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9월,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 JSA>가 가져온 충격은 상상 이상이었다. 십여 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는 이 작품은 송강호, 이병헌 등의 강렬한 연기와 충실한 스토리, 몰입도 높은 화면구성 등으로 그간의 한국영화가 채 갖지 못했던 짜임새를 가지고 있다는 평을 들었다. <JSA>와 <올드보이> 등의 성공에 힘입어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감독의 이력은 충분히 메이저라 불릴만 하다.

그러나 박찬욱은 자신에게 부여된 것들에 안주하지 않고 수많은 장르영화를 만들어왔다. <복수는 나의 것><친절한 금자씨><박쥐> 등 그의 영화들은 호기심은 생기지만 선뜻 손이 나가지 않는 작품들이다. 다 보고난 후 두 발이 늪에 빠진 듯 무지근한 느낌은 개운치 않은 기억을 남기기도 하기 때문이다. 장르적 특성을 풍부히 담은 그의 대표작들은 그가 의도했든 아니든 항상 평단과 대중의 엇갈린 평가를 받아왔다. 그런 그가 이제 할리우드 유명배우들과 작업한 <스토커>를 들고 돌아왔다.

<스토커> 박찬욱의 영화 '스토커'는 불친절한 영화다. 소녀와 그 가족을 둘러싼 사건은 끝없이 벌어지지만 관객이 그 연결고리를 찾아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 <스토커> 박찬욱의 영화 '스토커'는 불친절한 영화다. 소녀와 그 가족을 둘러싼 사건은 끝없이 벌어지지만 관객이 그 연결고리를 찾아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 공식 홈페이지


배우들, 영화를 완성하는 데 어떻게 힘을 보탰나

세계적 유명배우로서 니콜 키드먼의 존재감은 명확하다. 극장으로 사람들을 이끌만한 힘을 가진 그의 명성은 영화 속에서도 빛을 발한다. <물랑루즈> <디 아더스> <도그빌> 등 그의 이력이 주는 친밀감은 때로는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그러나 여전히 관객을 빨아들일 것 같은 눈동자와 밀랍인형같은 몸매는 영화에 신비감을 더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매튜 굿은 주인공의 삼촌 역으로 분한 영국배우다. 그는 <사이코> <페드라> 등의 전설적 배우 안소니 퍼킨스를 간간이 떠올리게 했다. 그러나 그를 눈동자의 불안한 움직임, 휘청거리는 몸짓만으로도 신경질적이면서 치명적인 매력을 드러냈던 안소니 퍼킨스에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약간의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매튜 굿의 연기는 어둡고 불투명하고 잔혹한 영화속 캐릭터를 잘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누구보다 농밀한 연기를 선보이는 것은 주인공 미아 바시코브스카다. 영화는 소녀의 몇 몇 장면들에서 히치콕의 <사이코>의 유명한 욕실 장면을 떠올릴만한 상징들을 과감히 채택하고 있다. 흰 타일, 피, 혹은 오물이 묻은 옷가지들, 그리고 벌거벗은 몸 등은 충분히 선정적이지만 그의 성장, 혹은 본능이 드러나는 장면이어서 처절하면서도 아름답다. 24세의 이 호주배우는 18세의 소녀 본연의 순수함과 성장통, 그리고 배역이 가진 이중적이면서도 대담한 캐릭터를 더할 나위 없이 잘 그려내고 있다.

<스토커> 이 영화는 소녀의 성장통을 그린 영화일까? 아니면 잔혹한 호러물일까. 그러나 영화적 재미를 충분히 제공하고 있는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 <스토커> 이 영화는 소녀의 성장통을 그린 영화일까? 아니면 잔혹한 호러물일까. 그러나 영화적 재미를 충분히 제공하고 있는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 공식 홈페이지


극장을 나서며 중얼거리게 만드는 박찬욱의 힘, 찬양하거나 불평하거나

제한된 수의 등장인물들, 장중한 분위기의 저택의 묘사, 그리고 진한 피의 궤적을 그려낸 장면들은 언뜻 김지운 감독의 <장화홍련>을 연상케 하기도 한다. 인물들 간 묘한 관계의 암시, 그리고 가족을 둘러싼 잔혹사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그러나 <장화홍련>은 잔혹한 슬픔을 그려냈고, <스토커>는 '극복'을 말하고 있다. 계란껍질을 한꺼번에 벗겨내지 않고 식탁에 굴려 무수한 금을 내는 주인공의 모습은 그 과정의 통증을 말하고 있다. 다른 세계로 도약하려는 주인공의 모습은 영화 내내 처절하다. 영화는 주인공이 극복해야 할 대상이 무엇인지,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무슨 뜻인지 구구절절 설명해 주지 않는다.

그렇듯 영화는 전체적으로 매우 불친절하다. 주제와 줄거리도 명확하지 않고, 배경음악도 다채롭지 않으며, 인물들의 성격도 불분명하다. 다만 영화 속 그림자들, 발자국 소리, 문을 여닫는 소리, 잔혹한 장면들 속의 아우성 등이 배경음악을 대신하고 있으며 상징을 찾아내기 쉽지는 않지만 내용을 추리해 나가는 것이 아주 어렵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다.

조용하게 이어지는 극의 흐름은 때론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시간을 오가는 편집은 관객들의 머리를 한시도 편안히 쉬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영화의 처음과 끝이 맞닿는 순간은 안도감을 주지만 여러 단계의 사건들을 지난 후라 한편으로는 섬뜩한 느낌을 준다. 극한의 슬픔에 잠긴 소녀의 뒷모습이 사실은 환희의 순간이었듯, 영화는 소소한 반전의 연속이다.

이 영화는 감독 박찬욱, 주연 니콜 키드먼, '프리즌 브레이크'의 웬트워스 밀러의 시나리오 등의 구미 당기는 정보, 혹은 제목 그대로 '스토커'라는 현대적 병폐를 다뤘을 것이라는 엉뚱한 짐작들만을 가지고 입장한다면 극장문을 나서는 순간 저절로 불평이 터져 나오게 만들 수도 있다.

영화를 본 후 한참 노력한 후에야 상징과 은유, 주제 등을 끄집어낼 수 있다면 어떨까. 그 불친절함에 조금 피곤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극장 밖으로 한걸음한걸음 더 내딛을 때마다 머릿속이 복잡해져오는 경험은 항상 불쾌한 것만은 아니다. 관객들의 시각들로 수많은 영화가 재창조되는 것, 그것이 영화가 주는 또 다른 선물이기 때문이다. 불친절한 '스토커'는 그 선물만은 충실히 전달하고 있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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