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행진-친구들의 이야기>의 한 장면

SBS <행진-친구들의 이야기>의 한 장면 ⓒ SBS


강원도 철원에서 낙산 해수욕장까지의 150km를 넘는 대장정의 6박 7일이 마무리됐다. 하지만 함께했던 사람들의 행진은 끝나지 않았다. 현역에서 은퇴한 장미란에게는 11명의 오빠와 한 명의 흥수 삼촌, 여동생이 생겼고, 자꾸만 계산기를 두드리던 인간관계에 익숙해졌던 사람들은 이 프로그램을 계기로 '들국화'라는 모임을 만들어, 인간적인 '행진'을 이어가기로 했다.

6일 차의 마지막 밤. SBS <행진-친구들의 이야기>(이하 <행진>)를 함께 하자며 사람들을 불러모았던 이선균은 "처음 하루 이틀은 방송이라는 생각에, 이들을 이끌어 가야 한다는 생각에 짜증이 나고 너무너무 하기가 싫었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어느샌가 함께 걸으며 방송을 한다는 생각도 저 멀리 사라지고 어느 때보다 한껏 웃으며 걷게 되었다고. 이렇게 말하는 것은 이선균만이 아니었다. 한때 연극판에서 어려운 시절을 보냈지만 이제는 서로의 처지가 달라 자주 보지 못했던 유해진과 친구들도 다리를 다쳐 뒤떨어진 길을 느긋하게 걸으며 예전의 마음으로 돌아가 노래를 부르다 결국 눈시울을 적셨다.

단 2회였지만, <행진>이 그 어느 프로그램보다 뜨끈한 감동을 남긴 것은 처음도 끝도 함께 한다는 취지를 살리고자 애썼고, 결국 그것을 달성했다는 것이다. 한때는 친구였지만 세월이 흘러 서로 다른 위치에, 다른 직종에 종사하게 된 이들 혹은 전혀 모르던 사람들이 6박 7일의 고된 시간을 함께 보내며 자연스레 어깨를 두르고 노래를 부르게 되었고, 절룩이는 옆 사람의 팔을 잡아주게 되었고, 헤어짐을 아쉬워하게 되었다.

 멤버들이 마련한 현역 은퇴 이벤트의 주인공이 된 장미란

멤버들이 마련한 현역 은퇴 이벤트의 주인공이 된 장미란 ⓒ SBS


물론 게임도 했고, 경쟁도 있었다. 이어지는 터널을 도보로 걷기에는 위험 부담이 크기 때문에 점심 지원을 내걸고 누가 먼저 히치하이킹해서 죽리초등학교에 도달하는가 내기도 했다. 사람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먼저 도착하려 애썼다. 하지만 제작진의 시선은 거기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까짓 점심 내가 하지 뭐'하며 유유자적 눈길 위에 눕기도 하고, 동네 할머니에게 말도 건네는 유해진의 시선을 따라갔다.

그래 '까짓 점심'이다. 아니 어쩌면 세상사 모든 일이 그렇다. 이들처럼 우리는 살면서 어쩌면 점심보다 못한 일인데도 그저 남에게 뒤처질까 전전긍긍한다. 하지만 '까짓 거' 하고 그 틀에서 벗어나 보니 평소엔 쳐다보지도 않던 하늘이 보이고, 맑은 눈밭이 들어오고, 노란 견인차가 예쁘게 보인다. 게다가 그렇게 한껏 여유를 부려도 토끼처럼 잽싸게 장미란 팀이 맡아놓은 차까지 낚아채며 서두르던 이선균네보다 먼저 도착하기까지 한다. 그냥 지나치기엔 보는 사람들의 되바라진 머리를 한 대 쿡 쥐어박는 느낌이다.

주도적으로 이끌려고 애쓴 것은 이선균이지만, 피로에 지쳐 땅바닥만 보고 걷는 사람들을 다독인 건 유해진이었다. 아름다운 풍경이 나오면 놓치지 않고 사람들의 시선을 자연으로 돌렸고, 유머로 경직된 사람들의 마음을 풀어 주었다. 좋은 건 좋다고, 힘든 건 힘들다고 말하는데도, 그것이 유해진의 입을 통해 나오면 괜히 '도'의 느낌조차 나는 건 그가 가진 삶의 여유가 묻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여유가 마치 화선지에 풀어진 먹처럼 잔잔하게 <행진>의 6박 7일을 통해 전체로 번져 나갔다.

 SBS <행진-친구들의 이야기>의 한 장면

SBS <행진-친구들의 이야기>의 한 장면 ⓒ SBS


물론 6박 7일 동안 좋은 일만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누군가의 다리엔 결국 깁스가 채워졌고, 누군가는 '정밀진단'이 필요한 지경에 이르기도 했다. 그것들을 주마간산 격으로 스쳐보내고 그저 함께한 모습에 집중한 것은 어쩌면 상투적인 감동 만들기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유해진이 얻어 탄 견인차 운전사 아저씨의 말처럼 살기가 어려워도 너무 어려운 요즘, 이 정도 감동은 그다지 넘치는 것이 아닐 듯싶다.

함께 하기 위해 한계령 꼭대기에서 뒤처진 친구를 기다리고 마중 나오는 모습, 힘들지만 포기하지 않는 친구의 짐을 나누어지는 모습, 만난 지 며칠 되지 않은 장미란의 은퇴식을 위해 조마조마하며 작은 이벤트를 마련해주는 모습, 또 장미란을 위해 노래 부르며 울어주는 모습, 낙산 해수욕장에 도착해서 함께 끝날 수 있어서 좋았다고, 함께 해서 좋았다고 말하는 모습은 살기 힘든 시대에 어딘가에 내 등을 두드려 줄 누군가가 있을 것 같은 위로를 준다.

단지 아쉽다면, 이 좋은 <행진>이 끝났다는 것, 그러지 말고 한 6박 7일 만큼만이라도 함께 해주었으면 싶다. 그게 아니면 계속 쭈~욱 하던가.

행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