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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대선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제18대 대통령선거 부재자투표 첫날인 13일 오후 서울 동작구청 지하1층에 부재자투표소가 설치된 가운데, 대부분 20~30대인 젊은 유권자들이 구청 정문밖에까지 길게 줄을 서서 투표를 기다리고 있다.
 제18대 대통령선거 부재자투표 첫날인 13일 오후 서울 동작구청 지하1층에 부재자투표소가 설치된 가운데, 대부분 20~30대인 젊은 유권자들이 구청 정문밖에까지 길게 줄을 서서 투표를 기다리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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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선거 정국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여야의 유력 후보가 오차범위 내에서 선두를 다툰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보여주듯 어느 때보다 치열한 선거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유권자들의 관심과 참여도 높습니다. 재외국민의 높은 투표율에 이어 부재자선거까지 참여열기까지 뜨겁습니다. 정치에 별로 관심없던 제 아내까지 "대선을 앞두고 처음으로 긴장되고 흥분된다"고 할 정도입니다. 

13일 서울 동작구청에 길게 늘어선 청년들의 부재자 선거행렬 사진을 보면서 진한 감동을 느꼈습니다. 노량진 학원가에서 공부하는 수험생들은 마음의 여유도 없이 촌음을 아끼고 싶을 텐데도 몇 시간씩 줄을 써서 투표를 하더군요. 이 청년들이 선거에 참여한 보람을 느끼는 결과가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왕복 14시간 기차타고 투표한 1992년 대선

1992년, 그러니까 정확히 20년 전입니다. 처음으로 대선에 선거권을 행사할 자격을 얻었습니다. 당시 학생이던 저는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미처 부재자신고를 하지 못했던 터라 투표를 포기해야 할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패기넘치는 열혈 청년이었던 때라 포기할 수 없었다. 선거 전날 밤 기차를 타고 서울에서 고향까지 7시간을 달렸습니다. 그리고 한 표를 행사하고 바로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왕복 14시간이 걸렸고, 비록 제가 투표한 후보가 당선되지도 않았지만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투표에 참여하지 않고 대통령을 잘못 뽑으면 1987년 이전처럼 대통령 선거조차 할 수 없게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후로도 저는 대선은 물론, 총선, 지방선거까지 한 차례도 선거를 빠뜨리지 않았습니다. 가끔은 제가 지지한 후보들이 당선되는 기쁨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저는 공무원이 되었습니다. 공무원 신분이라 선거운동은커녕 특정 후보를 지지한다고 내색하기도 힘들어졌습니다. 여전히 정치에는 관심이 높은데 선거국면에서 적극적인 의견을 개진할 수 없으니 답답했습니다.

헌법은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한다고 했는데, 법률은 공무원들에게 침묵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백번 양보하여 선거의 공정성을 위해 공무원의 중립이 필요하다면, 선거철이 아닐 때라도 자유롭게 정치적인 의견개진이 가능해야 하는데 그것도 어렵습니다. 세상이 어떻게 되건 공무원은 입을 다물거나 아니면 차라리 관심을 끊어야 할까요.

그래서 이번 선거에서 저의 판단기준은 하나입니다. 바로 '표현의 자유 보장'입니다. 시민 누구나 직업, 신분, 성별, 나이, 정치적 견해에 관계없이 자유로운 의사표현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후보에게 표를 던지려고 합니다. 최선이 없다면 차선을, 차선도 안 된다면 차악이라도 택하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대통령이 누가 되건 큰 차이가 없다고 합니다. 물론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표현의 자유를 기준으로 본다면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저는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정부를 거쳐 왔습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대통령이 누구냐에 따라 제가 느끼는 '표현의 자유' 지수는 천양지차였습니다. 

최근 몇 년만 놓고 보자면 공무원 사회의 표현의 자유는, 거의 땅에 떨어진 수준입니다. 정치적 의견을 표명한 공무원들에게는 징계나 형사처벌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정치적 의견표명한 공무원·교사·판사, 징계에 형사처벌까지

제18대 대통령선거 부재자투표 마지막 날인 14일 오후 서울 관악구의회에 설치된 투표소에서 한 유권자가 투표용지가 담긴 봉투를 투표함에 넣고 있다.
 제18대 대통령선거 부재자투표 마지막 날인 14일 오후 서울 관악구의회에 설치된 투표소에서 한 유권자가 투표용지가 담긴 봉투를 투표함에 넣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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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국세청 공무원은 2009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자 내부게시판에 전 국세청장이 표적 세무조사를 하여 원인을 제공하였다는 글을 올렸습니다. 그러자 국세청은 그를 파면하고 명예훼손 혐의로 법정에 세웠습니다. 재판 결과 무죄판결이 내려졌고 복직했지만 이미 그는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어느 직업군인은 트위터에서 대통령을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가 상관모욕죄로 기소돼 지난 8월 징역 6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 받았습니다. 지난 11월에도 "사대강으로 총알 장전해서 신공항, KTX, 수돗물까지 다 해처먹으려는 듯"과 같은 글을 올린 군인이 비슷한 처벌을 받았습니다. 2008년부터 2012년까지 SNS에서 대통령을 비방했다는 이유로 내부징계를 받은 현역 군인만 총 7명이라고 합니다.

2009년 미국산 소고기 수입 사태로 대통령이 사과까지 했던 시점에 공무원과 교사들은 6월을 전후하여 "민주주의의 가치가 더 이상 짓밟혀서는 안 된다"는 취지로 시국선언을 발표하였습니다. 그러자 당국은 이들을 현행법 위반으로 고발하고, 파면·해임 등 중징계로 맞섰습니다. 상당수는 일터로 돌아갔지만 아직도 법정 공방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헌법으로 신분이 보장되는 판사들에게도 최근 표현의 자유는 절실하게 다가왔습니다. 어느 판사는 2011년 SNS에 한미FTA 강행통과를 비판했다가 보수언론으로부터 옷을 벗으라는 압력을 받고,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에 회부되는 수모 아닌 수모를 겪었습니다. 그 무렵  SNS로 시민들과 활발히 소통하던 다른 판사는 결국 연임에서 탈락하고 말았습니다. 이른바 '석궁사건'과 관련하여 내부게시판에 글을 올렸던 또다른 판사는 정직 6개월이라는 중징계를 받았습니다.  

최근에는 개인 블로그에 남북관계와 관련된 게시물들을 '펌글'했던 공무원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검찰조사를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어느새 공무원들은 어지간해서는 자기 주장을 밝히기 힘든 시대가 돼버렸습니다.

표현의 자유 위축, 공무원만 그럴까

과연 공무원 사회만 그럴까요. 공무원 바깥 세상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2009년 인터넷 경제대통령으로 불리던 '미네르바'의 구속은 누리꾼들에게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미네르바는 무죄판결로 풀려났지만, 인터넷에 정부정책을 비판하는 걸로도 구속이 될 수도 있다는 걸 확인한 누리꾼들은 자기검열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2010년 '쥐벽서 사건'도 상징하는 바가 큽니다. 박아무개씨는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서울 시내에 붙어 있던 홍보 포스터에 쥐그림을 그려 넣었습니다. 해프닝이나 풍자 정도로 넘길 수도 있었겠지만 검찰은 정색하고 구속영장까지 청구했습니다. 영장은 기각됐으나 박씨는 포스터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공용물건손상죄로 벌금형을 받았습니다.   

정부정책을 비판하거나 대통령을 비난했다가 가까스로 무죄판결을 받았지만 수난을 겪은 사례도 적지 않았습니다.

2010년 박아무개씨는 SNS에 "이명박 암살 원하시는 분은 추천요~ 추천 100개 돌파하면 암살 실행합니다"라는 글을 올렸다가 살인예비죄로 구속되었습니다. 인터넷 게시물과 검색어 등을 근거로 검찰은 시민을 구속하고 대통령 암살범으로 기소한 것입니다. 다행히도 법원은 "살인하려는 고의나 목적이 없었다"며 그를 풀어줬습니다. 

몇 달 전에는 자신이 운영하는 인터넷 사이트에 대통령을 비난하는 글을 올렸던 신아무개씨가 협박죄로 기소된 사례가 있었습니다. 검찰은 그의 글에 있던 "노무현 대통령의 가족들에게 다시 음모의 덫을 씌우려고 한다면 이번에는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명심해라 이명박, 이 ×××야"와 같은 표현을 문제삼았습니다. 대통령을 협박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1심 법원은 "권력에 대한 견제와 비판을 업으로 하는 언론인이 공개적으로 대통령을 비난하였다 하더라도 국가의 형벌로써 의율하는 것은 지극히 신중을 기하여야 한다"고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이밖에도 박원순 서울시장은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로 재직하던 2009년 한 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후원사업 무산에 국정원이 개입되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가 국가로부터 2억원의 명예훼손 소송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누구나 잘 알고 있듯이 지난 대선때 BBK의혹을 제기했던 정봉주 전 의원도 공직선거법상의 허위사실공표죄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아 수감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블로그, 트위터,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거나 인터넷 댓글을 달면서도 불이익을 걱정해야 하는 시대에 와 있습니다. 정보통신 강국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입니다. 심지어는 대선토론에서 나온 이정희 후보의 발언 수위 때문에 그의 형사처벌을 걱정하는 사람도 있을 지경입니다. 21세기 민주공화국에서 말과 글 때문에 불이익을 당할 것을 두려워 해야 한다니 서글프지 않습니까.

흑색선전 막는 일보다 말할 권리 보장이 더 중요하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14일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흑색선전과의 전면전을 선포한다'고 밝히고 있다. 한편 박 후보는 지난 12일 대구 유세 도중 중견배우 강만희씨가 안철수 전 후보를 향해 "죽여버려야한다"고 막말 한 것에 대해 대신 사과했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14일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흑색선전과의 전면전을 선포한다'고 밝히고 있다. 한편 박 후보는 지난 12일 대구 유세 도중 중견배우 강만희씨가 안철수 전 후보를 향해 "죽여버려야한다"고 막말 한 것에 대해 대신 사과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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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긴급기자회견을 했습니다. 그는 흑색선전, 마타도어와의 '전면전'을 선언했습니다. 그러면서 상대 후보를 향해 "이런 세력이 정권을 잡으면… 대통령 비방하는 댓글 하나만 달아도, 컴퓨터 내놓으라고 폭력정치, 공포정치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비판하였습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미 우리는 대통령이나 정부정책을 비판·비난했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저는 흑색선전을 막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자유롭게 말할 권리를 보장하는 일이 더 소중하다고 여깁니다. 

이번 대선에서 왜 자꾸 과거를 얘기하느냐고, 미래를 얘기하자는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과거를 제대로 평가하고 현재를 반성하지 않고서는 미래가 없습니다. 이미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고 자기검열의 시대를 살고 있는데 이걸 외면한 채 미래를 말한다는 건 진정성 없는 태도일 뿐입니다. 

물론 대통령 한 명이 바뀐다고 해서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다고 생각할만큼 제가 순진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대통령 한 사람이 수만 명의 표현의 자유를 가로막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는 걸 충분히 경험하고 깨달았습니다.

어느새 저도 글을 쓰면서 항상 무언가를 의식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스스로 부끄럽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자기검열 없는 시대를 살기 위해, 저의 표현의 자유를 가로막지 않을 후보를 선택하고자 합니다.   


태그:#대선, #표현의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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