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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도서관을 6년 째 꾸리는 여성이 있다. 불만이 있을 만도 한데, 정작 본인은 행복해 죽겠다는 표정이다. 만난 지 1분 만에 상대방을 웃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왜 그럴까?

규모는 작지만, 내용은 크다

안성 태산작은도서관은 2005년 개관했다. 안성 태산아파트 주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도서관이다. 대표 황순옥(57세)씨는 2006년부터 지금까지 홀로 근무한다. 요즘도 아침 10시면 출근해서 도서관을 관리한다. 공휴일 말고는 쉬는 날이 거의 없다.

이 도서관에서 안성시가 선정한 '책 읽는 가족'이 탄생했다. 그 가족은 올해만 총 819권을 빌려가서 읽었다. 물론 온 가족이 읽은 책의 숫자다. 총 네 가족이니 평균 200권이란 셈이다. 이게 바로 집 주변에 있는 작은 도서관의 위력이 아닐까.

도서관이 길러낸 아이들도 몇 명 있다고 순옥씨는 말한다. 여기서 키운 독서력으로 과학경시대회에 나가서 입상한 아이, 학교에서 각종 글짓기에서 수상하는 아이 등이다. 어떤 주부는 아이를 학원에 보내지 않고 여기 와서 주구장창 같이 책을 읽는단다. '인재양성', 제대로 한다.

작은 도서관에 책이 적어 불편할 거 같지 않은가. 이 도서관은 별로 염려 없다. 왜? '상호대차 서비스'가 있으니까. 일주일에 4회 순회하는 사람이 있다. 인근 작은 도서관끼리 필요한 책을 서로 빌리는 시스템이다. 책을 모두 다 구비하지 않아도 극복하는 비결이다.

혼자서 6년동안 도서관을 꾸려왔지만, 이 일이 그렇게 재밌고, 행복하다는 황순옥 씨. 그녀와 1분만 마주하고 있으면 바로 유쾌해진다.
▲ 황순옥 대표 혼자서 6년동안 도서관을 꾸려왔지만, 이 일이 그렇게 재밌고, 행복하다는 황순옥 씨. 그녀와 1분만 마주하고 있으면 바로 유쾌해진다.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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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도서관, 가려운 등 시원하게 긁어 줘

작은 도서관은 일단 집 가까운데 있다. 이 도서관만 해도 태산아파트 관리사무소 3층에 있다. 아파트 주민들은 마음만 있으면 오다가다 얼마든지 이용한다.

이런 형국이다 보니 마을 주부들 사이에 떠도는 말이 있다. 아파트 고르는 기준 항목 중 '작은 도서관이 있을 것'이 우선순위 중 하나다. 작은 도서관이 있는 아파트가 일등아파트라나 뭐라나. 다른 아파트나 마을에선 작은 도서관이 있는 이곳을 무척 부러워한단다.

"우리 아이가 주도적 학습이 필요한 거 같은데"란 말이 나오면 그녀가 관련모임을 만든다. 미술 배우고 싶다면 미술 강좌를 연다. 퀼트 바느질을 원하는 주부들은 여기 모여서 바느질 하느라 여념이 없다. 여기서 "EM 효소"강좌도 한다.

일단 도서관이 강좌나 모임을 먼저 열고 보는 일은 없다. 모두가 이용하는 주부들의 필요에 의해 생긴다. 사람들은 말한다. 여기는 가려운 등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곳이라고.

엄마들은 여기에 나와 아이들을 위한 교육정보들을 서로 교환한다. 교육방식도 서로에게 배운다. 다른 집 아이들을 보며 우리 집 아이를 본다. 많지 않은 자녀를 키우는 그녀들은 이 도서관을 통해 큰 가족을 만난다. 엄마들은 도서관 통해 눈이 띄고, 귀가 열린다.

그녀들에겐 친정이 따로 없네

인터뷰하는 중간, 젊은 주부로부터 걸려온 전화 한통. "오늘 동지인데 이따가 팥죽 사갈 게요"란다. 찾아온 다른 아이엄마에게 "이 청동장식 줄 테니 가져 갈겨?"란다. "좋긴 한데 나보다 더 필요한 사람 줘요"라며 자연스레 거절하는 그 주부. 친해도 '너~~무' 친한 거 아냐.

시골에서 열무가 대량으로 들어오면 순옥씨를 통해 몇 가정이 나누느라 정신이 없다. 감자를 사도 한 박스를 산다. 도서관에 오는 주부들 가정에 나눠주려고. 마치 친정엄마가 딸 챙기듯.

여기 와서 가정사도 털어놓는다. 주부로서 애로사항도 나눈다. 말하다보면 주부스트레스를 날린다. 때론 "아이가 감기 걸렸을 땐 이렇게 해라. 냉장고 많이 채우지 마라. 삶을 간소하게 살아라. 많이 먹어서 지구 오염시키지 마라"고 일러준다. 그녀들에겐 '가까이 있는 친정'이라 할 밖에.

아이들이 어떤 책 읽었는지 꿰고 있다

아이들이 오니 뭐라도 주려고 한다. "귤 줄까, 음료수 줄까"라고 물으면 아이들은 귤 달란다. 아이들을 위해 사탕도 항상 많이 준비해둔다.

한 아이에게 "오늘 시험은 잘 쳤니?"라고 물으면 "네 그럭저럭요"란다. 어라, 집에서 자녀와 대화하는 듯. 집 이사 때문에 번거로워 책 읽으러 온 아이가 있다. 집에 일찍 온 아이가 갈 데 없으면 여기 와서 책 읽고 논다. 

찾아온 아이에게 일리리 "이 책은 이래서 좋고, 저 책은 저래서 좋고, 이 책은 아직 안 봤을 거고' 등등을 설명해주고 있다. 이 아이는 오자마자 "선생님 , 재밌는 책 골라주세요"라고 습관처럼 한단다.
▲ 아이와 함께 찾아온 아이에게 일리리 "이 책은 이래서 좋고, 저 책은 저래서 좋고, 이 책은 아직 안 봤을 거고' 등등을 설명해주고 있다. 이 아이는 오자마자 "선생님 , 재밌는 책 골라주세요"라고 습관처럼 한단다.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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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어떤 책을 읽었고, 아직 읽지 않았는지 웬만하면 꿰고 있다. 두 아이가 왔다. "이 책 재밌어. 저 책 재밌어. 이 책 아직 안 읽어 봤지"란다. 아이들보다 순옥씨가 더 신이 났다. 아이들도 눈이 '반짝반짝', 무슨 책일까 궁금해 한다. 한 아이는 습관이 돼서 오자마자 "책 골라주세요"란다.

이 아파트에서 순옥씨를 모르면 간첩이다. 한 사람을 아파트 거리에서 만나면, 머리에 순간적으로 떠오른다고. '저 사람 남편은 누구고, 아들은 누구고, 환경은 어떻고'라고.

그녀가 있어 이 도서관은 책만 읽는 곳이 아니게 된다. 각박한 '아파트시대'에 따뜻한 행복충전소가 연출된다. "나랑 인연 맺으면 모두 행복하죠"란 그녀의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덧붙이는 글 | 이 인터뷰는 지난 21일 안성 태산아파트 내에 있는 태산작은도서관에서 이루어졌다.



태그:#작은 도서관, #도서관, #태산작은도서관, #황순옥, #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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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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