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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이 끝난 뒤, 표창원 전 교수는 ‘프리허그’를 하며 전국을 돌았다. 대선결과를 ‘진보의 패배’라고 여겼던 사람들이 보수주의자의 품에서 ‘힐링’을 받았다.
 대선이 끝난 뒤, 표창원 전 교수는 ‘프리허그’를 하며 전국을 돌았다. 대선결과를 ‘진보의 패배’라고 여겼던 사람들이 보수주의자의 품에서 ‘힐링’을 받았다.
ⓒ 오마이뉴스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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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입니다. 절대 자유가 보장되어야 하고 절대 '공정경쟁'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를 위해 공직선거법을 두고 헌법기관으로 선거관리위원회를 두고 있습니다. 대통령이나, 장관이나 그 누구도, '감히 선거관리에 개입하거나 영향을 미치려 하지 말라!'는 우리 헌법의 준엄한 명령입니다."

대선을 코앞에 둔 지난 12월 15일.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는 자신의 개인블로그에 글을 하나 올렸다. 이른바 '국정원 여직원 사건'에서 대선에 대한 여론 조작 의혹, 국가기관의 불법적 개입을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표창원 전 교수는 이 사건을 두고 "보수주의의 핵심이며 근간이며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원칙인 '법질서'를 훼손하고 방해하지 마십시오!"라고 꼬집었다.

표창원 전 교수가 한 주장은 많은 이들의 주목을 끌었고, 지지와 비난 의견이 한꺼번에 들끓었다. 이튿날, 표창원 전 교수는 '경찰대의 명예와 정치적 중립성에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 경찰대 교수직을 사퇴했다. 한국 사회에서 또 하나의 '놀라운 현상'이 시작되는 출발점이었다.

표창원 전 교수는 스스로를 보수주의자라 말하지만, 그의 주장에 열광한 이들은 보수주의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국은 여전히 '진보와 보수' 양쪽으로 치우치게 나뉜 사회다. 익명인 인터넷 공간은 물론이고, 국회에서조차 '빨갱이' 혹은 '수구 꼴통'이라며 상대편을 향해 날을 세운다. 그만큼 깊고 막다른 진영논리가 오랫동안 한국 사회를 마름질해왔다.

대선이 끝난 뒤, 표창원 전 교수는 '프리허그'를 하며 전국을 돌았다. 대선결과를 '진보의 패배'라고 여겼던 사람들이 보수주의자의 품에서 '힐링'을 받았다. 또 어떤 사람들은 표창원 전 교수를 향해, 인기를 끈 영화 <레미제라블> 속 정의로운 경찰인 '자베르 경감'을 투영하기도 했다. 보수주의자 표창원, 어느새 그는 우리 사회가 이제껏 만나지 못했던 '새로운 보수'로 자리 잡았다.

'진짜 보수'는 품격 있고, 정의롭다

<표창원, 보수의 품격> 책표지.
 <표창원, 보수의 품격> 책표지.
ⓒ 비아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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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와 문화, 국가, 지역에 따라 보수의 가치와 이념은 달라지지만 결코 변하지 않는 보수의 특징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품격'이다. 보수는 근대 이래로 시대의 승자요, 주류였다. 정정당당한 승자로서의 태도를 갖춰야 한다. 자유와 민주, 인권의 가치에는 어떠한 제한도 가하지 않겠다는 자세와 신념이 있어야 보수라고 말할 수 있다. - <표창원, 보수의 품격>, 머리말에서

<표창원, 보수의 품격>(표창원・구영식 지음, 비아북 펴냄)은 '진짜 보수'에 대한 표창원 전 교수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책이다. 또 한국 사회가 왜 표창원 전 교수에게 주목하는지 살필 수 있다. <오마이뉴스> 구영식 기자가 네 차례에 걸쳐 표창원 전 교수를 인터뷰했고, 책은 그 결과물을 묶어냈다.

표창원 전 교수가 말하는 '진짜 보수'는 품격과 정의로움을 갖춘다. 자유민주주의의 기본 가치를 지키고, 시대 상황에 맞춰 고쳐나가는데 헌신한다. 더 실효성 있는 정책, 더 나은 세상, 더 좋은 인물을 고민한다. 그러나 표창원 전 교수는 한국의 보수가 이를 지키지 못하고, 기득권층에만 머물러 있다며 꼬집는다. 자식을 군대에 보내지 않으려 하고, 세금을 안 내려 하며, 재산을 해외로 빼돌리는 자들이 어떻게 보수냐는 반문이다.

이를테면, 박근혜 정부의 주요 공직자 인선이 불러온 논란이다. 청문회 과정에서 다수의 인사에게 병역회피, 탈세, 투기 등의 문제가 제기됐다. 그 결과 22일 사퇴한 김병관 국방부장관 후보자까지, 중도 낙마한 고위급 인사가 11명에 이른다. 역대 정부 첫 조각 중, 가장 심각하다는 비판도 잇따랐다. 박근혜 정부는 스스로를 '보수 정권'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표창원 전 교수의 지적대로라면, 보수의 품격을 갖추지 못한 그들은 '가짜 보수'에 불과한 꼴이다.

표창원 전 교수는 한국의 보수가 진보 진영이나 개혁 진영을 향해 휘두르는 '종북 좌빨'도 비판한다. 상대방의 자유를 억압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또 그것은 보수가 상대편보다 우월하다는 자신감이 없어서라고 꼬집는다. 표창원 전 교수는 "자유와 민주와 인권의 가치에는 어떠한 제한도 가하지 않겠다는 자세와 신념이 있어야 보수"라며, "보수가 비열함이나 열등감이 아닌 당당함을 가지라"고 주문한다.

표현의 자유야말로 '진정한 보수'와 '가짜 보수'를 가르는 기준

"도대체 누가 표현의 자유를 두려워하는 걸까?" (구영식 기자)
"내가 수없이 던진 질문이다. 도대체 누가 표현의 자유를 두려워하는가. 결국 감출 게 많고, 잘못을 저지르고, 누군가가 이야기를 하게 되면 자신들의 어두운 면이 밝혀질까 봐 두렵고 공포스러운 사람들. 이들이 표현의 자유를 두려워한다. (…) 그들이 민주주의의 적이다." (표창원 전 교수) - <표창원, 보수의 품격>, 144쪽

2011년, 미국의 인권단체 <프리덤 하우스>는 한국을 '언론자유국'에서 '부분적 언론자유국'으로 끌어내렸다. 당시 MB정부가 뉴스전달에 영향력을 끼치고, 주요 공영 언론사 요직에 측근을 앉혔다는 비판이 덧붙여졌다. 표현의 자유가 억압받는다는 지적이었다. 표창원 전 교수는 MB정부 5년간 벌어졌던 이러한 일들은 "절대왕정 시대의 왕이나 하는 생각"이라고 규정한다.

이렇듯 표창원 전 교수가 표현의 자유를 중요시하는 까닭은 '진정한 보수'와 '가짜 보수'를 가르는 기준의 핵심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의 지적처럼, 표현의 자유를 억압했던 '가짜 보수'들은 정의롭지 못했다. MB정부가 끝나기도 전에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등이 법의 심판을 받았다. 이른바 '언론 장악'을 통해 표현의 자유를 후퇴시킨다고 지적받던 사람들이었다.

"저는 노회찬 전 의원과는 사상과 이념이 다른 보수주의자입니다. 하지만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진실을 파헤친 그의 용기를 지지합니다."

최근 표창원 전 교수가 노회찬 진보정의당 공동대표의 지지를 선언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노 대표는 이른바 '삼성 X파일 사건' 때문에 국회의원직을 잃었다. 표창원 전 교수는 <표창원, 보수의 품격> 신문지면 광고 등을 통해 노 대표를 응원했다. 표창원 전 교수는 "표현의 자유가 모든 권리들을 지켜줄 수 있는 출발점이자 방패이며, 모든 권리로 통하는 통로"라고 말한다. 보수는 북한이 전체주의를 통해 개인의 자유를 말살하기 때문에 비판하는데, 자유민주주의를 자랑스러워야 할 보수가 이에 역행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표창원 전 교수가 보여주는 합리성은 진보도 되짚어야하는 가치

"본인은 '보수주의자라는 규정을 벗어던질 생각이 없나?" (구영식 기자)
"그렇다. 내 정체나 준거나 이념을 굳이 바꿀 생각은 전혀 없다. 남들이 인정하지 않으면 그것은 그들의 몫이다. 그런데 나보고 '넌 보수주의자가 아냐.' 이걸 강조하는 분들이 많다. '넌 보수라고 하지 마. 네가 보수라고 하니까 기분 나빠.' 그건 그분들의 문제다. 나는 대한민국 사람인데 자기가 싫다고 '너 대한민국 사람 아니야.' 이렇게 규정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표창원 전 교수) - <표창원, 보수의 품격>, 259쪽

표창원 전 교수는 철저하게 자신을 '보수주의자, 반공주의자'로 규정한다. 국가를 통해 정의가 구현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긍정적인 유산이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공산주의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지켜야한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표창원, 보수의 품격>을 통해 살펴본 표창원 교수는 합리성을 지닌 사람이다. 표현의 자유, 헌법, 정의에 대한 그의 생각은 보수주의자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만한 내용이다. 이 합리성이야말로, 표창원 전 교수가 스스로를 '진짜 보수'라고 부를 수 있는 원동력일 것이다. 대선결과에 실망한 사람들에게 '힐링'을 주고, 대중의 '자베르 경감'이 될 수 있었던 까닭도 다르지 않다.

한국의 진보와 보수는 오랫동안 서로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를테면, 표창원 전 교수는 광주와 박정희에 대한 진보와 보수의 입장차야말로, 한국 사회의 오래된 갈등을 상징한다고 지적한다. 서로를 인정할 수 있는 합리성을 찾기보다는 "그것만 빼면 다 너를 인정해주겠는데 그거 때문에 도대체 너를 못 믿겠어"가 현실이라는 것이다. 그 깊고 오래된 상처는 한국 사회에서 무수한 갈등을 만들어왔다.

'새로운 보수' 표창원 전 교수는 보수주의자가 아닌 사람들에게 그만의 합리성을 통해 다가섰다. 그리고 '진짜 보수'의 가치는 진보의 그것과 손을 맞잡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양쪽으로 치우치게 나뉜 한국 사회, 진보도 보수도 혼자만으로는 부족하다. 때문에 상대를 설득하고 이해시킬 수 있는 합리성은 진보도 되짚어야할 가치가 아닐까. <표창원, 보수의 품격>을 덮으며, '진보의 표창원'을 기대해본다.

덧붙이는 글 | <표창원, 보수의 품격>, 표창원・구영식 지음, 비아북 펴냄, 2013년 2월, 1만 4천원.



표창원, 보수의 품격

표창원.구영식 지음, 비아북(2013)


태그:#서평, #보수, #<표창원, 보수의 품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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