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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태백산맥>에서 정현동의 술도가로 묘사된 국일식당
 소설 <태백산맥>에서 정현동의 술도가로 묘사된 국일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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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맥 문학관 관람을 마치고 점심은 최근 몇 년 사이 벌교의 대표 음식으로 떠오른 꼬막정식을 먹기로 했다. 어딜 가나 꼬막집이니, 맛은 어금버금할 것이고, 걸쭉한 아랫녘(남도) 사투리가 듣고 싶었다. 해서 어느 식당이 가장 오래되었고, 손맛도 좋은지 수소문 끝에 60년 전통을 자랑하는 국일식당을 찾아갔다.

식당은 옛날 술도가 자리로 최근에 조성된 문화거리에 있었다. 700m 남짓 되는 문화거리는 일제강점기 벌교에서 가장 번화했던 '본정통'으로 시대극 세트장 같았다. 소설 <태백산맥>에서 빨치산 토벌대원들이 숙소로 이용하는 남도여관(보성여관)과 마주하고 있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점심때가 지나서 그런지 식당은 한산했다.

"어서들 오씨요. 방이랑 따뜻항께 저그 가운데 방으로 들어가씨쇼."

60대 후반으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고단한 몸을 의자에 기대고 한가로움을 즐기다가 벌떡 일어나며 반갑게 인사했다. 함지박만 한 얼굴에 백열등 불빛 같은 홍조가 가득해서 여유와 온기가 한꺼번에 와 닿았다. 큰 체구만큼이나 말도 시원시원했다. 오랜만에 듣는 남도 사투리는 잘 삶아진 꼬막만큼이나 쫀득하고 차지게 느껴졌다.

'꼬막 코스요리'인지 '꼬막 정식'인지 헷갈려

별미 중의 별미였던 꼬막부침개.
 별미 중의 별미였던 꼬막부침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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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막 정식 2인분을 주문하고 10분쯤 지났을까,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꼬막부침개를 접시에 담아왔다. 기다리는 동안 맛보기로 내온 것이라 했다. 노릇노릇하게 구워낸 고소한 부침개는 별미 중의 별미. 드문드문 박힌 쫄깃한 꼬막과 입맞춤을 하면서 먹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는데 삶은 꼬막을 한 대접 내왔다. 삶은 꼬막도 맛보기.

푸짐해서 좋긴 했으나 까먹는 일이 장난이 아니었다. 꼬막들이 뾰로통하게 삐친 막냇손자처럼 입을 앙다물고 있어서였다. 아내도 밤톨만 한 꼬막을 까기가 어려운지 만지작거리며 낑낑댔다. 마침 아주머니가 들어와 빨간 손잡이가 달린 집게 하나를 상위에 내려놓으면서 "여그 앉어도 되지라?"라고 묻더니 대답도 하기 전에 바짝 다가앉았다.

씹을수록 감칠맛이 더하는 참꼬막. 패인 골과 엉덩이 사이가 넓다.
 씹을수록 감칠맛이 더하는 참꼬막. 패인 골과 엉덩이 사이가 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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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머니 고향은 전남 순천이라고 했다. '순천은 맛과 미색이 뛰어난 도시'라고 덕담을 건네며 '순천댁'이라 불러도 괜찮겠느냐니까 "그람요, 그라지라!"라며 홍조 띤 얼굴이 보름달처럼 환해졌다. 순천댁은 입을 야무지게 다문 꼬막은 손으로 까기가 어렵고 까딱하면 손톱이 상한다며 집게로 쉽게 까먹는 법을 알려주었다. 방법은 간단했다.

볼록하게 올라온 꼬막 엉덩이 사이에 집게를 넣고 살짝 누르니까 '쩍' 소리와 함께 갈라지면서 간간한 국물에 흥건히 젖은 통통한 속살이 가득. 혀끝과 입술로 살살 돌려가며 후루룩 빨아 먹는 재미가 쏠쏠했다. 순천댁의 구수한 입담은 다시없는 양념. 눈으로 보고, 입으로 맛보고, 귀로 듣는 삼박자가 어우러져 꼬막 맛을 배로 즐길 수 있었다.

한상 가득 차려나온 국일식당 꼬막정식
 한상 가득 차려나온 국일식당 꼬막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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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막정식의 ‘반찬대장’ 꼬막된장국.
 꼬막정식의 ‘반찬대장’ 꼬막된장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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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교의 넉넉한 인심과 깔끔함이 묻어나는 꼬막정식은 맛보기로 나온 부침개와 삶은 꼬막 외에 반만 깐 양념꼬막, 완전히 까서 무친 무침꼬막, 꼬막회무침, 꼬막된장국 등 온통 꼬막 세상. 참기름 향과 파가 어우러져 입안에 착착 감기는 신선한 굴회와 놀작놀작 구운 양태구이(장대구이)도 빠질 수 없는 별미였다.

홍어 삼합, 버섯무침, 수육 등 다양한 해산물과 육류, 산나물 등으로 조리한 반찬을 스물까지 세다가 그만두었다. 꼬막이 들어간 밑반찬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차려와 '꼬막정식'인지 '꼬막 코스요리'인지 헷갈렸다. 특히 새꼬막과 시래기를 듬뿍 넣고 끓였다는 된장국을 한 수저 떠 넣는 순간 "바로 이 맛이여, 벌교 꼬막이 이름값 허네!" 소리가 튀어나왔다.

밥에 비벼먹으면 입안에 착착 감기는 꼬막 회무침.
 밥에 비벼먹으면 입안에 착착 감기는 꼬막 회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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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콤달콤한 꼬막 회무침을 밥에 얹어 비빔밥을 만들어 먹었다. 숟가락으로 쓱쓱 비비다가 한 수저 떠 넣으니 착착 감기는 감칠맛에 감탄사가 절로, 먹는 행복 그 자체였다. 된장국으로 입가심하면서 반찬을 따라 젓가락이 돌다 보니 언제 비워졌느냐 싶게 빈 그릇. 아쉬움에 다시 젓가락질하다가 '과식은 만병의 근원'이란 문구가 떠올라 마음을 접었다.

'제사 꼬막'으로도 불리는 '벌교 꼬막'

 참꼬막에 대해 설명하는 순천댁. 입담이 꼬막국물처럼 구수했다.
 참꼬막에 대해 설명하는 순천댁. 입담이 꼬막국물처럼 구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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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댁 설명에 의하면 1952년에 개업한 국일식당은 벌교 토박이 조정자(90) 할머니가 창업주. 조 할머니는 얌전하고 손맛이 좋기로 소문나서 손님들이 근처 다방에서 기다렸다가 먹을 정도로 단골이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몸이 아파 요양원에서 요양 중이며, 지금은 며느리인 하옥심(65) 아주머니가 맛을 지키고 있었다.

친구들과 소주를 마시며 피조개와 꼬막 구별법을 놓고 따지던 추억이 떠올랐다. 참꼬막은 껍데기에 줄이 17개~20개, 새꼬막은 30개 안팎, 피조개는 40개 정도 그어져 있다. 개펄 깊은 곳에서 서식하는 새꼬막은 1,2년 자라면 먹을 수 있지만, 얕은 개펄에서 자라는 참꼬막은 성장이 더뎌 3년 이상은 지나야 상품으로 인정을 받는다고 한다.

꼬막은 입을 벌리고 있는 놈보다 꽉 다물고 있는 놈이 향미도 뛰어나고 고소한 맛도 더하다고 한다. 입을 벌리고 있는 꼬막은 싱싱한 갯냄새가 날아가 맛이 덜하다는 것. 작가 조정래도 소설 <태백산맥>에서 '꼬막은 뜨거운 물에 시금치를 데쳐내듯 핏기는 가시고 간기는 그대로 남아 있게 슬쩍 삶아내야 한다'고 적고 있다.

시장에 나온 새꼬막. 골이 촘촘하고 엉덩이가 좁아 쉽게 구별할 수 있다.
 시장에 나온 새꼬막. 골이 촘촘하고 엉덩이가 좁아 쉽게 구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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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교 앞마다 꼬막은 얼음이 꽁꽁 어는 겨울이 제철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 모래나 황토가 거의 섞이지 않아 임금님 수라상에 오르기도 했으며, 8 진미(眞味) 가운데 1품으로 진상되었던 겨울 꼬막은 쫄깃쫄깃하고 달짝지근한 감칠맛이 그만이었다. 속도 배춧속처럼 꽉 차고 통통해서 보기에도 흐무러졌다.

꼬막에도 종류가 있었다. 그중 벌교에서 나는 꼬막은 참꼬막. 참꼬막은 껍질이 거무튀튀하고 거칠거칠하지만, 새꼬막은 연한 색깔을 띠었다. 맛도 참꼬막은 찰떡처럼 쫄깃쫄깃 찰방지고, 새꼬막은 느낌이 부드러웠다. 값도 참꼬막이 두 배 이상 비싸단다. 새꼬막이 싼 이유는 맛도 맛이지만, 양식장에서 다량으로 생산되기 때문이란다.

피조개와 함께 어패류(돌조개과)에 속하면서도 남해안 생선을 대표하는 꼬막. 벌교에서는 제사상에 오르는 참꼬막은 '제사 꼬막'이라고 해서 대우를 하지만, 그렇지 못한 새꼬막은 개꼬막, 똥꼬막 등으로 불리며 쳐주지 않았다. '제사 때 서해안 주민은 조기, 동해안 주민은 문어, 남해안 주민은 꼬막을 꼭 챙긴다'는 말이 생겨난 것도 우연은 아닌 듯.

꼬막은 서남해안 청정지역에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특히 벌교 꼬막이 유명한 이유는 우리나라에서 생태계가 가장 잘 보존된 순천만(여자만)에 그 비밀이 담겨 있다. 숱한 생명의 보금자리 여자만 개펄에서 입을 앙다물고 3년~5년을 벼르고 벼르면서 자라기 때문에 살이 토실토실하고 맛이 좋은 것은 물론 영양가도 풍부하다고.

꼬막에 맛깔스러운 남도 사투리를 곁들여 먹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식당에서 나왔다. 겨울의 짧은 해는 남도여관 지붕 용마루에 걸쳐있고, 파스텔 물감처럼 파랗던 하늘은 서서히 노을을 준비하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오후 3시 50분. 조정래 고택, 김범우의집, 횡갯다리(홍교), 소화다리 등은 다음 기회에 돌아보기로 하고 낙안(樂安) 읍성으로 방향을 잡았다.

덧붙이는 글 | 2012년 12월 28일~29일에 다녀왔습니다.
이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꼬막정식, #벌교, #국일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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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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