. 마음의 준비를 하지 않고 이 원폭 피해 사진들을 갑자기 대하게 되면 심한 정신적 충격을 받을 수도 있는 현장이다.

저 참사 속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사람들도 아직까지 신체적 고통을 겪고 있으며, 마음 속 깊은 곳에도 커다란 상흔이 남아 있을 것이다. 원폭자료관은 원자폭탄으로 인해 무고한 일본 시민들이 당한 피해를 부각시키고 있다. 지금도 제국주의적 시각을 가지고 역사를 뉘우칠 줄 모르는 일본의 정치인들과 우익을 보면 울화통이 치밀지만 이 원폭자료관에 전시된 불쌍한 시민들의 영혼을 보면 측은한 생각도 든다. 국가 지도자를 잘못 만나면 힘 없는 백성들만 죽어나가는 것이다.

나는 이곳 나가사키에서 불의의 일격에 폭사한 1만 명의 조선인들을 위해 묵념을 올렸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기억하지도 않는 조선인들의 영혼이 편히 쉴 수 있기를 나는 빌었다. 나는 이 이국의 땅에서 이유도 모르고 스러져 간 조선인들의 삶이 안타까울 뿐이다. 나는 그 원혼들이 편히 쉬라고 진심으로 기도를 했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에만 송고합니다. 제 블로그인 http://blog.naver.com/prowriter에 지금까지의 추억이 담긴 세계 여행기 약 300편이 있습니다.

2012년 10월 15일~18일 일본을 여행한 기록입니다.



태그:#일본여행, #나가사키, #원폭자료관, #원자폭탄, #팻맨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