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련히 기억이 가물거린다. 방안구들 맨 아랫목. 검은 천에 머리맡만 빨간색인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 콜록대던 우리 아버지. 물론 이 기억도 어머니의 늘 하시던 말씀이 내 머릿속에 박혀 나오는 상상의 모습이다. 내 아버지는 그랬다. 그러다간 내가 발걸음을 떼는 것도 못 보고 돌아가셨다. 난 아버지 이야기만 나오면 몹시 가슴이 허전하다. 아버지를 본 기억이 없으니 말이다.

물론 봤지만 기억하기에는 너무 어렸었다. 그런데 그 아버질 이번에 영화를 통해 봤다. 배해성 감독의 영화 <아부지>의 화면을 통해서 말이다. 전원일기, 농촌 이야기, 새마을운동, 70~80년대 우리들 농촌의 팍팍한 삶, 빚더미의 농촌, 영화로 치면 꽤 히트를 친 <워낭소리> 뭐 그런 이야기가 화면 가득 전개된다.

천생 농사꾼 아버지를 계몽하다

 영화 <아부지> 포스터

영화 <아부지> 포스터 ⓒ 실버스푼

"숙제는 벌건 대낮에 할 것이지. 뭔 지랄 허다 이 오밤중에 하는 것이여! 언능 불 끄고 쳐 자란 말여!"

걸쭉한 사투리가 밉지 않다. 6학년 졸업반인 반에서 일등인 아들 기수(조문국 분)가 밤새 공부하는 모습이 못내 보기 싫은 아버지(전무송 분)의 한 토하는 투정이다. 그의 지론은 한글만 읽을 줄 알면 된다는 거다. 지금 4060세대의 부모들이 대부분 그랬듯이 말이다.

공부 좀 했던 기수의 형은 힘든 농촌의 현실의 벽을 뛰어넘지 못하던 샌님으로 결국 자살이라는 통로를 통하여 자신의 자유를 만끽한다. 비참한 농촌현실과 비현실적인 그의 꿈은 결국 합치점을 찾지 못한다.

아버지의 지론과는 정반대로 가는 기수, 서울서 온 연극반 선생님 미란(박탐미 분)의 지도 아래 방과 후에 연극을 한다고 일하러 오지 않는 기수를 학교까지 찾아 온 아버지는 막무가내로 아들의 손을 끌어낸다.

"별지랄 다하고 있데. 쳐 먹고 살기도 힘든 판에 뭔 노무 광대 짓이여!"

참 어울리는 한 마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과 담임선생님(박철민 분), 연극 선생님 등의 열정은 식지 않고 기어이 교장 선생님을 설득하여 읍내 회관에서 대대적인(?) 연극공연을 하기에 이른다.

연극은 빚더미에 앉아 차압 스티커를 바라보며 한탄하는 농민들의 이야기다. 아이들이 능청스럽게 연기를 잘한다. 물론 자신들의 현실을 읊고 있으니 아버지를 비롯한 동네 양반들의 가슴이 뭉클할 수밖에. 연극은 대성공이다. 바쁜 시간 쪼개 연극 보러 온 일이 잘한 일 된 거다. 가장의 짐에 눌려 기조차 못 펴보던 아버지, 그는 현실을 연극에서 보며 눈물 한 방울 찔끔 흘려 본다.

'내 맘에 안 들어, 빨갱이여!'

연극 공연 중에 조합에서 근무하는 주사가 간첩신고를 한다. 아무래도 연극의 내용이 불순하다는 거다. 빚쟁이 이야기나, 농촌 현실을 까발리는 품새, 불평불만을 털어놓는 논조가 빨갱이라는 거다. 그는 잽싸게 달려가 지서에 전화를 하고 지서에서는 선글라스로 자신을 위장한 순사(경찰이란 표현보다는 이 단어가 더 어울린다)가 위압적인 어조로 신고가 들어왔으니 조사를 위해 지서로 가자며 책임자가 누구냐고 다그친다.

 소 팔러 가는 달구지 위에 앉은 부자, 아버지의 마음을 하늘도 알았는지 눈이 펑펑 내린다.

소 팔러 가는 달구지 위에 앉은 부자, 아버지의 마음을 하늘도 알았는지 눈이 펑펑 내린다. ⓒ 실버스푼


교장도, 담임도, 연극선생도, 동네 사람도 나서보지만 선글라스(영화에선 '라이방'이라고 함)를 쓴 사내는 막무가내다. 이때 아버지가 턱 나선다. "너, 아무개 아들 아녀?" 그 한 마디에 허리를 굽실거린다. "빨갱이 없으니까 가!" 아버지의 말에 인사하고 사라진다. 결국 그 해프닝은 그렇게 막을 내린다. 기수는 그런 아버지가 여간 존경스러운 게 아니다. 엄하고 말이 안 통하는 아버지가 전혀 다른 아버지로 기수 앞에 선 것이다.

영화의 빨갱이 사건은 그 땐 비일비재한 사건이었다. 정부에 비판적이면 무조건 빨간 딱지를 붙여 수시로 감시했으니까. 벌써 25년 전 이야기인 것 같다. 고 박정희,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 목사의 강단 설교도 감시의 대상이었다. 깨나 소싯적이니까 사회정의니, 독재정권이니 하는 이야기들을 할 때가 많았다.

어느 날 설교를 하는데 멀쑥하게 차려 입은 신사가 교회 맨 뒷자리에 앉아 있었다. 너무 좋아 마음이 다 설렜다. 시골 교회에 어울리지 않는 신사가 새 신자로 왔다는 얘기니까. 설교를 마치고 내려왔는데 그 신사가 잠깐 보잔다. 그 말은 내가 해야 할 말인데 그가 하는 게 이상했다. 새 신자가 왔으니 내가 신앙생활이니 교회 안내를 해야 할 게 아닌가.

"목사님, 조심하셔야겠어요!" 그가 정색을 하고 내게 던진 첫 마디다. 숨이 콱 막혔다. "네!? …. 뭐, 뭘요?" 이미 난 감을 잡았다. 사법경찰이었던 것이다. "목사님도 대상입니다." "네?" 소위 자신들이 관리하는 리스트에 들었다는 굉장히 기쁜(?) 소식을 전하고 정중하게 인사를 하더니, 그는 뒤도 안 돌아보고 그대로 사라졌다. 그때 그 생각이 나 영화가 더 마음에 와 닿는다.

영화 속 이야기는 지금도 진행 중

 “누렁아 니가 우리집 농사 다 지어불었는디. 내 맘 알제?”

“누렁아 니가 우리집 농사 다 지어불었는디. 내 맘 알제?” ⓒ 실버스푼

정겨운 내 고향 이야기, 굶주렸던 그 시절 고기반찬에 쌀밥 배불리 먹고 싶다는 기수의 소원이 바로 우리네 소원이었다. 그렇게 영화에서 우리 고향 옛 이야기는 '향수'의 이미지로 끝난다. 그러나 영화 속 이야기는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종북'이니 '좌파'니 하는 이야기들이 바로 영화 속 빨갱이 이야기 아니던가. 군사독재 시대에 착실하게 했던 색칠 공부(?)가 지금도 버젓이, 어엿이, 또렷이 살아서 이 사회를 난도질하고 있다. 그리곤 우파와 좌파라는 도식으로 색칠을 하고 있다. 아직도 분단된 조국에서 산다는 건 색칠공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다음은 농촌의 빚 문제다. 내가 사는 마을의 이장은 목축업을 하고 있는데 10여 년 전 태풍 때 날아간 축사를 새로 지으면서 얻은 빚이 상상을 초월한다. 물론 저리로 받은 융자다. 저리융자로 돈을 얻어 최신 시설의 축사를 짓고 목축을 하고 있지만, 빚 갚는 게 해마다 신년 감사헌금을 올리며 적는 첫 번째 기도 제목이다. 지난해도 그러더니 올해도 역시다.

가끔 빚 때문에 힘들지 않느냐고 물으면, "그렇게 사는 거지유, 뭐! 촌에선 빚 부자가 부자여유"라며 씩 웃고 만다. 하긴 그의 말도 일리가 있다. 빚을 얻어 쓰는 것도 기술이다. 아무리 농촌이라도 아무나에게 융자를 주는 건 아니다. 언제쯤 빚을 다 갚을 수 있느냐고 물으면, 딴 이야기가 나온다. "사료 값은 정신없이 오르고, 축산 기자재 값도 하루가 달라유. 그냥 죽을 때가지 그렇게 가는 거지유. 뭐!" 하고 또 한 번 씩 웃어넘긴다. 언제 우리 고향이 빚 없는 세상이 될지?

또 하나는 세간에 시끄러운 등록금 문제다. 영화에서 기수는 중학교 들어가는데도 힘들어 아버지가 그토록 아끼던 누렁이를 내다 판다. "누렁아 니가 우리집 농사 다 지어불었는디. 내 맘 알제?" 아버지가 팔기로 결심하고 누렁이와 마지막 대화를 하는 장면에서는 소가 큰 눈을 끔뻑이며 마치 눈물을 흘릴 것 같은 모습을 보인다. 소 팔러 가는 달구지 위에 앉은 부자, 아버지의 마음을 하늘도 알았는지 눈이 펑펑 내린다.

그러나 그땐 소라도 팔면 아이 학자금을 마련할 수 있었다. 지금은 가당치도 않은 일이다. 대학 등록금은 천정부지로 올랐다. 여든, 야든, 반값 등록금이 공약이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박근혜 당선인이 공약한 내용이니 빚 때문에 허리 휘는 농촌 아버지들의 등록금 문제가 해결되었으면 좋겠다.

<아부지> 감독 배해성/ 전무송, 박철민 주연/ (주)주연이엔디 제작/ 실버스푼 배급/ 상영시간 100분/ 2009. 7. 15. 개봉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뉴스앤조이, 당당뉴스에도 송고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아부지 영화 농촌 빨갱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늘도 행복이라 믿는 하루가 또 찾아왔습니다. 하루하루를 행복으로 엮으며 짓는 삶을 그분과 함께 꿈꿉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