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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고구마 노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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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보강 : 8일 오전 8시]

오늘(7일) 날씨가 확 풀렸습니다. 오후에 머리를 깎으러 미용실에 갔더니 원장이 환하게 미소 지으며 "날씨가 좋으니까 살겠어요. 손님들의 얼굴 표정도 환해졌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요즈음 추운 날씨가 오래 계속되어 모두가 생활하기가 참 힘들었습니다.

머리를 깎으며 영미(가명)씨 생각이 났습니다. 날씨가 오늘만 같으면 그녀도 다른 날보다는 견뎌내기가 보다 쉬울 것입니다. 그녀는 20여일 전부터 전철역 입구에서 군고구마를 팔고 있습니다. 그 전에는 주로 조그만 차에 과일을 싣고 와서 그것을 팔았습니다. 남편은 그녀가 과일을 파는 맞은편에서 계란빵을 만들어 팔고 있습니다.

요즈음 그녀를 보기가 무척 괴로웠습니다. 전철을 타려면 반드시 그 앞을 지나야 하는데 이 추운 날씨에 군고구마를 파는 모습이 안쓰럽기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체구도 매우 작은데 어디 들어가서 추위를 녹일 데도 변변치 않기에 그냥 그 추위를 견뎌내면서 고구마를 굽는 큰 드럼통 곁에 서 있어야 했습니다.

지하철을 타러 갈 때에 그녀에게 인사를 했지만 끝나고 돌아올 때는 제발 그녀가 일을 마치고 그 자리에 없기를 바랐습니다. 어떤 날은 다행히 그녀가 안 보였지만 어떤 날은 여전히 거기서 장사를 하고 있어서 내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야학에서 만난 영미씨... 아쉬움 가득한 그녀의 '뒷모습'

영미씨를 안 것은 2년 전 4월 어느 날입니다. 당시 나는 마을에 새로 생긴 야학에서 역사교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여러 사정으로 인해서 정규학교를 다니지 못한 중년 여성들을 대상으로 검정고시를 목표로 가르쳤는데, 학생은 10여 명 정도 됐습니다. 1주일에 하루 저녁에 나가서 2시간씩 가르쳤는데, 역사가 내 전공은 아니지만 열심히 준비해서 재미있게 그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녀는 중학교 검정고시를 보기 위해 야학을 찾아왔습니다. 나도 체구가 작은 편인데 그녀는 꼭 초등학교 4~5학년같이 작았으며 나이는 40대 후반으로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수업시간에 맨 앞자리에 앉아서 필기도 성실하게 하며 나의 설명을 귀담아 잘 들었습니다.

야학에 오면 늘 밝은 표정으로 공부를 열심히 하는 그녀였지만 안타깝게도 다른 학생보다 결석횟수가 많아 걱정이 됐습니다. 다음 시간에 만나 물어보면 자세히는 말하지 않고 다만 하는 일이 바빠서 어쩔 수 없이 빠졌다고 말했습니다. 어디나 마찬가지겠지만 검정고시도 꾸준히 준비를 해야 붙기 때문에 가능한 한 결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러다가 마을에 있는 유일한 그 야학이 그만 9월 들어 문을 닫게 됐습니다. 교사 수급이 원활하지 않았고 재정난을 이겨낼 수 없어 그만두게 된 것입니다. 정말 아쉬웠습니다. 마을에 야학이 들어선다는 플래카드를 보고 좋아하며 직접 찾아가서 교사를 자청한 나였기에, 교장에게 어떻게든 해보자고 사정했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래서 남은 학생들은 어쩔 수 없이 정든 야학교를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비록 결석이 잦고 많이 나오지는 못했지만 영미씨도 아쉬워하며 가방을 챙겨들고 나갔습니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떼는 그녀의 마지막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전철역 앞에서 다시 만난 그녀 앞엔 군고구마와 계란빵이...

40∼70대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학력인정 평생학교' 졸업식에서 눈물 훔치는 졸업생.
 40∼70대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학력인정 평생학교' 졸업식에서 눈물 훔치는 졸업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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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몇 개월이 지났는지 모릅니다. 영미씨를 전철역 입구 길가에서 만났습니다. 그녀는 그때 남편과 같이 작은 트럭 짐 싣는 곳에 앉아서 과일 상자를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반가웠습니다. 그러면서도 나는 야학을 계속 이어나가지 못한 죄책감 때문에 그녀를 자신 있게 바라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이후 지금까지 그녀는 전철역 근처를 벗어나지 않고 장사를 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곳을 지날 때에 그녀와 인사를 나누기도 했지만 그냥 지나칠 때도 사실 많았습니다. 그녀가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물건을 팔 때, 과일 상자를 정리하거나 그릇에 담긴 과일들을 손질할 때는 얼른 그 앞을 지나갔습니다. 어떤 때는 늘 그녀가 다른 곳으로 가서 장사를 했으면 하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언제였던가요. 그녀는 전철에서 내려 집으로 돌아가는 나와 인사를 나누더니 활짝 웃는 얼굴로 잠깐만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무슨 일로 그러나 궁금하게 생각하며 서 있는데, 큰 비닐봉지를 하나 꺼내더니 이 과일 저 과일 몇 개씩을 거기에 넣은 것이었습니다. 가격은 잘 몰라도 대충 몇천 원어치는 되는 분량이었습니다. 그것을 그냥 주며 가져가서 가족이랑 먹으라고 했습니다.

가게 없이 조그만 트럭 하나 놓고 과일 장사를 한다는 것, 얼마나 버는지 잘 알지 못합니다. 야학에서 자신을 가르쳐주었던 선생이라고, 영미씨는 파는 과일을 한 봉지 가득 담아서 나에게 안겨주었습니다. 고맙다고 했습니다. 맛있게 잘 먹겠다고 했습니다. 과일을 든 손이 무거웠지만 그녀의 따뜻한 사랑 덕분인지 내 마음은 집에 올 때까지 매우 훈훈하기만 했습니다.

그녀가 다시 책을 잡기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야학을 할 때 왜 그녀가 결석이 많았는지 말은 상세하게 하지 않았지만 전철역에서 힘들게 장사하는 그녀를 보면서 충분히 짐작할 수가 있었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야학에 나올 때에도 눈치를 많이 봤을 겁니다. 어렵게 돈을 버는 남편이 조금이라도 배려했기에 그나마 나와서 책을 볼 수 있었을 겁니다.

며칠 전에 서울에 일이 있어 들렀는데, 영미씨가 "야학 요즈음 어떻게 됐나요?"라고 물었습니다. 제발 그것만큼은 언급하지 않기를 속으로 바랐던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좋을지 몰랐습니다. 비록 내가 야학이 문을 닫게 된 것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을 질 일은 아니었지만 교사를 했었기 때문에 그 책임에서 마냥 자유로울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실대로 그녀에게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에 그만둔 이후 아무 연락도 없었다고, 그래서 언제 다시 문을 열 수 있을지 전혀 모르겠다고 답했습니다. 그녀도 대충 절망적인 상황임을 알고 있었지만 하도 답답해서 물어본 것 같기에 힘없이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습니다. 그런 그녀 앞에 나는 큰 죄를 지은 죄인의 심정으로 서 있었습니다.

요즈음 들어 그녀가 이제는 좀 쉬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이 혹독한 추위만큼은 지나간 다음에 나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습니다. 그녀는 이 강추위에도 나와서 다만 몇 푼이라도 벌어야 생계를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을. 그녀만이 아니라 남편도 지금처럼 많은 시간을 장승처럼 한 자리에 꼼짝없이 서서 계란빵을 수없이 굽고 또 구워야 하루 먹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들을 위한다면 군고구마와 계란빵을 자주 사주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을 할 수 없다면 그들을 위해 건강하게 이 추위를 이겨내도록 기도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아니 또 하나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들을 만날 때마다 웃는 얼굴로 밝게 인사를 하며 "추운데 수고 많으십니다. 많이 파시길 바랍니다"라고 덕담을 건네주는 겁니다. 이렇게 잘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그렇게 잘하지 못했습니다.

영미씨가 다시 예전 야학에서 했던 것처럼 책을 잡을 수가 있을까요? 지금 형편으로 봐선 그것마저도 그녀에게는 사치스러운 일이 될 것 같습니다. 남들은 대학교다 대학원이다 하는데 고등학교도 아니고 겨우 중학교 자격 따는 것도 그녀에게는 먼 나라의 일입니다.

오늘 저녁에도 그녀는 조그만 몸에 방한모를 쓰고 방한복을 입고 군고구마 드럼통 곁에 몇 시간이고 서 있을 겁니다. 날이 좀 풀려서 다행이지만 겨울은 겨울입니다. 제발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다시 중학교 책을 들고 공부할 날이 왔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태그:#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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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요즈음 큰 기쁨 한 가지가 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오마이뉴스'를 보는 것입니다. 때때로 독자 의견란에 글을 올리다보니 저도 기자가 되어 글을 쓰고 싶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우리들의 다양한 삶을 솔직하게 써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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