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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승 씨 친척인 최병천 씨가 철탑위에 있는 최병승 씨와 전화로 안부를 묻고 있습니다.
 최병승 씨 친척인 최병천 씨가 철탑위에 있는 최병승 씨와 전화로 안부를 묻고 있습니다.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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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6일 일요일. 오전에 철탑으로 갔습니다. 철탑농성 82일차.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명촌문 쪽에 있는 철탑에 두 사람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올라가 있습니다. 저도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입니다. 10여 년간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 다녔고 2년 10개월 전인 2010년 3월 15일경 이유도 모른 채 정리해고 당했습니다. 제가 현대차에서 정리해고 당한 것을 억울하게 여기는 것은 제가 정리해고 되던 해 7월 22일 대법원에서 현대차를 불법파견 기업으로 판결했다는 사실을 알고서부터 입니다.

제가 기분 나쁘게 여기는 부분은 국내 최고 대기업인 현대차에 속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양심적으로 노동자를 직접채용해서 일을 시키다가 어쩔 수 없는 현실에 직면해서 정리해고 했다면 덜 억울할 텐데, 10여 년간 불법으로 '한 다리 건너' 간접채용된 채 사용되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불법파견으로 간접채용 당하고 정규직의 두 배나(임금이 정규직의 절반이니까요) 노동착취 당해왔다 생각하니 밤에 잠이 오지 않았더랬습니다.

저만 그렇게 당해온 게 아니었습니다. 2003년 말 노동부로부터 불법파견이 판정되어 세상에 알려진 후로도 현대차는 끊임없이 비정규직 노동자를 불법파견업체를 통해 간접고용하면서 부당하게 노동착취를 해왔다는 사실입니다. 그 당시만 해도 101개 업체 9700여 공정 모두 불법파견이라 판정했으니 울산, 전주, 아산 포함해서 1만3000여 명에 이르렀습니다.

지금은 불법파견 공정이라고 한 공정을 도급화하기 위해서 하청업체를 합병도 하고 폐업 하기도 해서 사내업체수가 많이 줄어든 상태입니다. 비정규직 노조에서 확인한 결과 지금은 8500여 명이 하청업체 소속으로 출퇴근하고 있다고 합니다.

2010년 7월 22일 대법원에서 불법파견 판결이 내려진 후로도 현대차는 불법파견업체를 폐업시키지 않고서 사용해오고 있으며 2012년 2월 23일 대법원에서 "현대차는 불법파견 하청업체를 두고 사용해 왔다"고 최종판결 내렸습니다. 그럼에도 현대차는 합법으로 돌리려하지 않고 있습니다.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가 2003년 "우리도 사람답게 살고 싶다"며 노조를 만들고 조합활동을 해온지 10주년이 되어 갑니다. 2004년 초부터 터진 불법파견 문제 해결을 위해 노조활동을 해오면서 한 사람의 비정규직 해고자가 자결을 했고, 손배가압류만도 160억 원이 넘게 받았으며 해고자만 200여 명에 이릅니다.

현대차는 2012년 2월 23일 대법원에서 불법파견이라고 최종판결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불법파견을 중단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현대차는 불법파견 중단하라는 원하청 노동자에 대해 무차별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고, 손배가압류와 고소고발을 수도 없이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난 1월 3일 오후 2시경 울산지법 집행관이 와서 세워놓고 간 고시장
 지난 1월 3일 오후 2시경 울산지법 집행관이 와서 세워놓고 간 고시장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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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못한 대법판결 승소자인 최병승씨는 현 비정규직 노조 사무국장과 함께 철탑고공농성에 들어간 것입니다. 철탑고공 농성 79일째였던 지난 1월 3일 오후 3시경. 철탑으로 법원집행관이 와서 고시장을 세워두고 갔습니다. 1월 5일 토요일 오후 4시경엔 울산철탑에서 2000여 명이 모이는 희망버스 행사가 진행되었습니다. 그리고 1월 6일 일요일 오전 철탑이 적막할 것 같아서 다시 가보게 된 것입니다.

철탑은 조용했습니다. 몇몇 비정규직 노동자가 화롯가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점심 때가 다되어 그런지 주방에선 음식준비가 한창이었습니다. 농성장을 지키는 노동자와 철탑 위에 있는 두 농성자에게 제공될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지상의 농성 지킴이는 알아서 밥을 퍼다 먹었습니다. 철탑 위로 음식을 올리는 것을 담당하는 노동자가 있었습니다. 그릇에 밥과 국, 반찬을 담아서 철탑 위와 연결된 줄에 매달면 위에서 끌어 올렸습니다. 다 먹은 후 빈 그릇은 다시 끈에 매달아 내려 보냈습니다.

함께 점심을 먹고 다시 화롯가에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말쑥한 차림의 신사 한 분이 나타났습니다. 어떻게 왔는지 물었습니다.

"저는 최병승씨 6촌 형입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명함 한 장씩을 주었습니다. 명함엔 "국회의원 민병두 보좌관 최병천"이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생긴 것도 비슷하고 병자 돌림을 하는것 보니 친척이 분명했습니다. 저는 최병승씨에게 친척이 왔다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고함소리를 들었는지 최병승씨와 천의봉씨가 동시에 나와 보았습니다. 아래를 보자 반가운 듯이 웃어보이며 한 손으로 전화를 하라고 하는 시늉을 했습니다. 손님은 전화 번호를 눌렀고 통화를 하였습니다.

"너무 늦게 와서 미안합니다. 대선이라 바빠서 그간 와보고 싶어도 못 와보았습니다. 저는 민노당이나 통진당에서 실무자로 일하다가 지금은 민병두 국회의원 보좌진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한동안 이야기를 하고 통화를 끝냈습니다. 저는 통화가 끝난 후 1월 3일 오후 2시경 세워 두었다는 고시장이 있는 곳으로 안내했습니다. 보좌관님은 고시장을 찬찬히 살펴보았습니다. 고시 간판을 살펴본 후, 또 다른 일정 때문에 가보아야 한다면서 후원금을 어떻게 내는지 물어보아 농성장 상황실로 안내해 드렸습니다. 잠시 후 철탑으로 오신 분들과 만나 떠났습니다.

어느덧 날이 기울었습니다. 해가 비칠 때는 그나마 괜찮더니 해가 넘어가고 날이 어두워지니 다시 싸늘한 날씨로 변했습니다. 저녁이 되자 임시 주방에선 저녁거리를 만들어 줄에 매달아 올려보내 주었습니다. 저는 농성장을 지키는 여러 노동자와 함께 저녁을 먹고 집으로 왔습니다. 저도 농성장에서 24시간 지내고 싶지만 내일부터 다시 일을 다녀야 합니다. 현대차에서 다시 정규직 전환하여 복직시켜줄 때까지는 가족 생계유지를 위해 일용직이라도 계속 다녀야 할 형편입니다.

불법파견 중단하라고 파업을 벌이다 해고된 수많은 노동자가 철탑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 해고자들에게 늘 빚을 지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편하지 못합니다. 82일째 밤이 또 깊어 갑니다. 좁은 철탑 위 철판 위에서 칼잠을 자야 하는 최병승, 천의봉 두 노동자가 떠오릅니다. 그들은 오늘밤 또 얼마나 추위에 떨며 기나긴 밤을 지새워야 할까요.

추위도 추위지만 시간마다 지나다니는 철커덕 거리는 열차소리하며 옆 공장에서 들려오는 기계소리에 깊은 잠을 청할 수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저도 오늘 밤 농성하는 노동자들 걱정에 잠을 못들 것 같습니다.

현대차가 대법판결 조건없이 이행하겠다는 발표가 방송에서 흘러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지금도 간접고용으로 고용불안에 떨면서 출퇴근 할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기뻐하게 말입니다.

지난 1월 5일 토요일 오후 4시경 진행된 희망버스 행사. 2000여명이 전국에서 광광차를 빌려 울산에 도착했습니다. 끝난후 부산 한진중공업으로 갔습니다.
 지난 1월 5일 토요일 오후 4시경 진행된 희망버스 행사. 2000여명이 전국에서 광광차를 빌려 울산에 도착했습니다. 끝난후 부산 한진중공업으로 갔습니다.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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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현대자동차, #불법파견, #정규직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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