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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 것인가〉
▲ 책겉그림 〈어떻게 살 것인가〉
ⓒ 권성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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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살 먹은 중년 남자라고 스스로를 소개한 유시민. 사실 그는 정치인으로 유명하다. 국회의원과 보건복지부 장관을 역임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2008년과 2010년, 그리고 2012년에 있던 선거전에서 줄줄이 쓴 잔을 마셨다. 

그는 지금 정치의 바리케이드를 떠나 있다. 대체 이유가 뭘까? 연이은 선거의 패배 때문일까? 사실 나도 그쯤 생각했다. 앞으로는 정치적인 재기가 불가능하다고 말이다. 적어도 그가 쓴 <어떻게 살 것인가>를 읽기 전에는 그랬다.

그런데 '4년 계약직'인 국회의원의 길, 달리 말해 '직업 정치인'의 길을 떠난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았다. 순전히 자기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고 싶은 소망 때문이었다. 그것이 10여 년 동안 몸담아왔던 정치인생을 정리한 까닭이었다.

"나는 내 삶을 스스로 설계하지 않았다. '닥치는 대로' 열심히 살았지만 내가 원하는 삶을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산 것은 아니었다. 지금부터라도 내 삶에 대해 더 큰 자부심과 긍지를 느끼고 싶다. 살아가는 모든 순간마다, 내가 하는 모든 일에서 의미와 기쁨을 느끼고 싶다. 아직은 기회가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려면 무엇인가 바꿔야 한다."(38쪽)

성년이 된 후 인생의 절반을 '운동과 글쓰기'로, 나머지 절반을 '정치와 글쓰기'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살아왔다던 그. 앞으로 그는 어떤 인생을 살아갈 것인가? 그는 후회 없이 죽을 수 있는 그 길을 선택하면서 살고자 다짐한다. 이른바 '지식소매상'이 그것이다.

그 첫걸음으로 나온 작품이 <어떻게 살 것인가>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렇다. 그걸 총론으로 놓고서 앞으로도 많은 각론에 관한 책들을 써 낼 것이다. 더욱이 정치와 글쓰기 사이에서는 스스로 정치적인 검열을 했지만 앞으로는 그것도 하지 않을 것이다. 세상을 훌륭하게 만드는 신념이 될 만한 지식이라면, 그 무엇이든 최선을 다해 전달할 것이다.

그래서 삶은 곧 죽음이라고, 하루하루의 삶은 실은 하루하루의 죽음이라고, 이야기한 것일까? 55살 산 것도 55살 죽은 것이라고 의미부여를 한 것 말이다. 그만큼 삶과 죽음은 따로 떨어진 게 아니라 하나임을 일깨워주고 있다. 제1장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 이어 제 2장에서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연달아 기록한 것도 그 때문이다.

"'축구는 그만하고 공부나 해라.' 재능이 없다고 해서 그렇게 말할 수는 없다. 축구 선수가 아니어도 축구와 관련된 직업을 가질 수는 있다. 그래서 아들한테 축구 전문 평론가를 직업을 권하는 중이다."(169쪽)

사랑하는 자기 아들을 두고 한 말이다. 자신이 보기에 아들 녀석은 축구에 대한 열정은 남다르지만 재능만큼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그것이 아들에게 축구전문 평론가를 권한 이유였던 것이다. 그처럼 열정과 재능의 불일치 속에서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요즘은 많다고 한다.

그 때문일까? 오늘날의 젊은이들이 '놀이처럼 일할 수 있는 일'에 매달렸으면 하고 그가 바라는 것 말이다. 또한 더불어 '연대'할 수 있는 공생성의 삶에도 최선을 다하길 그는 바라고 있다. 제 3장에서 밝히고 있는 메시지가 바로 그것이다.

"작가 슈테반 츠바이크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칼뱅이 통치한 첫 5년 동안만 제네바에서 열세 명이 교수대에 매달렸다. 열 명은 단두대에서 목이 잘렸다. 35명이 화형장에서 불타 죽었다. 무려 56명이 사형에 처해진 것이다. 76명은 도시 밖으로 추방되었다. 감옥에 갇힌 사람은 더 많아서 교도소장이 더는 죄수를 받을 수 없다고 시의회에 통보할 지경이 되었다."(273쪽)

제4장의 '삶을 망치는 헛된 생각들' 속에 담긴 칼뱅의 신권정치 이야기다. 칼뱅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이상향을 만들기 위해 신학과 세속권력을 결합하여 '종교국'과 '도덕경찰'을 창설했다지만, 그것은 엄연한 칼뱅식 공포정치였다고 밝힌다.

그런데 칼뱅이 처벌한 범죄 행위는 범죄라고 보기가 어려운 게 많다고 한다. 거리에서 주먹다짐을 한 죄를 물어 선원 둘을 교수대에 매단 것, 세례식에서 웃음을 짓거나 포도주를 걸고 주사위놀이를 한 사람들에게 징역형 내린 것, '칼뱅 선생님'에게 '칼뱅씨'라고 이야기하거나 예배당에서 사업 이야기를 한 사람들을 감옥에 넣은 것, 자신의 예정설을 비판한 남자를 도시의 모든 교차로에서 채찍질한 다음 불태워 죽인 것, 술에 취한 채 자신에게 욕을 한 출판업자의 혀를 불타는 쇠꼬챙이로 찌른 다음 도시 밖으로 내쫓은 게 그것이라 한다.

나도 기독교인이지만 칼뱅이 그 정도였는지는 좀체 몰랐다. 유시민이 그런 이야기를 꺼낸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스스로 고결한 신념이라고 여기는 자신의 생각이 타인과 온 사회를 병들게 하고 때로는 치명적인 위협물이 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것 때문에라도 칸트의 충고를 기억하자고 그는 말한다. 스스로 세운 준칙이 보편적 법칙이 될 수 있도록 하자고 하는 것 말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 힐링에서 스탠딩으로!

유시민 지음, 생각의길(2013)


태그:#유시민, #〈어떻게 살 것인가〉, #칼빈의 종교국과 도덕경찰, #예정설, #보편적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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