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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에게 가장 기억에 깊게 남는 음식을 꼽으라면 무엇이 있을까요. 고된 일을 마치고 온 가족이 둘러앉아 맛있게 먹었던 김치찌개나 된장찌개를 떠올릴 수도 있습니다. 먼 고향에서 어머니가 보내주신 맛좋은 반찬들, 비오는 날이면 꼭 생각나는 부침개도 빼놓을 수 없겠죠. 겨울철에 아이들과 함께먹는 군고구마는 또 어떨까요? 삶은 달걀과 김밥, 길에서 파는 떡볶이는요? 정말 여러 음식들을 나열하다보니 저절로 침이 흐릅니다.

자, 여기에 빠지면 너무나 섭섭해 할 음식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 누구나 한번쯤은 먹고 싶다고 엄마를 졸랐을 음식. 한 그릇만 있으면 왕이 부럽지 않았던 음식. 특히 졸업식이나 입학식, 어린이날이면 반드시 먹어야했던 음식. 어른이 되면서 가벼운 주머니에 간단하게 한끼를 때울 때 먹었던 음식. 뭔지 떠오르시나요? 바로 짜장면입니다.

1905년 인천을 통해 들어온 중국음식 짜장면은 그 오묘한 맛으로 사람들을 홀렸습니다. 젓가락으로 짜장면을 비비는 재미에서부터 잘게 썬 돼지고기·감자·양파, 손으로 직접 뽑은 면은 얼마나 맛있었는지요? 중간중간 춘장에 찍어먹는 단무지와 생양파의 맛은 또 얼마나 좋았나요? 그 맛에 어린 아이들은 짜장면을 먹는 어른들을 보면 침을 흘렸고 집에 와서 짜장면 한 그릇 먹자고 엄마를 졸랐죠.

당연히 아이들의 졸업식, 입학식의 주메뉴는 짜장면이었습니다. 그날의 행복은 무슨 말로 표현이 가능할까요? 짜장면을 마음껏 먹을 수 있고, 여유가 있으면 고급 음식인 탕수육도 먹을 수 있었던 그날의 기억을 여전히 간직하시는 분들이 많으시리라 생각됩니다.

서민 물가를 대표하는 음식으로 변모하다

짜장면이 참 먹음직스럽습니다
 짜장면이 참 먹음직스럽습니다
ⓒ 임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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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하게도 짜장면은 어떤 특정한 상황에서 맛을 느낄 수 있는 음식이었습니다. 입학식·졸업식은 물론이고 이사 가는 날의 점심도 짜장면이 대세였지요. 당구 좋아하시는 분들도 짜장면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계실 겁니다. 중국집에 전화를 하고 '한 게임' 친 후 먹는 짜장면 맛, 참 환상이었죠.

지금의 짜장면은 가벼운 주머니의 서민들이 한 끼를 때우는 음식입니다. 물가가 올랐다는 뉴스가 나올 때 어김없이 등장하는 게 바로 짜장면 가격입니다. 짜장면 가격이 서민 물가의 대표가 될 정도로 짜장면은 서민 생활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됐습니다.

이 짜장면을 짜장면이라 부르지 못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원래 말을 따라야 한다고 '자장면'을 표준어로 정했기 때문이죠. '자장면'이라고 해야 품격이 있어보이고 '짜장면'을 쓰면 왠지 좋은 우리말을 파괴하는 듯한 그런 분위기가 형성되기도 했던 때. 하지만 이젠 마음껏 짜장면이라고 써도 됩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말이 됐으면 표준어가 될 자격이 충분한 거죠.

"여긴 학교가 없으니까... 직장인이 주로 오지"

짜장면은 이렇게 비비는 맛이 또 별미입니다
 짜장면은 이렇게 비비는 맛이 또 별미입니다
ⓒ 임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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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청량리역 부근에 있는 허름한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시켰습니다. 곱배기입니다. 짜장면 한 그릇도 다 먹지 못했던 아이는 이제 곱배기를 먹어도 금방 배가 꺼지는 어른이 됐습니다. 참 묘한 것은  깨끗하고 화려한 음식점보다는 약간 허름한 음식점의 짜장면이 더 맛있다는 겁니다. 마침 간판을 보니 '30년 전통'이라고 써 있었습니다.

"사장님, 간판을 보니까 30년 전통이라고 하는데 진짜에요?"
"사실 가게는 40년 가까이 됐어요. 중간에 주인이 바뀌었지."
"그럼 계속 이 자리에 있었다는 건가요?"
"그럼요, 계속 있었어요."
"요즘이 한창 짜장면 많이 먹을 때잖아요. 졸업하고 입학이고..."
"아이고, 여긴 인근에 학교가 없으니까 그런거 몰라요. 여기는 철도청하고 백화점 사람들이 주로 오지."

주인은 바뀌었지만 자리는 그대로 유지했다는 이곳. 여기는 인근 직장인들에게는 가격을 싸게 해서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예전에 먹은 짜장면 맛 그대로입니다. 엄마를 졸라서 먹었던 바로 그 짜장면 맛이요.

그러고보니 짜장면을 미치도록 먹고 싶어하던 사람이 떠오릅니다. 바로 영화 <김씨표류기>의 주인공 '남자 김씨'입니다. 밤섬에 표류돼 혼자 살던 김씨가 짜장면을 먹기 위해 새똥에서 씨를 빼내 농사를 지어 마침내 면을 만들어내죠. 그는 '여자 김씨'가 보내준 짜장면을 거절하며 이렇게 말하죠. 짜장면은 자기의 희망이라고. 그 희망을 깰 수 없다고.

누구에게나 추억의 음식으로 남아있을 이 묘한 향과 맛의 음식. 캬라멜이나 조미료가 많이 들었다고 이야기하지만 그럼에도 점심시간이면 맛있게 먹게되는 음식. 짜장면은 그렇게 지금도 우리들의 허기진 배와 마음을 채워주는 음식으로 남아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서울문화투데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짜장면, #중국집, #졸업, #입학, #김씨표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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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솜씨는 비록 없지만, 끈기있게 글을 쓰는 성격이 아니지만 하찮은 글을 통해서라도 모든 사람들과 소통하기를 간절히 원하는 글쟁이 겸 수다쟁이로 아마 평생을 살아야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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