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투표했어요?"

19일 오전 10시쯤 천막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 복기성(37·트위터 @bks10045718)씨가 동료들에게 묻는다, 아니 소리 지른다.

전국민주노동총연맹 금속노동조합 쌍용자동차지부 비정규지회 수석부지회장인 그는 11월 20일부터 한상균 전 쌍용차지부장(51·@han20093), 문기주 쌍용차지부 정비지회장(52·@eessy88kr)과 경기도 평택시 칠괴동 쌍용차 공장 옆 철탑에서 농성 중이다. 이날은 세 사람이 '쌍용차 사태 국정조사,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며 철탑에 오른 지 꼭 30일째였다.

2009년 쌍용차 사태 때 직장을 잃은 한상균, 문기주, 복기성 세 사람은 11월 20일부터 경기도 평택시 칠괴동 쌍용차 공장 옆 철탑에서 농성 중이다. 동료들이 농성자들에게 필요한 물품을 올려주고 있다.
 2009년 쌍용차 사태 때 직장을 잃은 한상균, 문기주, 복기성 세 사람은 11월 20일부터 경기도 평택시 칠괴동 쌍용차 공장 옆 철탑에서 농성 중이다. 동료들이 농성자들에게 필요한 물품을 올려주고 있다.
ⓒ 박소희

관련사진보기


밧줄로 동료들에게 19일자 신문과 휴대폰 배터리 등을 올려주던 김남섭 쌍용차지부 사무국장(42)은 복 부지회장에게 외쳤다.

"기성아! 박근혜가 대통령 되면 그냥 줄 끊어버려라!"
"박근혜가 대통령 되면 여기서 더 높이 올라갈 건데?"
"우리가 힘드니까 그냥 줄 끊어!"
"알았어요, 그럼 가위 올려줘요. 밤 11시~12시 되면 줄 끊어버리게!"

두 사람이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대화를 나누는 사이, 물건이 든 천 가방이 철탑 위에 도착했다. 농성자들은 아직 아침식사를 하지 않은 상태였다. 고공 30m 위에서 용변을 해결하는 형편에 하루 세끼를 꼬박 먹기 부담스러워서다.

"투표를 포기하면 사회는 우리가 바라는 만큼 좋아지지 않아"

2009년 쌍용차 사태 때 직장을 잃은 한상균, 문기주, 복기성 세 사람은 11월 20일부터 경기도 평택시 칠괴동 쌍용차 공장 옆 철탑에서 농성 중이다.
 2009년 쌍용차 사태 때 직장을 잃은 한상균, 문기주, 복기성 세 사람은 11월 20일부터 경기도 평택시 칠괴동 쌍용차 공장 옆 철탑에서 농성 중이다.
ⓒ 박소희

관련사진보기


페트병을 화장실 삼고, 뜨거운 물이 담긴 고무병과 침낭으로 추위와 싸워가는 이들은 18번째 대통령을 뽑을 기회를 갖지 못한다. 지난 선거에는 빠짐없이 참여했던 한상균 전 지부장은 '17대 대선 때는 누구를 찍었냐'는 물음에 "뽑은 사람이 안 됐다"며 웃었다. 그는 19일 오전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 통화에서 "투표율이 떨어지길 바라는 후보도 있다는 얘기도 듣는 상황에서 본의 아니게 투표를 못하게 돼 제 한 표가 아깝고 미안하다"고 말했다.

한 전 지부장은 "이 나라의 양극화 수준은 재앙과도 같지만, 저는 투표로 바뀐다고 생각한다"며 "투표를 포기하면 사회는 우리가 바라는 만큼 좋아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시민들에게 "반드시 투표장으로 가주시길 부탁드린다"고 힘주어 말했다.

다음은 한 전 지부장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 아침식사는 하셨는가. 기온이 뚝 떨어져서 철탑 위 생활이 더 힘들 텐데.
"아침은 주로 건너뛴다. 뒤처리가 고민스럽고 해서… 천막 밖에 잠깐 나가서 용변 보고 오면 몸이 순간 다 얼어버리더라. 밤에는 뜨거운 물 담은 고무통을 아래에서 올려주면, 그걸 껴안고 잔다. 새벽엔 다 식어버린다. 보통 아래 기온이 영하 10도라면, 여기는 영하 15도 이상인 것 같다."

- 고압전류에서 나오는 전자파도 몸에 많이 해롭다. 문기주 지회장은 이 때문에 소음성 난청과 이명을 앓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조금씩 (건강에) 문제가 생기고는 있는데, 이런 얘기를 자꾸 하면 밑에 있는 동지들이나 여러 시민들이 걱정할까 봐…. 흐린 날이나 눈 또는 비가 오면 15만4000볼트 고압 전류가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지글지글 끓는 소리다. 이 정도로 가깝게 있는 게 결코 우리에게 이롭지 않다는 건 직감적으로 느낀다. 하지만 그 생각조차 사치라고 느껴서 (건강 문제를 두고) 별 고민할 여지는 없다."

12월 19일 = 18대 대통령 선거일 = 쌍용차 고공농성 30일

2009년 쌍용차 사태 때 직장을 잃은 한상균, 문기주, 복기성 세 사람은 11월 20일부터 경기도 평택시 칠괴동 쌍용차 공장 옆 철탑에서 농성 중이다. 동료들은 그 옆에 설치한 천막에서 함께 하고 있다.
 2009년 쌍용차 사태 때 직장을 잃은 한상균, 문기주, 복기성 세 사람은 11월 20일부터 경기도 평택시 칠괴동 쌍용차 공장 옆 철탑에서 농성 중이다. 동료들은 그 옆에 설치한 천막에서 함께 하고 있다.
ⓒ 박소희

관련사진보기


- 11월 20일 새벽에 철탑에 올라갔다. 벌써 농성 30일째다.
"시간이 빠르게 지나간 것 같다. 처음 올라와서 자연의 위력 앞에 몸을 움츠릴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제 언론보도를 보니 선거 다음 날(20일) 내년도 예산안 등을 다룰 임시국회 개원을 위해 여야 원내대표가 회동한다더라. 이미 여야가 선거 후 처음 열리는 국회에서 쌍용차 국정조사 실시를 합의한다고 하지 않았나. (대선이 끝나면) 그들이 국민에게 진실을 얘기한 것인지 바로 확인되리라 본다.

근데 국정조사를 실시하는 것보다 내용이 더 중요하다. 쌍용차 사태 해결하고 노동자의 눈물을 닦는 해결책이 아니라 기업에 면죄부를 주는 국정조사로 진행될까 우려스럽다. 그럼 조합원과 노동자들이 벼랑 끝을 부여잡을 힘조차 없어진다. 2013년이 얼마 안 남았는데, 그해에는 아무 죄 없이 쫓겨난 노동자들이 공장에 돌아가고 무너진 가정을 복원해가며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겠나. 정치권이 발 빠르게 움직였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조급하진 않다. (농성 중에) 힘든 시절도 있지만, 잘 견뎌내겠다."

- 가족들하고는 자주 연락하고 있나. 농성이 길어지고 있어 많이들 걱정하고 있을 텐데.
"하루에 한 번씩 통화한다. 사실 노동자의 아내로 살아도 행복해야 하는 거다. 아내 이전에 한 여자의 일생이 있는데, 지금까지는…. 음… 제가 함께 살면서 여자로 살 수 있는 여유를 주지 못해 늘 미안하고, 우리 아이들에게도 아빠의 오랜 빈자리 때문에 마음의 상처가 있지 않을까 하는 미안함이 있다. 일단 공장으로 다시 돌아가는 일이 소박한 가정을 다시 꾸리는 첫걸음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동안 여러 가지 힘들었지만 지금도 같이 견뎌달라는 말밖에는…. 그래도 저와 문기주 동지는 아이들이 중학생 이상인데 복기성 동지는 딸이 7살, 아들이 5살이어서 무척 보고 싶을 거다. 저희는 좀 더 같이 살았잖아요(웃음)."

"정권교체 이뤄질 것, 잘못된 정권은 심판받아야 한다"

2009년 쌍용차 사태 때 직장을 잃은 한상균, 문기주, 복기성 세 사람은 11월 20일부터 경기도 평택시 칠괴동 쌍용차 공장 옆 철탑에서 농성 중이다. 복기성씨가 물건을 올려주는 동료들을 바라보고 있다.
 2009년 쌍용차 사태 때 직장을 잃은 한상균, 문기주, 복기성 세 사람은 11월 20일부터 경기도 평택시 칠괴동 쌍용차 공장 옆 철탑에서 농성 중이다. 복기성씨가 물건을 올려주는 동료들을 바라보고 있다.
ⓒ 박소희

관련사진보기


- 어쨌든 이번 대선에는 참여하지 못하게 됐다. 김소연 후보를 지지한다고 들었는데, 군소후보인 만큼 한 표라도 아까운 상황 아닌가.
"이전(선거 때)에는 다 했다. 17대 때는, 제가 뽑은 사람이 안 됐고(웃음). 민주주의가 한 표라도 투표할 수 있게끔 확장하는 게 기본인데 투표율이 떨어지길 바라는 후보도 있다는 얘기를 들으면 우습기도 하고 서글프다. 본의 아니게 투표를 못하게 돼 제 한 표가 아깝고 미안하다.

김소연 후보가 어렵고 열악한 조건에서 힘든 시간을 보낸 것 같다. 생각만 하면 마음이 찡하다. 공무원과 선생님을 포함한 모든 비정규직과 함께 노동자들이 투표하고 정치에 참여하면 본인 삶이 바뀐다고 느끼는 나라가 좋은 나라다. 그렇게 바뀌어야 한다는 면에서 (김 후보의 도전은) 좋은 출발이었다. 주변에서 많은 격려해주길 바란다."

- 투표 결과가 어떻게 나올 것 같은지. 현재는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박빙으로 겨루고 있다고들 한다.
"점쟁이는 아니지만, 잘못한 정권이 또 다른 미사여구로 국민을 현혹시켜 표를 달라고 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대의민주주의라고 말하는 모습에서도 분노를 느꼈다. 집권세력이 대가를 바든 게 정치적 도의고, 정권교체는 시대가 요구하는 필연적 조치다. 기업에 무한 자유를 주고, 노동 3권이 말살되어야 잘 사는 나라가 이명박 정권의 국정철학이었다. 과연 그렇게 해서 지난 5년간 국민 삶이 좋아졌는가? 경제가 나빠지고 국민은 아우성치는 일을 또다시 되풀이할 수 없다. 선거로 심판받아야 한다."

- 새로운 대통령은 어떤 대통령이길 원하는가.
"유력 후보들의 공약 등을 철탑에서 봤다. 비록 현장감은 떨어지지만 정리해고 요건 강화, 비정규직 차별해소 등을 노동 분야의 여러 기본권 문제들을 구체화한 사항을 내놓았더라. 이런 것들을 최우선으로 해서 정말 어두운 곳, 힘들고 차별받고 고통 받는 사람들을 최우선으로 챙겨줬으면 한다. 그걸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국민들은 용기를 낸다. 소통하고, 열린 정부가 되길 바란다."

- 오늘 투표할 수 있는 시민들에게 한 마디 한다면.
"이 나라의 양극화는 재앙과도 같은 수준이다. 그런데 저는 투표로 바뀐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 유일하게 주어진 참정권을 포기한다면, 사회는 우리가 바라는 만큼 좋아지지 않는다. 정치인이 가장 무서워하는 건 우리의 투표권이다. 반드시 투표장으로 가주시길 부탁드린다."


태그:#쌍용차, #고공농성, #대선, #투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정치부. sost38@ohmynews.com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