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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 이야기는 음악이 되었을까>
 <왜 그 이야기는 음악이 되었을까>
ⓒ 팜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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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 헝가리 출신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한 남자가 약혼녀와 이별하는 아픔을 겪는다. 남자는 이별의 아픔을 다스리고자 이별하는 남자가 절망하다가 죽음을 선택하게 되는 노래 한곡을 만들게 된다.

그런데 1936년 1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한 제화공이 남자가 만든 곡의 가사를 인용한 유서를 써놓고 자살하는 것을 시작으로, 아마도 남자가 만든 곡과 직접 연관된 것 같은 자살사건이 꼬리를 물고 지속적으로 일어난다.

그 곡을 거리의 어느 밴드가 연주하는 동안 행인 두 명이 권총자살을 한다던가, 늦은 밤 클럽에서 이 곡을 들었던 젊은이들이 부다페스트를 가로지르는 다뉴브 강에 몸을 던진다든가, 자살 현장에 가보니 남자가 만든 곡이 수록된 앨범이 있었다던가 등과 같은.

부다페스트에서 시작된 자살은 베를린 등으로 번져간다. 이에 유럽 여러 나라들은 바짝 긴장을 하게 되고 헝가리 당국은 수사를 하게 된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자살한 사람들 주변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남자가 만든 곡을 포착, 이 모든 죽음들이 이 곡과 연관이 있다고 단정하게 된다. 그리하여 부다페스트 전역에서의 방송 불가판정을 내린다.

영국의 BBC방송도 보컬 버전은 폐기하고 연주버전만 틀게 된다. 그러나 이런 조치에도 불구하고 신경과민제 과용으로 사망한 영국 여인의 집에서 연주곡 '글루미 선데이'가 흐르고 있는 등 이와 연관된 것으로 추정되는 자살은 계속 일어난다.

이와 같이 '글루미 선데이'의 살벌한 기록은 넘쳐난다. 노래를 소재로 한 영화와 소설이 나왔다. 논문도 몇 개 있다. 소문으로만 전해지는 이른바 '카더라'도 넘쳐난다. 내용은 약간씩 다르지만 결국 대량 자살로 결말이 난다. 구체적인 데이터도 있다. 헝가리에서 이 곡을 듣고 죽은 사람만 187명이라는 것, 1936년 4월, 파리에서 유명한 지휘자와 함께 오케스트라로 시연되었을 때 드러머를 시작으로 연주자들이 차례로 죽음을 택했다는 것, 원본 악보를 헝가리 당국이 폐기하고 나치도 전량 회수했지만, 누군가 기어이 찾아내 연주했다가 자살했다는 것 등. - <왜 그 이야기는 음악이 됐을까>에서

레조 세레스(Rizso Seress, 1899~1966)의 '글루미 선데이'에 얽혀있는, 1930년 이후 헝가리를 비롯한 유럽을 바짝 긴장하게 한 노래에 얽힌 사연이다. 이런 사연 때문에 이 곡은 세계적으로 '죽음을 부르는 노래' 혹은 '자살을 부추기는 노래', '자살 찬가' 등으로 유명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노래는 이런 사연들과 함께 알려져 있다.

그런데 정말 노래 한 곡이 그 많은 사람들을 죽게 했을까? 그렇다면 왜? <왜 그 이야기는 음악이 됐을까>(팜파스 펴냄)는 아름답고 치명적인 노래(혹은 음악)에 얽혀있는 사연들을 바탕으로 특정 음악과 음악인에 대해 알려주는 음악에세이다.

저자는 한 음악잡지의 편집인으로 라디오 음악 방송 원고를 쓰거나 <씨네21>이나 '다음 뮤직', '네이버뮤직' 등에 음악이야기 등을 기고하는 이민희씨. 풍부한 음악 상식을 바탕으로 특정의 곡과 특정 음악인에 얽혀있는 사연들을 들려주는 저자에 의하면 헝가리는 자살공화국이라 불릴 만큼 자살률이 워낙 높은 나라다.

이 노래에 얽혀있는 이런 사연을 영화로 만든 <글루미 선데이>(1999년)의 각본을 쓴 피터 뮬러가 '친척이나 친구의 자살을 한 번쯤 접하는 게 헝가리인들의 일상(책에서)'이라고 말할 정도로 말이다.

자살의 원인으로 헝가리 수도의 연중 축축한 날씨를 꼽는 해석도 있다. 다음으로는 지리적, 역사적 견해가 있다. (…)일부학자들은 더 구체적으로 자살의 이유를 진단했다. 제 2차 세계대전이후 찾아온 경제난, 사회적 지위의 추락과 인구 50% 이상의 대대적인 도시 이주가 원인이라는 것이다. 헝가리는 중부 유럽의 대표적인 농업국가로 국토 절반 이상이 대평원이다. 전쟁 이후 1949년 헝가리 인민 공화국이 수립되면서 농지의 1/3을 소농에게 주는 토지개혁을 추진하지만, 식량난만 초래하고 말았다. 국가 주도의 중공업 정책도 역시 실패했다. 무리한 산업화로 노동자의 대대적인 반발만 돌아왔다.

끊임없이 노동하지만 대가가 보장되지 않자 서민의 삶은 피폐해져 갔다. 고단한 삶은 대량 자살을 불러왔다. 자살이 빈번해질수록 죽음만이 삶의 문제를 해결할 열쇠이자 가장 강력한 복수가 된다는 인식 또한 팽배해졌다. 역병처럼 번져나간 자살은 경제가 안정된 이후에도 지속됐다. 1980년대에는 인구 10만 명당 자살 인구가 45명에 육박했다. - <왜 그 이야기는 음악이 됐을까>에서

헝가리의 높은 자살률에 대한 이와같은 믿을 만한 구체적인 해석들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인터넷 공간에서 만날 수 있는 '글루미 선데이' 관련 이야기들은 거의 대부분 자살할 이유가 전혀 없는 사람이 순전히 이 곡 때문에 충동적으로 자살했다는 식이다. 그와 함께 엄청난 숫자가 이 곡 때문에 죽었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처럼 '글루미 선데이'가 탄생한 본고장인 헝가리인들의 자살률이 높다는 사실은 거의 언급하지 않고 말이다.

사실 이 책에서 이 곡보다 재미있게 읽은 것은 거리의 소녀였던 에디뜨 피아프의  'La Vie en rose'(1947)와 멀쩡한 노래가 전골(찌개)이 되어버린 사카모토 규의 '위를 보며 걷자(上を向いて步こう, 1961)', 자우림의 'EV1(2011)', 엔니오 모리꼬네 &조안 바에즈 'The Ballad of Sacco &Vanzetti'(1971)에 얽힌 이야기다.

물건을 너무 좋게 만들면 수리할 일도 새로 살 일도 줄어들 수밖에 없고, 그러면 결과적으로 돈벌이를 방해하니 대략 쓸 정도로만 만들면 된다? 인류를 위한 바람직한 자동차임에도 자본의 이윤 추구 논리를 우선해 멀쩡한 차들을 폐기처분한 현실을 고발하는 전기자동차 EV1 이야기는 특이 인상 깊게 남고 있다.

살인 누명을 쓰고 처형 날짜가 임박해 있는 이탈리아 출신의 노동자 사코와 반체티. 수많은 사람들과 예술인들의 구명 운동에도 불구하고, 아니 진범이 밝혀졌음에도 미국의 어떤 입장과 이익을 위해 결국 처형되고 마는 두 노동자. 미국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오심으로 남고 있는 사코와 반체티 사건 그 진실 'The Ballad of Sacco &Vanzetti'도 인상 깊었다.

그럼에도 이 곡을 언급함은 이젠 제발 이 노래가 '자살을 부추기는 노래' 혹은 '죽음을 부르는 노래','자살 찬가'로만 기억하지 말기를... 특히 누군가의 죽음 그 동기로 지레짐작 연관 짓지 말았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 때문이다.

내가 이 곡을 접한 것은 2003년이다. 설마 노래 한 곡이 그토록 많은 사람들을 죽였을까? 반신반의하면서도 적잖은 충격을 받았었다. 책을 통해 오랜만에 이 곡의 사연을 접하며 오랜만에 '글루미 선데이'를 들어보고 싶어 검색해 보니 아쉽게도 우리나라 모 연예인의 죽음과 맞물려 쓴 것 같은 그런 기사들이 보인다. 아쉽고 씁쓸하게도 말이다.

아무렴 노래 한 곡이 전혀 죽을 이유가 없었던 그 많은 사람들을 죽이기야 했겠는가. 위에서 인용한 것처럼 끊임없이 노동을 해도 대가가 제대로 주어지지 않은데서 오는 상실감과 그로인한 절망 등 먹고사는 문제와 직접 관련된 어떤 절실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겠지.

다시 '글루미 선데이' 이야기. 사실 레조 세레스는 당시 '세상의 끝'에 해당하는 'Vege a vilagnak'란 이름으로 발표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우울한 일요일', 즉 '글루미 선데이'가 된 것은 당대 시인인 라즐로 자보가 노랫말을 붙이면서란다.

여하간 이 곡은 발표와 동시에 대단한 인기를 얻고, 뜻밖의 폭발적인 반응과 그로인한 성공에 도취된 레조 세레스는 사랑을 간절하게 원하며 헤어진 약혼녀를 찾아간다. 그러나 그를 맞이한 것은 독약을 먹고 자살한 그녀의 싸늘한 죽음과 그 옆에 놓인 '글루미(Gloomy)'와 '선데이(Sunday)'를 쓴 메모지 한 장뿐이었다. 레조 세레스가 크게 낙담했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약혼녀의 죽음 이후 자신의 곡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있다는 소식을 계속 접하게 된다. 의도와 달리 그의 성공은 남의 생명과 맞바꾸며 축적된 '악의 부'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자 그는 미국에서 이 곡의 저작권료를 거부하거나 헝가리에서 받는 저작권료를 공산당에 기부하는 등 나름 속죄하고자 한다.

헝가리의 자살예방 노력
세계보건기구의 1991년의 보고에 따르면 헝가리인들의 자살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에 헝가리는 2002년부터 미국의 '자살예방재단'과 연계해 국가차원의 자살 예방 프로젝트를 이끌었다. 결과, 1980년대 인구 10만 명당 자살 인구가 45명이었던 것이 2003년에 27.7명, 2005년에는 22.6명으로 줄었다고 한다. 그러나 여전히 자살률이 높은 나라라고 한다(책에서 정리/김현자)
또한 클럽에서 연주하는 등 성실한 연주자로 살아가며 부정적인 평판을 씻고자 새로운 곡을 발표한다. 그러나 세상은 그와 그가 발표한 곡을 외면하고 만다. 그리고 '글루미 선데이'에 대한 부정적인 평판이 계속되고 부각된다. 이에 낙담한 레조 세레스는 자신의 노래를 듣고 자살했다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자살하고 만다.

'글루미 선데이'가 한 사람을 정말 죽인 것이다. 그런데 정말 레조 세레스를 죽인 것은 이 곡 때문인가? 정말 그 많은 사람들을 '글루미 선데이'가 죽였다는 것이 맞는가? 답은 독자들 몫으로 돌린다.

<왜 그 이야기는 음악이 됐을까>는 이 곡 위에서 언급한 곡들 외에 사이먼 앤 가펑클의 'El Condor Pasa'(1970), 존 레논의 'Imagine'(1971), 빌리 홀리데이의 'Strange Fruit'(1939) 등 우리에게 명곡으로 많이 알려진 곡들에 얽혀있는 사연들을 접할 수 있어서 재미있게 읽은 책이다.

이 책이 재미있는 이유 중 또하나는 사람들을 종종 조바심나게 하고 긴장시키는 '반전'의 짜릿함을 각 이야기마다 빠뜨리지 않고 담고 있다는 것. '글루미 선데이' 이야기가 길었는데 그럼에도 다 이야기하지 못했다. 책을 통해 느낄 수 있는 반전 그 재미를 느낄 기회를 빼앗는 것 같아서.

덧붙이는 글 | <왜 그 이야기는 음악이 되었을까>ㅣ이민희 씀| 팜파스 | 2013-01-31ㅣ정가 13,000원



왜 그 이야기는 음악이 되었을까 - 아름다운 멜로디 뒤에 가리어진 반전 스토리

이민희 지음, 팜파스(2013)


태그:#글루미 선데이, #EV1, #레조 세레스, #자살, #GLOOMY SUN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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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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