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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사는 게 너무 힘들어요."

나는 교육사업을 하면서 아이들을 자주 만난다. 그런데 최근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초등학교 3학년, 10살짜리 녀석이 조그만 입을 오물거리며 '사는 게 힘들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이유를 물었다.

"학원을 너무 많이 다녀요. 매일 오후 7시까지. 집에 오면 숙제해야 하고…. 아빠가 학원을 계속 다니라고 해요."

순간 가슴이 덜컹, 목이 메었다. 저 조그맣고 예쁜 아이가 공부라는 무거운 짐에 숨이 턱턱 막히도록 짓눌려 있다. 그런데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5학년 녀석의 말이 더 충격적이다.

"야, 3학년 때는 힘든 것도 아니야. 5학년 되면 시험 문제 수준이 달라."

학년이 올라갈수록 더욱더 거센 경쟁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리는 우리 아이들, 미처 꽃피기도 전에 '세상이 힘들다'고 하는 이 아이들을 보면서 나는 죄책감을 느꼈다.

몇년 전 한 외고생이 베란다에서 투신한 사건이 있었다. 그가 남긴 유서에는 단 네 글자만 적혀있었다. "이제 됐어?" 엄마가 요구하던 성적에 도달한 직후라고 한다. 주위의 부러움을 사던 외고생이었지만 그 학생은 끝없는 경쟁과 압력을 견디지 못했다. '10대 자살률 1위' '소아우울증 증가' 등 무시무시한 말들이 이제는 너무 익숙해져 무감각해질 정도다. 행복을 잃어버린 아이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하고 싶은 것 하기... 행복의 시작이었구나

얼마 전 아이들과 함께 공원에 가서 얼음땡 놀이를 하며 놀았다. 사는 게 힘들다던 그 아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 공원을 가로지르며 신나게 뛰어다닌다.

"선생님, 전 뛰는 게 너무 좋아요. 1학년 때부터 운동회 계주에 나갔어요."

번뜩 생각이 든다.

'그래! 너에게 필요한 것은 심리상담센터가 아니구나, 네가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게 놔두면 너는 이렇게 행복할 텐데….'

아이의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 발갛게 상기된 얼굴, 교실에서 볼 수 없었던 싱그러운 에너지가 느껴진다. 멀리 있지 않은 아이의 행복, 아이는 이미 그 안에 행복을 가지고 있다. 다만 입시 경쟁·성적·등수라는 장막에 가로막혀 있을 뿐이다.

어린 시절 행복의 중요성에 대해 더 이야기해서 무엇할까. 나는 삶이 힘겨울 때, 어린시절 동무들과 연 날리고, 개울가에 종이배를 띄우던 추억들이 새싹처럼 올라와 지친 마음을 쓰다듬어 준다.

누구나 다 올챙이 시절의 행복한 추억을 마음 속에 품고 산다. 이 시절의 행복은 평생의 자양분이 된다. 그리고 그 행복은 마음껏 뛰어놀고, 원하는 것을 할 수 있었던 자유에서 비롯됐을 것이리라. 현재의 아이들에게도 행복을 누릴 권리가 있다. 어른들이 이 행복을 빼앗을 권리를 어디에도 없다.  

인성은 파괴된 채 '스펙 좋은 로봇'이 된 들 그 아이는 과연 행복할까.
 인성은 파괴된 채 '스펙 좋은 로봇'이 된 들 그 아이는 과연 행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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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교육에 열을 올리는 부모들은 하나같이 이야기한다. 다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라고. 현재의 불행을 담보로 미래의 행복을 차지하겠다고 말이다. 행복도 공부다. 행복해 본 아이가 어른이 돼서도 행복할 수 있다.

1등을 해야만, 특출난 재능이 있어야만 행복하다면 그건 이미 진정한 행복이 아니다. 아이들에게 들꽃 한 떨기에도 까르르 웃음이 나는, 친구들과 자유롭고 평등한 관계에서 뛰놀 수 있을 때만 맛볼 수 있는 진짜 행복을 누릴 기회를 돌려줘야 한다.

인성은 파괴된 채 '스펙 좋은 로봇'이 된 들 그 아이는 과연 행복할까. 로봇들로 가득 찬 사회는 건강한 사회일까. '스펙 로봇'이 될 것인가, 소박하지만 인성과 감성을 지닌 '인간'이 될 것인가. 그 선택의 몫은 아이에게 돌려주자. 인생의 주인공인 그들에게.

어른인 우리의 역할은 아이가 인간이 되기를 선택해도 후회하지 않게, 소박한 인간으로 성장해도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일이 아닐까.


태그:#교육 , #경쟁,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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