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신입생일 때는 안기기보다 엉덩이를 뒤로 빼더니 지금은 부둥켜안고 떨어지지 않네요."11일 경남 창원 태봉고등학교(교장 여태전) 체육관. 공립대안학교인 태봉고 첫 졸업식에 참석한 졸업생들을 보고 교사들이 한 말이다. 태봉고는 경남도교육청에서 설립해 2010년 3월 개교한 공립대안학교다. 학생들은 모두 기숙사 생활한다.
사립대안학교는 많지만 공립대안학교는 드물다. 이 학교는 매년 45명 안팎의 학생을 모집해 3학급으로 운영해 오고 있다. 교육 방식은 체험 위주이며, 학생의 자율을 중요하게 내세우고 있다.
졸업식장에는 "오래도록 서로 잊지 말기를"이라고 쓴 펼침막이 내걸려 있었다. 학부모와 재학생들이 자리에 앉아 있고, 입구에는 '레드카펫'이 깔렸었다. 재학생들은 '레드카펫'을 밟지 말아 달라고 당부할 정도였다.
'레드카펫' 옆에는 교사들이 한 줄로 서 있었다. 졸업생들이 하나 둘 들어왔다. 교사들은 이들한테 장미꽃을 나눠주었고, 부둥켜안았다. 안아주는 사람이나 안기는 사람이나 모두 눈물을 쏟아냈다. 졸업생의 입에서는 한결같은 단어가 나왔다.
"엄마." "아빠."학생들이 교사들을 이렇게 부른 것이다. 부둥켜안고 떨어지지 않기도 했는데, 사회자는 "시간 관계상 빨리 진행시켜 달라"고 독촉하기도 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모두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졸업장부터 수여했다. 여태전 교장과 교사들이 무대에 올라 졸업생 44명한테 졸업장을 전달했다. 졸업장에 적힌 글귀는 모두 달랐다. 학생 특성에 맞게 제목이 붙여진 것이다. '행복한 예술인상' '아이 사랑상' '따뜻한 마음상' '소리질러상' '진짜 사내상' '강력한 외발상' '별빛상' '옷멋상' '웃음상' 등이다.
여태전 교장 "담쟁이 정신으로 '행복한 학교' 만들기"여태전 교장의 회고사가 이어졌다. 여 교장은 태봉고 설립 때부터 일해 왔으며, 학생뿐만 아니라 학부모한테도 인사했고, 교사들의 이름을 모두 부르면서 고맙다고 했다.
여 교장은 "오늘의 이 기쁨과 영광을 마흔네 명의 졸업생들에게 돌리고 싶다. 만약 여러분이 없었다면, 우리들은 오늘처럼 이렇게 많은 내외 귀빈을 모시고, 이렇게 행복한 자리를 마련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그렇다, 졸업생 여러분이 바로 오늘의 주인공이다"고 말했다.
졸업생들을 향해 그는 "여러분은 혼자가 아니다, 여러분 한 사람 뒤에는 여러분의 삶을 축복하고, 지지하고, 후원하는 사람들이 적어도 천 명 이상은 된다는 이 감동적인 사실을 결코 잊지 마시길 당부 드린다"며 "이 아름다운 사실에 늘 감사하면서, 각자 각자가 자기 삶의 주인공이 되어 행복한 삶을 가꾸어 가시기를 축원한다"고 말했다.
3년을 회고한 여 교장은 "대안학교는 사회적 편견과 오해를 받는 학교다. 그렇지만 누군가는 꼭 가야만하는 길이기에 그 길을 당당하게 앞장서서 걷는 사람들이 모여서 만들어가는 새로운 학교가 바로 대안학교"라며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이 길은 많이 외롭고 고독한 길이기도 하다. 교사, 학생, 학부모들은 지난 3년 동안 바로 이런 길을 걸어왔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 3년 동안 우리 태봉고 선생님들은 '한 뼘이라도 여럿이 함께'하자는 담쟁이 정신으로 '행복한 학교' 하나 만드는 일에 신명을 다 바쳤다"며 "3년 동안 태봉고의 교사, 학생, 학부모는 다 함께 힘을 모아 우리가 꿈꾸는 대로 경남교육의 새로운 창 하나를 열었고, 한국교육사에서 공립 대안학교 시대를 여는 밑거름 역할을 해왔다고 자부한다"고 덧붙였다.
여태전 교장은 "획일적이고 경직된 공교육 체계 속에서도 우리 모두는 포기할 수 없는 꿈 하나 가슴에 품고 때로는 '용감하고 대담하게!' 때로는 '부드럽고 온화하게!' 학교를 넘어선 학교 사랑과 배움의 공동체를 만들어 왔다"며 "지난 3년 동안 저와 함께 이와 같은 꿈을 꾸어 오신 우리 선생님들의 노고와 헌신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경남도교육청 김명훈 부교육감은 축사를 통해 "졸업생들이 들어오는 광경을 보니 텔레비전의 '슈퍼스타 케이'에서 본선 진출자들이 입장하는 것과 같았다"며 "여러분의 진로가 굉장히 다양한 것으로 안다. 그만큼 알찬 교육의 결과라 본다"고 말했다.
손자 교육 시킨 할머니 '명예졸업장' 수여공로패 전달이 이어졌다. 그런데 특별한 사람이 무대에 올랐다. 통영에 사는 빈명수(65) 할머니다. 손자가 이번에 졸업한 것이다. 빈 할머니는 손자를 키워오고 있었는데, 3년 전 학교를 찾아와 입학시켜 줄 것을 간절히 바랬다고 한다.
이 할머니는 학부모총회 등 모임 때마다 빠짐없이 참석했다. 통영에서 생선을 팔고 있는데, 모임 때 회를 가져와 나눠 먹기도 했다는 것. 사회자사 빈 할머니의 이름을 호명하자 졸업생과 학부모들은 박수를 쳤다.
빈 할머니한테는 '명예졸업장'이라는 표창장이 수여되었다. 표창장을 받은 할머니는 여태전 교장을 먼저 부둥켜안았다.
송사·답사가 이어졌다. 눈물바다가 되었다. 송사하던 여학생은 "이제 모르는 것 있으면 누구 찾아가 물어야 하느냐"며 졸업생의 이름을 불렀다. '무슨 옷을 입어도 잘 어울리던', '도서실 가면 늘 있던' '방송부 맏형' '대담했던' '목소리 귀여운' '맡은 바 책임 다하던' '(기숙사)같은 방 쓰자던' '바지 같이 찢으며 스트레스 풀던' 언니․오빠들이라고.
그 재학생은 "송사를 정말 쓰기 싫었다. 자신 가족을 떠나보낼 때 송사를 쓰지 않는 것과 같다. 아무리 미워도 가족은 가족이다"고 말하며 눈물을 보였다. 사회자도 울먹이다 행사 진행을 하지 못할 정도였다. 옆에 있던 교사가 "다음은 답사가 있겠다"고 대신 말했다. 답사한 졸업생은 "부담스럽다. 우리는 이제 진짜 시작이다. 이별은 다시 만나기 위한 약속이라는 말이 있다"며 "태봉고가 앞으로 다른 무엇으로 변질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다음은 '세족식'. 졸업생들이 교사들의 발을 씻겨주는 의식이다. 졸업생들이 입학했던 입학식 때는 교사들이 학생들의 발을 씻겨 주었다. 3년 만에 바뀐 것이다. 또 교사들을 모두 무대로 모신 뒤 무대 아래에서는 졸업생과 학부모들이 3배를 했다. 교사들도 따라서 절을 하기도 했다. 이날 졸업식은 '졸업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졸업생 44명 모두 진로 확정... 33명 대학 수시 합격태봉고 졸업생 44명은 모두 진로를 확정 지었다. 33명은 대학에 진학하는데 모두 수시모집에서 합격한 것이다. 4년제 대학 20명, 2년제 대학 13명이 진학한다. 4명은 대학입시 정시모집 준비를 하고, 3명은 유학한다. 1명은 시민단체 활동을 하고, 3명은 극단 단원으로 활동한다.
태봉고는 지난 7일부터 이날까지 '졸업주간 행사'를 치렀다. 첫날에는 '응답하라 2000', 8일에는 '태봉 런닝맨', 9일에는 '어울 한마당'을 치렀다. 졸업식 하루 전날 저녁에 있었던 '졸업전야행사'에서는 44명 졸업생 모두 5~10분씩 배운 것과 성찰하는 이야기를 쏟아냈다. 이날 함께 했던 학부모들은 '흐뭇했다'는 반응이다.
학부모 조영숙(경남여성회 부설 상담소)씨는 "아이가 많이 성장했다. 앞으로 어제 저녁 졸업전야행사에서 나온 이야기는 감동이었다"며 "아이들이 대학을 가든 가지 않든 앞으로 삶을 스스로 개척해 나갈 수 있는 힘을 키운 것 같다"고 말했다.
백두현(전 민주통합당 경남도당 위원장)씨는 "아이가 중학교 때 공부를 포기하다시피 했다. 평소 과학에 관심이 많았는데, 대학은 생물학과로 진학한다"며 "이전에는 농담 삼아 '사람 될까'라고 싶었는데, 아이를 잘 교육해 주어 감사드린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