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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화가 쓴 <형제>의 표지.
▲ <형제>의 표지 위화가 쓴 <형제>의 표지.
ⓒ 휴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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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적 최근에 제작된 중국의 문화유산과 관련된 다큐멘터리에는 일종의 패턴이 있다. 이 패턴은 '문화대혁명'과 '개혁개방' 이야기에 관한 것이다. 몇 편을 연이어 보면 무슨 말인지 알 것이다. 2~3편쯤에서 다큐멘터리의 내레이터는 어떤 문화유산이 "문화혁명기에 사라졌다"고 할 것이다. 그러다가 케이블카나 전망대가 보이면 "개혁개방 이후 관광객 유치를 위해 중국정부가 설치했다"고 할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현대중국에서 '문화대혁명'과 '개혁개방'은 너무나 큰 족적을 남겼다. 문화대혁명은 주로 '뭘 없앨지' 정했고, 개혁개방은 '뭘 설치할지'를 정했다.

현대중국의 1대 임금은 '문화대혁명', 2대 임금은 '개혁개방'쯤 된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소설가 위화는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간다>에서 "문화대혁명은 정치권력의 새로운 분배라고 할 수 있고, 개혁개방은 바로 경제권력의 재분배였던 것이다"고 했다.

<형제>, 소설 무대를 2000년대 초반의 중국까지로 늘려

위화는 이전까지는 '문화대혁명'에 지대한 관심을 보여왔다. 그의 소설에는 유난히 홍기 휘날리는 홍위병들과 눈치껏 살아가는 라오바이싱(老百姓: 중국서민)의 모습이 자주 나온다. <허삼관 매혈기>의 허삼관 아내는 창녀로 오해받아 인민투쟁대회에서 머리카락을 밀리고 심한 욕지거리를 듣는다. <인생>의 마작꾼 룽얼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형제>의 아버지 송범평은 상상 이상으로 잔인하게 죽임을 당한다.

<형제>에서 위화는 이전과 달리 소설의 무대를 2000년대 초반의 중국까지로 늘렸다. 그는 이 소설의 후기에서 "한 서양인이 사백 년을 살아야 경험할 수 있는 양극단의 시대를 한 중국인이 겪는 데 걸린 시간은 겨우 사십 년"이라고 썼다. 그의 말대로 <형제>에 등장하는 동 철장(대장장이), 여 뽑치(발치사), 왕 케키(아이스크림 노점) 등은 1990년대 들어 낡은 직업을 버리고 슈퍼마켓을 열거나 해외여행을 다닌다.

실로 엄청난 속도다. 여기 이 격변의 시대를 산 두 형제가 있다. 두 사람은 피가 섞인 친형제는 아니다. 사별한 두 남녀가 각각 아들 한 명씩 데려와 재혼했다. 어머니 이란이 이광두를 데려왔고, 아버지 송범평이 송강을 데려와 두 사람은 형제가 됐다. 두 형제는 서로 너무 다르다. 형인 송강은 진실하지만 수동적이다. 이광두는 말 그대로 세속적인 욕망의 화신이다. 형은 '문화대혁명' 같고 동생은 '개혁개방' 같다. 두 사람은 아버지, 어머니가 차례로 비참하게 죽어갈 때 서로 의지하며 한 세상 버틴다.

세월은 흘러 형제는 청년이 되고 한 아리따운 여자가 두 남자의 마음을 흔든다. 그녀의 이름은 임홍. 두 남자는 동시에 임홍을 사랑한다. 순한 형 송강은 동생에게 그녀를 양보하고 마음이 아파 자살을 시도하나 천만다행으로 동생이 그를 구한다. 그런데 임홍은 기품 있고 충실한 송강을 택하게 되고 이를 계기로 형제는 분가하기에 이른다. 이광두는 크게 낙담하고 '순정의 시대'에 작별을 고하고 홧김에 정관수술을 한 뒤 '거부의 꿈'을 향해 달려간다. 문화혁명이 끝나고 개혁개방이 시작될 무렵이었다.

'개혁개방' 같은 동생 이광두, '순정의 시대' 작별 '거부의 꿈' 향해

기류를 잘 만난 새는 바람을 타고 하늘 높이 날았다. 이광두는 벌리는 사업마다 큰 성공을 거둬 중국에서 알아주는 거부가 된다. 반면 송강은 예전처럼 한 명의 육체노동자로 살아간다. 그는 하역 일 하느라 허리를 망가트렸고 시멘트공장에서 먼지를 들이마시며 일하다 폐도 망가졌다. 한때는 동네 처녀들을 설레게 했던 미남 송강은 시대에 뒤떨어진 가난뱅이가 된다. 하지만 송강은 임홍과의 소박한 생활에서 큰 행복을 느낀다.

하지만 미련하고 고집스러운 송강의 꼴은 중국에서 가장 괴이해진다. 몸을 망쳐 육체노동을 할 수 없게 된 송강은 강호를 떠도는 사기꾼 주유를 따라서 '약장수'가 된다. 아내와 소박한 행복을 유지하려면 노후자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는 주유와 도시를 떠돌며 가슴확대크림을 판다. 주유는 그에게 '한국식 무흔 확대수술'로 인공 가슴을 달도록 한다. 가슴크림을 발라서 이렇게 가슴이 커졌다고 사람들을 속이기 위해서다. 송강은 겨드랑이를 째고 실리콘을 집어넣게 둔다. 가슴 나온 송강은 길거리의 구경거리로 전락한다.

이 괴상한 꼴로 1년 일한 그는 겨우 3만 원(한화로 약 500만 원)을 마련하고 가슴의 보형물을 뺀다. 그는 이 돈으로 임홍과 노후를 보낼 꿈에 그래도 뿌듯하다. 하지만 그가 떠나있었던 몇 년 동안 세상도 임홍도 변해있었다. 홍위병들이 홍기 들고 설쳤던 거리에서 온갖 현란한 네온사인의 춤을 췄다. 임홍도 '인공 처녀막'을 달고 이광두와 쾌락의 춤을 추고 있었다. 한때 임홍을 열렬히 사랑했던 이광두는 그녀와의 첫 경험을 재현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건 '짝퉁'이다. 

개혁개방 뒤 중국은 '짝퉁' 천국이다. 돈 벌려면 뭐든지 하는 게 중국의 맨얼굴이다. 송강은 '짝퉁' 가슴으로 장사를 하고 임홍은 '짝퉁' 처녀막으로 쾌락을 맛본다. 하지만 처녀막도 가짜, 두 사람의 감정, 상황도 가짜다.

'문화대혁명' 같은 형 송강, 중국에서 가장 괴이해진다

임홍 자신은 인정하고 싶지 않았겠지만 사실 본남편인 송강은 그녀를 만족시켜주지 못했다. 가난뱅이인데다가 섹스 할 때 "5분 이상을 넘긴 적이 없는" 송강은 백만장자에다가 하루에 4~5번 밤 일을 가뿐히 치르는 이광두에게 한참 부족했다. 그녀는 이광두의 부와 격렬한 섹스에 난생 처음 느껴보는 쾌락을 느낀다.

물론 그녀도 송강에게 큰 죄책감을 느끼지만 뻔뻔스럽게도 '어떤 잘못을 해도 착한 송강이 자신을 받아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녀가 전통적인 가치관과 욕망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는 것 같지만, 실은 과감하게 욕망의 세계에 들어서 버렸던 것이다. 물론 전통적인 가치관이 더이상 중국인에게 맞지 않는 옷이 되어버린 것은 사실이다. 변화가 너무 갑작스럽고 폭력적이었기 때문에 개별 인간의 변화도 극단적이었던 것일까? 수줍던 소녀는 결국 포주가 되어 버린다.

반면 고집스러운 송강은 동생과 바람난 아내에 대한 원망도, 미련도 담기지 않은 작별편지를 쓴다. 송강은 이광두, 임홍과 보낸 지난 세월을 떠올리면 만족감에 미소 짓는다. 그는 마지막으로 자신이 살아온 마을을 주의 깊게 살펴본다. 임홍, 이광두와의 추억이 가득한 거리를 거닐고 육즙이 듬뿍 담긴 만두를 사 먹는다. 거리에는 지는 햇빛에 붉게 물들어있다. 그는 너무나 평온한 마음으로 철로로 간다. 위화는 이 풍경을 이렇게 쓴다.

"사람의 세상이란 이런 것이다. 한 사람은 죽음으로 향하면서도 저녁노을이 비추는 생활을 그리워하고, 다른 두 사람은 향락을 추구하지만, 저녁노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지 못하는 것이다."

이광두와 임홍은 "자신들이 송강을 죽였다"며 대가를 치를 거로 생각하며 대성통곡한다. 송강의 자살은 이광두에게는 선물이고 임홍에게는 최고의 복수였다. 송강은 혼자 '순수의 세계'에 올라간 다음 사다리를 걷어차 버렸다. 송강의 이상에 부응하지 못한 임홍은 버림받았다. 그래서 그녀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포주가 돼버렸다. 실리콘을 집어넣으려 쨌던 송강의 겨드랑이 상처에서는 날개가 솟아나왔다.

형제의 죽음에 상심했어도 이광두는 원래 욕망에 충실한 남자다. 송강을 잃은 뒤 그는 금도금한 변기에 앉아 벽걸이 TV를 통해 미국인 사업가가 2000만 달러를 들여 우주여행에 나섰다는 뉴스를 듣고는 우주여행을 결심한다. 3년 뒤 그는 진짜 우주로 간다. 송강의 유골함을 들고. 이광두는 왜 우주여행을 결심했을까? 간단하다. 지구에서 더 이룰 일이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면 송강의 유골은 왜 데려갔을까? 거칠게 말하면 너무 순수한 송강에게 중국이 너무 더러운 것이다. 송강도 그걸 알았다. 그래서 그는 송강의 유골함을 가져갈 결심을 하며 "그럼 내 형제 송강은 외계인이다"라고 혼잣말을 한다. 형제는 그래서 우주인이 됐고 외계인이 됐다.

덧붙이는 글 | 형제 1 위화 (지은이)| 최용만 (옮긴이) | 휴머니스트 | 2007년 6월



형제 1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휴머니스트(2007)


태그:#위화, #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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