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봄비가 내린다. 봄비는 대지를 적시고 만물을 촉촉이 젖게 한다. 토닥토닥 대지를 부드럽게 적셔주고, 나무와 초목들을 목욕시켜준다.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식물들을 부드럽게 마사지를 해준다. 봄비에 젖은 땅에서는 여기저기 새싹이 움터 나오고 있다.

스프링(Spring)! 그렇다! 봄은 스프링이다. 겨우내 얼었던 땅이 녹아나고, 봄비에 젖은 대지에서는 새 생명을 잉태하는 스프링 소리가 부드럽게 들려온다. 그 딱딱한 땅을 밀고 나오는 새싹들은 힘이 대단하다 . 과연 지구를 밀고 나오는 힘이다!

봄비를 맞으며 함초롬히 피어나는 산수유
▲ 산수유 봄비를 맞으며 함초롬히 피어나는 산수유
ⓒ 최오균

관련사진보기


봄비는 만물을 소생시키는 마술사다. 살구나무에도 산수유나무에도 함초롬히 봄비를 머금고 금방 꽃망울이 터져 나올 기세를 하고 있다. 저 딱딱한 껍질을 밀어내고 꽃을 피우다니 참으로 생명의 힘은 신비 그 자체다.

"어머, 여기 꽃이 피었어요!"
"어디?"

냉이를 캐다가 금년 들어 처음으로 발견한 야생화다. 꽃다지의 로제트에서 노란 꽃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주걱 모양의 타원형 뿌리 잎이 둥근 방석처럼 퍼져 있다. 그리고 그 가운데 노란 꽃망울이 부드럽게 피어 있다. 잎과 줄기에는 잔털이 무수히 나 있다.

임진강변 언땅을 밀고 나오는 꽃다지 꽃
▲ 꽃다지 임진강변 언땅을 밀고 나오는 꽃다지 꽃
ⓒ 최오균

관련사진보기


"이 녀석 몸집은 작은데 온통 털 투성이네!"
"털보라고 불러줘야 할 것 같아요. 호호."

꽃다지, 괭이눈, 현호색, 개망초, 양지꽃, 제비곷, 돌나물…. 강변엔 무수히 많은 식물들이 일제히 고개를 쳐들고 미소를 짓고 있다. 그들은 하루 해가 얼마만큼 길어지는지 알고 있다. 겨우내 꽁꽁 얼었던 임진강도 완전히 해빙이 되어 유유히 흐르고 있다. 임진강은 북한 땅에서 발원하여 남한 땅으로 흐르는 강물이다. 강물은 이렇게 해빙이 되어 남북을 가로질러 흐르는데, 남북관계는 점점 꽁꽁 얼어붙어 가고 있다.

완정히 해빙이 된 임진강이 유유히 흘러가고 있다.
▲ 임진강 완정히 해빙이 된 임진강이 유유히 흘러가고 있다.
ⓒ 최오균

관련사진보기


북한은 지난 11일 일방적으로 정전협정을 백지화하고 판문점 직통전화도 끊어버렸다. 핵무기와 미사일로 무장을 하고 툭 하면 "서울 불바다" 운운하는 북한의 의도는 무엇인가?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연평도를 공격한 포부대를 방문하여 쌍안경으로 연평도를 살펴보는 장면이 텔레비전 화면에 수시로 비쳐진다. 아직 철부지인 그가 국제사회의 상황을 얼마나 올바르게 판단하는 능력이 있을까? 꼭 코미디 인형극의 한 장면에 나오는 꼭두각시를 보는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코미디 인형극이 아니다.

남한 땅에서는 한미합동 '키 리졸브' 훈련이 진행된 가운데 남과 북의 긴장은 점점 고조되어가고 있다. 그런 가운데 안보불감증에 걸린 시민들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평온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사재기도 없고, 주식 가격도 크게 떨어지지 않는 거은 다행이라 해야 할까? 작금의 동태를 바라보며 자꾸만 '양치기 소년과 늑대'라는 동화가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이곳 연천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대포 소리에 잠이 들고, 총성 소리에 아침잠을 깬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연천군에는 군부대가 87곳이나 있고, 포사격장이 39곳이나 산재해 있기 때문이다. 전국 최다, 최대 규모이다. 연천군은 지난 60년 동안 군부대 주둔과 군사훈련, 국가안보에 지대한 공헌을 해온 땅이다. 반면에 주민의 편익을 위한 개발이 가장 소외된 지역이다.

포사격장은 연천군 주둔 부대만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지역 군부대들도 들어와 포사격 훈련을 한다. 그러니 연천 군민들은 포성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이 들고, 아침 잠을 깬다. 그러다 보니 아무리 큰 포성소리가 들려도 만성이 되어 놀라지도 않는다. 여름 장마철에는 천둥소리인지 포성 소리인지 분간이 안 될 때가 있다. 1년 전에 이곳에 이사를 와서 한동안은 포성 소리에 깜짝 깜짝 놀라던 나도 이젠 대수롭지 않게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매일 수시로 포성소리를 듣다보니 누군가가 정말 전쟁이 일어나 적군의 포격소리라고 해도 별로 곧이듣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이곳에서는 포격소리가 난다고 해도 마치 '양치기 소년과 늑대' 같은 동화 속에서나 나오는 이야기 같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어이, 친구 요새 거기 안전한가?"
"그럼, 평온해. 오히려 서울이 더 걱정이 된다네."

최전방 휴전선 인근에 살고 있는 나를 보고 서울에 살고 있는 친구들이 자꾸만 전화가 온다. 목포에 살고 있는 막내처남한테서도 엊그제 전화가 왔다.

"매형, 어젯밤 꿈자리가 사나워서 전화를 드렸어요. 거기 별일 없나요?"
"그래, 여긴 별일 없어. 평화롭고 고요하기만 해."
"다행이군요. 요즈음 시국이 하도 뒤숭숭해서요."
"여기 사람들은 오히려 후방을 걱정한다네. 요즈음 전쟁은 공중전이라 인구가 적은 곳보다는 사람이 많이 사는 곳이 더 위험하다는 거야."
"허긴 그렇기도 하겠네요."

태풍전망대 입구에 서 있는 유엔미국군전사자 36,940위충혼비
▲ 태풍전망대 태풍전망대 입구에 서 있는 유엔미국군전사자 36,940위충혼비
ⓒ 최오균

관련사진보기


내가 살고 있는 마을은 '태풍전망대'에서 매우 가까운 곳이다. 연천군 중면 횡산리 비끼산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태풍전망대는 155마일 휴전선상에서 북한과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다. 서울에서 65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태풍전망대는 우리 집에서 불과 자동차로 20여 분 거리에 있다.

태풍전망대는 신분증을 지참해야 돌아볼 수 있다. 민통선 초소에서 신분증을 제시하면 출입증을 교부해준다. 개방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이나 오후 4시 이전에 도착해야 입장을 할 수 있다.

태풍전망대 입구에 도착하면 'UN미국군전사자 36940위 충혼비'가 눈에 띤다. 미군이 한국전쟁시에 그렇게 많이 전사를 했다는 사실도 새롭게 알게 된다. 계단을 올라서면 법당, 종각, 성모상, 교회 등이 있고, 실향민 망향비, 한국전쟁 전적비, 6·25참전 소년전차병기념비도 세워져 있다. 철책선 넘어로 북한 땅이 코앞에 펼쳐진다.

법당, 성모상, 교회등이 들어 서 있는 태풍전망대
▲ 태풍전망대 법당, 성모상, 교회등이 들어 서 있는 태풍전망대
ⓒ 최오균

관련사진보기


유엔기와 태극기가 펄럭이는 GOP(General Outpost, 경계기지)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그곳에 주둔하고 있는 헌병들이 태풍전망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해준다. 분단된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국민이라면 꼭 한 번 들러보아야 할 곳이다.

155마일 휴전선은 원래 군사분계선을 기점으로 2km 지점에 남방한계선과 북방한계선을 설정하도록 되어 있으나, 이곳 태풍전망대 부근은 1968년 북한이 휴전선 가까이 철책선을 설치함에 따라 우리나라도 1978년 부분적으로 군사분계선에 가깝게 철책을 설치하였다. 따라서 태풍전망대는 휴전선까지는 800m, 북한 초소까지는 불과 1600m밖에 안 되어 북한과 가장 가까운 전망대이다.

휴전선에서 불과 800m 떨어진 곳에 위치한 태풍전망대는 155마일 휴전선상 북한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 태풍전망대 휴전선에서 불과 800m 떨어진 곳에 위치한 태풍전망대는 155마일 휴전선상 북한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 최오균

관련사진보기


맑은 날에는 육안으로도 북한군의 움직임이 관찰된다. 북에서 휴전선을 넘어 흘러온 임진강은 바로 태풍전망대 앞으로 흘러간다. 지난 1년 동안 나는 무려 30여 차례나 이곳을 방문했다. 우리 집을 찾는 친구와 친지들에게 안보관광을 시켜주기 위해서이다. 지난주에도 우리 집을 방문한 시인 몇 사람과 함께 이곳을 방문했다.

"북한 땅이 이렇게 가까운 코앞에 있다니 도저히 실감이 나지 않네요."

시인은 코앞에 펼쳐진 북한의 초소를 바라보며 놀란 눈초리로 말했다.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들마다 하는 말이다. 그렇다. 북한 땅은 먼 나라가 아니다. 바로 우리들의 코앞에 북한 군이 있다. 코앞에서 숨소리를 들어가며 남한과 북한은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곳에 오면 누구나 일촉즉발의 위기의식을 느끼게 된다.

안보불감증에 걸린 사람들이라면 반드시 이런 곳을 한번쯤 방문하여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국가안보에 대하여 너무 과잉반응을 보여도 안 되겠지만 그렇다고 너무 소홀히 여겨서도 안 된다.

국가안보는 국민 모두가 각자 맡은 분야에서 최선을 다할 때에 지켜지는 것이다. 군인은 한 치의 소홀함도 없이 철통같이 국방을 수비하고, 정치인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해야 한다. 기업은 좋은 제품을 만들어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어야 하고, 국민은 바른 생각으로 올바른 일을 하는 사람 손을 들어주어야 한다. 적어도 국가가 부강해야 국제사회의 어느 나라이든지 우리나라를 함부로 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절대로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되지만, 만약에 이 땅에 전쟁이 일어나면 우리 민족만 죽어갈 것이다. 그것도 공중전에 의한 대량 살상이 일어날 것이다. 전쟁으로 우리 민족이 죽어간다고 해서 국제사회가 우리들의 일을 결코 해결해줄 수는 없다. 이라크 전쟁이나,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그러하듯 국제사회는 강 건너 불 바라보듯 뉴스의 한 장면으로 지나쳐버리고 말 것이다.

더 극한상황으로 치닫기 전에 남과 북은 대화를 해야 한다. 꽁꽁 얼었던 임진강이 녹아 북에서 남으로 흘러 하나의 강이 되듯 서로가 대화로 풀어나가야 한다. 서로가 양보할 것은 양보하고 해빙무드를 이루어나가야 한다. 어떠한 경우에도 극한 상황이 일어나기 전에 대화로 풀어나가고 이 땅에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피해야 한다.

허공의 공기, 하늘을 나는 새, 강물… 자연은 모두가 하나인데 오직 사람의 마음만 둘이다. 사람이 문제다. 집단 이기주의, 평화를 빙자한 이데올로기, 그리고 권력과 부를 가진 자들의 체제유지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 무고한 민중이 피를 흘려서야 되겠는가?

북한 땅을 향해 날아가는 기러기들. 새들은 휴전선을 넘어 자유롭게 남과 북을 넘나드는 데 사람만 오가지 못한다.
▲ 기러기 북한 땅을 향해 날아가는 기러기들. 새들은 휴전선을 넘어 자유롭게 남과 북을 넘나드는 데 사람만 오가지 못한다.
ⓒ 최오균

관련사진보기


봄을 맞이한 임진강에는 기러기 등 겨울 철새들은 보이지 않고, 오리떼가 평화롭게 헤엄을 치고 있다. 그 많던 기러기는 다 어디로 갔을까? 기러기는 북한 땅을 자유롭게 날아 시베리아로 날아갔을 것이다. 그러니 사람은 저 기러기만도 못하다. 새들은 이데올로기를 넘어 자유롭게 남과 북을 넘나드는데, 사람만이 체제의 사슬에 얽매어 분단의 비극 앞에 통곡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북에서 발원을 하여 남으로 유유히 흘러내리는 임진강처럼, 남과 북이 하루 빨리 화해무드를 조성했으면 좋겠다. 시공을 초월한 하늘에는 별이 총총 빛나고, 해와 달은 네 땅, 내 땅을 구분하지 않고 골고루 비추이는데, 지구촌에 단 하나 남은 한반도의 분단된 냉전의 비극은 언제 끝이 날까?

조국은 분단되있어도 임진강에는 여전히 봄이 오고 있다. 겨우내 얼었던 강물은 사슬이 풀리고, 새싹은 땅을 뚫고 스프링처럼 솟아오른다. 봄바람은 변함없이 불어오고 있건만 남과 북 사람들의 마음은 꽁꽁 얼어붙어 있다. 그러나 아무리 서슬 퍼런 냉전의 칼날도 봄은 막지 못한다.

사람은 근본적으로 누구나 평화와 행복을 추구한다. 대지 위를 부드럽게 두들겨주는 봄비처럼 서로의 등을 두드려주며 격려를 해주는 그런 날이 빨리 와야한다. 아아, 하늘을 나는 새들과 유유히 흘러가는 임진강 물이 부럽기만 하다.


태그:#임진강, #임진강의 봄, #태풍전망대, #늑대소년, #봄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사는이야기, 여행, 작은 나눔, 영혼이 따뜻한 이야기 등 살맛나는 기사를 발굴해서 쓰고 싶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