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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4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정부조직개편안 처리가 늦어지는 것에 대해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4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정부조직개편안 처리가 늦어지는 것에 대해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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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실천 의지가 시험대에 올랐다. 서울 한복판에서 차를 타고 난동을 부리다가 단속에 나선 경찰을 치고 달아난 미군 3명의 난동사건이 어떻게 마무리되느냐가 박 대통령이 부르짖은 '국민안전 최우선 주의'의 진정성을 평가할 수 있는 척도로 등장한 것이다. 

박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인 지난 1월 29일 대통령직인수위 법질서·사회안전분과 국정과제토론회에 참석해 인사말 첫머리부터 다음과 같이 국민안전을 강조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고 보호하는 것이야말로 국가의 가장 큰 책무인데, 지난 선거 때도 새 정부는 그중에서도 성폭력·학교폭력·가정파괴범·불량식품 등 4대 사회악을 반드시 뿌리 뽑겠다며 제가 아주 많이 강조했습니다."

실제로 박 대통령은 대통령선거 유세 때마다 이 같은 4대 사회악 척결을 약속해왔고 큰 호응을 받았다. 정부조직개편안에서 행정안전부의 이름을 안전행정부로 바꾸겠다는 것도 이런 '국민안전 최우선' 방침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난 2일 미군 난동사건으로 인해 미군 범죄를 줄이고 실질적인 처벌을 강화하는 것도 박 대통령의 큰 숙제로 남게 됐다. 다른 나라 군인이 경찰까지도 무력화하고 치외법권 지대로 숨어버린 이 사건은 성폭력·학교폭력·가정파괴범·불량식품 등 박 대통령이 꼽은 4대 사회악을 넘어 미군 범죄는 처벌하기도 어려운 국민안전의 사각지대란 걸 여실히 보여줬기 때문이다.

2006년 242건-2011년 341건, 미군범죄 증가세... SOFA 개정 목소리

지난 2일 주한미군이 서울 도심에서 총기 난동을 부리고 도주한 사건이 발생한 가운데, 4일 오후 서울 용산구 용산경찰서에서 도주차량에 함께 탔던 미군 C모 하사가 미군 인솔자의 등에 얼굴을 숨기고 경찰 조사를 받기 위해 들어서고 있다.
▲ 얼굴 숨기고 출두하는 총기난동 주한미군 지난 2일 주한미군이 서울 도심에서 총기 난동을 부리고 도주한 사건이 발생한 가운데, 4일 오후 서울 용산구 용산경찰서에서 도주차량에 함께 탔던 미군 C모 하사가 미군 인솔자의 등에 얼굴을 숨기고 경찰 조사를 받기 위해 들어서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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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청이 집계한 주한미군 관련 범죄는 2006년 242건, 2007년 283건, 2008년 261건, 2009년 325건, 2010년 380건, 2011년 341건이다. 증감이 있지만, 길게 보면 지속해서 증가하는 추세다. 더욱 심각한 건 2007년~2011년까지 5년간 구속수사를 받은 주한 미군과 군속의 숫자는 겨우 4명에 불과했다는 점이다.

주한미군 범죄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주한미군 주둔군 지위협정(SOFA) 개정이 두 차례 이뤄졌지만, 주한미군의 범죄가 줄지 않고 있는 건 '일단 부대로 도망가면 처벌받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지'는 현실 때문이다. 이번 사건에서 미군이 단속에 나선 경찰까지 고의로 차로 들이받고 경찰의 총에 맞은 상태에서도 기어이 소속부대로 도망간 것도 이 때문으로 보인다.

한국 정부가 아무리 '국민안전 최우선'을 외쳐봤자 SOFA에 의해 도망갈 곳을 보장받은 미군에게는 소용없는 딴 세상 이야기다. 현행 SOFA는 현행범으로 체포한 경우에만 한국 경찰이 1차 피의자조사를 할 수 있다. 경찰이 현행범으로 체포하려고 해도 이번 사건에서처럼 차로 경찰을 들이받는 등의 방법으로 경찰을 무력화하고 소속부대로 도망가면, 한국의 1차 조사는 사실상 어려워진다. 한국측이 신병인도를 요구할 수 있지만, 강제력은 없다. 자연히 미군이 한국 사법당국에 의해 기소되고 재판을 받을 가능성도 낮아진다.

"피의자의 신병이 미군에 있으면, 모든 재판 절차가 종결되고 대한민국 당국이 구금을 요청할 때까지 미합중국군이 구금을 계속 행한다"는 내용의 SOFA 22조가 범죄를 저지른 주한미군에게 '도망갈 곳'을 마련해 주고 있다는 지적은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이번에도 SOFA 개정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SOFA 개정보다 합의사항 준수부터"..."전담 조직 확충해야"

반면 정부는 SOFA를 개정하기보다는 합의사항을 제대로 준수하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 외교부 관계자는 "지금의 SOFA는 일본과 독일이 미국과 맺은 것에 거의 근접해 있다. 개정보다는 합의사항을 준수하도록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이 관계자가 말하는 '합의사항'이란 지난해 5월 이뤄진 SOFA 합동위원회 합의사항으로 한국측의 초동수사를 강화하는 내용이고 SOFA의 하위규정이다. 당시 합의 내용은 신병인도 대상범죄를 살인과 강간 등 12가지 중대 범죄로 제한했던 걸 없앴다.

또 '한국 사법당국은 주한미군의 신병을 인도받으면 24시간 이내 기소하든지 아니면 풀어줘야 한다'고 돼 있던 걸 삭제했다. '24시간 내 기소' 조항은 충분한 수사 없이 기소부터 해버리면 공소유지가 어렵다는 부담 때문에 사실상 미군 신병인도 요청의 장애물로 기능했다. 그러나 이 조항을 없애 미군의 신병을 인도받아 수사할 수 있게 한 것.

두 차례의 SOFA 개정 업무에 관여한 한 전직 외교부 고위관료도 "주한미군 범죄를 엄격히 처벌하기 위해서라면, 지금의 SOFA로도 부족할 것은 없다"며 "실질적인 문제는 경찰과 검찰이 주한미군 문제에서 사법주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지 않고 있어서 그런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경찰과 검찰에 외국인 사건 전담조직이 있지만, 이 조직들의 인력도 부족하고 외국어 능력 등 자질이 모자란 경우가 많고, 사건 해결 의지도 약한 게 사실"이라고 했다. 그는 "미군 피의자는 잡혀 들어가면 '당장 변호사부터 불러달라'고 하는 등 까다로워서 수사하는 입장에선 별로 맡고 싶어 하지 않는 걸로 안다"면서 해당 부서가 수사담당자의 승진에 별로 도움이 안 되는 부서란 점도 지적했다.

그는 "전담 조직의 인력과 역량을 확충하고 (대통령의) 정치적인 의지를 실어서 SOFA 합의사항이 제대로 준수되도록 사법주권을 적극 행사한다면 주한미군도 더 이상 '사고쳐도 도망가면 된다'는 생각을 못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국민안전에 사각지대 확인... 방치한다면 '국민안전 공약'은 헛구호

취임한 지 열흘도 안 된 박근혜 대통령은 '공약 이행'을 강조하고 있고, 그 중심에 '국민안전 최우선주의'가 있다. 취임하자마자 터진 미군 난동 사건은 박 대통령이 꼽은 4대 사회악 말고도 국민안전에 사각지대가 있다는 걸 보여줬다.

그러나 SOFA가 '도망갈 곳'을 제공해주고 한국 사법당국의 수사의지와 역량 부족 상황이 개선되지 않으면, 지난 2일의 난동과 같은 미군 범죄는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다. 주한미군에 대한 시민들이 감정도 나빠질 뿐 아니라 한미동맹도 악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정부가 미국과의 협상이 어렵다는 이유로, 아니면 예산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주한미군 범죄 상황을 방치한다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고 보호하는 것이야 말로 국가의 가장 큰 책무"라는 박 대통령의 말이 공허해질 수밖에 없다.


태그:#박근혜, #SOFA, #주한미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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