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0일 오전 서울 마포구 한국경영자총협회를 방문한 박근혜 당선인이 이희범 경총회장으로부터 꽃다발을 받고 있다.
 20일 오전 서울 마포구 한국경영자총협회를 방문한 박근혜 당선인이 이희범 경총회장으로부터 꽃다발을 받고 있다.
ⓒ 인수위사진기자단

관련사진보기


"경제민주화가 폐기됐다는 건 오보다."(강석훈 인수위 국정기획조정분과 위원)

'신뢰'를 앞세운 박근혜 정부가 출범 전부터 흔들리고 있다. 박 당선인은 25일 0시를 기해 대통령의 권한을 이양받는다. 이에 앞서 인수위는 지난 21일 140대 국정과제를 발표하면서 '경제민주화'가 실종된 이유를 해명하느라 진땀을 뺐다. '경제민주화'란 표현만 사라졌을 뿐 그 내용은 국정과제에 반영했다고 설명했지만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경제 전문가들은 '성장 중심' 경제팀 인선과 맞물려 사실상 후퇴 신호로 해석하고 있다. 기초노령연금, 4대 중증질환 의료비 지원 등 복지 공약 후퇴도 눈에 띈다. 벌써부터 '실패한 대통령'의 길에 접어들었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과연 박근혜 당선인은 5년 뒤 '성공한 대통령'이란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 지난 대선 당시 '경제민주화' 정책 실현에 앞장섰던 경제 전문가들에게 오는 25일 출범하는 박근혜 정부의 성공 조건을 물었다. 

"정책 아니라 사람 문제... 재벌개혁 이미 물 건너가"

진보 학자로 분류되는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교수)은 지난 대선 당시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이 주도한 '박근혜표 경제민주화'에 비교적 후한 점수를 줬다. 대기업 출자총액제한이나 기존 순환출자 해소 같이 재벌지배구조를 바꾸는 강력한 대책은 없지만 징벌적 손해배상제나 집단소송제 같은 규제만 잘 살려도 재벌개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당시 김 교수는 정책 내용보다는 참모와 조직 등 '사람'을 봐야한다고 강조했다. (관련기사: "사람 잘 뽑으면 재벌개혁? 참모들 DNA를 봐라" )

140대 국정과제를 꼼꼼히 살펴본 김 교수는 '경제민주화'란 말만 사라졌을 뿐 대선 공약보다 오히려 구체적이고 '회계 부정 처벌 강화'처럼 애초 공약집에 빠졌던 내용도 다시 포함됐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문제는 이번에도 '사람'이다.

"경제민주화는 돈(재원)이 아니라 법, 제도를 잘 만들고 집행하는 데 달렸어요. 국정과제 안에 경제민주화 공약이 구체적으로 담기긴 했지만 새누리당이 다수인 국회 구조에서 그 취지를 살릴 법이 만들어 질 것이냐, 그 법을 경제부총리나 경제수석, 공정거래위원장 등이 엄정하게 집행할 거냐가 문제죠. 지금 인선된 사람은 기대하기 힘들어요."


심지어 지난 대선 당시 '경제민주화와재벌개혁을위한연대'를 조직해 경제민주화에 앞장섰던 김병권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새사연) 부원장은 "재벌개혁은 이미 물 건너갔다"고 단언했다.

"경제민주화는 서브 과제 정도로 해서 될 게 아니에요. 공개적으로 전면에 내놓고 국민 상대로 여론 조성해 나가면서 해도 될까 말까인데. 현오석 경제부총리 후보자나 조원동 경제수석 내정자도 전형적인 시장주의자에 경제민주화 의지가 없는 인물이고. 경제팀 인선과 국정과제가 맞물려 경제민주화는 사라졌다고 봐야 해요."

'사람'이 미치는 영향은 '내용'에서도 드러난다. 김상조 교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집단소송제 적용 범위가 크게 축소된 것과 함께 '다중대표소송제'가 빠진 데 주목했다.

"다중대표소송제는 견제할 주주가 없는 비상장회사에서 모회사 주주들이 대표소송을 통해 일감 몰아주기 등 총수일가 사익 추구를 견제하도록 하는 장치예요. 재계에서 가장 반발하고 있는 부분인데 이걸 뺐다는 건 다른 것도 뺄 수 있다는 신호를 준 셈이에요."

"복지 공약 후퇴는 재원 탓... '지하경제 양성화'부터 제대로 하라"

지난 대선 당시 경제민주화와 더불어 가장 큰 화두였던 복지 쪽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그나마 박근혜 복지팀 인선은 양호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문제는 재원이다.

김상조 교수는 "복지파트의 경우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최성재 사회복지수석 내정자 등이 대선과 인수위 정책 결정 과정에 개입했고 개개인은 실천의지를 가진 사람으로 평가한다"면서도 "복지파트 핵심은 재원인데 재원 문제 결정은 결국 경제 파트에 달려 있어 복지 공약이 의도한 대로 될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내가만드는복지국가'를 통해 보편적 증세를 통한 복지 재원 마련과 국민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주장해온 오건호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정책실장 역시 "복지 공약 후퇴 배경은 재정방안이 취약하기 때문"이라면서 "조세개혁추진위원회와 국민대타협위원회를 통해 조세 기반을 마련하고 재원을 늘리겠다는데 결국 증세가 기본 화두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재원 부족은 당장 '기초노령연금 20만 원 지급', '암 등 4대 중증질환 100% 지원'과 같은 박근혜 핵심 복지 공약 후퇴로 나타나고 있다. 오히려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을 통합한 '국민행복연금'은 연금 제도에 대한 불신을 낳고 있다.

인수위는 65세 이상 노인 가운데 소득 하위 70%까지는 기초연금을 20만 원씩 지급하되 상위 30%에게는 소득수준과 국민연금 가입기간에 따라 차등 지급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에 오건호 실장은 "기초노령연금과 국민연금 체계를 통합해 차등 지급하는 건 형평성 논란이 있을 뿐 아니라 서민 등 열악한 사회계층일수록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짧기 때문에 역진적이고 반서민적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오 실장은 "의료와 연금은 복지재정 규모 2/3를 차지할 만큼 중요한 영역인데 박근혜 정부는 그 두 축을 흔들고 있다"면서 "이는 한국형 복지국가가 진정한 복지국가가 아닌, '잔여적 복지'(선택적 복지) 개념으로 바뀐다는 점에서 커다란 후퇴"라고 비판했다. 

"'경제민주화' 실종은 '실패한 대통령'으로 가는 첫 징조"

왼쪽부터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교수), 김병권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새사연) 부원장,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내만복) 공동대표.
 왼쪽부터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교수), 김병권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새사연) 부원장,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내만복) 공동대표.
ⓒ 권우성·김동환·조재현

관련사진보기


이처럼 경제민주화와 복지공약 후퇴가 불보듯한 상황에서 김병권 부원장은 '늘지오(늘리고 지키고 질 올리기)'를 내세운 고용노동정책 쪽에 그나마 기대를 걸었다.

김 부원장은 "재벌과 싸울 자신이 없으면 노동 차별 없애고 근로 조건 개선하고 정규직 전환하는 게 재벌 개혁보다 더 실효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면서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의 경우 박원순 서울시장도 1년 만에 8000명 했는데 중앙정부라면 더 많이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 부원장은 "앞으로 5년은 경제 환경이 뒷받침되지 않아 섣불리 성장을 시도하거나 수출 지원에 나서도 잘 되지 않을 것"이라면서 "성장에 과도하게 의존하기보다 선거 막판에 제시한 가계부채 해소 등 10대 민생 공약 취지를 계속 지켜나가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오건호 실장은 지하경제 양성화 등을 통한 복지 재원 마련에 집중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오 실장은 "그나마 기대할 수 있는 건 지하경제 양성화와 지출 개혁이라도 철저히 하라는 것"이라면서 "그 돈으로 복지 재원을 충당하고 충당하지 못 하면 증세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상조 교수는 "박근혜 당선인이 성장으로 우선순위를 바꾸고 경제민주화를 후퇴시킨 건 주변에서 왜곡된 정보를 주입한 결과"라면서 "당선인이 이 점을 깨닫지 못한다면 결국 실패한 대통령의 길로 들어선 것이고 '경제민주화' 실종은 첫 징조"라고 경고했다.

김 교수는 "과거 정부 개혁 실패는 사람을 잘못 썼기 때문인데 경제민주화 측면에서 잘못된 사람들로 시작하지만 조정할 기회는 있을 것"이라면서 "지금 경제팀이 1년도 못 갈 거라는 얘기가 벌써부터 나오는데 어느 순간 박근혜 정부에 대한 불신이 쌓이고 국민감정이 표출되면 김종인 전 위원장이 구원투수로 등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조심스럽게 전망했다.


태그:#경제민주화, #박근혜정부, #김상조, #오건호, #김병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에서 인포그래픽 뉴스를 만들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