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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머리맡에서 휴대폰이 요란을 떨었다. 날도 밝기 전에 웬 전화냐고 짜증을 내며 더듬더듬 휴대폰을 찾다가 소스라쳐 놀라 일어났다. '제주도 가는 날이잖아! 새벽 6시에 아파트 후문으로 데리러 온다고 했었지!' 시간을 확인해 보니 다섯 시 사십오 분, 천만다행이다 싶어 전화를 걸었다.

"우샘, 아파트에서 출발하는 거야?"
"아니에요. 선생님 아파트 후문이에요."

출발하면서 전화한다고 하더니 예정시간보다 15분이나 미리 도착해서 전화한 것이다. 그래도 할 말은 없다. 미리 일어나 준비하고 기다려야 하는데, 전화가 올 때까지 세상 모르게 자고 있었으니. 세수도 생략하고 나서려는데 "고양이 세수라도 하고 가!"라고 아내가 한마디 했다. 허겁지겁 세면대로 가서 얼굴에 물을 몇 번 찍어 바르고 짐을 챙겨서 현관을 나섰다. 칼바람 새벽 추위조차 느낄 새도 없이 부랴부랴 후문으로 달려가 '우샘(아이들이 '선생님'을 줄여서 쓰는 말)'과 '황샘'이 기다리는 차에 올랐다.

"미안해! 3시에 일어났는데 다시 잠들어 버렸어."

제주도 자주연수(전국역사교사모임이 주관하는 연수)는 이렇게 허둥지둥 시작되었다. 신혼여행에 수학여행까지 여섯 번 정도 제주도를 여행했지만, 이번처럼 제주 역사를 주제로 답사하는 건 처음이다. 전국역사교사모임이 주관하고 제주역사교사모임에서 오랜 기간 자료 수집하고 사전 답사하면서 준비한 것이어서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던 연수였다.

제주 비양도
▲ 비양도 제주 비양도
ⓒ 이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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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에서 청주까지 우샘이 운전하는 차로 이동해서 청주 공항에서 비행기로 제주도로 날아갔다. 창공을 가르는 비행기 창으로 내려다본 세상, 검은 산줄기 사방으로 뻗어 있어 산 많은 나라에 살고 있다는 게 실감이 되었다. 검은 산줄기 사이로 난 곡선 길을 따라가다보면 장난감 모형처럼 옹기종기 사람 사는 세상이 모여 있었다.

'목호의 난' 격전지 새별오름

역사적으로 참혹한 전적지에는 그 자취가 지명으로 전해지기도 한다. 동학농민전쟁 당시 희생당한 농민군의 피가 자작자작 고여 흘렀다는 홍천의 자작고개, 한국전쟁 당시 열흘 동안 고지의 주인이 스물 네 번이나 바뀔 정도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심한 폭격으로 원래 산 모습은 사라져버렸다는 철원의 백마고지 등이 그 예다.

고려 공민왕 때 '목호의 난' 격전지
▲ 새별오름 고려 공민왕 때 '목호의 난' 격전지
ⓒ 이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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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자주연수 첫 답사지 새별오름도 고려 공민왕 때 참혹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이름만으로는 동화 속 한 장면이 떠오를 만큼 평화스런 분위기지만, 역사적 유래를 찾아보면 '칼과 방패가 바다를 뒤엎고 간과 뇌가 땅을 가렸다'던 '목호의 난'의 격전지였다. 드라마 <신의>의 배경이 되었던 공민왕 때 일이다. 얼마나 참혹한 전투였기에 몸에서 쏟아져 나온 간과 뇌가 온통 땅을 덮을 정도였을까.

그럼에도 새별오름이란 이름은 참혹했던 과거와는 관련이 없다. 오름 다섯 봉우리의 모양이 별표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참혹하고 끔찍했던 과거의 아픔을 숨긴 채 새별오름은 한겨울 추위에도 아랑곳없이 억새 물결로 몸단장하고 거대한 왕릉 모양으로 우뚝 서 있다.

새별오름 답사
▲ 새별오름 새별오름 답사
ⓒ 이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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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호의 난'의 주역들이었던 목호란 어떤 존재였을까. 고려가 몽고의 지배를 받게 되면서 제주는 탐라총관부가 설치되면서 원의 직속령으로 편입되었다. 원은 제주를 거대한 목마장을 만들어 관리하는 과정에서 목마를 담당하기 위해 제주도에 유입된 원나라 사람들을 목호(목마 일을 주관하던 오랑캐)라고 불렀다. 그렇게 100년 세월이 흘렀다. 그 기간 동안 목호들과 제주 여인들 사이에 혼인도 이루어지고 후손들도 태어났다.

명의 세력이 강해지고 원이 쇠망의 길로 접어들면서 공민왕은 반원자주정책의 일환으로 원의 직속령에 군사를 보내 탈환하고자 했다. 탐라총관부가 설치되었던 제주 역시 그 대상이었다. 제주에서 100여 년 세력을 유지하고 뿌리내린 목호들에게 공민왕의 반원자주정책은 위기였고 필사적 저항으로 이어졌다. 새별오름 일대의 참혹한 전투는 이런 배경 속에서 발생했다.

공민왕의 반원자주정책의 일환으로 전개되었던 '목호의 난' 진압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반원자주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외세의 지배를 받던 제주 땅을 되찾기 위한 정당한 과정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새별오름 억새
▲ 억새 새별오름 억새
ⓒ 이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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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만에 진압되었던 삼별초와는 달리 '목호의 난' 진압은 대규모 병력이 투입되었으면서도 한 달을 끌었을 정도로 저항이 강했고, 토벌 또한 철저했다. 끈질긴 저항이 이루어졌던 것은 목호들과 주민들의 결합이 있었고, 이에 따른 토벌 대상 역시 주민들까지 포함되었음을 의미한다.

현기영의 <변방에 우짖는 새>를 읽으며 처음으로 변방 제주도 사람들의 처절했던 삶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순이 삼촌>을 통해 참혹했던 제주 현대사를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힘센 중앙 권력에 눌려 모진 고초 겪으며 살 수밖에 없었던 게 변방 사람들의 숙명이었다. 최씨 무신정권 몰락 후 제주로 들어왔던 삼별초군이나 삼별초를 진압하기 위해 들어왔던 여몽연합군이나 제주 사람들에게는 모두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것처럼, 탐라총관부를 탈환하기 위해 들어왔던 최영 역시 자신들의 목숨과 삶터를 위협했던 대상이었다.

눈 덮힌 한라산 정상
▲ 한라산 눈 덮힌 한라산 정상
ⓒ 이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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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따라 흰 물결이 되어 흐르는 억새 군락지. 하얀 눈 가득 이고 우뚝 솟아 있는 한라산 정상, 멀리 바다에 자그마한 자태로 웅크려 앉아 있는 비양도, 변방 제주의 아픈 과거 상처를 수많은 세월 부는 바람에 내맡기고 삭여 온 탓일까. 새별오름 정상에서 바라본 주변 풍경은 눈부시게 아름답다.

덧붙이는 글 | 전국역사교사 모임 제주 자주연수는 2013년 1월 4일 ~7일까지 다녀왔습니다.



태그:#제주 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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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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