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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지런히 늘어서있는 장독에는 주부의 사랑이 들어 있습니다.
 가지런히 늘어서있는 장독에는 주부의 사랑이 들어 있습니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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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밑 동네를 지나다가 장독대가 있는 집을 보았다. 크고 작은 항아리들이 가지런하게 놓여 있었다. 장독대를 갖추고 사는 집이 흔치않은 요즘인지라 문득 그 집의 안주인은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졌다. 틀림없이 살림 사는 재미를 아는 분일 것 같았다.

요즘은 장독대가 있는 집을 보기가 어렵다. 된장을 집에서 담그지 않고 사서 먹는 집이 많아지면서 장독대도 사라져 버렸다. 간혹 된장을 담는 집이 있긴 하지만, 그런 집일지라도 예전처럼 식구가 많지 않으니 장독들도 몇 개만 있으면 된다. 더구나 마당이 없는 공동주택의 경우에는 항아리를 마땅히 둘만한 곳도 없다. 그래서 요즈음은 항아리들이 장독으로서의 역할보다는 집을 꾸며주는 장식으로 놓여있는 경우가 많아졌다.

장독대가 있는 집

도시에서 살 때는 나 역시 항아리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시골로 이사하니 장독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집이 구색이 갖추어져서 보기에 좋을 것 같았다. 또 한편으로는 살림에 대한 욕심도 났다. 장독대가 있는 집은 살림이 반듯하고 튼실해 보였다. 그래서 길을 가다가도 담장 너머로 항아리들이 줄을 지어있는 장독대가 보이면 일부러 걸음을 멈추고 들여다보고는 했다.

가지런히 늘어서있는 크고 작은 항아리들은 각자 자기 자리에서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을 그 집 식구들을 나타내는 듯 했다. 바깥양반은 든든하게 집을 이끌어 나갈 테고, 안주인은 빈틈없이 살림을 갈무리하고 또 건사했을 터이다. 빛이 좋은 날은 항아리의 뚜껑을 열어서 바람과 햇빛을 장독에 담았을 터이고 비가 온 다음 날은 튀어 오른 흙물을 닦아내기 위하여 물걸레질을 했을 것이다. 그렇게 주인의 손길이 많이 간 항아리들은 어느 것 없이 다 반들반들하게 윤이 났다. 장독대는 그 집 안주인의 살림에 대한 애정과 정성을 보여주는 듯 했다.

 장독대에 늘어서있는 항아리들을 보니 안주인의 살림 사는 솜씨가 보이는 듯 합니다.
 장독대에 늘어서있는 항아리들을 보니 안주인의 살림 사는 솜씨가 보이는 듯 합니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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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집의 장맛은 일부러 맛을 보지 않아도 단맛이 날 게 틀림없을 터였다. 자녀들은 충분한 관심과 사랑 속에 잘 자랐을 것이며 노인들도 편안한 여생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장독대만 보고도 나는 그 집의 살림살이 규모며 가족 간의 사랑까지도 다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장독대는 어머니들의 지성소(至聖所)다

그렇게 늘 남의 장독대를 훔쳐보는 아내를 위해 남편이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윤 사장에게 부탁했다. 시골집을 거래할 때 혹시라도 항아리가 나오면 알려달라고 했더니 마침 맞춤한 게 나왔다며 기별이 왔다. 어떤 사람이 급히 이사를 가면서 그동안 모아두었던 항아리들을 한꺼번에 내어 놓았다고 했다.

어릴 적 내가 컸던 우리 집에는 부엌 앞에 우물이 있었고, 그 옆에 장독대가 있었다. 장독대에는 크고 작은 단지며 항아리들이 줄을 지어 서있었다. 어머니는 틈이 날 때마다 항아리들을 물걸레로 훔치셨다. 그때 어머니는 건강했고, 한 가정을 이끌어나가는 건실한 살림꾼이었다. 우리 집의 살림은 제법 탁탁해서 끼니거리를 걱정하지 않았고 집안은 두루 잘 풀려나가던 날들이었다.

어머니는 늘 바삐 움직이셨다. 새벽부터 한밤까지 손에서 일을 놓지 않았다. 그렇게 열심히 일해서 땅을 넓혀나갔고 자녀들을 교육시켰다. 하지만 어머니는 가족을 위할 줄만 알았지 자신을 돌볼 줄은 몰랐다. 그래서 몸속에 병이 자라고 있는 줄을 알아채지 못했다.

어머니가 떠나시자 장독대는 빛을 잃었다. 우리 집의 가세도 더불어 기울어 갔다. 오랫동안 우리 식구들의 눈에 익어 마음을 끌던 묵은 살림살이들이 어느 결에 다 없어졌다. 그리고 그 많던 항아리들도 어디론가 다 사라져버렸다.

마흔 줄에 들어서서야 비로소 친정집을 돌아보니 장독대도 항아리도 사라진 지 오래였다. 동네 우물물을 길어 와 부어 두던 한 섬들이 물독도, 온갖 잡곡과 양념들을 넣어 두던 크고 작은 항아리들도 간 곳이 없었다. 그 장독들과 함께 어머니도 우리 집도 사라져 버린 것만 같았다.

 강화군 불은면 두운리에서 만난 장독대입니다.
 강화군 불은면 두운리에서 만난 장독대입니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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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독대의 넉넉함을 안으리

항아리는 내겐 고향이었고 또 어머니였다. 그리고 넉넉함이었으며 따스한 마음이기도 했다. 머리에 보퉁이를 이고 이 마을 저 마을로 다니며 장사하던 방물장수들도 그리고 온전치 못한 몸으로 동네를 떠돌며 한 끼를 구걸하는 불쌍한 사람들도 날이 저물고 배가 고프면 우리 집으로 와서 하룻밤 잠자리를 청하곤 했다. 어머니는 그 사람들을 다 거두어 주었다. 어머니의 따뜻함은 대를 이어 내려오던 우리집의 가풍이기도 했다.

욕심스레 들여놓은 항아리들로 마당이 꽉 찬 것 같다. 그 앞을 지나칠 때마다 이리 들여다보고 저리 견주어본다. 거칠한 것도 있고 암팡져 보이는 것도 있다. 생김새가 저마다 다른 것처럼 그 안에 담을 수 있는 것들도 다 다르리라.

항아리들을 바라보며 꿈을 꾼다. 행주치마를 앞에 두르고 종종걸음을 치며 안팎살림을 쳐내던 엄마처럼 나도 우리 집을 풍성하게 가꾸고 싶다. 내 집에 오는 사람은 복(福)을 가지고 온다며 사람이 오는 것을 기꺼워하던 부모님처럼 나도 대문을 활짝 열고 사람을 맞아야겠다.

항아리에 누룩과 쌀을 섞어 빚어 두었다가 술이 익으면 벗들을 청하리라. 그이들과 함께 더불어 살면서 항아리가 품은 넉넉함을 안아야겠다. 그러면 고향도 어머니도 내게 찾아오리라. 따뜻함도 함께 따라올 터이다.


#강화나들길#나들길#항아리#장독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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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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