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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보강 : 12일 오후 8시 50분]

지난 3일자 <한겨레> 신문 오피니언 기고란에 어떤 대학생은 '대통령은 메시아가 아니다' 라는 제목의 글에서, "세상에 대통령 하나 바뀐다고 경제가 살아난다는 게 말이 되는 이야기일까? 마찬가지로, 대통령 하나 바뀐다고 살기 좋은 세상이 오고 내가 바라는 국가가 나를 대변해줄 거라는 게 올바른 생각일까?" 하며 "유권자들이 메시아를 꿈꾸며 누군가를 지지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쓴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맞는 말이다. 대통령을 메시아, 구세주로 여기며 투표하는 것은 맹목과 맹종을 불러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통령이 메시아가 아니라 하더라도 대통령과 정당 그리고 정치와 정책은 국민들의 삶 깊은 곳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엄연하지 않은가? 그래서 '정치에 대한 무관심은 많은 것에 대한 무관심'이라는 정치적인 언사도 있는 것이다. 어쩌면 정치의 이러한 영향력 때문에 정치의 정점이랄 수 있는 대통령을 메시아로 인식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정치와 죽음의 관계를 밝힌 정신의학자의 충격적 보고서
▲ <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해로운가> 제임스 길리건 정치와 죽음의 관계를 밝힌 정신의학자의 충격적 보고서
ⓒ 교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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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해로운가>는 제임스 길리건이라는 정신의학자가 쓴 책으로, 정권을 잡은 정당에 따라, 살인율과 자살률이 달라지는 통계를 분석한 책이다.

1900년부터 2007년까지 107년간 미국 정부가 매년 발표한 살인율과 자살률 통계 자료를 분석한 결과, 미국의 공화당 소속 대통령이 집권한 시기에는 살인, 자살률이 급증하였고, 민주당 소속 대통령이 집권한 시기에는 살인, 자살률이 급감하였다고 하였다. 이는 참으로 깜짝 놀랄 사실이 아닌가?

길리건이 보여준 그래프는 미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펴낸 통계 그래프이다. 그러므로 길리건이 일부러 조사하여 구성한 것이 아니며, 이는 어떠한 정치적 의도도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는 다만 폭력 문제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정신의학자였을 뿐이다.

의사로서 나는 죽음의 원인, 곧 위험 요인과 보호 요인들을 짚어내고 병인을 제거하거나 무력화하고 치유력을 극대화하여 생명을 구하는데 일생을 바쳤다. 자살률과 살인율을 보면서 내 손으로 정치·사회·경제적 분석을 하게 될 줄 몰랐다(6장, 179쪽).

길리건의 자료 분석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900년부터 1912년까지 13년 동안 공화당 출신 대통령 3명이 집권한 시기이다. 이 시기에 폭력치사율(자살률과 살인율을 합쳐 부르는 용어)은 상승하여, 인구 10만 명당 22.6명으로 정점에 이른다. 그러다가 1913년부터 1920년까지 8년간 민주당의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집권하자 폭력치사율은 17.4명으로 뚝 떨어졌다. 다음 1921년부터 1932년까지 12년간 잇달아 3명의 공화당 대통령이 집권하자, 폭력치사율은 더욱 가파르게 올라가서 결국 26.5명을 기록한다.

1933년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민주당이 20년간 집권하였고, 이 시기는 폭력치사율이 15명 수준으로 가장 많이 떨어진다. 이어진 닉슨 대통령부터 조지 부시 대통령까지 24년간의 공화당 정부 때, 다시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며 22.4명으로 증가하였다가 1993년 민주당의 빌 클린턴 대통령 재임 기간에 16명까지 떨어지는 현상을 보였다.

숫자의 개념이 안 잡힌다고? 미국 인구가 3억 명이라면 숫자가 1 커지는 것은 해마다 폭력치사로 죽는 사람이 3000명 늘어나는 것이라고 길리건은 말한다. 또한 집권당과 폭력치사의 이런 연관성이 단순히 우연에서 비롯되었을 확률은 1000분의 1도 안 된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왜 집권당의 차이에 따라 폭력치사 발생률이 증감하는가? 길리건은 여러 가지 자료들을 종합하여 실업, 불평등, 불황을 폭력치사의 위험 요인으로 간주하며, 이 세 가지 위험 요인과 정당 정책간의 관계를 다양하고 풍부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규명하고 있다.

먼저, 실업률은 단 한 번의 예외 없이 공화당 정부 때에 올라간 반면 민주당 정부 때는 내려갔고, 둘째, 불황은 공화당이 정권을 잡은 기간 동안, 민주당보다 2.3배가 긴 불황을 가져왔으며, 셋째, 경제적 불평등 역시 말할 것도 없이 민주당 정부 때에 소득과 재산의 격차가 가장 줄었고, 공화당 정부 때에 불평등이 심화되었다. 그래서 폭력치사율도 높아졌다.

여기서 우리는 의문을 품을 수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왜 미국 국민은 민주당보다 더 오랜 동안 공화당이 집권하도록 표를 던지는 걸까? 길리건은 옛날 로마 황제들의 통치 방법인 '분할 정복' 전략을 소개한다. 못 사는 99퍼센트를 갈라놓는 전략이다. 즉, 폭력과 범죄율이 높아지면 중산층은 저소득층이 범죄를 일으킨다고 보고, 저소득층을 도와주려는 민주당을 싫어하게 되고, 정작 저소득층도 범죄자에게 더 엄격한 공화당이 치안과 번영을 가져온다고 믿게끔 전략을 짠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공화당이 최상류층을 대변하는 정당임을 깨닫기 어렵게 만든다.

이런 사실을 통해 나는 미국이 왜 총기 사용을 규제하지 못하는지, 공화당이 왜 미국총기협회를 지지하는지, 왜 미국총기협회는 공화당을 후원하는지 확연하게 알게 되었다. 범죄는 공화당의 보증 수표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길리건은 폭력치사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정당이라기보다 그 정당이 채택한 정책이라고 하였다. 그렇지 않은가? 실업과 불황과 경제·사회적 불평등은 바로 국정을 운영하는 정당이 추진한 정책의 산물인 것이다. 선거에서 정책의 중요함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 정당의 시선이 어디에 머물러 있는가가 그래서 참으로 중요한 것이다.

길리건은 매우 민감한 문제일 수 있는 정당과 폭력치사의 관계를 서술함에 있어, 예상되는 반발과 반론을 의식한 듯 조심스러운 어조로 간곡하게, 반복적인 방법을 통해 접근하다가 결론 부분에 가서는 '정치가 삶과 죽음을 가른다'고 하며, 매우 단호한 어조로 공화당을 비판하기에 이른다.

공화당이 국정 운영을 해서 나온 결과가 극형을 포함한 살인율과 자살률이 올라간 것이었다는 점을 보면, 공화당은 생명을 파괴하는 세력이다(7장, 200쪽).

그래서 지금 미국의 수감률은 중국, 이란 같은 경찰 국가를 포함해서 지구상 어느 나라보다도 높으며, 미국 안에서도 1969년 공화당이 정권을 탈환하기 전까지 어떤 시기의 수감률보다도 6배 이상 높다(7장, 201쪽).

폭력치사 발생률을 높이는 공화당의 성적은 공화당이 행복 추구를 실현하기보다 저지하는 데 재주가 많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7장, 201쪽).

대통령 선거를 앞둔 지금, OECD 국가 중 부동의 자살률 1위인 우리나라 역시, 자살률의 고공 행진이 정당의 어떤 정책과 관계를 가지는지 깊이 살펴봐야 할 것이다. 비록 정권교체가 한 번밖에 이뤄지지 않아 두 정당 간의 비교가 어려울지라도, 그 동안 집권한 정당이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한 데 따른 당연한 결과가 아니었을까.

평등주의를 실천하고 사회적 안전망을 확보하며, 서민 대중의 공동선을 위한 정책을 채택하고 실천할 수 있는 대통령을 선출하는 것이 자살률과 살인율을 낮추는 것이라면, 생명을 구하는 정치를 하자며 권하는 길리언의 다음 말들을 깊이 새기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유권자들이 대통령 후보에게 표를 던질 때는 개인이 아니라 사실은 그가 속한 정당을 찍는 것임을, 좋든 싫든 그 정당과 결부된 모든 이념을 보고 투표를 하는 것임을 기억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7장, 217쪽).

덧붙이는 글 | <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해로운가>,제임스 길리건, 이희재 옮김, 교양인



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해로운가 - 정치와 죽음의 관계를 밝힌 정신의학자의 충격적 보고서

제임스 길리건 지음, 이희재 옮김, 교양인(2012)


태그:#공화당, #민주당, #정책, #폭력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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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의 작은 대안고등학교에서 아이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시집 <느티나무 그늘 아래로>(내일을 여는 책), <너를 놓치다>(푸른사상사)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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