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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이 모두 떠난 충남 예산군 삽교읍 목리 쪽 내포신도시. 홀로 선 LH 내포사업단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주민이 모두 떠난 충남 예산군 삽교읍 목리 쪽 내포신도시. 홀로 선 LH 내포사업단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 김동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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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 있던 찬 샘에서 목욕(沐浴)을 했다고 하여 이름 지어진 충남 예산군 삽교읍 '목리(沐里)', 충남도청 이전 내포신도시의 또 다른 이름이다. 2013년 새로운 변화를 상징하는 내포신도시에 조상 대대로 터를 잡고 농사를 짓던 피붙이 땅을 내어준 목1·2리 사람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충남 역사를 바꿔놓은 '충남도청 이전'이라는 큰 흐름 속에서 목리 사람들은 하나 둘 고향을 떠났다. 격동의 중심에서 변화에 밀려난 것이 아니라 충남도청 이전과 내포신도시 건설이라는 대의명분 아래 선뜻 자발적 실향민이 됐다.

본격적인 이주가 시작된 지난 2008년부터 150여가구에 달하던 목리 사람들은 여생을 맡길 새 둥지를 틀었다. 노구를 자식에게 의탁한 부모부터 천직으로 알고 있는 농사를 계속 짓기 위해 고덕과 봉산 등지의 농토를 구한 농민, 아예 외지로 나간 주민,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떠난 망자까지 4년이 흐르는 사이 저마다의 사정에 따라 목리 사람들의 삶의 모습과 방식은 완전히 달라졌다.

목리 사람들이 평소 '신식사람'들만 사는 집이라고 생각했던 '아파트'로 제일 많이 이사를 했다는 사실은 흥미로운 점이다. "목리 사람들을 만나려면 덕산과 삽교의 아파트 노인정으로 가면 된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덕산 읍내리 써니밸리아파트에 30~40명, 삽교 신가리 예다움아파트에도 10여명의 목리 사람들이 살고 있다. 평생 농가를 고집했던 목리 사람들의 주거형태가 가장 파격적으로 바뀐 셈이다.

아파트로 들어간 목리 사람들의 일상 또한 많이 변했다.

아파트 노인정이 눈을 뜨면 논밭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붙잡았고, 삽과 호미가 떨어질 날이 없던 손에는 치매 예방에 효과 만점이라는 화투와 윷이 들려 있다. 노인정에 모인 이웃, 친구들과 옛이야기를 나눌 때면 목리를 향한 진한 그리움이 묻어 나오는 것 또한 낯선 분위기다. 그렇다고 목리 주민들이 과거와 단절된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

2009년부터 해마다 남녀노소 모두가 한데 어우러지는 동네잔치를 열어 끈끈한 정을 나누고, 평소에는 서로 연락을 하면서 애경사를 챙기는 등 여전히 인연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한동안 목1리 이장을 맡아 마을일을 돌봤던 삽교농협 김종래 조합장은 "그동안 1·2리로 나누어졌던 단합대회를 새해부터는 목리라는 이름으로 통합해 개최할 예정이다"라며 "또 내포신도시 삽교 쪽에 애향공원이 들어서면 목리 주민들의 이름과 전화번호, 집주소를 새겨 넣은 돌판을 세우려 한다"고 소망을 밝혔다.

김 조합장은 또 "충남도청이 이전하는 내포신도시 건설을 위해 땅을 내주었으면 로드맵에 따라 예산 쪽도 공사가 착착 진행됐으면 좋으련만 그렇지 않아 속이 상한다"면서도 "그래도 이제는 내포신도시로 이주하는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하지 않겠냐"며 내포신도시의 성공을 기원했다.

행정도 목리를 지키고 있다.

삽교읍사무소는 내포신도시 조성공사가 마무리된 후 목리에 다시 마을이 이뤄질 때를 대비, 목리의 명맥을 잇고 행정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이장제도를 그대로 운영하고 있다.

2009년부터 목리 이장을 맡고 있는 인흥식(56) 이장은 목리 사람들과 수시로 소식을 주고받으며 대소사는 물론 삽교읍사무소에서 알리는 행정정보를 전파하고 있다.

"고향 내줬는디 당연히 잘 되야지"
[인터뷰] 목리 원주민 인삼식 할아버지
충남 예산군 덕산면 읍내리 써니밸리아파트 노인정에서 여러 어르신들과 담소를 나누던 인삼식(왼쪽에서 두 번째) 할아버지를 만났다.
 충남 예산군 덕산면 읍내리 써니밸리아파트 노인정에서 여러 어르신들과 담소를 나누던 인삼식(왼쪽에서 두 번째) 할아버지를 만났다.
ⓒ 김동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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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1월에 이사를 와 이제는 충남 예산군 덕산면 읍내리 써니밸리아파트의 터줏대감이 된 목리 원주민 인삼식(85) 할아버지.

10여명의 어르신들이 모여 있던 써니밸리아파트 노인정에서 만난 인삼식 할아버지는 "200년 전 낙향한 선조의 땅을 지키지 못하고 목리에서 아파트로 이사를 왔는데 애로가 겁나게 많다. 목리서 살 때는 옆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도 알았는데, 아파트는 문 닫으면 그만이다. 누가 이사를 오는지 가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며 "같이 아파트로 이사 온 이웃들을 빼고는 이제는 뿔뿔이 흩어진 동네사람들을 만나기도 어렵고, 동네사람들끼리 서로 어울리던 맛도 없다"고 불평을 풀어놨다.

"아파트로 이사를 오면서 농사도 그만 뒀다. 일(농사)을 안 해서 편한 것 빼고는 좋은 게 없다"고 덧붙인 인삼식 할아버지 얼굴에서 목리에 살던 옛 시절에 대한 향수가 진하게 묻어 나왔다. 땅만 내어주면 금방이라도 큰 건물들이 줄줄이 들어서 발전할 것으로 믿었지만 허허벌판으로 남아있는 내포신도시 목리 쪽 상황도 인삼식 할아버지의 노여움을 샀다.

인삼식 할아버지는 "우리네 생각엔 매사 실속은 홍성에 뺏기는 것 같아 (목리 쪽 공사를 맡은) 한국토지주택공사 원망을 많이 한다"며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TV를 보면 다들 내포신도시가 잘 될 거라고 얘기를 하는데 고향을 내준 우리네 맘만 하겠느냐. 내 나이가 여든 다섯인데 우리네야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나. 그래도 우리 자식 때는 많이 나아지지 않겠느냐"는 말로 자신의 고향, 내포신도시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덧붙이는 글 | 충남 예산에서 발행되는 지역신문 <무한정보>와 인터넷신문 <예스무한>에도 실렸습니다.



태그:#내포신도시, #충남도, #도청 이전, #예산군, #삽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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