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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모님과 아내. 처는 직장 생활을 하면서 시아버지, 시어머니에 친정 엄마까지 함께 모시게 되니 몸은 훨씬 피곤하지만 마음은 날아갈듯 신명이 난다고 했습니다.
 장모님과 아내. 처는 직장 생활을 하면서 시아버지, 시어머니에 친정 엄마까지 함께 모시게 되니 몸은 훨씬 피곤하지만 마음은 날아갈듯 신명이 난다고 했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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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년 전, 저는 제 고향 희곡에서 60리께 떨어진 김천 봉계의 한 처녀와 혼인했습니다. 서울에서 만나 결혼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른다고 고향이 바뀔 수는 없기에 귀향길에는 김천시에서 가까운 처가에 먼저 들렀다 제 고향으로 갑니다.

장인어른께서 20년 전에 돌아가셨던 터라 장모님 홀로 생활하고 계십니다. 아들 둘에 딸 넷을 두셨고, 딸들은 고양·군포·파주·제주 등 먼 곳에서 살고 있지만, 아들 둘은 김천과 봉계에서 살고 있으므로 장모님과는 지척입니다.

큰 동서가 제발 함께 살 것을 청하지만 장모님께서는 홀로 사는 게 편하다고 하시며 한사코 합치기를 마다하셨습니다.

지난 12월 초, 시제(時祭)에 참석하기 위해 고향으로 가는 길에 장모님을 뵈러 들렀습니다. 예년에는 처와 둘이서 내려가던 시제에 이번에는 아들이 동행했습니다. 막 스무살이 된 아들에게도 집안의 일뿐만 아니라 문중의 일에도 관심을 갖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오후 10시가 다된 시각. 문을 두드리자 장모님은 갓 잠에서 깨신 모습으로 우리를 맞았습니다. 장모님댁 방 안 공기는 싸늘했습니다. 기름값을 아낄 요량으로 보일러 스위치를 아예 꺼두신 탓이었습니다.

"겨울인데, 보일러를 끄면 어떡해!" 

아내는 어머님을 꾸짖듯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전기장판 위에만 있으면 춥지 않아."  

장모님의 변명에도 찬 방구들에 홀로 기거하는 모습을 본 아내는 바닥에 앉기도 전에 눈가의 물기를 훔치기 바빴습니다.

장모님께서는 수년째 치매를 앓고 계십니다. 언어 능력이나 판단력에는 큰 문제가 없지만 기억력이 저하된 상태라 악화를 막기 위해 매일 약을 복용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동행한 아들이 외할머니께 사가지고 간 치킨 한 조각을 입에 넣어드렸습니다.

딸 이름 기억나지 않는 장모님

외손자를 기억하지 못하는 장모님. 치킨 한 조각을 입에 넣어주고 있는 이 젊은이가 누구인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외손자를 기억하지 못하는 장모님. 치킨 한 조각을 입에 넣어주고 있는 이 젊은이가 누구인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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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너무 가라앉은 분위기를 만회해볼 심산으로 농담삼아 장모님께 여쭤봤습니다.

"어머님, 이 청년이 누구인지 아세요?"
"글쎄?"  

장모님의 대답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외손자를 몰라보신 것입니다. 아들이 외국에서 1년 머무는 동안 보지 못했다고 하지만, 외손자가 드린 인사도 누구인지 모른 채 받으신 것입니다.

"그럼… 저는 누구예요?"
"사위지."  

"이 사람은요?"
"복자 아니야? 선자인가?"

당신의 딸을 기억하는 것도 힘겨워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저와 함께 시제에 참석하기로 예정된 아내에게 장모님과 함께 있을 것을 권했습니다. 그리고는 아들만 데리고 심야에 고향으로 향했습니다.

다음날 오전 문중 어른들과 함께 시제를 마치고 고향을 떠나며 고향에서 세 계절을 보낸 부모님을 모시고 왔습니다. 한때 제 옆에 모시고 싶어 파주 금산리 한옥에 부모님을 살게 했지만, 객지 생활에 힘겨워하셨던 터라 1년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부모님은 다시 고향으로 내려가셨습니다. 하지만 농한기인 겨울 동안에는 손자·손녀들과 함께 지내도록 다시 서울로 모시곤 합니다.

상경길에 아내를 태우기 위해 다시 처가에 들렀습니다. 아내는 장모님과 함께 목욕을 하고 한마을에 사는 처남 집에서 점심을 먹었다고 했습니다. 아내는 장모님과 하룻밤 지내는 것만으로도 많이 진정된 모습이었습니다.

그렇지만 한동네에 아들과 며느리가 있다고 하더라도 치매 증상이 심해진 어머니를 집에 홀로 둘 수 없다고 여긴 아내는 상경한 다음 주, 처남들에게 동의를 구하고 장모님을 서울 본가로 모셨습니다.

아들은 자기 방을 외할머니께 내드리고 거실로 나와 생활했습니다. 서울의 작은 전셋집에 아버지와 어머니, 장모님 이렇게 노인 세 분과 아들과 딸 세 명 그리고 직장 때문에 주로 서울에 있는 아내까지 일곱 식구의 동거가 시작됐습니다.

82세의 장모님보다 연세가 많은, 90세의 어머님도 기억력이 많이 감퇴된 탓에 종종 같은 질문을 되풀이하시곤 합니다. 서로 조심스러울 수 있는 사돈끼리 한 지붕 아래의 함께 산다는 게 무척 걱정스럽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아내에게 물어보니 시아버지가 주로 방에 계시는 시간이 많아지긴 했지만, 안사돈끼리는 오히려 보완적 관계가 됐다고 했습니다.

인생의 황혼길에서 만난 벗

10년째 치매를 앓고 있는 장모님과 노환으로 기억력이 많이 감퇴한 어머니. 두 안사돈은 이제 노인정에 마실나온듯 하루 종일 같은 질문을 서로 주고받으면서 소일합니다.
 10년째 치매를 앓고 있는 장모님과 노환으로 기억력이 많이 감퇴한 어머니. 두 안사돈은 이제 노인정에 마실나온듯 하루 종일 같은 질문을 서로 주고받으면서 소일합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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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방 물은 내용도 곧 잊어버리는 탓에 같은 질문이 계속 이어지는 두 분을 상대하기는 참 지루한 노릇이지만, 두 안사돈끼리는 같은 질문도 새로운 질문으로 여기시니 오히려 다행인 경우입니다.   

"야들이 어떻게 만났지요?"
"글쎄 저희들끼리 연애를 했다고 하지 않았나요?"
"어떻게 만났든 지금도 잘살고 있으니 다행입니다." 

두 분은 자신들을 사돈의 인연으로 맺어준 딸과 아들이 어떻게 만나 언제 결혼했는지도 잊고 있었습니다. 저는 서울의 사정을 아들의 페이스북 담벼락을 통해 짐작하곤 합니다. 2주 전에 올린 아들의 글을 하나를 보고 코끝이 시큰해졌습니다.

"우리 외할머니랑 누워서 한 시간째 얘기하는데 여기는 김천 아니냐고…. 서울에 언제 데려왔냐고…. 안 잊어버리시려고 손가락으로 아들·딸 이름 불러가며 세고 계시는데 웃으면서 대답해드리고는 있지만 더 슬픈 건 홀로 20년을 아들·딸 키워 오신 외할머니가 손가락으로 세는 그 아들·딸을 기억 못 하신다는 거다. 

방금 아침식사를 같이 한 우리 엄마도 눈앞에 없으면 얼굴이 기억 안 나신다고…. 보고 싶은 아들·딸 생김새조차 생각이 안 나면 정말 김천에서 외롭게 혼자 지내오셨을 지난 수년이 죄송스럽다. 그걸 이제 알았기에 지금 같이 누워있는 손주가 누군지 기억을 못하셔도 1분마다 반복되는 같은 물음에 똑같이 환하게 웃으며 대답해드릴 수밖에 없다."  

아들은 다행히 외할머니께 자신의 방을 내드리고 반복되는 동일한 질문에도 효성으로 대하는 정서를 가졌습니다. 이어 아들은 부모의 입장을 헤아리는 말을 덧글로 달았습니다. 

"외할머니를 보시는 부모님은 얼마나 힘드실지…. 우리 엄마가 날 기억 못 한다면 난 아마 미칠 거다."

장모님 위해 방마다 '간판'을 달았습니다

안사돈끼리 뜻하지 않게 노년의 동행인이 되었습니다.
 안사돈끼리 뜻하지 않게 노년의 동행인이 되었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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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마지막 주에는 큰딸 나리가 저를 돕기 위해 파주 모티프원에 왔습니다. 저는 장모님의 안부를 물었습니다.

"오늘도 새벽에 눈을 뜨니 외할머니께서 신발을 신고 현관에 서 계신 거예요. 김천에 가시겠다고…. 그래서 방에 다시 모시고 두 시간 동안 외할머니 물음에 답했어요.

'여기가 어디고?'
'셋째 딸 복자네예요. 서울.'
'내가 딸이 몇이고?'
'네 명이에요. 큰이모 금자·선옥, 엄마 복자, 작은 이모 선자 이렇게요.'

'금자, 선옥이, 복자…. 세 명이네.'
'작은 이모가 빠졌어요. 제주도에 사는 선자 이모.'
'선자? 선옥이, 복자…. 세 명인데?'
'제일 큰 이모가 빠졌어요. 금자.' 

'모두 잘 살고 있나?'
'예, 모두 다 잘 사세요. 외손자·외손녀들도 모두 다 잘 컸고요.' 
'여기가 어디고?'
'서울이에요. 복자네.'

이렇게 질문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요."

아들·딸들은 교대로 이렇게 새벽마다 일찍 잠에서 깬 외할머니와 두 시간씩의 대화를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낯선 곳이라 공간 개념도 점점 희박해지셔서 다녀오신 화장실도 다시 찾기 어려워하시는 외할머니를 위해 본인의 이름인 '임화숙방'을 비롯해 방마다 이름을 써 붙였다고 합니다.

'서울 복자집 대문, 사돈방, 복자방, 화장실.'
 
공간 감각이 무디어진 장모님은 하루에도 몇 번씩 들락이는 방문도 헛갈려합니다. 할 수 없이 둘째딸이 큰 글씨로 방 이름을 써 붙였습니다.
 공간 감각이 무디어진 장모님은 하루에도 몇 번씩 들락이는 방문도 헛갈려합니다. 할 수 없이 둘째딸이 큰 글씨로 방 이름을 써 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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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현관문을 잘 단속하지만 열리는 경우가 생길 것이 염려돼 급히 연락처가 새겨진 치매 노인용 목걸이·팔찌를 만들어 착용해드렸습니다.

주소와 전화번호가 새겨진 팔찌와 목걸이
 주소와 전화번호가 새겨진 팔찌와 목걸이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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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날 세 부모님을 헤이리로 모셨습니다. 온 가족들도 함께 말이죠. 그리고 뮤지컬 공연에 들어간 큰딸도 밤늦은 시각에 뒤늦게 달려왔습니다. 함께 저녁식사를 할 수는 없었지만 세 분의 부모님들로 인해 거의 2년 만에 온 가족이 한 자리에 모일 수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는 장모님께서 아침마다 딸의 이름을 되뇌실 때 한 번씩 잊어버리는 둘째 딸과 사위네 가족도 함께했습니다. 둘째 딸도 직접 보고 잘 살고 있는 것을 확인해서인지 장모님은 유난히 즐거워하셨습니다. 다음 날 아침 다시 이 딸을 기억하기 위해 손을 꼽으며 애쓰실지도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다음은 내 차례"라는 말... 가슴이 울립니다

새해 첫날 모든 식구들이 함께 모였습니다. 동서네 식구까지.
 새해 첫날 모든 식구들이 함께 모였습니다. 동서네 식구까지.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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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수빈뜰의 이명희 여사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새해 첫날을 어떻게 보냈는지 물었습니다. 온종일 같은 질문이 되풀이하는 어른들과 함께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 여사님은 제 말에 허허 웃으시고 말을 이었습니다.

"다음은 제 차례에요. 제게도 영원히 늙을 것 같지 않은 젊음이 있었지요. 하지만 누구나 같은 과정을 통해 늙어갑니다. 예외 없는 그 과정을 지금 저는 각오하고 있습니다."  

이 여사님은 칠순을 향해가고 계신, 하지만 여전히 자신감으로 충만한 삶을 당당하게 살고 계시는 분입니다. 이런 모습만 알고 있는 제게 단단한 각오로 "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는 고백을 하셨습니다. 이 고백은 갑자기 외손자를 몰라본 장모님의 모습을 직접 목도하는 것만큼이나 제 마음 속에 파문을 남겼습니다.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태그:#치매, #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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