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 영화라고 볼 수 있는 고전 <레미제라블>과 착한 코미디 영화 <7번방의 선물>이 극장가를 강타하고 있다. <레미제라블>은 한국영화의 돌풍 속에서도 지난해 12월 18일 개봉하여 롱런하며 13일 현재 관객 600여만 명을 동원했고, <7번방의 선물>은 지난달 23일 개봉하여 600만 명을 훨씬 넘긴 관객을 동원했다. 왜 이 두 영화가 관객을 감동시키는 걸까?

이미 잘 알고 있는 스토리의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이 뮤지컬을 거쳐 영화로 스크린에 오른 것은 신선할 것까지는 없다. 그러나 그 속에 든 아웃사이더들의 고뇌와 아픔 너머로 드러진 바리케이드는 꼭 철거하고 싶은 마음을 품게 만든다. 그래서 새로울 것 없는 게 신선하다.

'웃기고 울리는 본격 최루 코미디'라고 표현한 한 영화 평론가의 말처럼, 영화를 보면서 하마터면 입 밖으로 흐느낌을 토해낼 뻔했던 <7번방의 선물>, 코미디라고 말하기에는 너무도 잔인하게 관객을 울리고 만다. 너무 사랑스러워 잔인하고, 너무 비정하여 잔인하다. 스펙터클한 판타지에 길들여진 요즘 관객들과는 좀 거리를 둔 영화들이지만 진한 감동으로 가슴을 적시게 만드는 것은 왜일까?

# <레미제라블> 속 아웃사이더

 영화 <레미제라블> 포스터

영화 <레미제라블> 포스터 ⓒ UPI 코리아

장발장(휴 잭맨 분)은 빵 한 조각을 위해 처절한 인생과 맞닥뜨린다. 허기진 조카를 위해 몸뚱이를 다그치지만 호락호락하지 않다. 결국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빵을 훔치고 만다.

박 당선인이 대통령이 되면 특별사면을 단행하겠다고 공헌하는 소위 민생범죄인 것이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5년을 선고받았고, 탈옥범으로 형이 더해져 19년을 감옥에서 지내야했다. 그의 삶은 어디를 봐도 기득권이나 성공하고는 거리가 멀다. 형기를 마치고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이 처절한 인생 앞에는 기득권이 붙인 감시자가 따라붙는다.

감시자 자베르 경감(러셀 크로우 분)은 주어진 권세에 충실하다. 언제나 장발장 곁에는 자베르가 있다. 감시하는 인생, 감시받는 인생, 실은 우리가 볼 때 이들 모두 아웃사이더 혹은 루저다. 주체적 인생이 못 되는 건 조그만 권세를 등에 업고 장발장을 쫓는 자베르 역시 다를 게 없으니까. 장발장 주변의 사람들 역시 밑바닥 인생을 산다. 아이의 양육을 위하여 공장을 전전긍긍하는 여성들, 그들 중 한 사람이 판틴(앤 헤서웨이 분)이다. 심지어는 몸을 팔 수 밖에 없는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오늘날도 여전히 우리 곁에는 이런 밑바닥 인생이 차고 넘친다.

철저히 외면당하고, 철저히 무시당하는 인생은 장발장만이 아니다. 1970~80년대 프랑스 혁명기의 민중이 또한 그랬다. 민중 봉기라는 서글픈 운명 앞에 몸을 밀어 넣고 과격한 구호와 극한 투쟁을 벌일 수밖에 없었다. 독재와 가득권이라는 대세에 항거하는 수단이라곤 자신들 앞에 바리케이드를 치는 것이 고작이었다. 오늘날 크레인 위에 올라 자신들의 아픔을 호소하는 노동자들의 피눈물 나는 외침처럼, 공허한 듯하여 눈물이 난다.

장발장과 혁명가들의 도저히 닿을 수 없을 것 같은 파라다이스가 있기는 한 것인가? 그러나 영화는 장발장이 판틴의 딸 코제트(아만다 사이프리드 분)를 키워 혁명가 청년 마리우스(에디 레드메인 분)와 결혼시킴으로 아웃사이더들의 삶에도 역전이 있음을 보여준다.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자베르 경감이나 비록 바리케이드의 사선을 넘나들다 운명을 달리하는 혁명가들에게는 성공한 삶이라 치부될 수 있는 흔쾌함을 주기에, 장발장, 마리우스, 코제트가 그나마 관객을 위로한다.

# <7번방의 선물> 속 아웃사이더

그러나 <7번방의 선물> 속 아웃사이더는 철저히 구겨져 버린다. 죽음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구도가 너무나 관객을 안타깝게 만든다. 주인공은 지적장애인이다. 결론 또한 <레미제라블>과는 사뭇 다르다. 쉽게 말하자면 <레미제라블>의 아웃사이더가 성공한다면 <7번방의 선물>의 아웃사이더는 실패한다. 전자는 성공해서 눈물이 나고, 후자는 실패(실은 그게 성공이라고 영화는 말하고 있다)해서 가슴 뭉클하다.

딸보다 못한 지능으로 천사 딸을 사랑하는 딸 바보 아빠 용구(류승룡 분)의 아픔은 그의 연기력 탓인지 너무나 사무치게 가슴에 다가온다. 혹자는 류승룡이 혼자 이 영화의 흥행기록을 써가고 있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7번방 식구들의 조연도 상큼한 양념처럼 돋보이지만, 류승룡의 바보연기는 가히 천재적이다. 천진무구한 사랑에 영화를 보는 내내 몇 번인가 모를 흐느낌을 참는 게 여간 곤욕이 아니다. 용구의 자기소개는 울다가 웃게 만든다.

"이용구, 1961년 1월 18일 태어났어요. 제왕절개. 엄마 아팠어요. 내 머리 커서. 허~엉"

 영화 <7번방의 선물> 포스터

영화 <7번방의 선물> 포스터 ⓒ NEW

그러나 그의 천진난만한 사랑이 권력 앞에 무릎을 꿇고 만다. "네가 죽어야 딸이 산다"는 어처구니없는 논리는 그가 선택할 유일한 길이다. 오늘날에도 서글픈 우리의 88만 원 세대들이, 하루하루 품삯을 위해 인력시장에다 자신을 파는 이웃들이, 철탑 꼭대기에 올라가 살바람에 자신을 맡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이런 유일한 길을 선택해야 하는 것일까. 죽는 줄 알면서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권력이 내민 달콤한 유혹의 손을 잡고야 마는...

딸에게 세일러문 가방을 사주기 위해 마트에서 허드렛일에 온몸을 사르는 그에게 '어린이 강간 치사범'이라는 죄명은 너무나 가혹하다. 억울하게 감옥에 갇히고, 후에 딸 예승(갈소원 분)이의 삼촌 팬들이 되는 7번방의 식구들인 오달수, 김정태, 박원상, 정만식, 김기천 등의 피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형당해야 하는 아웃사이더, 용구는 그렇게 실패했다. 그래서 가슴 절절히 애절하다.

후에 비록 사법연수원에서 벌어지는 모의재판이긴 하지만 성인이 된 예승(박신혜 분)이 변호사가 되어 아버지의 죽음이 부당함을 변호하는 통쾌함이 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모의재판일 뿐이다. 죽음으로 딸을 살려낸 구도에서는 그 살아난 딸이 아버지를 다시 살릴 수 없다는 난제 앞에 속수무책이다.

# 아웃사이더의 역습, 통쾌하다

두 영화 모두 흥행가도를 달려가고 있다. 두 영화 모두 나를 울게 만들었다. 두 영화 모두 아웃사이더들의 역습에 침착한다. 두 영화 모두 종교, 선과 악, 기득권과 소외층 등의 이념을 적절히 영상화시킨다. <레미제라블>이 음악적 스펙터클의 영상화라면, <7번방의 선물>은 해학을 가미한 소시민적인 삶의 영상화다. 후자는 앞에 든 가치들에 장애인, 유괴, 살인, 사건의 재구성 등의 살을 덧붙였다. 이 미묘하고 근소한 차이가 관객을 더 울게 만든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어떤 틀이 있다. 악인은 악한 행위를 하는 사람이다. 선인은 선한 행위를 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두 영화에서는 그런 도식에 선을 긋는다. 악인도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세상의 법이 낙인찍은 어떤 테두리를 무너뜨리는데 과감하다. 그 과감성 때문에 가슴이 뭉클하다. 장발장은 죄인이지만 선한 사람이다. 용구는 선한 사람이지만 옥살이를 한다. 7번방 식구들은 강간, 살인, 밀수범, 사기꾼, 소매치기, 자해공갈범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가슴 따듯한 이야기를 선물한다.

<7번방의 선물>은 재판의 모순, 경찰간부의 비리, 사형제도의 불합리성 등을 건드리며 회화화하지만  이슈화하지는 않는다. 변죽을 울림으로 관객의 맘을 더욱 가슴 저리게 만든다. <도가니>나 <부러진 화살>에서처럼, 무엇인가 터뜨려 주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다소 실망했을 것이다. 그 점은 <레미제라블>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포인트가 있다. 아웃사이더의 역습이라는 점에서 두 영화는 만난다. <레미제라블>이 장발장이나 여타 그 부류 사람들의 성공이라는 메커니즘으로 접근한다면, <7번방의 선물>은 철저히 용구의 희생의 메커니즘으로 접근한다. 전자가 살아서 역습한다면, 후자는 죽어서 역습한다. 죽음이야 말로 아웃사이더의 부활의 기저라고 말한다.

내게 점수를 주란다면 단연 후자다. 성공의 힐링 보다는 실패의 힐링이, 살아서 힐링하기 보다는 죽어서 힐링하는 게 더 가슴에 남기에. 우리의 역사 속에서 죽어서 우리에게 더 많은 기쁨과 행복을 안겨준 모든 이에게 박수를 보낸다. '사즉생 생즉사(死卽生 生卽死)', '죽으려고 하면 살 것이요,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다'라는 이순신 장군의 어록이 떠오른다. 같은 내용의 성경을 인용하며 글을 마친다.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마태복음 10장39절)

레미제라블 7번방의 선물 아웃사이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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