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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나들길 7코스에는 물이 빠지면 이렇게 또 다른 길이 나타납니다.
 강화나들길 7코스에는 물이 빠지면 이렇게 또 다른 길이 나타납니다.
ⓒ 문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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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닫이문을 열며 누가 들어선다. 기영이 엄마다. "아이들 데리러 왔어요. 애들에게 맛있는 것 사주려고요"라고 말하며 기영이 엄마는 학원 안을 들여다봤다. 엄마 목소리를 들은 기영이와 동생들이 한달음에 달려 나와 엄마에게 안겼다. 엄마도 두 손을 앞으로 뻗으며 아이들을 마주 안았다. 모자간의 상봉이 참으로 뜨거웠다.

참 별일이다. 아침에 헤어진 엄마인데 그 사이에 뭐가 그리 보고 싶다고 애들은 저리 야단일까. 그리고 학원 공부가 끝나면 집으로 돌아갈 애들인데 데리러 온 엄마는 또 뭐란 말인가.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기영이 엄마가 해주는 이야기를 듣노라니 가슴이 짠했다.

내가 운영하는 방과후 교실에는 맞벌이 가정의 아이들이 많다. 직장에 다니거나 장사를 하는 엄마들은 행여 아이가 학교 공부를 잘 따라가지 못하면 "제가 바빠서 애들 공부를 봐줄 틈이 없어요. 그래서 아이에게 늘 미안해요"라고 말하며 자신을 탓한다. 슈퍼우먼으로 열심히 사는 그녀들도 자식 일 앞에서는 작아지는 듯했다.

바다에 나가는 아빠와 엄마

기영이 엄마도 그랬다. 작년 여름에 애들 손을 이끌고 나를 찾아온 기영이 엄마는 도저히 더 이상은 안 될 것 같아서 왔다면서 애들을 부탁한다고 했다. 초등학교 6학년인 기영이 밑으로 두 명의 아들을 더 둔 기영이네는 횟집을 한다. 주중에는 예닐곱 시면 집에 돌아오지만 봄가을 같은 행락철이나 주말이면 밤늦게까지 가게 운영을 해야 하니 애들만 집에 있을 때가 많다 했다.

그러니 언제 애들 공부를 돌봐줄 틈이 있겠는가. 그래서 그런지 아이들은 기초 학습이 잘 되어 있지 않았고 특히 초등학교 2학년인 셋째는 한글도 제대로 읽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더구나 가을철이면 며칠씩 집을 비울 때도 있다. 김장용 새우와 꽃게를 잡는 가을이 되면 고기를 잡는 아빠를 따라 엄마도 바다에 나가야 한다. 아빠 혼자서는 일을 할 수 없으니 기영이 엄마가 따라가서 일손을 도와야 하기 때문이었다.

한 번 나가면 사나흘씩 바다에 있다가 오는데 그때마다 애들만 집에 있게 된다. 새벽에 잠깐 들어와서 애들이 학교 가는 것을 도와준다고 하지만 그래도 잠은 애들끼리만 자야 하니 기영이 엄마는 그게 늘 안타깝고 마음이 쓰이는 듯했다.

"월요일에 나갔다가 오늘 들어온 거예요. 나흘씩이나 집을 비웠으니 애들에게 미안해서 맛있는 것 사주려고요" 하는 그녀를 보니 속으로 부끄러웠다. 명색이 그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인데 그런 사정도 모르고 있었으니 부끄럽지 않을 수 없었다.

엄마의 손길이 많이 가지 않아서 그런지 학교 공부는 잘 따라가지 못하지만 그래도 애들은 밝았다. "우리 아빠는 어부예요. 큰 배도 있고 땅도 많아서 부자예요"라고 하면서 엄마 아빠 자랑을 했다. 아빠가 새우를 잡아서 돈도 많이 번다면서 선생님도 회가 드시고 싶으면 자기 집으로 오시라고 한목소리로 외쳤다. 부모님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아이들이 예쁘게 보였다.

저 갯벌에는 어떤 생명체들이 깃들어 살아갈까요?
 저 갯벌에는 어떤 생명체들이 깃들어 살아갈까요?
ⓒ 문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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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가 아이를 키운다

아이들만 두고 바다에 나가는 기영이네를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말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아무리 생업이 중하고 일이 바쁘다지만 어떻게 어린 애들을 두고 며칠씩 집을 비울 수 있느냐면서 그이는 고개를 내저었다. 하지만 기영이네 입장이 되어보지 않고는 비난할 수 없는 일일 터였다. 오죽하면 그렇게 하겠느냐고 동정론을 펴는 사람도 있었다.

애들을 봐줄 사람이 있으면 그리 하겠는가. 더구나 밤에는 바다에서 남편을 돕고 새벽에 집에 와서 애들을 학교 보내고 또 낮에는 횟집까지 하는 기영이 엄마는 몸이 몇 개라도 부족할 판이다. 그렇게 몇 사람 몫의 일을 하면서도 힘든 내색도 하지 않는 기영이 엄마는 오히려 상을 받았으면 받았지 비난을 받을 사람은 아니다.

그래도 1년 내내 그렇게 사는 건 아니고 새우를 잡는 가을 한철만 그리 한다고 했다. 아침 한 끼만 집에서 챙겨먹으면 점심은 학교 급식으로 해결하고 또 저녁은 지역아동센터에서 챙겨준다고 하니, 학교와 지역이 작게나마 아이들을 거둬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러고 나서 며칠 뒤였다. 그날은 강화 나들길 7-1코스를 걸은 날이었다. 7-1코스는 마니산 아래 동네인 화도터미널에서 출발해서 동막해수욕장까지 가는 약 24킬로미터의 길로, 나들길 중에서 가장 긴 코스이다. 예닐곱 시간 가까이 걸어야 하는 길이라서 힘들지만 마니산 자락을 넘어 드넓은 바다를 보노라면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호쾌함을 느낄 수 있는 길이 바로 7-1 코스다.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에 종착점인 동막해수욕장에 도착했다. 한 시간에 한 대 꼴로 있는 버스가 오기를 기다리며 정류장에 서 있는데 저쪽에서 누가 종종거리며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기영이 엄마였다. 급히 살 게 있어서 가게에 오는 길이었나 보다.

주말이라 횟집을 찾은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니 가게가 바빴을 테고, 애들은 자기들끼리 집에 있었을 것이다. 애들 안부를 물어보니 아닌 게 아니라 종일 집에서 놀고 있다고 한다. 텔레비전을 보고 컴퓨터만 하느라 글 한 자 읽지 않는다면서 기영이 엄마는 한숨을 내쉬었다.

바다도 갯벌도 한 몸입니다.
 바다도 갯벌도 한 몸입니다.
ⓒ 문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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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아이가 잘 되는 게 내 아이가 잘 되는 길

바다에 나가지 않아도 엄마는 애들과 함께 있지 못한다. 컴퓨터와 텔레비전이 바쁜 엄마를 대신해서 애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서기에는 책이 가진 매력은 너무나 작고 보잘것없어 보인다. 그러니 제 스스로 책을 찾아 읽는 아이가 몇이나 되겠는가. 기영이와 동생들도 책하고는 담을 쌓은 지 오래였다. 그래서 그 또래 아이들이 알 만한 기본 상식마저 잘 모르는 게 많았고 학교 공부도 잘 따라가지 못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형제가 셋이라서 자기들끼리 친구가 되어 지낼 수 있다는 것이다. 혼자 지내야 하는 외동이들보다는 그래도 형제가 많으니 심심하거나 외롭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애들은 외로웠을지도 모른다. 일과가 끝나서 집에 돌아가면 아무도 없는 집엔 정적만이 감돌 것이고 잠자리에 들 때면 또 얼마나 허전했을까. 엄마를 찾으며 잠이 들지는 않았을까.

애들끼리만 며칠씩 지낸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달리 나서지 않았다. 내가 한 일이라곤 학원에 온 아이들에게 밥은 먹었는지 물어보는 게 다였다. 무슨 일이 있으면 선생님에게 연락하라는 말을 애들에게 한 걸로 스스로 면피를 하며 부끄러운 마음을 숨겼다.

기영이네의 처지를 들은 한 사람이 애들을 돌봐주겠다고 나섰다. 기영이 엄마가 바다에 나갈 때마다 자기 집에서 애들을 데리고 있겠다고 했다. 마침 그 집 아이가 기영이와 한 반 친구이니 애들끼리는 잘 지낼 터였다. 하지만 그게 어디 보통 일인가. 내 애 챙기기도 바쁠 텐데 남의 애를 셋씩이나 챙겨준다니, 말이 쉽지 보통 사람은 할 수 없는 일이다.  

남의 아이가 잘 되는 게 곧 내 아이가 잘 되는 길이라며 승민이 엄마는 기영이 형제를 거두어주었다. 내 아이만 챙기는 게 세상의 인심인데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온 것일까. 나는 내 발 밑만 바라보며 길을 걸었는데 승민이 엄마는 주변까지 살피며 길을 걷는 사람이었다. 나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속은 더 깊은 그녀의 인생길 발걸음에 경의를 보냈던 지난가을이었다.


태그:#강화나들길, #나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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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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