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뇌하는 인간 링컨

고뇌하는 인간 링컨 ⓒ 드림웍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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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제16대 대통령 링컨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만인이 알고 있는 그의 업적은 두 가지다. 노예제 폐지와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미합중국의 분리를 막았다는 것. 이밖에도 잘 알려진 그의 개인적 이력이 있다. 가난해서 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독학으로 변호사가 되었다든가, 여러 번 선거에 떨어졌으나 최고 권력자가 되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위대한 역사적 인물에 대해 진짜로 궁금한 것은 아마 이런 것들 아닐까 싶다. 바로 일상생활 속에서 그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위대한 업적을 이루기 위해서 그는 얼마나 많은 반대를 무릅써야 했을까? 하는 것들이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감독한 <링컨>은 링컨의 전 생애를 단 4개월에 압축해서 보여준다. 다시 말해 <링컨>은 전기영화가 아니다. 노예제 폐지를 선포하는 미국 헌법 13조 수정안의 하원의회 통과와 남북전쟁의 종전이라는 미국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사건은 링컨의 생애 마지막 4개월과 맞닿아 있다. 아니 링컨의 생애 마지막 4개월은 미합중국의 연방을 보존하고, 노예제를 폐지하는 데 바쳐졌다. 스필버그는 이 4개월의 고투를 통해 링컨이 어떤 사람인지 보여준다.

<링컨>은 크게 세 부분으로 이뤄져 있다. 백악관에 있는 링컨의 일상, 하원의회에서의 노예제 폐지를 둘러싼 토론, 그리고 남북전쟁의 참상. 물론 이 <링컨> 천하삼분지계를 관장하고 있는 스필버그는 솜씨 좋게 링컨이라는 인간의 고뇌를 드러낸다. 그는 재임기간 내내 전쟁을 치러야 했으며 수많은 젊은이들이 죽은 현장을 둘러보았다. 개인적으로는 아들 에드워드를 병으로 잃는 아픔을 겪었고, 아들의 죽음 때문에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아내를 돌봐야했다. 그의 '그랜드 비전'인 노예제 폐지는 의회의 반대파들 때문에 통과가 매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었다.

링컨이 살아있네!

마치 링컨 초상화에서 걸어 나온듯한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인간 링컨의 고뇌를 실감나게 느끼게 해준다. 링컨은 평소에는 유머가 풍부하지만 각료들의 반대에 부딪히면 아주 솔직하게 '도와달라'고 호소한다. 아내에게도 마찬가지다. 자식을 잃은 슬픔 때문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아내에게도 그는 도움을 호소한다. 아이들을 너무나 예뻐했던 링컨 그 자신은 날마다 그 슬픔을 억눌렀다고 한다.

개인적인 괴로움을 억누르면서 링컨은 노예제 폐지를 위해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한다. 링컨과 더불어 노예제 폐지를 일찍이 공언한 공화당 급진주의자 스티븐슨 의원은 노예제 폐지안이 의회를 통과한 후 이렇게 말한다. 미국에서 가장 순수한 남자가 부정한 방법으로 정의를 이루었다! 부정한 방법은 뭘까?

<링컨>을 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위대한 인간 링컨이 역시 그 위대한 이상을 이루기 위해 이상적 방법을 쓰지는 못했음을 알게 된다. 링컨은 공화당 의원들부터 설득하고, 그 다음에는 야당인 민주당 의원들을 설득하고, 그래도 안 되면 특단의 조치까지 취했다.  

 각료들과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는 링컨

각료들과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는 링컨 ⓒ 드림웍스


위대한 이상을 위한 특단의 조치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것은 '매수'라고 볼 수 있다. 돈으로든, 관직으로든 그는 미국 헌법 13조 수정안을 위해서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역사적 아이러니다. 위대한 이상을 위해서 현실의 진흙탕에서 발버둥쳤다고나 할까.

이뿐 아니다. 고위 공직자가 전쟁 중에 자기 아들만 군대에서 쏙 빼는 행위는 결코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링컨이 바로 그런 짓을 했다. 장남 로버트를 병역면제시키려 한 이유는 뭘까? 그의 부인이 차남 에드워드의 죽음 때문에 너무나 괴로워했기 때문이다. 반전은 로버트가 그 스스로 입대하겠다고 아버지를 졸라서 결국 군대에 갔다는 것이다. 

노예제 폐지는 남북전쟁과 동전의 앞뒷면 같다. 링컨은 대통령이 된 후, 노예제 폐지를 주장한 것이 아니라 노예제 폐지라는 그랜드 비전을 제시하고 대통령이 된 정치인이다. 이에 동의할 수 없었던 남부는 분리독립을 외치고, 연방의 해체를 용납할 수 없었던 링컨은 긴 전쟁을 치른다.

링컨의 딜레마는 이것이다. 노예제 폐지 법안을 폐기하면 전쟁을 끝낼 수 있다, 하지만 전쟁을 끝내면 노예제 폐지는 이룰 수 없다. 그런데 그는 연방제 존속과 노예제 폐지를 원한다. 그의 생애 마지막 4개월은 이 과제를 동시에 푼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하늘도 무심하다고 할까. 일생 최대의 과제 두 가지를 풀어낸 바로 뒤에 그는 암살당한다.

 노예제 폐지를 주장하는 공화당 급진주의자 스티븐슨

노예제 폐지를 주장하는 공화당 급진주의자 스티븐슨 ⓒ 드림웍스


링컨, 오바마를 가르치다

<링컨>을 보는 내내 오바마는 대체 이 영화를 어떻게 봤을까 궁금했다. 영화 속의 하원의회 토론에서 이런 질문이 나오기 때문이다. 흑인에게 자유를 주면 그들에게 투표권까지 줘야 한다는 것인가? 이 질문을 던지고 민주당 의원들은 야유를 보낸다. 역사란 참으로 장난스럽게도 그 정당에서 흑인 대통령을 탄생시켰다. 노예제를 폐지하고 150여 년이 시간이 흐른 뒤다.

"<링컨>은 대통령으로서 나에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가르쳐 주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백악관 시사 후에 이렇게 말했다.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 미치 맥코넬은 "정치인들이 단기적인 정치적 이해관계들을 줄여나갈 때 나라가 더욱 발전할 수 있다는 점을 훌륭하게 묘사했다"다고 했고, 민주당 원내대표 해리 레이드는 "정치가 가야 할 올바른 길에 대해 정확히 묘사한다"고 했다.

그렇다. <링컨>은 원대한 이상을 제시하고 그것을 위해 분투하는 것이 위대한 지도자의 길이고, 올바른 정치의 길임을 보여준다. 노예제 폐지를 위해 전력투구하는 링컨을 보고 있으면 근시안적인 당리당략, 구호뿐인 개혁을 외치는 지금의 한국 정치인들의 모습과 비교되어 씁쓸하기도 하다.

링컨 스필버그 다니엘 데이 루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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