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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의 특별사면으로 석방된 용산참사 구속자 이충연씨, 김주환씨, 천주석씨, 김성환씨가 31일 오후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열린 '용산참사 진상규명과 출소 철거민 환영 문화제'에 참석해 참가자들과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노래를 부르고 있다.
▲ 서로 위로하는 용산참사 구속자들 이명박 대통령의 특별사면으로 석방된 용산참사 구속자 이충연씨, 김주환씨, 천주석씨, 김성환씨가 31일 오후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열린 '용산참사 진상규명과 출소 철거민 환영 문화제'에 참석해 참가자들과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노래를 부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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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말씀이다. 갈릴리 사람 예수가 야트막한 산에 올라 군중들에게 하셨다는 말씀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행복할까? 마음이 가난한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먹고사는 삶이 가난한 사람들, 의·식·주가 가난한 사람들, 이들은 과연 행복할까?

예수는 가난한 사람이었다. 성서 속에 나오는 예수는 '목수' 또는 '목수의 아들'이었다. 역사적 예수 연구 분야의 권위자인 존 도미닉 크로산(John Dominic Crossan)에 따르면 예수가 살았던 시기에 '목수'라는 칭호는 하층계급의 신분을 가리켰다고 한다.(<예수> 존 도미닉 크로산, 김기철 역. 62쪽)

당대 대다수를 차지했던 농민들보다도 더 낮은, "일반적으로 재산을 다 잃어버린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었던 "손으로 하는 일"을 담당했던 계층이 장인(匠人)이었고, 목수는 바로 이와 같은 장인 계층, 농민과 천민 사이의 위태로운 자리에 속하는 신분이었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목수는 '집을 짓는' 사람인데, 예수는 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마저도 자신의 한 몸을 누일 방을 찾을 수 없었고, 처음 누운 자리가 '구유'였다는 사실이다.

유난히 추운 올 겨울. 7살 난 아들이 2만 평이 넘는 땅을 매입한 것에 대해서도 "해명할 말이 있다"는 사람이 총리 후보자로 거론되는 것을 보며, 나는 그리 오래되지 않은 과거에 가장 가난한 '철거민'들과 삶을 함께 했던, 그리고 지금 이 순간까지도 그들과 함께하고 있는 아름다운 사람들을 떠올린다.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산' 사람, 황인철과 제정구

지난 1월 20일은 용산참사 4주기를 맞는 날이었다. 또한 이날은 고 황인철(1940~1993) 변호사가 세상을 떠난 지 꼭 20년이 되는 날이었다. 경기도 안성에 있는 천주교 수원교구 안성공원묘원에서 20주기 추모미사가 있었다. 문정현 신부와 함세웅 신부가 미사를 공동 집전했다.

황인철 변호사는 생전에 민청학련 사건, 청계피복노조 사건, 동일방직 사건, YH 사건 등을 변론한 인권 변호사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황인철 변호사는 1980년대 상계동, 사당동, 목동, 돈암동 등지에서 88올림픽을 위한 도시재개발사업이 이루어질 때, 철거촌 세입자들을 위한 영구임대 주택을 짓게 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분이기도 하다.

몇 해 전 KBS <인물현대사>라는 다큐 프로그램에서 황인철 변호사의 일대기를 다루었다. 이 다큐의 중간쯤을 보면 폐허로 변해버린 상계동 철거민들이 밥을 짓고 있는 장면이 나온다. 철거민 천막을 찾아온 일행들을 위한 저녁식사였다. 철거민 천막을 찾아온 사람들은 이돈명 변호사, 황인철 변호사 등이었다.

이들 변호사들이 철거민들과 함께 천막 안에서 국수를 먹는 모습이 보인다. 달동네 철거민들의 생존을 위한 힘겨운 싸움을 함께한 황인철 변호사. 당시 철거민들은 "세입자에게도 권리가 있다"는 말을 변호사의 입에서 들을 수 있었던 것을 '놀라운' 기억으로 회상하고 있다.

황인철 변호사가 세상을 떠난 지 꼭 16년이 되는 2009년 1월 20일 새벽, 서울 한복판 용산에서 철거 세입자 5명과 경찰관 1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망루 위에 선 그들은 삶의 마지막 순간에서 무엇을 생각했을까? 눈 덮인 황 변호사님의 무덤 옆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새겨진 묘석이 함께 누워 있었다.

벗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새 봄, 그들을 떠올리며 <가난뱅이 하느님>을 펼친다

빈자천하지대본(貧者天下之大本).

이 말은 우리나라 빈민운동하면 곧바로 떠오르는 인물, 고 제정구(1944~1999) 의원이 처음 사용했다고 한다. 청계천 판자촌에서 시작하여 양평동 판자촌, 경기도 시흥에 있는 빈민공동체인 '복음자리 마을'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상계동, 목동 철거의 현장에서 나부끼던 가난한 철거민들을 위한 슬로건, "빈자천하지대본"!

우리말을 참으로 잘하고 한복이 잘 어울렸던 예수회 소속 미국인 신부 정일우는 제정구와 함께 평생을 함께 한 동지였다. 정일우 신부와 제정구가 빈민운동을 하면서 세운 원칙은 "그냥 산다"였다. 빈민 속에 들어가 그들을 지도하려 하면 "공동체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 그들의 지론이었다.

최근 협동조합기본법이 생겨서 협동조합이 유행이지만, 이들은 1970년대 말에 이미 '복음신협'이라는 신용협동조합을 시흥시 복음자리마을에서 성공적으로 운영하기까지 했다.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고도 가난한 사람, 철거민들과 '그냥 함께 산' 사람 제정구.

신의 뜻과 운명은 참으로 불공평할 때가 있다. 참으로 좋은 일만 한 사람을 왜 다른 사람들보다 빨리 저 세상으로 불러가시는 것일까? 오는 2월 9일이면 참으로 아름다웠던 사람, 제정구 의원이 세상을 떠난 지 14주기가 된다. 새 봄을 맞으며 그를 기리는 사람들이 엮어서 낸 추모집을 함께 읽어보면 어떨까? 책의 제목은 <가난뱅이 하느님>이다. 

* 이 글을 쓰는 도중 용산참사 관련자 다섯 분이 사면되었다는 소식이 있었다. 사돈과 측근들만을 풀어주는 것이 아니라는 '생색용'이었을까. 측근이요 실세였다는 사면대상자들의 사진을 신문에서 본다. 나는 그중 몇몇을 서울구치소에서 본 적이 있다. 형사변론을 위해 서울구치소를 찾았을 때 건너편 접견실에서 여유 있는 모습을 보이던 그들의 면면을 나는 보았다.

대통령으로서 "도덕적으로 완벽"하지는 못하더라도, 자기가 가진 권한 행사에 대한 최소한의 '원칙'은 필요한 법이다. 이번 사면은 용산철거민들과 희생자들에 대한 모독이다. 그런 의미에서 용산참사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사건이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소속 변호사입니다.
* 이 기사는 대전충남인권연대 웹진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용산참사, #철거민, #황인철, #제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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