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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를 둘러보고 내려오는 길 좌측에는 사리탑이 많았다. 입구에 있는 사리탑을 살펴보다가 성철(性徹)스님의 사리탑이 있다는 표지석을 발견하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성철스님, 오로지 구도에만 몰입했던 승려로 파계사에서 오래 앉아있을 망정 눕지 않고 앉자 있더라도 등을 벽에 기대거나 몸을 어디에 의지하지 않는 장좌불와(長坐不臥) 8년 수행으로 유명하신 분이다. 해인사에서 하동산(河東山) 대종사(大宗師) 밑에서 득도했다.

전두환 정권 때 조계종 종정으로 추대된 이후에도 계속 백련암에서 구도했다. 지눌의 '문득 깨달음에 이르는 경지에 이르기까지에는 반드시 점진적 수행단계가 따른다는 돈오점수(頓悟漸修)'를 비판했다.

성철스님 사리탑
▲ 해인사 성철스님 사리탑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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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박에 깨치고 단박에 닦는다'라는 뜻으로, '단박에 깨치면 더 이상 수행할 것이 없는 경지에 도달한 것이다. 그러니 깨치고 난 뒤에도 더 수행할 것이 남아 있다면 진정으로 깨치지 못한 것이라는 돈오돈수(頓悟頓修)'를 주장하여 불교계에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인물이기도 하다.

평소 존경하던 성철스님을 이렇게 사리탑 참배를 통하여 만날 수 있어 무척 좋았다. 스님께서 잠시 도시생활에 지친 나를 둘러보는 시간을 주신 것 같다. 이제 다시 길을 나서 용주면 가호리에 있는 '합천영상테마파크'로 갔다.

일제 시대 경성이 건물들
▲ 합천영상테마파크 일제 시대 경성이 건물들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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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사극을 촬영하는 영화 및 드라마 세트장이다. 지난 2003년 장동건이 주연한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평양시가지 전투 세트장을 제작하여 영화 흥행 후 많은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오자 합천군이 2004년 적극적으로 영상테마파크로 확대 조성한 곳이다.

내부에는 증기기관차, 탱크, 장갑차 등이 서 있는 폐허가 된 평양시가지를 비롯하여 전차가 오가는 거리, 조선총독부, 헌병대 건물, 경성역, 반도호텔, 세브란스병원, 파고다극장, 책방, 목욕탕, 세탁소, 이발소, 양장점, 살롱, 찻집 등 1930~1940년대 일제강점기 경성시가지 모습이 재현되어 있다.

일제시대 경성의 풍경
▲ 합천영상테마파크 일제시대 경성의 풍경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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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1960~1980년대 서울 소공동거리도 만들어져 있다. 영화 <모던보이> <전우치> <적과의 동침>을 비롯하여 드라마 <서울 1945> <경성스캔들> <에덴의 동쪽> <주몽> <자이언트> <제중원>등이 촬영되었다.

경성에 있던 일본 가옥
▲ 합천영상테마파크 경성에 있던 일본 가옥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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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뒤편에 있는 일본식 가옥을 유심히 보았고, 소공동 풍경 가운데 빵집과 약국, 극장, 칠성콜라 광고 등을 재미있게 살펴보았다. 축구선수 출신인 차범근 감독 가족이 두 자녀 낳기 운동에 동참하여 대한가족계획협회 홍보용 포스터를 촬영한 것을 발견하고는 정말 박장대소했다.

딸 하나를 가운데 두고 "하나만 더 낳고 그만 두겠어요"라고 쓰여진 포스터는 예전 국책사업의 실태와 자녀가 셋인 차감독의 현재 모습이 떠올라서 웃음이 나왔다. 거짓약속을 한 것이기 때문이다.    

차범근 감독의 가족계획 포스터, 웃긴다
▲ 합천영상테마파크 차범근 감독의 가족계획 포스터, 웃긴다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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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라 해는 빨리 지고, 나는 입구 근처에 있는 우동 집에 들러 일본인 주방장이 해주는 사누키우동을 간식으로 허겁지겁 먹고 있는 배고픈 친구들의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가 밖으로 나왔다. 이제 저녁을 먹으러 갈 시간이다.

석식은 합천읍 이화예식장 앞에 있는 한 식당에서 통삼겹살구이를 먹었다. 젊은 주인이 얼마나 서비스가 좋은지 웃어가면서 연신 고기를 뒤집고 올리고 자르고는 마늘과 상추 등을 듬뿍듬뿍 주어 배불리 먹었다.

합천
▲ 합천의 돼지고기 구이 합천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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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주로 소주와 막걸리를 한잔씩 하고는 인근에 있는 숙소로 향했다. 눈도 오고 추운 날씨라 간단하게 샤워를 하고는 다가오는 대선 관련 뉴스를 잠깐 시청하고는 잠자리에 들었다. 피곤했지만 기분 좋은 하루였다.

오전 6시쯤 일어났다. 간밤에 먹은 삼겹살과 마늘로 인해 아직도 입안에 고기냄새와 마늘향이 감돈다. 아침은 무엇으로 할까 고민을 하다가 대병면 회양리 합천호 곁에 위치하고 있는 '황태촌'으로 가서 황태와 버섯, 대구 등을 왕창 넣은 해장국으로 식사를 했다. 속이 확 풀리도록 시원하다. 여러 가지 해산물과 나물, 채소를 넣은 국이라 맛도 유별나게 좋았다.

아침은 해물 해장국
▲ 합천군 아침은 해물 해장국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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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마친 우리들은 식당 앞에 있는 '합천호(陜川湖)'를 잠시 살펴보았다. 물안개라도 피어나길 바랬지만 날씨가 좋아 멀리까지 보이는 것이 상쾌하고 좋았다. 합천호는 지난 1988년 낙동강 지류인 황강(黃江)을 막아 댐을 만들면서 생겨난 인공호수이다.

연간 2만3400만㎾의 전력을 생산하는 합천댐에는 붕어와 잉어, 메기 등이 서식하고 있어 천혜의 낚시터로 꼽히고 있다. 호수와 산허리를 끼고 달리는 40㎞에 이르는 호반도로는 자동차 여행의 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합천군
▲ 합천호 합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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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차를 타고 호수 일부를 돌면서 살핀 다음, 이웃 산청군으로 이동했다. 산청은 작년 봄 '한방약초축제'가 열린다고 하여 잠시 방문한 적이 있는 곳이라 즐겁게 다시 찾았다. 우리가 가장 먼저 간 곳은 고려 말 문익점 선생이 중국에서 목화씨 10알 정도를 몰래 가져와 심은 터인 사적 제108호 '목면시배 유지(木棉始培 遺址) 전시관'이다.

산청군
▲ 조선목화 산청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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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은 장인 정천익과 함께 이곳에서 목화 시험재배를 하였는데, 처음에는 재배기술을 몰라 한 그루만을 겨우 살릴 수 있었다. 그러다가 3년간의 노력 끝에 드디어 성공하여 전국에 목화재배기술을 퍼지게 했다.

이곳에서는 지금도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옛터에 밭을 일구어 해마다 목화를 재배하고 있다. 나는 이곳에서 재미난 책을 발견했다. '더씨드'라는 책 제목에 부제로 '문익점의 목화씨는 어떻게 토요타자동차가 되었는가? 라는 책이다.

목화와 토요타 자동차
▲ 문익점의 목화 시배지에서 목화와 토요타 자동차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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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벽장 안에 전시된 책이라 내용을 볼 수는 없었지만, 이영복 문화관광해설사의 설명으로는 "현재 토요타자동차는 세계최고의 기업이지만, 1933년 토요타방직기제작소(豊田自動織機製作所)내에 자동차 생산라인이 생기기 전까지는 조선목화를 수입하여 면제품을 만드는 방직회사였다"는 것이다.

"목화재배기술이 뒤졌던 일본은 문익점이 토착화한 조선목화를 가공하여 국부를 늘렸다. 현재 초인류기업이 된 토요타자동차 역시도 크게 보면 문익점이 고려 땅에 심은 목화를 기반으로 성장한 방직공장이 시초다. 따라서 문익점의 목화씨가 단초가 되어 토요타자동차가 되었다는 결론이 난다."

비록 논리적 비약이 있기는 했지만 일부 수긍은 갔다. 

김수종과 이영복 해설사
▲ 산청군 문화관광 해설사 김수종과 이영복 해설사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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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전시장 안을 둘러 본 다음, 밖으로 나와 목화밭과 부민각, 비각 등을 살펴보았다. 문익점 선생의 애민정신을 크게 배웠다. '이런 추운 날씨에 선생이 없었다면 수많은 조선 백성들은 아직도 차가운 겨울을 떨면서 보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익점 선생에 대해 짧은 감사의 묵념을 하고는 단성면 묵곡리 성철스님 생가 터에 세워진 사찰인 '겁외사(劫外寺)'와 스님의 본가를 살펴보기 위해 이동했다. 겁외사는 지난 2001년 창건된 절이다. 전국에 있는 15곳의 성철스님 문도사찰(門徒寺刹) 중 한 곳이다.

성철스님
▲ 겁업사 성철스님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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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간 성철스님을 시봉했던 원택스님이 창건하였으며, 정기법회는 달마다 음력 3일 오전에 열린다. 겁외사는 '시간 밖의 절' 즉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절'이라는 의미로, 이름은 성철스님에 의해 지어졌다. 스님은 만년의 몇 해 동안 겨울철이면 백련암을 떠나 부산의 거처에 주석하였고, 그곳을 겁외사라고 부르게 하였는데 그로부터 사명(寺名)을 딴 것이다.


태그:#합천군, #산청군, #문익점 , #해인사, #겁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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