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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카카오톡으로 후배가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유럽의회에 한 여성 의원이 아이를 안고 참석한 사진이다. 당시 인터넷상에서 화제가 되었던 사진이었다.

프랑스 유럽의회 참석한 론줄리 의원
 프랑스 유럽의회 참석한 론줄리 의원
ⓒ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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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 멋지지 않아요?"
"뭐가 멋진데?"
"당당해보이잖아."
"예전에 애들 아파서 막내 데리고 출근했을 때 너 그렇게 당당한 느낌이었니?"
"당당은 무슨... 엄청 눈치보였죠."(그때 후배 부인이 애들 둘을 데리고 병원가고 후배는 막내를 데리고 출근했다가 오전 근무만 마치고 조퇴했었다.)

나중에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사진의 주인공은 이탈리아 출신 리시아 론줄리 의원이었다. 사진에는 "임신과 직업, 사회생활과 가사를 병행할 수 없는 모든 여성을 위해 딸과 함께 이 자리에 왔다"고 말한 인터뷰가 함께 실려있었다. 그래, 당당하고 멋져보인다. 그런 메시지를 갖고 아이와 함께 국제회의에 참석한 그 의원이 멋져보이고, 그런 분위기를 인정해주는 그 국제회의도 멋져보인다. 만약 우리나라에서였다면 어땠을까?

아이 안고 국제회의 참석한 여성 의원

작년까지 딸아이는 어린이집을 다니고 있었다. 오전 9시까지 등원했다가 오후7시에 하원하니까 나의 출퇴근시간과도 맞았다. 그런데 아이가 아플 때가 문제였다. 다행히도 의회 일정이 잡혀있지 않으면 다른 약속은 미루거나 양해를 구하고 취소하면 됐지만, 그렇게 하기 힘든 경우도 많았다. 아이가 열이 펄펄 끓고 있는데 오전 10시에 본회의 시작이다. 오늘은 본회의에서 중요 현안에 대해 발언도 해야 한다. 한시간이면 끝나니 딱 한 시간만 누가 좀 봐주면 좋겠는데 당장 그렇게 맡길 곳도 없다. 어쩔 수 없이 어린이집에 애를 맡기고 돌아와 본회의장에 앉지만 회의 내내 바늘방석이다. 회의가 끝나자마자 어린이집에 누워있는 애를 업고 병원으로 달려가노라면 "이게 애한테 뭐하는 짓인가"하는 생각이 들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곤했다.

그렇게 늘 엄마노릇도 제대로 못했지만 다행히도 아이는 잘 커줬고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이제 좀 손이 덜 가려나 싶었지만 현실은 정 반대였다. 입학식 이후 일주일 동안은 오전 9시50분까지 학교에 갔다가 낮 12시 50분에 수업을 마친다. 아이들의 적응기간이기 때문에 부모들이 등하교를 온전히 책임져야 한다. 일주일이 지나면 아이들 등교시간은 오전 8시40분으로 조정되지만 맞벌이 가정에서는 이 시간이 가장 애매하다. 조부모가 오셔서 봐주시거나 아예 가까운 친구집에 아이를 맡기고 출근하는 경우도 있다.

"나랑 남편은 7시 30분에는 집에서 나가야 하는데 애들은 한시간 뒤에 학교 가잖아. 처음에는 할아버지가 오셔서 아침에 애를 봐주셨는데 계속 그럴 수가 없어서 지금은 그냥 애들끼리 놔두고 출근해. 어쩔 수 없으니까. 큰애한테 시간 맞춰서 동생 데리고 학교가라고 부탁하는데 그러고 출근하면 맘이 안 좋지."

첫째가 초등학교 입학했을 때 육아휴직을 했다가 둘째가 입학한 지금은 다시 직장에 복귀한 한 엄마의 말이다. 더 큰 문제는 그 시간 이후부터다. 부모들의 퇴근시간까지 아이들이 안전하게 방과 후를 보낼 장소가 마땅치 않다. 학교 '방과후교실'은 입학후 3주째 되는 주간부터 운영된다. 그리고 저녁시간까지 아이들을 돌봐주는 학교 '돌봄교실'이 있지만 10명 모집에 맞벌이가정은 5순위였다. 신청자가 많아 5순위 부모들끼리 모여서 제비뽑기를 했는데 언제까지 우리 아이들의 방과후 돌봄문제를 '운'에 맡길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얼마전 학부모 총회가 있었다. 학교에서 통보해준 일정을 보니 오후2시. 앗, 같은 시간에 구청에서 중요한 회의가 잡혀 있었다. 학부모 총회는 담임선생님과 공식적으로 만나는 첫 자리이자 아이들의 학교생활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에 중요하다. 그런데 꼭 평일 낮시간에 해야 할까. 3월에만도 입학식, 학부모연수, 학부모총회가 연달아 있는데 모두 낮시간이다. 맞벌이가정에서는 한달에 3일이나 휴가를 내긴 어려우니 부모연수나 학부모총회 하나 정도는 저녁시간에 하면 부담이 조금은 덜할 수도 있지 않을까(물론 학교나 교사들의 입장에서 이 또한 부담이 되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학부모총회에 다녀온 남편의 불만

어쩔수 없이 우리집은 남편이 점심시간에 조퇴를 하고 참석하기로 했다.

"무슨 어머니회 가입하라고 하면 녹색어머니회에 가입한다고 신청 좀 해줘."

학교에 다녀온 남편은 "우리반에서 총회에 온 아빠는 단 두명뿐"이었다며 녹색어머니회에 신청한다고 손들었다가 엄마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았다며 투덜거렸다.

"녹색어머니회가 아니라 '녹색부모회'로 이름 바꿔야 하는거 아냐? 1년에 한두번은 아빠가 휴가내고 아이들의 등굣길을 봐줄 수도 있는데."

난 이렇게 얼버무렸지만 일하는 엄마들이 힘든 것처럼 일하는 아빠들도 힘들긴 마찬가지다.

대통령직인수위 교육과학분과 곽병선 간사와 김재춘, 최원기 전문위원이 지난 2월 4일 서울의 한 초등학교를 찾아 돌봄교실 학습현장을 둘러보는 모습.
 대통령직인수위 교육과학분과 곽병선 간사와 김재춘, 최원기 전문위원이 지난 2월 4일 서울의 한 초등학교를 찾아 돌봄교실 학습현장을 둘러보는 모습.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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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0월 '안전한 방과후 돌봄'을 주제로 타운홀미팅을 개최한 적이 있다. 학부모들은 물론 지역아동센터, 공부방, 학교 돌봄교실, 복지관, 청소년수련관, 교육청과 구청 담당자들까지 참석해 지역내 방과후 돌봄기관 현황과 대책을 주제로 토론을 벌였다. 마포구에서 공적 영역에서의 돌봄기관이 수용할 수 있는 정원은 방과후 돌봄이 필요한 아동의 5.7%밖에 되지 않는다. 나머지 94%의 아이들은 다 어디에 가 있는 걸까. 집에서 돌봐줄 수 있는 아이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학원으로, PC방으로 그도 안 되면 '나홀로 집에' 있을 아이들.

이 아이들을 위해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공적 영역에서의 돌봄기관 확충이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돌봄의 '틈새'를 메우기 위한 노력도 병행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아이들이 학교가 끝나고 방과후교실을 가기 전까지 쉴 수 있는 공간(방과후 교실은 프로그램별로 선택해서 듣는 것이기 때문에 중간에 한두시간 비는 시간이 생긴다), 학원을 가기 전까지 30분 정도 머무르면서 부모에게 전화도 하고 간식도 먹을 수 있는 공간, 부모들이 언제라도 와서 방과후 정보를 나눌 수 있는 공간, 그런 브릿지 카페(bridge cafe)가 동네에 하나씩 있으면 좋겠다.

이 카페를 구청과 지역사회가 함께 만들어 운영하면 경력단절 여성들에게 사회적 일자리를 만들어 줄 수 있는 기회도 되지 않을까. 방과후 돌봄문제, 새로운 상상력으로 지역사회와 함께 대안을 마련할 때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서울시 마포구의원입니다



태그:#직장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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